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빈자리
팀 플래너리 지음, 이한음 옮김, 피터 샤우텐 그림 / 지호 / 2003년 4월
평점 :
품절


일반적인 판형의 특별보급판도 있지만, 이런 유형의 책은 이 정도의 큼지막한 규격이 적합하다. 지난 5백년 사이에 멸종한 동물, 즉 포유류, 조류, 파충류들을 엄선해서 간단한 설명과 함께 실사에 가까운 멋진 실물 그림을 옆에 나란히 수록하고 있다.

 

서기 1,500년 이후를 설정한 것은 소위 대항해시대가 시작되어 지구 구석구석이 인간의 발자취로 오염되어 생물의 멸종이 가속화되어서이다. 어류, 양서류 및 곤충을 포함하지 않은 것은 접근성과 선택의 문제일 것이다. 해당 분류의 모든 동물들이 포함된 것도 아닌데, 삽화가가 그릴 수 있도록 실물에 대한 정보가 남아 있어야 하는 조건도 있다. 이런 악조건을 견디고 추려낸 사라진 동물은 총 103종이라고 한다.

 

저자는 멸종의 연대순에 따라 각 동물을 배치하는데, 종명, 마지막 발견시기와 서식지를 표제로 한 후 본문에는 그 동물들에 대해 알려진 정보(자료가 남아있는 경우), 멸종의 계기를 한 면에 서술한다. 반대편 면에는 해당 동물의 총천연색 실물 그림이 매우 상세하고, 아름답게 묘사되어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게끔 한다. 몇몇 동물은 한 면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양면에 걸쳐 커다랗게 싣고 있어 한층 감탄할 수밖에 없다. 도대체 화가는 무슨 자료와 상상력으로 사라진 동물을 눈부시게 재현해 놓았는지. 게다가 원작은 실물 크기라고 한다.

 

<아이스에이지>로 이름을 날린 도도 새의 실체를 알 수 있으며, 스텔라바다소의 우아하며 장대한 자태는 어떠한가. 늑대같은 포클랜드개와 여우같은 태즈메이니아늑대의 처연함, 돼지발반디쿠트의 낯선 기묘함 등 여기에 등장하는 각 동물은 하나같이 생소하다.

 

인류의 세계 확장에 따라 멸종이 확인된 까닭에 구대륙보다는 신대륙, 그리고 섬 지역의 동물들이 유독 두드러짐은 불가피하다. 오스트레일리아, 하와이 제도나 모리셔스 섬, 남태평양 각지의 섬에 산재한 종들은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였다. 다윈이 갈라파고스에서 발견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런 다양한 고유종들은 미처 학계에 소개되고 대중에게 알려지기 전에 생을 마감하였다. 그 누구도 자신의 행위가 해당 종의 마지막 개체를 죽였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말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다. 봐라, 우리들이 끝장내 버린 아름다운 생명체들을! 이렇듯 환상적인 종인 줄 알았다면 오늘날 누구라도 기꺼이 보호운동에 참가했으리라. 이들이 생존해 있다면 지구의 생물 다양성은 한층 풍요로워졌을 텐데. 여기서 그치면 안 되는 것이 바로 이 순간에도 멸종의 미끄럼틀을 타고 있는 생물들이 한둘이 아니라는 점이다. 수백 년이 흐른 후 우리는 또다시 이렇게 사라진 종들을 안타까워하는 우를 반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그것이 저자가 이 작업에 매진한 연유가 아니겠는가.

 

이 책이 기준삼은 1999년을 기점으로 가장 최근에 멸종한 동물은 1980년대에 해당하는 필리핀맨등과일박쥐와 아티틀란논병아리다. 후자는 1989년이 마지막 목격연도라고 하니, 종말을 맞이한 동물들은 막연히 당대와 무관한 먼 이야기가 아님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글이 내키지 않는다면 종명과 그림만 보고 넘어가도 괜찮다. 혹시 호기심이 생긴다면 그때 해설을 읽어도 좋다. 특별히 학문적이거나 전문적 내용을 담고 있지는 않다. 주로 과학사적인 웃고픈 일화들이다. 이렇게나 많은 신기하고 아름다운 생물들이 인간의 존재로 인해 멸종하였음을 깨달을 수 있다면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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