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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다 이야기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66
스노리 스툴루손 지음, 이민용 옮김 / 을유문화사 / 2013년 10월
평점 :
그리스‧로마신화에 비하면 북유럽 신화는 근년 들어서야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편이다. 순수 문화적 관심보다는 PC게임과 영화를 통해 대중에게 존재가 각인되었다. 북유럽 신화가 켈트 신화와 마찬가지로 서양 문명의 적통을 잇지 못하였고 전승도 상대적으로 미약한 탓이리라. 스톨루손의 이 산문 에다는 13세기에 기록되었으며, 운문 에다가 시기가 다소 앞선다고 하지만 주류 신화에 비하여 전승역사가 비교적 짧다. 어쨌든 국내에 산문 에다의 번역본은 처음 출간이다.
이 책은 북유럽 신화의 원전으로서 정통성과 가치를 지니고 있는 반면 체계가 잘 잡혀 있지는 않다. 따라서 이 책 한 권으로 북유럽 신화 전체를 일목요연하게 파악하기는 힘들고 다른 해설서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도입부는 세상의 탄생과 아스 신족의 연원을 다루고 있는데, 당대의 종교와 지리 지식이 반영되어 고색창연한 신화의 전개를 예상한다면 다소 당혹스럽다. 반면 서리 거인 위미르와 태초의 암소 아우둠라, 세계수 물푸레나무 위그드라실과 신들의 궁전 아스가르드는 흥미롭다. 오딘, 토르, 로키. 이들은 영화 <토르>의 주된 인물로서 친숙한데, 북유럽 신화의 주신들로서 아스 신족에 속한다. 이야기 중에서도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오딘은 모든 신과 인간 그리고 그와 그의 힘이 창조한 모든 것의 아버지이므로 ‘모든 이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P.35)
그리스 신화의 열두 신과 대응하여 오딘을 정점으로 여러 신들이 존재하는데, 유명한 토르를 제외하면 로키의 존재감이 두드러진다. 로키는 아스 신족이 아니면서 일족으로 간주되는 독특한 지위를 지니는데, 신화에서 발생하는 모든 악역을 전담하고 있다.
아스 신들 중 하나로 간주되는 자가 있으니, 사람들은 그를 ‘아스 신들의 중상모략가’, ‘음모의 원흉’, ‘모든 신과 인간의 치욕’이라고 부른다. 그의 이름은 로키 혹은 로프트이며, 거인 파르바우티의 아들이다......로키는 매력적이고 호감을 주는 외모지만, 성격이 사악하고 행동이 변덕스럽다. 그는 교활함에 있어 모든 이를 능가하며, 속이지 않는 것이 없다. (P.66~67)
로키는 세 괴물 자식들인 늑대 펜리르, 외르문간드(미드가르드 뱀), 헬을 두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신들의 적이다. 훗날 라그나뢰크가 도래했을 때 이들은 오딘과 토르와 목숨을 맞바꾼다. 로키 자신도 발드르의 죽임을 사주하여 신들의 세상에 균열이 생기게끔 하는데 일조한다. 신화에서는 발드르의 죽음에 큰 의미를 부여하며 모든 신들이 발드르를 부활시키려고 노력하나 로키의 방해로 실패하는 과정에 많은 분량을 할애하고 있다.
신들과 인간들은 엄청난 슬픔과 고통에 잠겼다......그중에서도 가장 큰 충격을 받은 이는 오딘이었으니, 그는 발드르의 죽음이 아스 신들에게 얼마나 큰 재앙이고 상실인지를 가장 잘 알았기 때문이다. (P.111)
모든 독자는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신족들은 그토록 나쁜 짓을 많이 저지르고 동료 신마저 죽게 만든 로키를 왜 죽이지 않아 결국 라그나뢰크를 겪게 된 것인지. 신성한 장소에 피를 흘리기를 꺼려한다는 설명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세상에 악의 존재는 불가피하고 결코 떨칠 수 없는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상징적 해석이 오히려 가능하다.
거인 족과의 최후의 전쟁에서 아스가르드는 무너지고 신들의 세계는 종말을 맞이한다. 그것이 라그나뢰크다. 세계의 탄생에서 종말까지 선형적 전개를 이루는 점이 서양 문명의 특성답다. 그럼에도 신화는 그것이 끝이 아니고 새로운 세상이 시작됨을 선언한다.
이상이 제1부 <귈피의 흘림>에 담긴 내용이다. 북유럽 신화의 개요를 충실하게 수록하고 있다. 제2부 <스칼드의 시 창작법>은 음유시인들이 신화 내용을 시로 창작하거나 노래할 때 갖추어야 할 기본적 신화 지식을 소개한다. 앞편이 줄거리 중심이라면 여기서는 신의 이름, 사물, 사건 등이 유래한 내역을 알 수 있어 두 편을 함께 연결시켜야 씨줄과 날줄처럼 전모를 파악할 수 있다.
오딘이 외눈박이가 된 사연, 토르의 망치가 생겨난 배경과 손잡이가 짧은 이유 등이 흥미로운데, 무엇보다도 시 창작의 언어 중 ‘케닝’을 강조하고 있다.
이 방식은 우리가 오딘, 토르, 튀르 혹은 어떤 아스 신이나 엘프를 우리가 규정하는 방식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이 경우 저는 아스 신들의 특성이나 그들의 업적 중 하나를 이름으로 덧붙입니다. 이에 따라 원래의 이름이 아닌 그 이름으로 불리는 것입니다. (P.147)
오딘의 케닝은 승리-튀르, 교수형을 당했던 튀르, 운송물의 튀르, 전차-튀르 등이며, 수달의 배상금, 아스 신들의 배상금, 분쟁의 광물 등은 금의 케닝에 해당한다. 금의 케닝 편에서 시구르드 이야기가 소개되는데 훗날 <니벨룽겐의 노래> 원형에 해당한다. 예수의 케닝은 이질적이지만 이해할 만하다.
스톨루손은 기독교의 득세로 점차 소멸되는 전통 문화 보존과 함께 아이슬란드의 고유성 보전을 의도하였다. 산문 에다가 기록된 시기는 이미 아이슬란드가 기독교화 된 지 수백 년이 지난 시점. 부지불식간에 기독교의 영향이 사회와 문화 전체에 스며들었을 것이다. 이 책의 곳곳에서 드러나는 흔적이 그러하다. 그럼에도 저자 덕택에 우리는 남유럽 못지않은 풍요로운 이야기와 상징체계가 북유럽에도 존재했음을 알 수 있으니 문화의 다양성 인식에 크나큰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