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 제20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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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거실에서 나는 이 책을 읽고 있었고, 부모님은 '미세스 캅'을 보고 있었다. 드라마에는 말을 드럽게 안 듣는 가출 청소년과 초등학생 꼬마가 나왔다. 하는 짓이 얼마나 얌체 같았는지, '쟤 진짜 왜 저러냐...'하는 생각으로 드라마를 봤다. 그리고 책에는, 더 울화통이 치미게 만드는 영훈이의 엄마가 나왔다. 나는 어느새 남자의 편에서 '이 아줌마 진짜 해도해도 너무한 거 아냐?'하는 분노로 가득 차 이 책을 보고 있었다. 현실이었다면, 아마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은 아주머니를 연민의 눈으로 보았을 텐데.

 

골드만은 소설을 '타락한 세계에서 타락한 개인이 타락한 방법으로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다 패배하는 형식'이라고 정의했다.(타락한 개인이었는지 문제적 개인이었는지 헷갈리긴 하지만) 여기서 진정한 가치를 추구하는 개인은 세계의 무참한 힘 앞에 무너지고, 우리는 어느새 그의 편에 서서 세계를 욕한다. 그러다 보면, 우리가 사는 세계를 다시 한번 보게 되고, 불편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타락한 개인은 소설에서는 내 편이지만, 현실에서는 소외자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아저씨>의 아저씨는 영화 속에서만 멋있는 구원자일 뿐, 현실에서 우리 눈 앞에 나타나면 정말 무서운 범죄자인 것이다. (현실 속 아저씨는 원빈의 외모가 아니라는 점도 있겠지만...) 그러니까 결국에는, 소설은 다 읽은 뒤 불편함이 와야 한다는 뜻이다. 문제적 개인을 열심히 지지하다 문득 돌아봤을 때 드는 불편함이.

 

장강명의 <그믐, 또는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이하 <그믐>)을 읽으면서 술술 넘어가는 책장에 놀랐고, 이야기가 주는 몰입도에 놀랐고, 소설을 읽은 뒤 오랜만에 마음이 불편했다. 그 불편함이, 나를 미소짓게 했다.

 

   머리에 난 혹이 문제가 아니었다. 뒤죽박죽으로 흩어진 종이들에는 쪽 표시가 없었다. 게다가 묘하게도, 어떤 문장이 한 페이지에서 다른 페이지에 걸쳐 있는 경우가 드물었다. 일부러 그렇게 쓴 건가 싶을 정도로 매 페이지의 끝이 어떤 문단의 끝이었다. 어떤 장이 앞이고 어떤 장이 뒤인지 쉽게 구분하기 어려웠다.

   여자는 종이 뭉치를 책상 위에 놓고 한 장 한 장 천천히 원고를 살폈다. 조금 읽다보니 원래 원고 자체가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의 시간 순서대로 정렬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몇 배로 골치 아파진 셈이었다.

- '작두/홍콩/교지' (25-26쪽)

 

<그믐>의 시간은 뒤죽박죽이다. 마치 원래도 시간 순서가 아니었는데 엎질러서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식이다. 그런 뒤죽박죽의 모습이 시공간연속체의 모습과 닮았다고 볼 수 있을까. 그리고 각 장의 제목을 그 장에 나오는 세 개의 단어로 해 놓은 것은, 소설의 제목처럼 '당신이 세계를 기억하는 방식', 혹은 우리가 세계를 인지하는 하나의 패턴인 것일까.

 

처음에 우주 알에 대한 남자의 설명을 보면서 내가 떠올린 것은 보네거트의 <제5도살장>에 나오는 트랄파마도어 인이었다. 그 외계인들도 인간과 달리 시공간을 통합된 개념으로 이해하고 있었는데, 그런 비슷한 얘기가 앞부분부터 나와서 나는 그런 류의 소설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나... 하는 삐딱한 눈으로 책을 읽었다. 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이 작품이 가진 매력에 빠져들었고, 남자와 여자, 그리고 아주머니의 서사가 얽히고 풀리는 모습에 몰입하면서 단숨에 읽어버렸다.

 

이 소설은 많은 이야기를 다룬다. 진정한 속죄의 의미, 남녀의 운명적인 사랑, 학교 폭력 등등. 하지만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이러한 이야기들, 즉 현실이 이루고 있는 패턴에 대한 것일 테다. 우주 알의 이야기대로라면, 인간은 각자가 주어진 패턴 속에서 살아가는, 변화가 불가능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이루고 있는 세계 역시 마찬가지다. 마치 전시관을 감상하는 단체 관람객처럼. 소설은 남자와 여자, 아주머니를 중심으로 과연 인간이 패턴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나 역시 읽으면서 끊임없이, 이 소설에서 말하는 패턴이라는 건 무엇일까 하는 질문을 던졌지만, 답을 얻지는 못했다. 어쩌면 패턴은 세계 그 자체일 지도 모른다. 인생이라는 패턴, 학교라는 패턴, 윤리라는 패턴, 세계의 가치관이라는 패턴... 그리고 이러한 패턴들의 원자이자 가장 중요한, 인간이라는 패턴.

 

과연 인간은, 패턴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소설을 보았을 때는, 우주 알을 품지 않는 한 그것은 불가능해 보인다. 하지만 작가는 작품 말미에 작은 희망을 남겨두었다. 마지막을 준비하는 남자의 모습을 통해. 언젠가 인간이 우주 알을 품게 되는 그날, 우리에겐 좀더 나은 패턴을 고를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올 지도 모른다. 과연 언제쯤 '당신 패턴이 마음에 드는데.'하며 우주 알이 인사를 건넬까.

 

   지금까지 내가 해온 모든 거짓말들은 다 잊더라도, 이 말만은 기억해줬으면 해. 널 만나서 정말 기뻤어. 너와의 시간은 내 인생 최고의 순간들이었어. 난 그걸 절대로 후회하지 않아. 고마워. 진심으로.

   그러고 나서 남자는 화면을 보며 잠시 머뭇거렸다. 여자에게 하는 말이 너무 짧아 무언가 더 말하고 싶었지만 더 보탤 단어들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 말들은 거짓이면 안 되었기 때문이다. 너무 잔인한 진실도 안 되었다. 너를 만나기 위해 이 모든 일을 다시 겪으라면, 나는 그렇게 할거야. 같은 말들. 사실 남자는 여자를 만나기 위해 시공간연속체 속에서 그 모든 일을 몇 번이고 다시 겪고 있는 중이었다.

- '복권/유서/너는 누구였어?'(148쪽)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남자와 여자의 운명적인(사실 남자가 시공간연속체를 보고 선택한) 만남과 사랑을 보며 깊은 감동을 받았고, 아주머니와 남자의 모습을 보며 어떤 것이 윤리적일까, 속죄란 무엇일까, 남자에게 주홍글씨를 평생 동안 새기는 아주머니의 행동이 옳은 걸까 하는 질문에 고통스러웠으며, 여자의 이야기를 읽으며 현실의 핍진함이 주는 상처와 폭력에 대해 생각했다. 그리고 우주 알을 보면서, 우주 알이 인간이 이 지긋지긋한 패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될 수 있을지를 생각했다. 이제는 남자를, 중간에 '강'자가 들어가는 남자를 떠나보낼 때가 되었다.

 

   제가 소설을 쓰는 첫번째 이유가 돈인 것은 아닙니다. 세번째 이유쯤 됩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인생을 걸고 어떤 일을 할 때, 세번째 이유는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닙니다.

   (...)

   그러나 저는 어떤 의미에서는 이 세번째 전장이야말로 진정한 전투가 벌어지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곳에는 폭력이 충만합니다. 외교 따위는 없습니다.

   저는 첫번째, 두번째 전장과 달리 이곳은 현실의 싸움터라고 느낍니다. 이 밥벌이의 싸움을 피하면서 다른 방식으로 현실에 참여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원조를 받으며 시장 밖에서 피난을 다니지 않고, 시장 안에서 싸우며 시장가치를 인정받고자 합니다. 그것이 첫번째, 두번째 전장을 가벼이 여긴다는 의미가 아님을 잘 알아주시리라 믿습니다.

- '수상 소감' (165-166쪽)

 

장강명 작가의 <한국이 싫어서>가 한창 유행할 때도 나는 그를 찾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믐>을 읽고, 수상 소감과 수상 작가 인터뷰까지 읽은 후, 나는 이 작가가 좋아졌다. 팬이 될 것 같다. 오랜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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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물선 2015-08-26 03:5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 멋진 리뷰에요^^

아무 2015-08-26 07:32   좋아요 1 | URL
감사합니다^^ 마음이 뿌듯하네요 ㅎㅎ

보물선 2015-08-26 1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리뷰대회 있는거 아시죠?

아무 2015-08-26 13:48   좋아요 1 | URL
아 정말요?? 지금까지 몰랐는데.. ㅎㅎ 찾아봐야겠네요^^

스윗듀 2015-09-02 15: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나도 get

아무 2015-09-02 16:04   좋아요 0 | URL
전 다음 기회에.. ㅠㅠ 분량 꼭 확인하세요😊
 

 

인간이라는 건 결국 패턴이야. 남자가 설명했다. 앞에는 새장을, 뒤에는 새를 그린 부채를 상상해봐. 부채를 빠르게 돌리면 새장 속에 갇힌 새가 생겨. 신경회로 위에 의식이 떠오르는 과정도 그와 비슷해. 전기신호들이 회로 속을 빠르게 다니다가, 어느 순간에 갑자기 불쑥, 유령처럼. 밤거리의 네온사인들이 제각각 깜빡이다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동시에 켜지고는, 그다음부터 함께 점멸하는 광경을 상상해봐.
- `패턴/시작/표절` (8쪽)

운동장은 그 학교에서 가장 표정이 풍부하고 가장 인간적인 존재였다. 살아있는 학생들보다 더. 학생들은 학교에 있을 때에는 인간이라기보다는 개미나 벌을 더 닮았다. 교사들은 지친 로봇 같았다. 운동장은 재래시장의 늙은 상인처럼 무덤덤한 얼굴로 대낮을 견디다 하교시간 즈음해서 제 혈색을 되찾았다. 운동장의 성별은 아마 남성인 것 같았다. 수업을 마친 남자아이들이 축구를 할 때 즐거워했으니까. 운동장은 신화적인 존재이기도 했다. 해 질 무렵부터 슬슬 마력을 뿜어내기 시작해 밤이 되면 귀기를 몸에 둘렀다. 그러다 아침이 되면 다시 사소하고 조잡한 일상으로 돌아갔다.
- `작두/홍콩/교지` (30쪽)

우주 알이 몸에 들어오면 이런 점이 참 안 좋아. 왜냐하면 어떤 만남이 어떻게 끝이 날지 뻔히 보이거든. 그런데 어떤 관계의 의미가 그 끝에 달려 있는 거라면, 안 좋게 끝날 관계는 아예 시작도 하지 말아야 하는 걸까? 그 끝에 이르기까지 아무리 과정이 아름답고 행복하더라도?
- `일벌/인형/책장` (87쪽)

과거와 미래를 보지 못하고 현재만 보는 사람이 더 유리할 때도 있어. 여자가 말했다. 과거를 잊을 수 있으니까. 과거를 잊을 수 있기 때문에 과거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어. 그러니까, 내가 널 지켜줄게. 과거로부터, 너를, 지켜줄게.
- `의혹/케샤/필명` (127-128쪽)

내게 인과율은 이런 식으로 작동해. 나는 미술관 안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지만, 미술관의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는 거야. 그건 내가 바꿀 수 없어. 이 미술관에서 <모나리자>를 보려면 이탈리아 그림들을 함께 봐야 해. 이탈리아 그림이 있는 곳으로 가려면 프랑스와 스페인 회화 컬렉션을 거쳐야 하고.
너는 <모나리자> 같은 존재였어. 이 미술관에서 꼭 보아야 하는 그림. 우주 알이 내 몸에 들어왔을 때, 나는 네가 있는 곳으로 갔어. 나는 복권과 경마로 부자가 될 수도 있었어. 하지만 그런다면 네 곁에 머물 수 없었지. 그런 인생은 <모나리자>에서 매표소나 카페테리아만큼 멀리 떨어져 있었거든.
고마워. 너랑 지내는 동안 정말 행복했어. 우주 알을 받아들인 보람이 있었어.
- `복권/유서/너는 누구였어?` (143쪽)

전망대도 운동장과 비슷했다. 바깥 하늘이 붉어지자 조금씩 마력을 얻었다. 여자의 시간이 제 속도를 조금 잃었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인간들의 현재와 미래는 기묘하고 쓸쓸했다. 인간이라기보다는 개미와 벌을 더 닮았다. 여자는 제대로 된 순서에 대해 생각했다. 도시는 점점 빛으로 된 암호가 되어갔다.
자동차들이 눈에 불을 켰다. 그것들은 형체를 잃은 뒤 붉고 노란 빛의 점선이 되었다. 그 점선은 뭉쳐서 다발이 되어가면서도 다른 다발과 엉키거나 꼬이지 않았다. 방향을 바꾸지도 않았다. 빛의 선에는 시작도 끝도 없었고 잠시 뒤에는 방향도 없어졌다. 오직 패턴만이 있었다.
- `나무/호텔/소원` (16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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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것에 익숙해지면 무서움은 사라질 줄 알았다. 익숙해질수록 더 진저리쳐지는 무서움도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 `스노볼` (12쪽)

꺼진 텔레비전 앞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있었다. 나의 미래처럼 캄캄했다. 나는 미래를 예측해본 것이 없었다. 미래를 다짐해볼 때는 많았다. 언젠가 먼 곳까지 가볼 것이다, 먼 곳에서 더 먼 곳을 향해 가며 살 것이다. 이불 속에서 얌전하게 죽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 종류의 다짐이었다. 다짐으로 점철된 미래를 펼쳐놓았다. 미래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예언이 내게는 다짐 뿐이었다.
- `병신` (21쪽)

먹어보지 않은 크래커를 먹게 되는 것. 소주를 마시고 혀의 마비를 느껴보는 것. 네온사인이 색을 바꾸는 패턴을 이해하는 것. 네온사인이 꺼지고 도로에 차오르는 새벽 물안개의 냄새를 맡아보는 것. 내가 집에 들어가지 않는 것은 그런 것들 때문이었다. 알지 못했던 다른 세상이 이 세상 안에 있다는 걸 알게 되는 것. 하찮고 안 하고는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는 자꾸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했다. 모르는 곳으로 가고 싶어했다.
- `빈대` (29쪽)

나는 나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내 이름은 나보다 우리집 개한테 더 잘 어울렸다. 단 한 번도 불려보지 못한 진짜 내 이름이 어딘가에서 나의 부름을 기다릴 것 같았다. 십자 낱말 퍼즐의 빈칸을 보는 것처럼 이름의 힌트를 찾아보았다. 이 이름 저 이름을 내 이름이라 생각해보았지만 어떤 것도 어울리지 않았다. 낭이든 당이든, 강이와 다를 것이 없었다. 내게 어울리는 이름이 있다면 `재떨이`뿐이었다. 나는 무엇도 아니었다. 되고 싶은 무언가를 분명하게 정해놓은 적도 없었다. 병신 같지 않은 누구나가 되고 싶을 뿐이었다. 무인 모텔의 누구나 같은, 그런 누구나가 되고 싶을 뿐이었다.
- `아저씨들` (43쪽)

"좋으니까. 오빠도 나 좋아해."
나는 콧방귀를 뀌었다. 아름은 나를 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어린것아, 사랑하면 원래 싸우는 거란다."
- `아저씨들` (54쪽)

이제 나의 꿈은 종이접기 박사가 아니었다. 나는 단어를 떠올렸다. 병신. 하지만 최소한 병신은 되고 싶지 않다는 꿈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 `아르바이트` (73쪽)

무릎을 꿇으면 희망이 있을 거라고 믿는 태도, 희망을 향해 다가가려는 태도가 나를 희망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 것 같았다. 병신이 되지 않으려다 상병신이 되었다. 나는 최악의 병신을 상상했다. 그것을 바라기 시작했다. 최악의 상황이 유일한 출구였다. 무차별하게 흙을 긁어쥐던 순간처럼, 아무 곳에도 손을 뻗을 수 없는 순간에야만 그러잡을 것이 생기리라는 희망이었다. (...) 나는 샤프심이 아니었다. 사뿐하고 안전하게 추락할 수 없었다. 딱딱한 아스팔트에 떨어져 깨져버리는 묵직한 수박처럼 완전히 깨어질 때에만 시원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에야 찾아올 강렬한 수치심을 떠올리면 짜릿했다. 수치심의 끝에서만 나는 식칼을 꺼낼 것이다. 식칼을 꺼내기 위해 더 큰 수치심이 필요했다. 회복이 불가능한 병신이 되어야 했다.
- `좆밥` (124-125쪽)

강이가 들어 있는 어항에 다른 물고기를 넣는 상상을 했다. 강이는 운명처럼 싸우고야 말 것이다. 강이가 죽거나, 다른 물고가기 죽거나, 둘 중 하나는 없어져야 할 것이다. 강이에게 거울을 보여주지 않는 상상도 했다. 자신을 볼 수 없다는 것 때문에 강이는 곪아갈 것이다. 곪아가고 곪아가다가 어느 날 물위로 떠오를 것이다. 강이가 원하는 것이 그것일지도 몰랐다. 어항 속에서 혼자 살도록, 평생 거울과 함께 살도록,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정해진 것은 아니다. 투어로 태어난 강이는 원래 어디에서 어떻게 살아야 했던 걸까.
- `투어` (150쪽)

엄마는 내가 읍내동으로 돌아오게 해달라고 빌어왔을 것이다. 나는 읍내동으로 돌아가지 않게 해달라고 빌어왔다. 소영과 싸우던 날에, 나는 소영을 이기게 해다라고 중얼거렸다. 소영 또한 나를 이기고야 말 거라고 중얼거렸을 것이다. 한쪽의 기도가 강해질수록 다른 한쪽의 기도는 짓밟혔다. 기도도 기도끼리 싸움을 했다. 어떤 기도가 욕망대로 이길수록 어떤 기도는 무참히 지게 되어 있었다. 이것을 기도라고 할 수 있을까.
- `센서등` (163쪽)

나는 다시 먼 미래를 생각했다. 목숨을 유지하기 위해 흙을 퍼먹는 생활이 이어질 것이다. 우리는 땅속에 사는 지렁이 가족 같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끔찍함에 익숙했다. 엄마와 내가 번갈아가며 꾸어오던 악몽도, 시시때때로 떠오르는 기억도, 주기적으로 끓여먹는 된장찌개처럼 생활의 일부가 될 것이다. 나는 웃었다. 엄마도 웃었다. 병신 같은 사람들 곁에 병신으로 남을 것이다.
- `스노볼` (173쪽)

나는 최선을 다했다. 소영도 그랬다. 아람도 그랬다. 엄마도 마찬가지다. 떠나거나 버려지거나 망가뜨리거나 망가지거나. 더 나아지기 위해서 우리는 기꺼이 더 나빠졌다. 이게 우리의 최선이었다. 나는 이제 읍내동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읍내동을 벗어나고 싶었던 나의 소원도 이상한 방식으로 도래해 있었다. 언제 그칠 지는 알 수 없지만, 쉽게 녹아 사라지진 않을 눈이 내리고 있었다. 이상하고, 무섭고,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모를 정도로 좋은, 함박눈이었다.
- `스노볼` (1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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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선의 삶 - 제4회 문학동네 대학소설상 수상작
임솔아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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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고 나서, 작가가 되려면 '병신'이라는 나락으로까지 떨어져 봐야 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건 아마 이 소녀들의 처절한 삶이 경험이 없는 나에게까지 생생하게 다가왔기 때문일 것이다. 첫 장편에서 이 정도의 성취를 이루었다는 것이, 질투를 불렀다는 것도 부인할 수는 없다. 생생하게 보여주는 소녀들의 삶은, 그것이 최선의 선택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비극적이다.

 

나도 집을 좋아했다. 우리집 강이가 자기 집을 좋아해 개집 안에 장난감 인형들을 모아놓듯이 나도 그랬다. 우리집 강이가 밖으로 나가고 싶어 창문에 코를 대고 있듯이 나도 밖으로 나가고 싶을 뿐이었다. 왜 집을 나갔느냐는 질문을 사람들에게 받을 때마다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아 어색하게 웃기만 했다. 그러면 집이 싫으냐는 질문이 이어졌다. 그렇다고도 그렇지 않다고도 대답할 수 없었다. 배가 고프면 밥을 먹어야 하는 것처럼,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밥이 먹고 싶어질 때가 있는 것처럼, 멀리 나가다보면 원하지 않던 곳에 다다르더라도 더 멀리 나아가야 하는, 그런 일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먼 곳에서 더 먼 곳으로 갈수록, 돌아갈 집이 있다는 것이 더 비참한 느낌이라는 걸, 따뜻한 이불이 포근하고 좋아서 무서워지는 순간이 있다는 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 '병신' (14쪽)

 

무식하게 이야기를 단순화하면, 이 소설은 소녀들의 가출 이야기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소녀들이 집을 나가는 이유가 명확하게 나타나 있지는 않다. 그런 순간이 엄습했고, 그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삶이었을 따름이다. 소영은 아니었지만. 소영에게는, 가출이 부모에 대한 일종의 시위이거나 일탈과 같은 것이었으리라. 크게 보면 '병신'이 되기 싫어서라는 이유이겠지만.

 

아람이 소영을 왕따시키려 하는 것도, 강이가 소영과 아람을 화해시키려 한 것도, 소영이 폭력을 행사하면서까지 자신의 위치를 지키려 한 것도 결국 '병신'이 되지 않기 위한 행동이었으리라. 하지만 '병신'이 되지 않기 위해 몸부림쳤던 강이는, 그 몸부림으로 인해 결국 병신 중의 병신, 상병신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또래 집단이라는 작은 사회는, 상병신에서 벗어나려는 상병신의 행동을 받아주지 않았다. 서로를 구별짓지 않았던 그들의 집단은, 세 소녀의 가출 이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실세에게 붙으며 구별짓기를 자행했다. 가출이 그들을 성장하게 했고, 황정은의 '누가'의 단어를 빌리자면, 그들의 성장이 그들의 계급적 조건을 무참하게 구별지어 버렸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자신의 '최선의 삶'을 위한 선택을 했던 집단 속 소녀들은, '최선의 삶'을 살고팠던 강이를 병신으로 만들었다.

 

강이는 상병신의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마지막 몸부림을 취한다. 심사를 맡았던 정한아 소설가의 말처럼, 나 역시 결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예상했던 결말은 아니었지만, 상투적인 결말을 선택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간 것에 대한 충격일 뿐 결국에는 상투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자신의 의지는 아니었지만, 자신을 병신으로 만든 폭력으로부터 떠났다. 그러나 그것이 한 개인을 폭력으로 몰아넣었던 사회의 밖으로 나온 것이라 할 수 있을까. 난 여기서 <야만적인 앨리스씨>를 썼던 황정은의 질문과 대면했다. 날 때부터 폭력으로 점철된 사회 속에서 살아왔던 개인은, 그 사회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하지만 눈은, 쉽게 녹아 사라지진 않을 함박눈으로 내린다.

 

각 장의 길이가 그리 길지 않은 탓에 소설의 호흡은 짧다. 그것이 소설을 술술 읽히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짧은 호흡을 만끽하며 넘기는 책장 안에 담긴 질문은 그리 가볍지 않다. 이 소설은 학교 폭력을 말하려고 쓴 소설은 아니다, 라는 생각을 한다. 병신이 되지 않으려는 몸부림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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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취방(이라 쓰고 고시원이라고 읽는다) 주변에는 서점이 없다. 안 그래도 고시생 처지인데 서점이 없으니 책을 찾을 기회가 더더욱 없다. 그래서 오랜만에 집으로 내려가는 이런 날은 서점에 들른다. 눈길을 끄는 책이 있나 하고..

오랜만에 알라딘 중고서점에 들러 책을 둘러 보는데, 모디아노의 책이 딱 한 권 있어서 골랐다. 나는 보통 감으로 책을 사는 일이 많은데, 이 감은 7대 3 정도의 적중률을 자랑한다. 특히나 이 <어두운 상점들의 거리>는 첫 문장을 sns에서 보고 굉장히 끌렸으므로, 골랐는데 오늘 만난 선배는 이 책을 보더니 자기는 이 책을 읽으면서 이상의 소설이 생각나 힘들었다고 했다. 괜찮으려나...

한강의 작품이 있나 찾다가 아무리 봐도 없는 데다, 김영하와 김연수 작품에는 아직 확신이 안 서서 구매를 못하고, 철학서를 뒤적거렸는데 철학자의 저서는 없고 해설을 다룬 것만 있어 못 골랐다. 푸코의 <감시와 처벌>이 있긴 했으나 반값임에도 내가 사기에 부담이 있어서 다음에 사는 걸로...

노트북을 챙기다 보니 공간이 없어서(사실 무거워서) <최선의 삶>만 챙겨 지하철에서 조금 읽었는데, 술술 읽히긴 하지만 성장소설의 전형으로 흐르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든다. 아직 100쪽도 안 읽어서 뭐라 말하긴 뭐하지만... 집에 가서 마저 읽으면 알게 되겠지.

아침 8시에 집에서 나왔는데, 난 여전히 지하철에 있다. 어깨가 점점 아파온다. 언제쯤 들어가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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