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프란체스코의 작은 꽃들 세계기독교고전 14
우골리노 지음, 박명곤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1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성 프란체스코에 관한 성자담 모음집이다. ‘작은 꽃들은 명문집을 뜻한다고 한다. 프란체스코 사후 1세기 후에 전승되고 수집한 이야기들이므로 당대의 신앙적 현장감이 그대로 남아있다. 더욱이 프란체스코뿐만 아니라 버나드 형제, 레오 형제, 주니퍼 형제와 길레스 형제들을 포함한 그의 제자들의 행적도 다수 수록하고 있어 초기 프란체스코 교회의 면모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앞서 읽은 헤르만 헤세의 프란체스코 글을 통해 기본적인 지식을 가지고 책에 접근했음에도 불구하고 원전 특유의 낯섦과 충실함에 놀라게 된다. 종교적 차이 여하를 떠나서 일단 이야기 자체가 흥미롭다. 비이성적이고 터무니없을 것 같은 행위에서 종교적 가르침이 배어나며, 마귀를 쫓아내며 이적을 행하는 등 전설과 설화에서 기대할 법한 일화들이 가득하다.

 

이 모든 어록과 행적이 지향하는 바는 동일하다. 프란체스코가 신앙 면에서 얼마나 뛰어난지를 입증한다. 그는 말 그대로 예수를 그대로 따르고자 하였다. 가족을 버리고 자발적 가난을 추구하며, 한없는 겸손과 고행을 실천하며 묵상과 설교의 길을 따랐다. 이러한 행적을 보여주는 일화들에서 수도사들과 민중들은 1천여 년이 지나면서 때가 묻고 간과되었던 그리스도의 참 가르침이 무엇이며 이를 따르는 올바른 길이 어떠한지를 묻고 있다.

 

그의 아들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을 위하여 기도하시고, 한 사람 곧 가난한 작은 거지 프란체스코를 통하여 자신의 생활과 수난을 새롭게 하시기를 원하셨다. (P.244)

 

무엇보다도 그 유명한 오상(五傷)’에 얽힌 실체를 알 수 있는데, 헤세는 언급하지 않았던 사항이다. 그는 행위와 생애 자체로써 뛰어난 전형적 인간을 찬미한 것이지, 기적과 같이 초자연적으로 인간 자체를 가리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어쨌든 오상(五傷)이 있었기에 프란체스코는 사후 성인으로 추증되었고, 프란체스코 수도회는 여지껏 존속하고 있다. 다만, 오상(五傷)을 단지 흔적에 불과한 피상적으로만 이해했는데, 프란체스코 자신에게는 큰 고통을 수반하였다고 하니 현실적 상처임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너에게 나의 수난의 상징인 오상을 주어 너로 하여금 나의 기수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 또한 내가 죽던 날 이 거룩한 상처의 공로로 말미암아 연옥에서 발견한 모든 영혼들을 구원해낸 것처럼, 너의 죽음의 날에 네가 연옥으로 내려가서 그 오상의 덕으로 너의 세 수도회......와 네게 헌신한 모든 사람의 영혼을 데리고 천국으로 인도해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노라. (P.218)

 

프란체스코는 계시에 따라 묵상과 전도에 동등한 가치를 부여하였다. 깨우침을 얻기 위한 수행과 묵상도 중요하지만, 자신과 수도원 내에 가둬두지 않고 어리석고 고통 받는 민중들을 구제하는 데 진력하였다. 물론 오만하고 권위적이며 시혜적인 태도가 아니라 낮은 곳에서 섬기는 자세로 말이다. 위험을 무릅쓰고 술탄을 회개시키거나 새에게 설교하는 유명한 장면도 이러한 시각에서 전모를 이해하게 되었다. 훗날 성 안토니가 물고기에게 설교하는 장면은 이에 대응하는 대목이다.

 

서론 부분을 통해 우리는 프란체스코 수도회가 결코 평탄하게 발전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이미 당대부터 수행과 전도의 비중에 대한 내부적 갈등이 존재했고, 프란체스코의 사후 신앙적 분열로 이어져 커다란 혼란을 빚게 되었다는 점도 알게 된다. 따라서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 중 몇 편은 이런 역사적 배경을 반영하고 있다. 엘리아스 형제는 이 분열을 초래한 주동자로 작품 내에서는 철저히 배신자이자 부정적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마사의 야고보 형제가 본 나무의 환상에 따르면 보나벤투라 교황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 않다. 이 모두가 작자의 종파적 입장과 관련되어 있음을 서론의 해설에서 가리킨다. 나무의 환상은 프란체스코 사후 수도회가 고난에 처할 것이며, 프란체스코와 요한 형제를 거치 자신들에게 이어지는 정통파만이 진정한 교회의 후계자라는 입장을 명백히 반영한다.

 

주님께서 달콤한 성령의 은혜를 충만히 채워 주셨기 때문에 프란체스코와 제자들은 함께 자신들의 몸을 벗어나 황홀경에 빠졌다. 그들은 죽은 사람들처럼 완전히 의식을 잃은 채 바닥에 누워 있었다. (P.83)

 

행적들을 읽다 보니 몇 가지 반복되는 전형이 눈에 띤다. 프란체스코와 수도사들은 깊은 묵상을 통해 그리스도와 직접적 교감하고 황홀경에 빠져 기절하곤 하였다. 수행 과정에서 엄격한 절제와 고난을 무릅쓰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세상을 경멸하는 현실 경시적 인식을 일관하였는데, 청빈과 겸손은 이의 일환으로 이해된다. 그는 현세의 고난을 무릅씀이 내세의 구원에 가깝게 될 것으로 믿었다. 앞서 읽은 헤르만 헤세의 글에서 이해된 프란체스카와는 상반된 모습이다. 이 작품에 따르면 밝고 유쾌하기는커녕 속세의 타락을 통렬히 비난하며 묵언과 고행의 수행으로 일관하는 음울한 수도사들이 연상된다.

 

그 모든 악과 모욕과 매질을 기쁨과 인내로써 참으면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인하여 그 고난을 인내로써 참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생각할 때, , 레오 형제요! 그것이 완전한 기쁨이라고 기록하라. (P.69)

 

승천 축일이 되자 성 프란체스코는 엄한 극기와 절제로 자신의 몸을 고행하고, 뜨거운 기도와 철야와 채찍질로 자신의 영혼을 위로하며 금식을 시작하였다. (P.208)

 

프란체스코와 그 형제들의 참모습이 무엇인지 혼란스럽다. 아무래도 다른 자료들을 더 읽어봐야만 할 것 같다.

 

신자가 아닌 탓에서 가톨릭 내에서 프란체스코의 위상이 어떠한지 알지 못한다. 이 책의 저자를 포함한 수도사들은 프란체스코를 제2의 예수 또는 예수의 최측근으로 이해하는 게 분명하다. 오상(五傷)에 커다란 의미를 부여하는 것, 프란체스코가 계시와 이적의 능력을 보유했다는 점, 또한 그가 고난에 처하고 임종을 맞이할 때 마귀들이 넘볼 수 없을 정도로 주위에 천사들이 지키고 있었다는 등등의 언급이 그러하다.

 

이 모든 것을 떠나서 인간 자체만으로 그의 행동은 매우 탄복할 만하다. 쉽지 않은 길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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