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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부민가 - 당전편 203 ㅣ 중국시인총서(문이재) 203
김상호 엮음 / 문이재 / 2002년 2월
평점 :
품절
<시경>을 연간계획으로 천천히 공부해 나가는 도중, 우연찮게 K-MOOC수업에서 중국 악부시를 접하게 되었다. <시경> ‘국풍’편과 일맥상통하는 정서를 담고 있는 악부시에 흥미를 느껴 악부 시선집을 펼쳐든다. 시중에 나와 있는 악부 시선집은 <악부시선>(명문당), <악부시집>(지만지), 그리고 이 책이다. 세 권이 각각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이 책은 악부시 중에서 ‘민가’에 초점을 두고 있다. 악부의 유래가 민심을 파악하기 위해 민가의 수집에 있었다고 볼 때, 악부시의 진면모는 민간에 있다고 본 것이다.
악부시는 송대 곽무천이 편집한 <악부시집>이 일차 텍스트다. 편역자(책에서는 편저라고 되어 있지만, 편역이 올바르다고 본다)은 <악부시집> 중 한대, 남북조 시대의 민가에 해당하는 30편 가량의 작품을 번역하였다. 구성은 번역문과 원문에 이어 작품별 해설을 추가하고 있는데, 해설은 편역자의 감상평 내지 소회의 성격이 강하다.
민중에 불리던 노래이니만치, 당대인들의 현실을 반영하는 내용이 많다. 전쟁, 가난, 사랑과 배신, 불합리한 사회제도 등이 그러하다. ‘성 남쪽에서 싸우다’와 ‘열 다섯에 출정하였다가’는 전쟁의 고통과 무상함을 서늘하게 묘사하여 그들이 받은 고통을 되새기게 한다. ‘동문을 나서며’와 ‘고아의 노래’는 사회 기층민들이 겪는 가난과 생활의 뼈저린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어느 시절에나 사랑은 노래되는 법. ‘하늘이시여’와 ‘원망의 노래’는 사랑의 슬픔과 굳셈을 역설적으로 제시한다.
한대와는 달리 남조와 북조의 악부는 성격에 차이가 있음을 확연히 알 수 있다. 남조 악부는 서정적이고, 아기자기한 여성적 느낌인 반면, 북조 악부는 좀 더 굳건하고 세련되지 않은 대범한 남성성이 느껴진다. 남조는 한족, 북조는 유목민족이 지배한 까닭도 있을 것이다. ‘기유가’와 ‘낭야왕의 노래’에서 죽음을 항상 옆에 두고 살아가는 유목민족의 처연함이 드러난다. ‘칙륵의 노래’는 북방 초원을 직접적으로 묘사한다.
무엇보다도 압권은 한대 ‘초중경의 아내’와 북조 ‘목란의 노래’다. 양자는 중국 시문학에서 보기 드문 장편 서사시에 해당한다. 특히 전자는 ‘공작동남비(孔雀東南飛)’라는 편명으로 더욱 유명하다. 엄중한 유가적 사회질서, 부모에 대한 효와 아내에 대한 사랑 사이에서 갈등하는 남편, 가부장적 틀에서 억눌림을 당하는 여성의 지위. 이 모든 것들이 처연히 혼재하여 시대의 모순과 사람들의 고뇌를 일시에 보여준다.
후자는 애니메이션 영화 <뮬란>으로 더 유명하다. 일부러 영화를 찾아보았는데, 원작을 어설프게 흉내만 냈을 뿐이다. 부모에 대한 효성, 남장여인의 영웅성, 전쟁으로 점철된 당대의 현실 등이 담담하지만 꿋꿋하게 노래된다.
편역자는 말미에 악부시 전반을 소개하는 해설을 수록하고 있다. 개략적으로 악부시의 연혁과 구성, 의의를 기술하는데, 기교주의에 매몰된 훗날 ‘신악부’ 운동이 벌어진 연유도 결국 민중에 기반을 둔 악부시의 건강성을 인정하는 것이다.
이 책은 수많은 악부시 중에서 민가적 성격의 주요 작품만을 선별하여 수록하고 있음이 최대의 장점이다. 따라서 이 한 권만으로 악부시의 요체를 파악하기에 충분하다. 다만, 원시는 몇몇 어휘 설명을 제외하면 독음도 없이 달랑 원문만 실어 놓아 아쉽다.
※ <악부민가>(문이재), <악부시선>(명문당), <악부시집>(지만지)에 수록된 악부시의 편명과 작품수를 확인하여 비교표를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