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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선감의록 ㅣ 문학동네 한국고전문학전집 10
이지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8월
평점 :
한국고전문학전집 010.
총 481면 중 289면에서 454면까지는 한문 원본의 교주본을 수록하였다. 원본에 관심이 크거나 한문에 조예가 깊은 일부를 제외한 대다수의 독자는 본문과 해설을 포함하면 실질적으로는 300면이 약간 넘는 분량이라고 받아들이면 된다. 여러모로 적절한 분량이다.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두고 허구의 날줄과 씨줄을 교묘하게 짜올린 작품으로, 역사적 배경인 명나라 시기의 중국 전역에 대한 정확한 지리적 인식을 갖고 서사를 전개한 점이 놀랍다. 서두의 중국 지도와 비교하면 무척 흥미롭다.
고전소설의 구성 상 특징인 뛰어난 재주를 가진 주인공이 불우한 환경을 극복하고 갖은 시련을 헤친 끝에 마침내 성공하여 역사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전형적 라인을 따라가고 있다. 다만 여기서 주목할 점은 형제간의 불화와 갈등이다. 자기 자식보다 우월한 이복자식을 시기하여 계모가 구박하는 작품은 더러 있지만, 여기처럼 동생을 대놓고 학대하는 내용을 담은 고전소설은 언뜻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이 소설에서 형제간 불화의 전초는 화진에 대한 화욱의 편파적 애정 탓이기도 하다. 재주가 뛰어나 가문을 빛낼 동생에게 마음이 쏠릴 수 있겠지만, 형제간 우애, 집안의 장자에 대한 존중 등 가정 내 훈육 관점에서는 아버지의 처사가 올바르다고 하기 어렵다. 계모 심씨와 형 화춘의 마음속 쌓인 앙금이 결국 화진을 향해 분출되었고, 주인공과 윤옥화, 남채봉은 참으로 백척간두의 위기를 겪으며 파란만장한 세월을 보내게 되었다. 주인공들에 대한 계모의 박해는 하도 극심하여 현실적으로 과연 가능할까 의구심이 들 정도다.
그렇다고 작중에서 계모와 화춘은 악인의 전형으로 귀결되지 않는다. 양자 모두 생사의 위기에 직면하여 화진의 변치 않은 효성과 우애를 깨닫고 개과천선의 미덕을 발휘한다. 악인은 따로 있으니, 화춘의 첩 조월향과 친구 범한과 장평이다. 그들은 화춘의 어리석음을 이용하여 통정하고 재물을 훔쳐 달아난다. 여기서 화춘이라는 인물을 판단하는 관점이 달라진다. 화진에 대한 화춘의 태도는 주변의 재촉과 꼬드김에 마지못해 사태에 휩쓸리는 듯한 양태를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결과론적으로는 분명 악인적 요소가 있지만 귀가 얇고 사려분별이 미숙한 인물로 보는 게 오히려 합당하다. 작품해설에 따르면 다양한 판본이 존재하며, 이본에 따라 인물, 서술 및 세부묘사에서 무시 못 할 차이가 있다고 한다. 따라서 한 편의 판본만 보고 작품에 대한 섣부른 예단은 조심할 필요가 있다.
<창선감의록>의 이본들은 줄거리는 동일하지만, 서술방식이나 등장인물의 캐릭터, 갈등구도 면에서 미묘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를 통해 당대 독자들이 읽었던 <창선감의록>은 하나가 아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중략)......다양한 <창선감의록>의 모습은 오늘날의 독자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수많은 이본 중에서 어떤 텍스트를 선택하는가에 따라 작품의 주제는 다르게 파악되며, 작품에 대한 평가도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P.460)
소설의 주제는 표제에서 확연하다. 선(善)과 의(義)가 그것이다. 단언하면 ‘선’은 화진의 변치 않는 효성과 우애이며, ‘의’는 그의 굳건한 충성이다. 그렇다고 소설의 내용이 따분하고 획일적으로 흐르지는 않는다. 화진의 처남 윤여옥을 둘러싼 흥미로운 사건들이 반영되어 있고, 부정한 인물인 조월향과 범한 등은 오히려 소설에 사실미를 부여한다. 또한 청원 스님과 곽선공의 존재는 전형적 유가풍의 분위기에 불가와 도가적 색채를 불어넣어 작품을 다채롭게 꾸미는 데 일조한다.
개인적으로 화진의 무조건 순응의 태도는 마음에 들지 않는다. 비길 데 없이 학식이 뛰어나고 재주가 많은 주인공이 계모와 이복형의 처분에 무력하게 목숨을 내맡기고 일체의 꿈틀거림도 비치지 않는 모습은 존경스럽다기보다는 무기력해 보일 따름이다.
작자는 그가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당위가 현실에서도 실현된다고 믿고 싶은 것이다. 이 점이 바로 작자가 소설 <창선감의록>을 쓴 이유이다. <창선감의록>은 ‘그래야만 하는’ 당위가 구체적으로 실현되는 허구적 공간이다. (P.467)
작품해설은 작가의 의도를 현실에 대한 당위로 받아들인다. 글쎄 그것이 당대의 추앙받는 가치관이라면 봉건사회가 무너지길 잘했다는 생각이다. 단지 허구적 극단화라면 이건 교각살우(矯角殺牛)에 가깝다. 어찌 되었든 작가의 의도는 궁금하다. 속으로 답답하기 그지없으면서도 열심히 책장을 넘기는 나의 모습은 막장드라마에 심취한 애호가와 다를 바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