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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내 친구 ㅣ 작은걸음 큰걸음 1
구드룬 멥스 글, 마리 막스 그림, 문성원 옮김 / 함께자람(교학사) / 2006년 1월
평점 :
역시 아이의 책꽂이를 정리하다가 찾은 책이다. 독일 작가의 글인데, 수지와 한스 할아버지를 중심으로 주변 인물들과의 다양한 에피소드를 소개한다. 수지와 한스 할아버지는 혈연관계가 아니다. 뜻이 맞는 이웃 주민 관계라고 할 수 있는데, 서두에 친구가 된 지 3주가 되었다고 알려준다. 수지는 아침에 눈을 뜨면 바로 한스 할아버지에게 달려갈 정도라고 한다.
수지는 결코 얌전한 여자아이가 아니다. 한스 할아버지가 꼬마 도깨비라고 부르듯이 한마디로 말괄량이에 가까운 스타일이다. 나이 많은 노인에게 전력질주로 뛰어들어 넘어뜨리거나 길게 땋아 내린 자신의 머리카락을 싹둑 자르는 것은 예사다. 변기를 고장 내서 온 집안에 물이 철철 넘치게 하며, 할아버지의 옷가지를 자기 집의 세탁기로 돌리다가 고장 낼 뻔하는 귀여운 사고뭉치다. 수록된 9편의 이야기들은 재미와 동시에 기저에는 따뜻한 인정을 담고 있어 훈훈하기조차 하다.
분명히 흥미진진함에도 이야기에 흠뻑 빠지지 못한다. 수지는 왜 한스 할아버지 하고만 놀까. 수지 엄마는 나오는데 수지 아빠는 왜 등장은 고사하고 언급되지 조차 않는 걸까. 한스 할아버지는 위층의 안나 할머니처럼 노인 아파트에 혼자 사는데 가족이 없기 때문일까 아니면? 읽어나가는 도중 뭔가 이상함과 함께 이런 의문들이 자연스레 떠오른다.
“다들 내다 버릴 생각만 하지! 낡은 건 당장 내다 버리고, 무조건 새로 사는 게 옳은 일이야?” (P.87)
한스 할아버지네 세탁기가 고장 나자 버리고 새 세탁기를 살 것을 제안하는 수지에게 할아버지가 버럭 소리 지른다. 가난한 연금생활자 입장에서 당연한 반응이지만, 한편 사회적으로 소외당하는 고독한 노인네의 씁쓸한 심경을 표출한 발언이기도 하다.
외로운 아이와 고독한 노인의 만남과 교류. 이렇게 표현하면 왠지 구슬픈 어감이지만, 그들이 친구가 되어 서로를 의지하면서 삶의 기쁨과 활력을 되찾고 따뜻한 배려로 상호간에 소중한 존재가 되는 모습은 아름다운 동시에 흐뭇하다.
크리스마스이브, 수지는 쓸쓸하고 가엾은 한스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기뻐하지 못한다. 할아버지는 수지가 크리스마스의 참된 본질을 놓치고 상업주의에 매몰될 것을 우려한다. 아기 예수 탄생 놀이는 등장인물의 총출동의 장을 넘어 수지와 수지를 아끼는 주위 사람들이 진정으로 교감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는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인 동시 사람사이가 지향할 이상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