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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바람을 맞으며 ㅣ 레이첼 카슨 전집 1
레이첼 카슨 지음, 김은령 옮김 / 에코리브르 / 2017년 10월
평점 :
오래 전 <침묵의 봄>을 우연히 읽고 알게 된 인물. 많은 시간이 흘러서야 저자와 저작의 무게감과 깊이, 파장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이제 레이첼 카슨 전집이 출간되었다. 첫째 권이자 카슨의 1941년 첫 책이다. 의외로 그의 학문적 배경이자 주요 작품은 모두 해양생물학에 기반을 둔 것이다. 학술적 업적 여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해양생물학을 대중에게 소개하고 전달하는 과학저술가로 그의 면모는 초기작에서부터 여실히 찾을 수 있다.
나는 공식적인 과학적 글쓰기에서는 받아들이지 않는 표현법을 사용했다......물고기의 행동을 이해하려면 인간의 심리 상태를 설명하는 데 필요한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 (P.29~30)
오늘날 동물과 자연을 소재로 하는 많은 다큐멘터리는 동물을 주인공으로 하여 내레이터가 동물과 한 몸이 되어서 마치 자신이 동물인 듯 또는 그들과 동족인 듯 의인화하여 감정과 행태를 공유하는 기법을 사용한다. 너무나 일반적이어서 새삼 생경하거나 이질감조차 들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 이 책이 나온 당시에는 익숙하지 않은 서술방식인 듯 저자는 이 방식의 필요성과 정당성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고 있다.
쥐는 새끼 거북을 잡아채더니 이빨로 물고 늪을 건너 조금 높은 지대로 올라갔다. 새끼 거북의 얇은 껍질을 깨물어 갉아내는 데 정신이 팔려 물이 차오르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 그때 섬 해안 주위를 날아다니던 왜가리가 쥐를 발견하고는 곧바로 낚아챘다. (P.42)
위는 <장자>의 한 대목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저자는 여기에서 그리고 책 전체를 통해 철저하게 관찰자의 시각에 머문다. 비록 간혹 전지적 시점을 채택하기는 하지만. 주인공 동물에 감정이입을 아끼는 그의 글쓰기에서 고요한 호흡과 함께 관찰의 세부적 적확성을 통해 동물 다큐의 파노라마와 같은 인상을 받게 된다.
<바닷바람을 맞으며>는 해안과 넓은 바다, 해저에서 살아가는 바다 생물체 이야기가 연이어 펼쳐진다. 이 책에서 독자들은 거의 아무런 부연설명 없이 등장하는 사건의 관찰자가 된다. 아마 약간의 ‘프로그램 해설문’ 정도가 순서대로 등장할 것이다. (P.28)
이 책의 주인공은 모두 15개의 장에 등장하는 무수한 생물들이다. 이들은 바다 속에서 또는 바다와 밀접한 관련을 맺은 채 자신의 삶을 꾸려나간다. 그중에는 제비갈매기, 세가락도요, 멀릿 등 다소간 비중 있는 배역을 맡은 녀석들도 있고, 스콤버나 앤귈라처럼 별도의 이름을 부여받아 몇 개의 장에 걸쳐 자신의 일생을 온통 보여주는 특별한 개체도 있다.
특이한 점은 이 모든 개체를 단지 피동적 관찰대상에 놓지 않고 자체로서 생명을 지니고 주동적으로 움직이는 살아있는 개체로 만드는 저자의 글쓰기 솜씨와 필치다. 솔직히 자연 다큐는 외부인의 시각에 머물기 쉬우므로 맥 빠지기 쉽다. 그나마 영상 다큐라면 화면 보는 맛이라도 있으련만 활자 다큐의 경우 학술과 문학(소설 내지 동화)의 경계에 어중간하게 걸칠 위험성이 있다. 저자는 이 책을 문학에 가깝게 위치를 설정하였지만, 과학적 진실 전달이라는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한다.
제1부는 해안가를 배경으로 지상과 수중에서 벌어지는 다채로운 생물군과 생활상을 소개하는 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다기로움에 언뜻 어수선한 인상을 받지만 바다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생물들의 수효와 그들의 드러나지 않은 생태를 대중에게 소개하여 관심을 불러일으키고자 함을 알 수 있다. 앞서 언급한 제비갈매기, 세가락도요, 멀릿이 여기에 등장한다.
반면 제2부는 주인공 하나를 전적으로 내세우고 있는데, 바로 고등어 스콤버다. 알에서 깨어난 어린 고등어가 온갖 모험을 겪고 위험을 무릅쓰며 성장해 가는 과정을 상세하게 서술한다. 갓 태어난 새끼 스콤버가 앤초비와 해파리에 잡아먹힐 뻔하다 겨우 목숨을 부지하는 장면, 어린 고등어들이 오징어, 대구 그리고 참치의 먹잇감으로 사냥당하는 대목은 극적 긴장감과 서스펜스를 자아낸다.
이렇게 천적과 인간의 위협을 간신히 벗어난 스콤버 또한 생존을 위해 플랑크톤과 나아가 청어를 사냥한다. 카슨은 스콤버를 동정하지 않으며, 천적에 분노하지도 않는다. 생존을 위한 엄정한 자연의 먹이사슬이므로.
제3부는 육지와 대양을 넘나드는 뱀장어 앤귈라가 주인공이다. 이 글을 읽기 전에 담수와 염수를 오가는 어류는 연어 외에 알지 못하였다. 연어와 뱀장어는 행태가 대비된다. 민물에 살던 뱀장어는 산란을 위해 수천 킬로미터를 내려가 대양 한가운데로 향한다. 태어난 새끼들은 다시금 미지의 고향으로 거슬러 헤엄치며 자연의 부름이 있을 때까지 일생을 민물에서 보낸다. 그네들이 상상할 수 없는 여정을 무릅쓰는 것이 오랜 본능의 감각인지 또는 단순히 호르몬의 작용인지 알 수 없다. 어쨌든 자체로서 신비스럽고 기이하다. 대양 한복판에서 뱀장어는 생과 사의 교차를 경험한다.
어린 뱀장어들이 해안으로 향할 때 또 다른 무리가 바닷속을 지나갔다. 이제 거의 자라서 검은색과 은색으로 빛나는 뱀장어들이 자신의 첫 번째 고향을 향해 이동하는 것이었다. 이 두 세대의 뱀장어들은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한쪽은 새로운 삶의 문턱을 넘고 또 다른 한쪽은 깊은 바다의 심연 속에서 생을 마감할 터였다. (P.221)
이 책은 해양생태계를 소재로 한 자연에세이다. 자연을 사랑하는 이가 순수한 애정으로 자연의 경이로움을 세상과 공유하고자 하는 시도. 학술적, 과학적 사실조차도 그의 담백하면서도 유려한 문체에 녹아들어가 일체 위화감 없이 독자에게 스며든다. 지저분한 수사와 공허한 과장, 씁쓸한 감정과잉 없는 그의 글은 읽은 후 개운함마저 안겨준다. 본문 자체는 그다지 길지 않다. 서문과 용어 설명을 제외하면 이백 면 남짓. 그런데 서문을 쓴 린다 리어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레이첼 카슨의 다음 작품이 무엇일지는 이 책 말미에 암시된다. 해양생물이 삶의 터전으로 삼는 곳, 지구 표면의 대부분을 점유하는 곳. 지구상의 생물과 기후와 지질에 절대적 영향을 미치는 곳, 그 자체에 대한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