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카 와일드와 마시는 한 잔의 커피 - 명사와 함께하는 커피 5
매를린 홀랜드 지음, 김혜은 옮김 / 라이프맵 / 2008년 12월
평점 :
품절


서가를 정리하다가 찾아낸 책이다. 내가 구매하거나 받은 것은 분명 아니므로 아마도 아내의 책일 것이다. 정말 작다, 판형을 논하기에 민망할 정도로. 손바닥만 한 크기. 알라딘 서점을 검색해보니 ‘OOO와 마시는 한 잔의 커피라는 제목으로 20권까지 시리즈가 나온 듯 한데 현재는 모두 절판이다.

 

이 책은 오스카 와일드의 삶과 문학을 소개하고 있는데, 구성면에서 독특하다. 먼저 간략하게 그의 일생에 대하여 기술한 후 저자와 오스카 와일드가 파리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를 하는 형식을 사용한다. 와일드의 발언은 저자가 임의로 꾸며낸 게 아니라 서문에 따르면 그의 작품과 편지 등에서 인용하여 거의 그대로 가져왔다고 한다. 전혀 어색한 느낌이 들지 않도록 한 저자의 수고가 대단하다. 이 책의 저자인 메를린 홀랜드는 그의 후손이라고 하는데, 오스카 와일드의 아내가 연루에서 벗어나기 위해 성씨를 바꿨던 때문이라고 하니 이 사건의 여파가 그와 가족들에 미친 여파가 엄청났음을 알 수 있다.

 

오스카 와일드의 인생은 불꽃놀이와 같았다. (P.15)

 

그의 인생을 한마디로 정리하면 위와 같다. 그는 젊은 시절부터 명성을 얻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이다가 서서히 유명세를 얻고 마침내 절정의 순간에 오르던 찰나에 한순간 나락으로 굴러 떨어졌다. 그리고 다시는 명예를 회복하지 못한 채 쓸쓸히 생을 마감하였다.

 

우리가 아는 오스카 와일드는 심미주의 또는 예술지상주의의 대변자이다. 예술을 위한 예술, 너무나도 멋지고 가슴 설레는 구호가 아닐 수 없다. 그가 심미주의를 주창하고 나선 연유가 전적으로 유명세를 얻기 위한 불순한 의도에 불과하지는 않다고 본다. 비록 상당 부분 그러한 목적도 있다고 하지만.

 

(심미주의는) 근본적으로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예술 자체를 위한 예술활동을 말합니다......우리는 다만 사회의 추악함과 물질주의에 저항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P.49)

 

저는 비현실적이고 아름다운 것들을 표현하는 예술로 돌아가기를 바랐습니다......이 작품(<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은 인간의 관능을 찬양합니다. (P.67)

 

산업주의와 자본주의가 절정기에 접어들면서 사회는 물론 예술에서도 현실을 묘사하는 사실주의적 작풍이 주류가 되었다. 오스카 와일드는 예술의 독자성 내지 자율성을 주창하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세속의 통속적 편견과 사회의 기율에 속박당하지 않는 자유로운 존재로서.

 

동성애와 그로 인한 감옥생활을 빼놓고 그의 삶을 논할 수 없다. 그의 심미주의는 세기말 풍조에 기반한 것이기에 도덕적으로 퇴폐풍조에 빠질 우려가 있었다. 게다가 저자가 지적한 대로 가면을 쓴 그의 이중적 면모는 선천적 성격과 동성애로 시작된 후천적 경험이 결합된 결과로서 삶뿐만 아니라 작품에서도 드러난다고 한다.

 

그의 이중성은 여전히 매력적이며 인생이나 작품이나 똑같이 모순투성이라 혼란스럽다. 한마디로 어디까지가 설정이고 어디까지가 작가의 진면목인지 알 수가 없다. (P.27)

 

그의 작품은 빛나는 에피그램의 포장 아래 자포자기와 불법행위, 위장과 이중생활이라는 불편한 주제들을 감추고 있다. (P.23)

 

오늘날 동성애자라는 사실은 내세울만한 사실은 아니지만 과거처럼 인륜의 죄악으로 간주되지도 않는다. 지금의 관점으로 오스카 와일드를 변호한다면 시대를 잘못 만난 죄로 동정 받아 마땅하다. 반면 당대의 실정법을 중시한다면 어떻든 시대의 윤리와 도덕을 위반한 점은 사실이므로 그의 유죄 또한 변함없다. 어쨌든 그가 유죄판결을 하고 감옥생활을 한 이후 그의 화려한 경력은 스러지고 가족 또한 풍비박산 되었다.

 

저는 희생양이었습니다. 영국에서는 <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살로메>도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데카당스를 상징하는 저 또한 영국사회에서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빅토리아 시대가 상징하는 가식과 위선을 향해 계속해서 도전장을 던진 저는 영국사회의 반항아이자 위험인물이었으니까요. (P.103)

 

그의 주장처럼 그는 희생양일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는 유명해지고 싶다는 자신의 소망을 이룬 셈이다. 개인적으로 오스카 와일드는 선호 작가가 아니다. 어렴풋이 <행복한 왕자> 정도만 읽은 기억이 남아있다. 내게는 명성만이 자자한 작가에 지나지 않는다. 화려한 언변과 유머로 이름을 얻었을 뿐 실제 작품성은 수준 높지 않을 거라는 선입관이 잠재되어 있고, 또한 <옥중기><도리안 그레이의 초상>으로 대표되는 작품세계가 취향에 호소하지 못하며, 마지막으로 동성애자로서 수감생활을 하였다는 작가 개인사가 마뜩치 않아서이다.

 

이 책 덕분에 조금이나마 오스카 와일드에 대한 관심이 생겼다. 본격적으로 오스카 와일드에 다가서지 못한 나로서는 그의 명성이 개인사의 에피소드에 기인한 것인지 아니면 순전히 문학적 성취에 근거한 것인지 알지 못한다. 차후 시간되는 대로 그의 작품을 찬찬히 읽어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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