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산기봉 : 현대어본 조선 왕실의 소설 10
임치균.김인회 옮김 /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정신문화연구원)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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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실의 소설시리즈 중 현대어본은 현재로서 이게 마지막이다. 당나라 후기의 실존인물이었던 명장 이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역사드라마를 써내려 가고 있다. 당나라는 현종과 양귀비, 그리고 안사의 난으로 사실상 끝난 줄 알았는데, 어쨌든 부침을 겪으며 150여 년간 잔명을 유지한다. 이때 이성이 당나라를 보존함에 있어 큰 공을 세운 명장이라고 하는데 과문하여 처음 들어보았다. 1313책의 구성으로 5백면에 가까운 장편소설이다.

 

주인공은 천상의 혈통이다. 탁월한 외모에 비할 바 없는 학문을 갖추었으며 덕성과 효성이 지극하다. 게다가 문무를 겸비하며 지략마저 으뜸이다. 한마디로 전형적인 일세의 영웅이라고 하겠다. 영웅소설이라면 뛰어난 주인공이 역경을 헤치며 자신의 영웅적 면모를 세상에 발현시켜야 하는 법. 이 소설 전반부의 대립구도는 계모가 담당한다. 주인공과 사이좋은 계모가 등장하는 고전소설이 있기나 한지 의문스럽다. 장자독식의 체제에서 자기 아들을 적통으로 만들기 위한 과도한 욕심은 당연히 실패로 끝나고 우여곡절 끝에 회개한 계모와 주인공은 화락한 관계를 유지한다.

 

당대의 준걸을 임금이 가만둘 리 없으니 군자에 어울리는 요조숙녀를 아내로 맞아들인 주인공에게 아끼는 화양공주를 강제로 시집보낸다. 공주로서는 보기 드문 덕성을 갖춘 덕택에 두 부인이 돈독한 우애를 유지함은 <천수석>의 동창공주와 마찬가지다. 궁궐과 집안을 넘나들며 오늘날의 막장 못지않은 드라마는 쉼 없이 전개되는데, 여타 소설과 다른 점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완벽한 이성이 비현실적이어서 덜 인간적인 반면 동생 이무는 적당히 뛰어나며 보다 인간적이라는 점이다. 기대했던 아름다운 아내가 아니어서 실망한 그의 눈에 비친 미녀는 그의 사리분별을 흔들어놓는다.

 

명장으로서 이성의 진면목을 보여주려면 전장에 나서야 한다. 실제 역사도 그러했는지 알 수 없으나 작품 속에서 이성은 사방의 전쟁을 종횡무진 한다. 훈육과 토번의 연합군을 무예와 신통력으로 항복시키고 서번절도사의 봉기를 진압하며 돌궐의 침략마저 물리친다. 7권 중반에 상당한 탈락이 있은 후 갑자기 주차의 반란군과 대적하는 장면으로 이어지며 다시금 토번의 침입을 격퇴한다. 이어 진왕 영의 강력한 세력마저 제압하는 등 굵직한 전쟁의 발발은 삼국지 못지않아 군담소설에 가깝다, 다만 분량에 쫓겨 세부적인 치밀한 묘사와 드라마적 요소가 부족하다. 후반부는 이성 본인보다는 그의 동생과 아들들의 맹활약이 두드러진다. 위구르족, 산남지방의 반란세력 등 당나라 후기의 어지러운 정세를 반영하듯 사방에서 변란이 끊이지 않는다.

 

천하의 이성도, 뛰어난 자식들도 일생을 당나라의 수호에 몸 바치지만 이성의 죽음에 임하여도 당나라는 안정을 찾지 못한다. 이성 본인은 혼암한 임금의 변덕에 시달려 총애와 내침을 자주 겪는다. 집안에서도 첫째 부인의 자리를 노리는 제수씨와 며느리 등으로 풍파가 멈추지 않는다. 하늘이 내린 인물이라도 혼자만의 힘으로는 역사의 대세와 세상만사를 해결할 수 없다는 의미일까? 이성의 죽음은 고전소설의 행복한 결말과는 무관하게 어수선한 정국 속에서 홀연 듯 다가온다. 소설도 한 치의 미련 없이 바로 이 대목에서 끝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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