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골문의 비밀 - 갑골문과 무정 왕 그리고 부호 왕비 고려대중국학연구소 문화시리즈 3
신영자 지음 / 문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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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상고사는 신화와 역사가 혼재하여 상나라[은나라]의 역사적 실체가 확인되었을 뿐 삼황오제와 하나라는 여전히 신비의 안개 속에 남아 있다. <사기>도 해당 내용은 <서경>의 복사판에 불과할 정도이므로 사마천조차도 다른 문헌자료를 구할 수 없었던 모양이다. 상나라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건국자인 탕왕과 재상 이윤에 이어 무정 왕과 재상 부열은 상나라를 중흥시킨 공로로 유독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발견된 갑골문의 상당수가 무정 왕 시대의 것이라고 하며, 더욱이 사서에 전혀 언급되지 않는 부호 왕비의 존재는 역사의 공백을 메꾸는 흥미로운 대목이라고 하겠다.

 

갑골문이 상나라 후기, 즉 은허시대에 주로 사용되었고 나라의 대소사를 묻는 용도였으며 거북 등갑을 관리하는 별도 직종이 존재하였다는 점 등에 이어 갑골문으로 해석한 상나라의 정치, 군사, 사회제도 등의 소개 부분은 중국 상고사 이해에 큰 도움이 된다. 예컨대 선진(先秦)시대 이전의 각종 문물을 나타내는 명칭을 보면 유사한 기능을 갖는 물건을 지칭하는 용어가 여럿 존재하여 헷갈린다. 이 책에서는 사진 자료와 함께 차이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여 훨씬 유익하다. 예컨대 솥을 나타내는 정()과 력(), 시루 언()을 쉽게 구별할 수 있다.

 

핵심은 무정 왕과 부호 왕비 이야기다. 무정 왕은 고종으로 시호가 정해질 정도로 상나라 역사에 중요한 임금이다. 갑골문에 따르면 무정 왕 당시의 혁혁한 업적의 상당수가 부호 왕비가 이루어낸 것이다. 기실 갑골문 상의 부호 왕비는 무려 3천년 이전의 시기를 감안하면 중국사에서 단연 독보적인 여성영웅이라고 할만하다. 두 명의 왕을 낳은 왕비이자 정치활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봉지도 하사받으며, 대군을 이끌고 사방의 외적을 물리치고 적극적인 정벌활동도 이끌었다. 갑골문 기록을 보면 무정 왕이 부호 왕비의 출산과 출병에 관하여 묻는 내용이 자주 등장하여 그 비중을 알게 한다. 참고로 부호의 묘는 1976년에 원형 그대로 수많은 부장품과 함께 발굴되어 실체적 사실임이 한층 입증되었다.

 

갑골문 자체에 관심을 가졌다면 제3부가 매우 유익할 것이다. 대표적인 갑골문자를 다수 소개하는데, 현재의 한자와 갑골문자를 비교하여 한자의 어원이 무엇이었으며, 이것이 시대적 흐름에 따라 변모된 사실도 친절하게 풀이한다. 사람 인()은 알려진 것처럼 사람과 사람이 서로 기댄 모습이 아니라 두 손을 앞으로 모으고 서 있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성인 성()의 원 의미는 하늘과 사람의 소리를 듣고 전달하는 사람이다. 개인적으로 닭 유()와 원숭이 신()의 풀이가 흥미로웠다. 술과 관련된 한자는 닭 유를 항상 부수로 쓰는데, 닭과 술이 무슨 연관이 있는지 의아하였다. 갑골문자에서는 유()가 애초에는 술병에 담긴 술을 의미했는데, 후에 10번째 지지인 닭 유로 쓰이게 되어 술을 지칭할 때는 술 주()를 대신 쓰게 되었으며, 원 글자는 여전히 술을 의미하는 부수로 남아 있게 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도 원래는 번개를 뜻하다가 9번째 지지로 뜻이 바뀌게 되었고 원 의미는 귀신 신() 또는 땅 곤()에 자취가 남아 있다고 한다.

 

무정 왕과 부호 왕비를 포함한 상나라 역사와 문화를 폭넓게 파악하는데 크게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갑골문자와 한자의 어원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를 가능케 해주는 좋은 입문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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