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계월전 문학동네 한국고전문학전집 19
조광국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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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문학전집 019.

조선시대 불세출의 여자 홍계월! 갇혀 있던 여성영웅서사에 생생한 숨결을 불어넣다’. 이렇게 책 뒤표지에 홍보문구가 적혀 있다. 봉건적인 조선 시대에 여성이 영웅으로 등장하는 소설이라니! 억눌린 여성의 체제 내 한계 극복을 위한 분투 성과를 담았을 것이라 지레짐작했다. 독후감은 한마디로 한풀이, 교각살우(矯角殺牛).

 

평국이 눈물을 흘리고, 남자가 되지 못함을 한스럽게 여겼다. (P.68)

계월은 남자로 태어나지 못한 것이 분해 눈물로 세월을 보냈다. (P.73)

 

평국은 봉건사회의 남성우위에 극도의 거부감을 지니고 있다. 남존여비로 지칭되는 조선 시대에 어찌 콤플렉스가 없겠는가마는 평국의 반응은 한결같이 매우 격렬하다. 또한 정도가 지나쳐 오히려 여성성을 낮추고 남성성을 높이는 부작용마저 드러낸다.

 

평국은 친구 겸 형제이자 남편이 된 보국을 무시한다. 개인적 능력 면에서 우월한 자신이 보국을 남편으로 높여 섬겨야 하는 게 마뜩잖은 것이다. 작품 내 지속적으로 보이는 평국의 보국 괴롭히기와 조롱하는 장면은 여기에서 비롯한다. 군대 최고 지휘관으로서 남편을 부하로 부리고 군례를 받으며, 전장에서 보국의 멱통을 잡아 천자 앞에서 욕보인다. 또한 남편의 애첩을 시기하여 교만하여 예법을 어겼다고 뜬금없이 군법을 적용하여 목을 베어버린다. 사정이 이러하니 보국이 평국, 즉 계월에 온전히 마음을 주지 못함은 당연할 것이다.

 

이후부터는 예로써 남편 보국을 섬기니, 보국은 한편으로 기뻐하고 한편으로 두려워했다. (P.90)

 

보국의 뛰어난 역량과 거칠 것 없는 용맹은 과연 영웅이라고 할만하다. 반면 포용력과 잔인함은 부정적 여성성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보국은 남편을 힘으로 꺾어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인식한다. 부모의 원수를 갚는 대목의 지나친 잔인성은 여태까지 평국의 긍정적 이미지마저 가려버린다.

 

작품해설은 둘째 아들의 성씨를 홍으로 하여 평국의 성을 따르게 한 점을 페미니즘 측면에서 강조하고 있는데, 내가 보기에 이는 과도한 의미부여다. 천자는 위국공을 초왕에, 여공을 오왕에 임명한다. 여공의 아들이자 위국공의 유일한 사위인 보국은 승상으로 천자를 보좌하여야 하므로 첫째 아들을 오왕의 태자로, 둘째 아들을 초왕의 태자로 보낸 것이다. 위국공이 홍씨이므로 태자의 성을 동성으로 변경한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일개 사인이라면 논란이 있을 수 있으나 왕실의 대통을 잇는 사안임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여성영웅이 등장하는 전통소설로 자체로서 의의가 있고 내용 자체는 제법 흥미진진하다. 작가의 글 쓴 의도를 존중하더라도 이 작품을 페미니즘의 긍정적 지향점으로 삼기에는 미흡하다는 생각이다. 한편 소설 자체는 그리 길다고 할 수 없다. 책의 후반부는 원본을 수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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