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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의 가장자리 ㅣ 레이첼 카슨 전집 3
레이첼 카슨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18년 3월
평점 :
레이첼 카슨 전집의 셋째 권이자 이른바 바다3부작의 마지막 편에 해당한다. 수 허벨(누구?)의 서문에 따르면 카슨은 당초 ‘해안 동식물 안내서’로 이 책을 구상하였다. 비록 중도에 집필 계획을 변경하였지만 그래서인지 다른 저작에 비해 이 책은 가이드북 성격이 짙다. 카슨이 바다시리즈로 이 책을 쓴 것은 필연적이라고 생각한다. 앞선 저작이 바다의 생물학과 지리학에 관한 것이라고 할 때, 바다의 일부이자 육지와의 접점인 해안을 빠뜨린다면 무언가 허전하였으리라. 우리들 대다수가 실제 바다를 접할 수 있는 곳이자 상대적으로 익숙한 바다의 장면은 바로 해안에 있다.
해안은 장구한 세계다. 육지와 바다가 존재해온 시기만큼 육지와 바다가 만나는 지점인 이곳 해안도 존재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해안은 끊임없는 창조와 끈질긴 삶의 본능에 관한 감각이 생생하게 살아 있는 세계이기도 하다. 해안에 들어설 때마다 나는 하나의 생명체가 다른 생명체, 그리고 자신을 둘러싼 환경과의 관련성 속에서 생명이라는 복잡한 옷감을 직조한다는 사실을 느끼고, 그 아름다움과 참다운 의미를 새삼스레 깨닫곤 한다. (P.26~27)
이 책에서 다루는 해안은 미국 동부의 해안지대다. 카슨의 말마따나 미국 동부의 대서양에 임한 해안은 암석 해안, 모래 해안, 그리고 산호 해안이 순차적으로 이어져 해안의 특성에 따른 해안 동식물의 다양한 생태를 비교 관찰할 수 있는 드문 곳이다. 해안의 유형에 따라 생물의 종이 다를 수 있음은 충분히 짐작할 만하지만, 이 책의 미덕은 조간대, 즉 저조선에서 고조선에 이르기까지 분포하는 해조류와 이들에 의지하면 살아가는 온갖 동물들을 하나하나 친절하게 소개해 준다는 점에 있다. 그리고 훌륭한 삽화도 풍부하게 수록하고 있어 설명하고 있는 생물의 이해에 도움이 된다. 인터넷을 통해 대부분의 컬러사진을 확인할 수 있는 현재에 비하면 1955년 당시로서는 커다란 노력을 기울인 셈이다.
카슨은 이 책에서 시종일관 ‘나’라는 일인칭 화자를 내세운다. 덕분에 건조한 안내서가 아닌 에세이적 느낌을 책에 불어넣고 있다. 앞선 첫 번째 책을 흥미진진하게 감상하고 두 번째 책을 유익하게 읽은 나로서는 상대적으로 이 세 번째 책은 독파하기가 녹록치 않았다. 저자가 비록 내용 전개에 스토리를 불어넣으려고 애쓰지만 안내서 느낌을 완전히 탈피하지는 못하였다는 생각이다. 또한 전 세계 바다를 종횡무진 하던 이전의 저작에 비해 미국 동부 해안이라는 제한된 지역을 다루고 있어 수만 리 떨어진 나로서는 실감과 동감이 상대적으로 약할 수밖에 없는 한계도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의 산호 해안 편을 읽으면서 플로리다키스라는 곳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시종 뇌리를 떠나지 않았으니 카슨의 노력이 소기의 성과를 거둔 셈이다.
작은 만을 굽어보는 동안 나는 해안이라는 이 가장자리 세계에서 육지와 바다가 서로 소통하고 있으며, 바다 생명체와 육지 생명체가 서로 이어져 있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또한 과거를, 그리고 그날 아침 바닷물이 새의 발자취를 말끔히 씻어낸 것처럼 전에 이뤄진 많은 것을 지우면서 시간이 끊임없이 흐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P.32)
저자는 해안 생태계를 소통과 리듬의 관점에서 이해한다. 바다의 가장자리는 동시에 육지의 가장자리이기도 하다. 해안을 통해서 바다와 육지의 광물은 물론 생물도 상호 교류하며 영향을 주고받는다. 해안을 구성하는 암석, 모래 및 산호는 모두 지질작용을 통해 바다와 육지가 오랜 세월 교차하며 생성한 산물이다. 조간대의 생물도 마찬가지다. 바다와 육지 중 한곳에 생의 비중을 더 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그들은 바다와 육지의 존재 모두를 필요로 한다.
해안 생물은 부지런해야 한다. 해조류는 조수가 빠지면 바닥에 널브러져 죽은 듯이 보이지만 조수가 들어오면 불현 듯 생명력을 되찾고 거대한 줄기와 잎들을 한껏 뻗친다. 반면 고둥과 게를 비롯한 많은 동물은 밀물의 시기에는 주거지에 칩거하다가 썰물이 시작되면 서둘러 나와서 먹이활동에 주력해야 한다. 이 모든 행동은 밀물과 썰물의 주기에 전적으로 맞추어져 있다.
조수가 빠져나가면 조간대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동물은 먹이가 거의 혹은 전혀 없다. 실제로 생명을 지키는 중요한 과정은 대개 바닷물이 해안에 들어차 있을 때 이루어진다. 따라서 밀물과 썰물이 만들어내는 리듬은 활동과 휴식을 번갈아 반복하는 생명체의 생물학적 리듬에 반영된다. (P.58)
하지만 이 해저 숲에서는 시간의 흐름이 빛과 어둠의 교차에 의해서보다는 조수의 리듬에 의해서 더 잘 드러난다. 여기서 살아가는 생명체의 삶은 바닷물의 유무에 좌우된다. 말하자면 이들의 삶에 변화를 가져다주는 것은 날이 어두워지거나 밝아오는 현상이 아니라 바로 조수의 순환인 것이다. (P.113)
카슨은 말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해안의 모습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고. 지형 상으로 접근하기 어려워 사람의 발자취가 닿지 못하는 곳, 사람들이 굳이 관심을 갖지 않고 무심히 지나쳐 버리는 곳 속에서 발견하는 감동과 경이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한다. 엎드려서 작은 틈을 통해 해안 동굴의 내부의 빛과 물의 조화, 나름의 안정된 생태계를 들여다보려고 애쓰는 카슨. 쪼그려 앉은 채로 시간 가는 줄 모른 채 조수 웅덩이의 신비한 세계에 마냥 경탄하는 카슨. 여기서 독자는 자연과 생물을 향한 저자의 근원적인 사랑을 간접적이나마 체험하게 된다.
저자가 소개하는 수많은 생물체를 한 번에 조감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먼저 해안의 유형에 따라 만날 수 있는 생물종이 동일하지 않다. 게다가 그들 대다수는 일반 사람들의 시야에 미치지 않는 곳에 서식한다. 다행히 사람들 근처에 존재하는 경우도 그들은 사람들이 활동하는 시간대에는 바위 틈바구니나 모래 깊숙이 은거하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바닷가에서 맞닥뜨리는 작은 게들의 날쌘 움직임, 그리고 개펄에 숭숭 뚫린 작은 구멍들의 존재로 우리는 어렴풋한 일면만을 이해할 뿐이다. 마지막으로 상당수의 생물은 매우 미약하여 육안의 인식 범위에 들어오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이 말은 카슨의 이 책 또는 다른 도감류를 손에 들고 해안가를 돌아다녀도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저자가 미국 대서양 해안을 북쪽에서 남쪽으로 쭉 훑어가면서 해안의 지리와 생물을 소개하는데 매진하는 연유가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맺음말에서 저자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다.
내 마음의 눈에는 해안의 여러 형태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패턴 속에서 통합되고 뒤섞이는 광경이 보이는 듯하다. 지구는 바다 자체처럼 쉼 없이 변화하고 있다......바다가 새로운 해안을 만들 때마다 생명체는 거기에 몰려들어 근거지를 마련하고 군체를 형성한다. 이렇듯 우리는 생명을 바다의 물리적 실재처럼 마치 손에 잡힐 듯한 힘으로 느낄 수 있다. 밀물이 그렇듯 결코 제 본분을 잊은 적이 없을 만큼 강력하고도 목적의식적인 힘으로서 말이다. (P.3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