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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천등운 : 현대어본 ㅣ 조선 왕실의 소설 4
임치균.이민희.이지영 지음 /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정신문화연구원) / 2010년 12월
평점 :
500여 면에 달하는 고전소설로서 보기 드문 장편이다. 주제의식적인 면에서는 뛰어난 재능의 몰락한 명가 자손이 온갖 고초를 겪다가 큰 인물이 된다는 점과 정혼한 남녀가 갖은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상호 간의 정절을 유지하다는 점에서 평범하다. 나는 이 소설을 여태껏 읽은 작품 중에서 가장 극적이며, 파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으며 무수한 굴곡에 독자가 질릴 정도라고 평하고 싶다.
여타 작품과는 차별되는 가장 큰 특징은 주배경이 청루, 즉 오늘날로 치면 유흥가 내지 집창촌이라는 점이다. 불가항력의 까닭으로 청루에 몸을 의탁하게 된 왕석작. 그를 둘러싼 환경과 그에게 닥치는 유혹을 기술하려면 자연히 청루 자체에 관한 이야기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청루의 여러 퇴폐적인 장면, 양민에서 강제로 몸을 버리고 창가로 타락한 여인들, 그리고 청루를 통해 부를 축적하는 포주 일당 등. 낙선재본이라는 조선 왕실의 소설에서 주로 여인들이 읽을 책인데 이토록 청루의 소상한 현실이 담겨 있다는 점이 의외로 놀랍다.
청루에서 가장 흥미로운 인물은 후마라고 하겠다. 왕석작이 몸을 의탁한 포주의 누이이자 역시 포주인데, 청루 세계에서 온갖 인간 군상을 상대한 탓에서 사람을 대하는 기술이 능수능란하다. 선인과 악인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능력으로 왕석작 또한 후마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자칫 큰 낭패를 볼 뻔하였다.
후마의 말은 하나같이 자신의 속마음을 꿰뚫고 저들의 실정을 이른 것이라 아주 그럴듯해 보였다. (P.41)
남녀 주인공의 만남이 청루에서 비롯되었으니 웃고픈 대목이다. 숙부에게 팔리다시피 하여 청루에 오게 된 동예아와 왕석작. 비록 후마가 동예아를 창기로 만들기 위한 속임수로 혼인이 추진되었지만 두 사람은 서로의 재주와 성품에 감탄하고 진정한 부부를 약속한다. 이는 몇 차례의 목숨을 건 위기에 맞닥뜨리고 황제의 명도 거슬려 가며 지키고자 하는 절대적 가치가 되어 소설 전체를 이끌어 가는 동력이 된다.
정조가 무가치하고 거추장스럽기 이를 데 없는 환경인 청루에서 굳센 절개가 피어난다는 점, 그리고 훗날 이들이 청루에 머물렀다는 이유로 동예아의 절개를 의심하는 뭇 사람들의 의심어린 눈초리와 세치 혀. 작가는 그들을 이렇게 평한다.
세상의 부녀자들이 집안에 편안히 있으면서 말마다 절개를 일컫지만은, 마침내 절개를 지켜 후세에까지 이름을 전하는 사람이 몇 사람이나 되겠소? 매사에 뒤집어지는 것이 두려운 줄을 알겠소. (P.521)
왕석작과 특히 동예아가 숱한 위기를 겪으면서도 몸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그를 도운 여러 여인들의 말 그대로 헌신이다. 왕석작의 유모는 그를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기꺼이 청루에 내놓았다. 하선과 혜랑은 진흙탕 속의 연꽃 같은 존재로서 두 사람을 돕기 위해 여러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무엇보다 동예아의 시녀인 화연을 놓칠 수 없다. 그녀야말로 주인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정조마저 아끼지 않았으며 일생 충심을 다하여 헌신하였다. 작품 중에서 동예아라는 인물 구현이 다소 평면적이고 비현실적이라면 이를 극적으로 보완하는 생동적 인물이 바로 화연이라고 하겠다. 여인의 정조가 목숨과 맞바꿀 정도로 중시되던 조선 사회에서 작품해설에서도 평했듯이 “정조까지도 거침없이 버리는 여성들을 서술자가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 특징적”(P.532)인 게 이 작품이다.
왕석작의 일편단심 부인 사랑도 작품의 중요한 요소다. 왕석작은 자의든 타의든 동예아와 헤어질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다. 특히 황귀비의 조카와 혼인하도록 압박받았을 때 황제의 명령을 핑계 삼아 동예아를 버렸다면 모두를 평안케 하였을 것이다. 그는 그러하지 않았다. 이것이 이 소설의 또 하나 주제의식이라고 하겠으니, 부부간 인연의 소중함과 책임감이다.
그대를 잃는다면 나 혼자 무슨 마음으로 세상에 있으리오. 그대가 만일 죽을 마음을 끝내 바꾸지 않으면 나 또한 살 이유가 없소. 이 일은 그대가 멀리 생각하지 못한 것이오. 만일 그대가 이곳에서 죽으면 내가 더욱 버리고 가지 못하고 서럽고 아득하여 죽을 것이오. (P.203)
우리 부부가 그동안 유리하고 고난을 겪은 것을 생각하면, 부인은 예사 조강지처가 아닙니다. 결코 세상 권세를 탐내어 부인을 두고 그냥 돌아가지는 못하겠습니다. (P.346)
우리는 애초에 언약을 하였으니 차마 중간에 저버리지 못한다. 죽기를 각오하고 찾아보고 그래도 끝내 만나지 못한다면, 그 사람과의 약속을 지켜 지하에 가서 선친을 뵙고 죽은 아내를 찾는 것이 좋겠다. (P.406)
다만 두 부부가 갖은 난관을 헤치고 절개를 지키는 의의를 현저히 강조하려다 보니, 이별과 재회가 반복되는 과정에서 우연성이 남발되고 말았다. 고전소설의 특징 중 하나가 우연성이라고 하겠지만, 여기서는 지나친 측면이 있다. 한두 번이 아닌 우연한 상봉은 작품 전개의 필연성을 약화시키는 역효과가 있는데, 특히 과거보러 온 왕석작이 죽을 위험에 처해 정말로 우연히도 혜랑과 화연의 배에 구조되는 대목은 어이없을 정도다. 작가도 일말의 부담감을 느꼈는지 왕석작으로 하여금 훗날 면피성 발언을 하게끔 한다.
저희 부부는 유달리 천신만고를 고루 겪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항상 기이하게 재회할 것이라 기대하겠습니까? (P.464)
이외 성적으로 자유로운 언행과 상황 설정도 유달리 두드러진다. 청루를 배경으로 하였으니 일정 부분 불가피하겠지만, 이후에도 남장한 동예아가 왕씨와 결혼하여 남자인 척 행동하는 장면이나 마지막 대목에서 왕석작과 혜랑이 부부 간 잠자리 사랑을 소재로 주고받는 희언이 그러하다.
이 작품이 우리나라 작품인지 아니면 중국 작품인지 논란은 작품해설에 따르듯이 동예아의 앵혈로 분명하다. 왕석작이 동예아와 대화 중 도미 부인과 개루왕 고사를 언급하는 장면은 매우 자연스럽기에 이 또한 우리 고전소설이라는 증거로 삼을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