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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삼의 피 ㅣ 대한민국 스토리DNA 12
박종화 지음 / 새움 / 2017년 4월
평점 :
월탄은 우리 문학계의 대표적인 역사소설가다. 첫 작품 <금삼의 피>는 연산군 시대를 정면으로 다룬 작품으로서 그의 대표작이기도 하다. <금삼의 피>와 <다정불심>을 수록한 구간 본을 가지고 있었는데, 책이 너무 낡아서 연초에 어쩔 수 없이 버리고 만 점이 못내 아쉽다.
조선 시대의 악명높은 폭군인 연산군의 대중적 이미지는 대중매체의 출현 이전 이미 이 작품을 통해서 세인에게 각인되었다. 그만큼 이 작품은 그의 기행과 파행의 비극적 경로를 준엄하게 때로는 애상적 어조로 호소력 있게 그려내고 있다. 역사소설에서 역사와 소설의 비중 설정은 항상 따라붙는 갈등 관계이지만, 월탄은 사실(史實)의 큰 틀을 유지한 채 인물의 심리와 대화에서 독자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문학작품으로서 정체성을 분명히 한다. 그 밑바탕에는 주인공에 대한 따뜻한 애정과 연민이 놓여있다.
표제에서 알 수 있듯 작품 서사의 핵심은 생모 폐비 윤씨의 억울한 죽음과 이로 인한 아들 연산군의 한풀이다. 성종과 폐비 간의 애정과 소원, 폐비와 후궁 간 대립과 폐비에 대한 왕대비의 증오가 전반부 내내 작품의 갈등의 진폭을 확대하고 심화한다. 그러면서 연산군의 모든 폭정과 악행을 유발하는 트라우마가 폐비의 죽음에 있다고 작가는 섣불리 확대 해석하지 않는데 연산군을 수성보다는 창업에 적합한 군주 유형으로 보는 제안대군의 관점을 통해 성격적 특징을 부각하고 있다.
반추해보면 연산군 시절 두 번의 사화는 당시로써는 불가피한 일면이 있다. 왕실의 계통을 비방하는 무리를 임금 처지에서는 용납할 수 없을 것이며, 자신의 생모를 억울한 죽음에 이르게 한 일은 아들 입장에서는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연산군이 만약 이에서 그치고 이후 왕조와 민생을 위한 정사에 몰입했다면 그와 태종 이방원 간에 역사적 평가에 어떠한 차이가 있을지 궁금하다.
역사소설의 묘미는 역사의 재평가와 가상역사의 상상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또한 역사 기술의 건조하고 거대한 흐름에서 간과되기 쉬운 인물과 행동에 뼈와 살을 입혀 당대에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명군으로 일컬어지는 세종과 성종 사후, 왕조에 피바람이 불어닥친 게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세종은 삼남을 택한 태종에게서 교훈을 얻지 못하였고, 성종은 진실을 영원히 은폐 가능할 것으로 어설프게 예단하였다. 진실이 밝혀지는 순간 연산군과 다른 조처를 했을 사람의 아들은 그다지 없을 것이다. 차라리 폐비와 동시에 폐세자를 같이 해버렸다면 후대 역사는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역사소설을 비롯한 사극 영화 및 드라마 등은 대중적 파급력이 높기에 역사의 과도한 왜곡이 논란이 되기 쉽다. 문학적 상상력과 흥미 외에 사료의 부족과 작가의 편향된 이념 등 사실(史實)을 비틀어버리는 요인은 많다. 따라서 독자는 소설적 흥미와 아울러 작중 기술된 인물과 사건에 대한 엄정한 비판적 인식도 요구된다. 이 작품 이후 전형적 소인과 간신배로 영원히 낙인찍힌 유자광과 임사홍의 진실을 나로서는 아직 확신하지 못한다. 사극의 단골 악연인 장녹수마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