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이록 : 현대어본 조선 왕실의 소설 3
임치균.이래호 옮김 / 한국학중앙연구원(한국정신문화연구원) / 2010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낙선재본 소설을 현대어로 옮겨 조선 왕실의 소설이라는 명칭으로 소개하고 있다. 목록을 보니 익히 들어보지 못한 작품들이어서 기대된다. 이 작품은 중국 송나라를 배경으로 손기라는 영웅적 인물의 활약상을 기술하고 있다.

 

위인의 탄생은 불쑥 이루어지지 않는다. 존경할만한 부모, 천상의 간택, 신비한 태몽, 그리고 앞날의 예언 등 모든 필요충분조건이 갖추어져 독자가 마땅히 그러할 수밖에 없음에 고개를 끄덕여야 한다. 손기 또한 마찬가지다. 다만, 손기에게는 치명적 약점이 있었으니 초라한 외모와 어리숙한 언행이 그것이다. 손아랫동서인 소운성의 총명과 활달한 언행과는 더욱 극적으로 대비된다.

 

소운성의 희롱으로 수모를 당한 손기가 가출하여 단기간에 신선의 도를 깨우치는 과정은 간략하게 기술되는데, 신이한 자질이 그에게 내재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 책은 도교의 배경이 두드러진다. 옥황대제, 숭산 북궁, 옥허관 여도사 등은 모두 손기의 탄생과 연관되어 있다. 손기가 동서에게 신선의 도를 설명하는 대목은 매우 인상적이어서 이 소설의 작가가 도교에 정통해 있음을 알게 해준다. 손기가 신통력을 발휘하여 업룡을 격퇴하고 천사(天師)가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는 훗날의 장면도 신통력과 도술이라는 능력에 힘입은 바가 크다. 또한 소운성 일행이 천사부를 방문할 때 겪게 되는 그 위엄과 웅장함은 비록 과장되었지만 임금의 스승으로 일인지하의 자리에 있는 고귀한 지위를 현저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영웅은 시대와 나라가 역경에 처할 때 홀연히 나타나 세상을 구원하는 법. 손기도 이에 다르지 않다. 궁중에 뿌리 깃든 요괴인 업룡의 출현과 임금의 와병. 초월적 존재이므로 세속의 수법으로는 퇴치가 불가능하다. 결국 도술의 힘에 의존해야 하는데 당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한 안록산과 주전충을 낳게 할 정도로 사악함으로 가득 찬 정령이므로 범상한 도사의 능력으로는 대처할 수 없다.

 

손기가 다섯 마리의 용을 소환하기 위하여 준비를 하는 과정은 장엄함이란 측면에서 제갈량이 동남풍을 빌기 위하여 단을 쌓는 장면을 상기시킨다.

 

업룡의 머리를 베지 못하여 그 해가 백년 후 동북방에서 일어날 것입니다. (P.128)

 

업룡은 물리쳤지만 화근을 제거하지는 못하였고, 손기는 예언한다. 훗날 여진족의 금나라로 인해 송나라가 전란에 휩싸이게 됨을 암시.

 

언뜻 보기에도 허황되기 이를 데 없는 제재와 전개가 시종일관인 소설. 여기서 당대 사람들은 무슨 의미와 가치를 추구했는지 궁금하다. 단순히 재미였을까. 현대인들도 영화나 TV 드라마에서 비루한 현실을 초월하는 환상 속에서 대리만족을 찾는다.

 

작품 해설에 따르면 이 작품은 대하소설인 <소현성록>의 등장인물과 사건을 차용하여 재구성한 파생작이라고 한다. 원작이 당대에 상당히 인기가 있었음을 알 수 있을 뿐더러 원작에서 아쉬움과 동정의 대상이었던 인물을 환골탈태시키고자 하는 독자의 바램을 짐작케 한다.

 

무엇보다도 농후한 도가적 색채가 인상 깊다.

 

신선의 도는 멀고 깊어 천지와 하나이니 어찌 평범한 사관이 붓을 들어 전부를 기록할 수 있으리오? 신선의 도는 천지의 글자도 옥에 새기고 금으로 잠가 명산대천에 깊이 감추어 신령이 삼가 지키고 있다네. (P.98)

 

하늘에는 신선이 있고 인간 세상에는 재상이 있으니 천상천하의 그 귀한 것이 다를 바가 없는 법이네. (P.101)

 

미소개 소설의 대중화에 초점을 두었기에 주석이 거의 없음에도 전체적 줄거리를 이해하는 데 어려움은 없다. 다만 시대적, 문화적 지식이 요구되는 대목은 깊은 독해를 위하여 부가적 설명이 뒤따랐으면 한층 좋았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