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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진 민족, 발칸 유럽 남슬라브족 이야기 ㅣ 한국외국어대학교 동유럽발칸연구소 총서 1
김철민 지음 / 한국외국어대학교출판부 지식출판원(HUINE) / 2020년 4월
평점 :
몇 권의 발칸 유럽 관련 서적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은 발칸 유럽 전반의 역사에 대한 체계적 기술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점이다. 마크 마조워의 저작은 제목과 달리 일반적 의미의 통사가 아니다. 여타 서적들도 결국 개별 국가의 짤막한 역사 소개라는 한계에 그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매우 뜻깊다. 발칸 유럽을 구성하는 주류 민족인 남슬라브족을 주인공으로 발칸 유럽을 시대적으로 파악하고 있다. 민족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발칸 유럽 전역을 포괄하지 못한다는 단점에도 발칸 유럽사를 개괄하는 장점이 더욱 크다. 물론 슬라브족이 진출하는 6세기 이전의 고대도 한 장을 할애하여 구성의 충실성도 기하고 있다.
이 책에는 발칸 유럽 국가 중 남슬라브족에 속하지 않는 루마니아와 알바니아는 당연하게도 제외되어 있다. 남슬라브족 중에서도 불가리아는 중세 불가리아 왕국 이후부터는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즉 이 책은 철저하게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에 속해 있던 국가들의 흥망성쇠를 다루고 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한가지 단점을 추가하자면 삽입된 도판과 지도 자료가 흑백이고 더욱이 지도의 크기가 작아 지명을 알아보기 어렵다는 점.
이 점을 제외한다면 내용 자체로는 매우 유익하다. 중세 시절 불가리아와 세르비아는 독자적 전성기를 누렸고 이것이 근현대로 이어져 대불가리아와 대세르비아를 되찾겠다는 욕망으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음을 현대사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한편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는 지역적, 문화적으로 합스부르크와 오스만 터키의 경계에 있으면서 인종과 종교가 혼재되는 구조적 요인이 불가피하였다는 점도 알게 된다. 19세기 들어와 민족주의 이념이 전파되고 오스만 터키가 약화하는 시기를 틈타 남슬라브족들이 차례차례 독립국가를 출발하는 과정에 이 지역의 지배권을 둘러싼 오스트리아제국과 신흥 세르비아의 첨예한 갈등, 여기에 정치적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유럽 열강의 이합집산이 어떻게 제1차 세계대전으로 촉발되었는지도 일목요연하게 조감할 수 있게 해준다.
구 유고슬라비아 연방은 티토와 함께 태어났고 티토의 사망으로 붕괴하였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렇게 갈등과 반목의 이질적인 민족들을 하나의 연방으로 유지한 티토의 카리스마도 대단하지만 결국 영속에 실패했음을 감안하면 처음부터 평화적으로 갈라지는 것도 나은 선택지가 아니었을까 하는 것은 훗날 독자의 손쉬운 평가에 지나지 않으리라. 이 책의 후반부가 구 유고슬라비아연방과 티토 사후 연방의 파괴적 해체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음은 당연하다. 그 끝이 유고 내전과 보스니아 내전, 그리고 코소보전쟁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 책은 마케도니아 내전을 다루지 않는데, 내전의 본질이 알바니아계 이슬람인의 독립 요구이기 때문이다.
역사에 가정을 두어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동·서로마제국의 분기점이 보스니아가 아니었다면, 이슬람의 침공 시 동·서로마교회가 교세 확장이라는 근시안적 욕심을 부려 분열하지 않고 단합하였다면 발칸 유럽의 미래는 전혀 달라졌을 것이다. 이제 현실을 직시하자. 국제사회의 압력과 정치, 경제적 성장에 대한 국민의 요구에 따라 현재의 발칸 유럽의 정세는 비교적 평화롭다. 하지만 발칸 유럽은 땅속에서 마그마가 여전히 부글거리고 있는 휴화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