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수 마차를 탄 기사 대산세계문학총서 138
크레티앵 드 트루아 지음, 유희수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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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서 왕과 원탁의 기사와 관련된 설화 및 이야기는 서양문화에 있어 커다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비단 현대의 독자들 뿐만 아니라 중세 시대에도 꽤나 인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이 트루아의 작품을 통해서도 익히 알 수 있다. 역설적인 점은 아서 왕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서 왕이 아니라는 데 있다. 친숙한 아서 왕은 사실상 명검 엑스칼리버로 무대에서 퇴장하며 들러리에 불과하다. 랜슬롯, 가웨인, 퍼시벌 등이 사실상의 주인공이다. 그리고 랜슬롯과 귀네비어 왕비의 사랑.

 

기사도 이야기의 필수 요소는 물론 기사의 모험담이다. 기사는 각지를 방랑하며 모험을 겪어야 한다. 그 모험은 불의를 벌하고 정의를 구현하는 것일 수도 있으며, 단지 자신의 무용을 자랑하는 도정이기도 하다. 돈키호테가 그러했듯이. 또한 기사에게 사랑이 빠질 수 없다. 기사라면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숭배하는 여인이 있게 마련이다. 소위 궁정식 사랑. 돈키호테에게 둘시네아가 있다면, 랜슬롯에게는 귀네비어 왕비가 있다.

 

납치당한 왕비를 되찾기 위한 기사가 랜슬롯과 가웨인이라는 점은 시사적이다. 전자가 응당 주인공이며 왕비와 특별한 관계에 있는 처지라면, 가웨인은 아서 왕 이야기에서 무용과 아울러 고귀한 품성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기사이다. 비록 이 작품에서는 조연에 불과하지만 왕비를 되찾기 위한 그의 목숨을 아끼지 않는 노력 또한 두드러진다.

 

모든 것이 그의 기억에서 다 지워졌습니다. 그것을 위해 나머지 모든 것을 다 잊어도 되는 한 가지만 빼고는 말입니다. 그는 그 유일한 대상만을 골똘히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보지도 듣지도 못합니다. (P.26)

 

왕비를 향한 랜슬롯의 사랑은 되풀이하여 표현되는데 그것은 너무나도 깊고 커서 어떠한 고난과 유혹도 그를 흔들 수 없을 정도다. 랜슬롯은 시종일관 왕비를 납치한 일행의 추적에 몰두한다. 그는 말이 죽자 다급한 마음에 죄수 마차를 올라탄다. 단순한 죄수 호송용 마차가 아니지만, 그는 사랑을 위해서 모든 것을 무릅쓴다.

 

사랑이 명령한 거라면 설령 죄수 마차를 타는 일일지라도 뭐든 복종하는 것이 내게 영광이었으니까. 그녀는 거기서 사랑의 완벽한 증표를 봤어야 해. 사랑은 그 충실한 수행자를 이런 식으로 시험하면서 알아보거든. (P.110)

 

랜슬롯이 왕비를 납치한 자가 고르 왕국의 멜리아건트 왕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칼다리를 건너 멜리아건트와 대결을 벌이게 되는 대목은 분명 읽는이를 매료시키는 흥미진진한 모험담이다. 하지만 트루아는 이를 부차적이자 양념으로 생각할 뿐, 랜슬롯과 귀네비어 왕비의 연인 관계이자 주종 관계를 부각시키는데 주안점을 두고 있다. 사랑의 지배력을 시험하고자 하는 왕비는 멜리아건트와의 결투와 이후 마상창시합에서 랜슬롯에 상반된 지령을 내려 그의 순종을 확인한다.

 

왕비는 전혀 염려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의 순종에 기쁠 뿐입니다. 그 기사가 랜슬롯이라는 걸 말하지 않아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날 하루 종일 그는 비겁한 기사 행세를 합니다. (P.139)

 

왕비는 쉴 짬도 주지 않고 그의 답변을 듣습니다. 하늘을 날 듯이 기쁩니다. 이제 그가 완전히 자기 남자라는 걸, 자신이 그의 여자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P.142)

 

작품 내내 랜슬롯과 대비되는 인물로서 멜리아건트가 등장한다. 그는 용맹하지만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간계도 쓸 줄 아는 음흉한 인물로서 기사도적 전범은 아니다. 그는 심지어 자신을 타이르고 만류하는 부친 국왕에게도 화를 내며 분별없이 대들 정도의 심성을 지니고 있다. 반면 국왕 배드마구는 훌륭한 군왕의 태도를 보인다. 납치한 왕비를 예의있게 대우하며 랜슬롯의 기사도를 존중한다. 멜리아건트를 꾸짖는 그가 모든 외국인을 억지로 왕국 내에 잡아두는 정책을 펼친 왕이라는 점이 기묘할 따름이다.

 

죄수 마차를 타는데 순간 망설였다는 이유로 자신을 구하러 온 기사를 냉대하는 왕비. 이것은 사랑의 밀당에 다름아니다. 누군들 감복하여 환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여기서 궁정식 사랑은 절정에 달한다.

 

왕비는 손을 뻗어 그를 맞습니다. 그를 얼싸안고 가슴 가까이로 꽉 껴안습니다. 침대 안으로 끌어당깁니다. 극진한 환대를 베풉니다. 그것 심장과 사랑에서 분출한 겁니다. 그녀가 그를 이토록 환대하게 한 것은 사랑입니다......사랑의 기쁨 속에서 나눈 입맞춤과 포옹의 유희가 너무나도 달콤했기에 그는 정말로 환희의 극치를 체험합니다. 이런 환희의 경험은 다른 사람들한테서 들어보기 힘듭니다. 그러나 저는 그에 대해 더 이상은 언급하지 않을 겁니다. 그런 건 말로 형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가장 완벽하고 달콤한 그런 환희는 연애 이야기에서 말로 표현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P.116~117)

 

왕비의 머리카락 한 올조차도 숭배하고 환희를 느끼는 주인공이니만치 왕비의 입맞춤과 포옹에서 환희의 극치를 체험할 수 있겠지만, 해당 대목의 암시는 그 이상을 가리킨다. 궁정식 사랑은 제아무리 합리화하여도 그것의 궁극적 지향은 불륜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것은 자연적이며 당연한 수순이다. 아서 왕국의 몰락과 아서 왕의 죽음의 계기는 두 사람의 사랑이 너무나도 공공연하게 용납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게 된 데 있다.

 

트루아는 <그라알 이야기>에서 기사도와 성배를 중점적으로 다루었다면, <죄수 마차를 탄 기사>에서는 기사도와 궁정식 사랑을 다룬다. 궁정식 사랑의 본질과 함의에 대해서는 이 책의 해설에서 자세히 기술하고 있어 좀 더 깊이있게 생각해 볼 여지를 준다. 간통적 사랑이자 욕망 억제의 에로티시즘 미학이라는 표현 자체가 결국 불륜적 성격을 지칭한다. 정치적으로 여성판 주종제라는 점은 새로운 관점이지만.

 

내용 자체로서는 궁정식 사랑과 모험담이 흥미롭지만, 배경적 측면을 살펴보면 6세기 전설적 켈트의 영웅들이 12세기 중세 프랑스와 영국에서 되살아난 시대적 요구와 필요성에 관심이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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