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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니의 공간 ㅣ 한무릎읽기 4
케이트 뱅크스 지음, 이선희 옮김, 황수민 그림 / 크레용하우스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레니는 혼자다. 아빠는 안 계시고, 엄마는 언제나 바쁘시다. 같이 놀 형제도 친구도 없다. 레니는 똑똑하다. 그에게 학교 수업은 아주 쉽다. 호기심 많고 자유분방한 데다 학교생활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그를 학교 선생님들은 말 안 듣는 골치 아픈 아이로 간주한다. “학습능력에 비해 감정 조절 능력이 뒤처져 있으니”(P.14) 사방에서 좌충우돌하기 마련이다.
레니 같은 아이들을 그대로 두면 자칫 부적응자가 되기 마련이다. 적절한 도움의 손길이 없다면. 단체로서의 사회성을 배양하는 기능이 학교의 중요한 목적이다. 규율을 깨뜨리거나 무시한다면 학교의 안정적 운영 유지가 불가능하다. 이는 사회도 마찬가지다.
다행하게도 레니에게는 뮤리엘 선생님을 만나는 행운이 따랐다. 뮤리엘 선생님이 대단하거나 획기적인 해법을 처방한 것은 아니다. 책장에 레니의 공간을 만들어 준 일, 스스로 옷을 골라 입으라고 한 일, 또 참기 힘든 충동이 들 때면 크게 심호흡을 해보라는 것 등. 무엇보다도 레니의 말에 귀기울여 준다는 점이 다르다. 사람 사이의 관계는 대단한 사건과 계기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사소한 말과 행동에서 내가 이해와 존중받는다는 느낌에서 마음의 빗장이 풀리는 법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외로웠다. 끝없는 바다에 홀로 떠 있는 외로운 배가 된 기분이랄까. 말할 상대가 없어서가 아니라 아무도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 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이 가장 괴로웠다. (P.37)
레니가 자신의 공간을 채울 물건을 찾으려면 결코 혼자여서는 불가능하다. 자신 아닌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 기념이나 추억이 생겨야만 그 물건은 보관할 가치를 지니게 된다. 우리가 꽃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처럼 레니는 밴을 만났다. 그리고 공감의 의미를 발견한다. 레니의 삶에서 밴이 중요한 의미를 지닌 존재가 되었고, 밴의 아픔이 더 이상 레니와는 무관하지 않게 되었다.
엄마의 장갑은 레니와 엄마 사이의 교감을 가로막는 존재이다. 그래서 레니는 엄마의 장갑을 싫어한다. 불가피하다는 사실을 인정하더라도 부드럽고 따뜻한 손길을 느끼고 싶다. 외롭기에. 밴 또한 외로웠으리라. 자신에게 닥친 상황이 한층 두렵기도 하고. 그때 레니가 밴에게 다가와 주었다. 레니 덕택에 밴은 흐뭇한 추억 한가지는 품고 떠날 수 있었으리라. 레니도 밴을 생각하고 염려하는 심정으로 나만이 아닌 다른 사람을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어른이 된다는 건 깨어나는 것과 같아. 깨어나서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되지. 자기중심적이지 않고 주위를 둘러보며 세상을 바라보는 거야. 근데 우리 주위에는 성숙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지. (P.183)
세상의 중심이 내가 아니고 삶이 순전한 행복만은 아님을 깨달을 때 철들었다고 한다. 씁쓸하지만 우리가 어른이 되고자 하면 불가피하다. 레니도 이제 그것을 알 때가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