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생 시절, 학교 도서관에 홈스와 뤼팽의 이야기를 그린 만화책이 있었다. 그 책이 나에게 추리소설에 입문하는 계기가 되었다고나 할까... 둘 다 매력적인 캐릭터였지만, 나는 뤼팽에게 더 눈길이 갔다. 그 당시에 <기암성>도 있어서 읽었었고...(전집은 아니었고 선집 중 하나였다) 그렇게 읽은 뒤 그 둘은 나에게서 잊혀지는 듯 했으나, 중학생이 된 후 나는 시립도서관에서 1권 <괴도신사 아르센 뤼팽>을 발견했다. 그 책에서 신출귀몰하는 뤼팽의 모습이란... 하지만 도서관에는 전집이 없었고, 나는 알라딘(아직 aladdin이던 때)에서 전집을 발견하고 꼭 사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당시 가격도 15만원 안팎이었던 터라 부모님은 반대했다. 책을 사는 것에는 전혀 반대하지 않았던 부모님이었지만, 그 때는 정말 완강했다. 왜 이런 책을 굳이 사냐며... (장르문학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인식이 여전히 그러하듯) 며칠 동안 조르고 조른 뒤에야 나는 까치글방에서 나온 아르센 뤼팽 전집 스무 권의 주인이 되었다. (셜록 홈스 전집이 오기까지는 몇 년이 더 지나야 했다)

 

 

 

 

 

 

 

 

 

 

 

 

 

 

저작권 기한이 만료되어 우후죽순처럼 나왔던 뤼팽 시리즈 중 성귀수 씨가 번역한 까치글방 판은 여전히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한다(황금가지 지못미... 하지만 표지는 예뻤어). 성실하면서도 깊은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한 번역의 질과 해설도 한몫을 했겠지만, 유일하게 <아르센 뤼팽의 수십 억 달러>를 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때만 해도 그의 해설에는 <아르센 뤼팽의 마지막 사랑>은 원고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쓰여 있었다. 그리고 정말 오랫동안 까맣게 잊고 지냈는데, 우연히 알라딘에서(이제는 aladin) 이 책이 나왔다는 것을 알고 흥분에 젖었었다. 그리고 읽었는데, 흠... 분량도 분량이거니와, 치밀한 구석이 많이 사라져서 안타깝기도 하다. 코라라는 여성도 그렇고... 뤼팽의 꼬마 특공대는 홈스의 베이커가 특공대를 생각나게 했다. 뤼팽 시리즈의 명실상부한 마지막 작품이라는 점에 의의를 두어야 할 듯하다... (이것 역시 성귀수 씨 번역이며, 출판사는 문학동네)

 

어렸을 때만 해도 뤼팽과 홈스의 대립 구도 같은 것이 있어서, 네이버 지식인에도 '뤼팽과 홈스가 싸우면 누가 이기나요?'같은 어처구니없는 질문이 올라오던 때였다. 나는 둘 모두 좋아하지만 뤼팽의 호탕함과 유머러스함을 더 좋아했으므로, 철없는 마음에 인터넷에서 열폭했던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하지만 돌이켜 생각하면 이 둘은 비교 대상이 아니었다. 셜록 홈스 시리즈가 추리소설에 속한다면, 아르센 뤼팽 시리즈는 모험소설로 확대되는 경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대결 구도를 만든 건 작가인 모리스 르블랑의 잘못이 크다. 자기 멋대로 홈스를 작품에 등장시켰으니... 그것도 말도 안 되는 설정으로. 그런데 이 작품에서도 셜록 홈스의 이름이 또 언급된다. 하....

 

읽으면서 어렸을 때 뤼팽 전집을 쌓아놓고 같은 작품을 네다섯 번씩 읽었던 기억도 떠오르고, 여전히 뤼팽은 화끈하고 유머러스했다. 작품성만 놓고 보면 다른 작품에는 못 미치지만, 오랜만에 추억을 떠올리게 해 줬다는 것에 의의를 두련다. 이제 팡토마스를 찾으러 가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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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글은 최근 읽은 황정은의 단편들에 대한 짧은 감상입니다.) 

 

 

 

 

 

 

 

 

 

 

 

 

 

 

 

1. 웃는 남자

 

왜 웃는 남자일까... 하고 생각하다가 빅토르 위고를 떠올렸다. 작년에 사 놓고 여태껏 읽지 않고 있으므로 기형적으로 웃는 얼굴을 가지게 된 남자의 이야기,로만 알고 있다. 무슨 관련이 있을까... 하고 고민하다가 그만두었다.

 

이 단편은 도도를 중심으로 한 이야기이다. 아무른 장식도 없고, 벽지마저 뜯어낸 단칸방에서 생곡을 씹고 있는 도도. '디디의 우산'에 나오는 도도가 맞다. 여기서도 도도의 연인은 디디니까.

 

도도는 중간중간에 자꾸 '단순해지'자고 말한다. 어쩌면 단순해져야만 생존할 수 있는 세계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그 세계는 아버지가 물을 아끼겠다고 변기 손잡이를 떼서 세면대에 남은 물로 오물을 처리하는, 그런 세계다. 그런 곳에서 생각을 자꾸 하면 생각은 '나를 먹고', '나를 짓누르고', '나를 씹는'다(266쪽). 뭔가 말을 하려고 해도 가만히 있으라는 일갈만 남는, 그리고 혁명, 이라고 말하는 게 새삼스러운 세계.

 

구급차를 타고 가는데, 하고 아버지는 말했다.

그놈이 의식은 있는데 머리가 자꾸 부풀더라고. 머리가 이렇게 자꾸 커져. 겁이 더럭 났지. 그런데 이놈이 자꾸 말을 하려고 하는 거야. 가만히 있으래도 말을 해요. 뭐라고 자꾸, 말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거야. 가만히 있으라고 해도. 가만히 있으라고 해도. 그래서 내가 아 닥치라고, 가만히 좀 이렇게 닥치고 있으라고 열불을 냈단 말이지. 그랬더니 나를 한 번 끔벅 보더니 그다음부턴 말을 안 해. 눈을 감아. 그리고 바로 파래졌지. 바로 파래졌어. (273쪽)

 

디디는 하하, 웃더니 다시 말했다.

일전에 나는 있지, 버스 안에서 혼자 혁명, 하고 말한 적이 있었어. 그냥 책 제목을 읽었을 뿐이었는데 말이야. 나 엄청 놀랐어. 이렇게 사람 많은 곳에서 이 말을 하다니, 하고 놀라서 눈치 보고 그랬어. 그런데 그렇게 놀라고 보니까 이상한 거야. 엄청 이상한 거야. 그게 그렇게 놀랄 정도의 일인가? 사람들 많은 곳에서 혁명...... 하고 말하는 것이. 그런데 나는 놀랐다? 되게 놀랐고 그렇게 놀란 게 좀 웃기다고 생각했어. 어머 나 좀 봐...... 하고. (271쪽)

 

단순해지려는 도도를 막는 것은 죄책감이다. 디디를 붙잡지 못했다는 죄책감. 그리고 그 죄책감은 어떤 노인에 대한 기억을 불러온다. 버스 정류장에서 곁에 서 있던 노인이 쓰러졌을 때 도도는 그를 피해 비켜섰고 때마침 버스가 도착해 버스를 탔다. 그를 떠올리며 도도는 '버스가 조금 늦게 당도했더라면,'(268쪽)하고 계속 생각한다. 하지만 다시 '단순해지자. / 더 단순해지자.'(269쪽)고 말한다. 하지만 디디에 대한 죄책감은 단순해지지 않도록 그를 막는다. 디디가 현실의 무심함에 대한 반성으로 그를 이끈다고 해야 할까. '벽이 이럴 수 있다는 것을 상상해본 적이 없'(263쪽)는 세계에서, 이런 무심함을 새삼스럽게 깨닫는 것이 현실에서도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도도는 단순하고 무심한 세계의 표상과 같은 방 안에서 생각한다. '아무도 나를 구하러 오지 않을 것이므로 나는 내 발로 걸어 나가야 할 것이다.'(275쪽)라고. 도도는 그 세계 밖으로 나갈 수 있을까.

 

 

 

 

 

 

 

 

 

 

 

 

 

 

2. 아무도 아닌, 명실

 

(소설 전문은 http://webzine.munjang.or.kr/archives/11033)

 

<한밤의 산행>은 '기억'에 관한 테마 소설집이다. 여기 실린 '아무도 아닌, 명실'은 지금까지 읽은 황정은의 단편 중 두 번째로 어려웠다(첫 번째는 그 다음에 나온다). 명실은 글을 쓰기 위해 노트와 만년필을 찾고 그의(실리가 여자인지 남자인지는 나와있지 않다) 책장을 보며 실리를 생각한다. 하지만 기억은 자꾸 흐려지고,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마저 자꾸 잊혀진다. 자신을 알아보는 전어 장수나 자신의 조카의 목소리도 못 알아보는 걸 봐서 치매를 앓고 있는 듯 보이는데, 그럼에도 그녀는 실리를 기억하려고 애쓴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려고 하는 걸까.

 

이 소설을 메타소설로 보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끊임없이 책을 쓰려고 하지만 끝을 맺지 못하는 실리, 실리가 죽은 뒤 주인이 없어진 그의 책장과 책들. 그리고 노트에 실리에 대한 글을 쓰려는 명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설에 대한 소설로 보기 전에, 이 소설이 말하려는 건 기억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실리가 들려주는 마리코의 이야기에서도 그렇듯, 누군가를 기억하는 방식은 그를 기다리는 방식이 아닐까, 하고.

 

그게 안 돼. 앉으면 말이야...... 앉으면 되지, 그 사람도 그렇게 생각해서 앉았는데 벌판 가득 풀이 자라서 그 속에 앉으면 길게 자란 풀에 묻히는 거야. 마리코가 자칫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갈지도 모르잖아? 그래서 서서 기다려. (...) 그런데 이 벌판에 온전히 혼자인 것은 아니라서......

누가 있어?

누가 있지. 책상과 의자가. (102-103쪽)

 

기억하지 않으면, 기다리지 않으면 '점차로 없고 점차로 사라져가는 것'(104쪽)이다. 명실은 마리코-실리를 망각으로 잠기지 않게 하기 위해 계속 기다린다. 그 기다리는 방식, 기억하는 방식은 사진이 아니다. 어느 순간 '그냥 밋밋한 종잇장'(104쪽)이 되는 순간이 오므로, 오히려 실리가 이제 없다는 것을 생생하게 느끼게 만들어 버리므로... 실리를 기억하는 방법은 글을 쓰는 것뿐이다. 실리의 책들, 그 책들이 실리를 죽였다는 생각에 그 책들을 '닥치게 만들었고 죽게 내버려두었'지만(107쪽), 실리를 기억하는 방법은 그것뿐이다. 그래서 마리코를 기다리는 사람에게도 책상과 의자가 있는 것이 아닐까. 어쩌면 황정은에게 소설은 누군가를 기억하는 방식, 기다리는 방식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3. 누구도 가본 적 없는

 

'누구도 가본 적 없는'은 중년 부부의 유럽 여행을 다룬다. 시기는 IMF가 터졌을 때로 나오지만 그 배경이 그렇게 큰 연관성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제목을 보았을 때, 이 단편에서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여행인 듯하다. 14년 전 아이와 함께 갔던 계곡 나들이, 유럽 여행, 그리고 우주선 패스파인더(Pathfinder)의 화성 착륙.

 

뭘 그렇게 봐.

아니 화성이니까.

뭐 별거 있나.

아니 저렇게 있는데 못 가볼 거니까, 평생.

화성엔 못 가지.

그렇지, 우린.

다른 사람도 못 가.

미국이 갔잖아. 사진도 찍고, 저렇게.

미국이 간 거지. 아무도 없어, 저기엔. 무인(無人)이었으니까. 저기 갈 수 있는 사람은 지금도 없어. (337-338쪽)

 

소설에는 큰 사건이 두 가지가 나온다. 하나는 14년 전 아이의 죽음. 다른 하나는 여권 분실. 사건들 사이의 연결고리가 무엇인지 고민하다가, 부부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 아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인 그는 '조금 더 영어를 할 줄 알'기 때문에 여행에서 모든 설명과 일을 도맡아 한다. '묻는 일이 피곤했고 나중엔 거의 두려'울 만큼. 반면 아내는 '왕성하게 먹고 호기심도 왕성'해서, 이리저리 쏘다니고 길을 걷다 흥미로운 것이 있으면 그쪽으로 이탈해서 가 보기도 한다. 그리고 그런 아내의 왕성한 호기심에 그는 무뚝뚝하게, 때로는 무관심으로 대응한다. 오히려 그는 그런 활기가 불편하다. '이 도시의 활기가 불편'하듯이. 어쩌면 그는 이 세계의 질서가 체화된 인물, '무심하고 침착한 어른'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내라는 개별자의 호기심에, 상처에 무관심한 것 아닐까, 하고.

 

안장이 사라진 자전거가 곤혹스러운 세계 자체로 보였다고 그녀는 말했다. 어느 개새끼가 가져갔을까. 안장은 어디에 있을까. 세상이 아이에게서 통째로 들어낸 것, 멋대로 떼어내 자취 없이 감춰버린 것. 이제 시작이겠지, 하고 나는 생각했지...... 이렇게 시작되어서 앞으로도 이 아이는 지독한 일들을 겪게 되겠지. 상처투성이가 될 것이다. 거듭 상처를 받아가며 차츰 무심하고 침착한 어른이 되어갈 것이다. 그런 생각을 했지......

그는 듣는 둥 마는 둥 했다.

몇 번이고 들은 이야기였다. (338-339쪽)

 

이런 그의 불만은 아내가 여권을 잃어버리자 폭발한다. 왜 여기서 그녀에게 뱉는 그의 말이 나는 이렇게 들린걸까. 그러니까 그렇게 질문하고 쏘다니고 호기심 갖지 말라고 하지 않았냐. 14년 전에 니가 '조금 더 들어가보자'고 하지 않았으면 우리 아이도 안 죽었을 거다. 진작 입 다물고 질서에 맞게, 이 세계의 질서에 맞게 살았으면 되지 않았냐. 내가 언제까지 여기서는 이렇게 해야 해, 저렇게 해야 해라고 말해줘야 돼? 이런 식으로.

 

내가 그걸 챙기라고 하지 않았어? 그는 말했다.

그 밖에 내가 뭘 더 부탁한 게 있어? 그거 챙기라고...... 가방에 넣으라고 말하지 않았나? 그거 잊지 말라고...... 그냥 그거 하나...... 가방에 다 있잖아. 당신 칫솔, 화장품, 사탕...... 다 있는데 왜 그건 없냐...... (...) 그런데 괜찮을 거라니...... 당신은 괜찮지 걱정이 없지 내가 다 하니까...... 당신은 잘 먹고 잘 자고...... 어디서든...... 호텔에서든 비행기에서든......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어떻게 그렇게 비위가 좋냐 그렇게 멀쩡하게...... 괜찮을 거라고?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쉬워 모든 게......

(...)

그런 식으로 보지 마. 사람 빤히 관찰하지 마. 너는 아무 잘못 없는데 내가 때리기라도 한 것처럼 그렇게. (345-346쪽)

 

그리고 아내는 그를 떠난다. 세계의 질서를 무심하게 따라가기만 했던 결과는, 소중했던 사람들의 상실이다. 그래서 '노, 미스드...... 로스트......'라고 한 것 아닐까. 세계에 대한 의심 없이 무관심하게 모든 질서를 수용했던 그와, 조용히 따라오라는 세계에 호기심을 품고 있던 아내. 그것이 이 소설이 말하려는 바가 아니었을까.

 

그냥 읽으면 가끔 아내의 행동이 답답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그가 마치 해결사인 것 같고... 하지만 좀더 생각해보면, 그렇게 세계에 대한 의심 없이 무작정 따라가는 것이 옳은가,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그런 맹목적으로 따른다고 해서, 세계가 우리의 안전을, 안정을 보장해준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IMF 얘기가 나온 것일지도.

 

가게를 봐주고 있는 처남에게 도착을 알리고 안부를 물었다. 매형, 처남이 말했다. 우리 나라가 망했어요. (336쪽)

 

'누구도 가본 적 없는'은 세계의 바깥을 말하는 것일까? 패스파인더도, 아이도, 그녀도 불합리한 이 세계의 바깥으로 나간 것이라고 볼 수 있을까? 잘은 모르겠다. 다 이해한 것처럼 떠들었지만 이건 모두 나만의 독자적인(그래서 오류가 많은) 해석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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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9-23 02:2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기다리는 방식˝이라...베케트 <고도를 기다리며>와 연결하니, `고도`(Godot)가 영어 `God`와 프랑스어 `Dieu`의 합성어라는 점(황정은 작품 속 인물들 이름짓기와 유사?), 인물들의 대화, 기다리는 상황....상당히 황정은 작가 작법세계와 긴밀하단 생각이 드네요

아무 2015-09-23 21:32   좋아요 1 | URL
오!!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는데 듣고 보니 정말로.... 이름짓기도 그렇고 상황들도 뭔가 고도를 기다리는 그런 상황과 유사한 것 같아요^^ 그렇게 보면 고도가 세계를 벗어난 인물이 될 지도...ㅎㅎ
 
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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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는 여유롭게, 시간을 두면서 천천히 읽자고 생각했다. 책을 읽기 시작하고 한 시간 뒤, 그 생각이 얼마나 바보 같은 것이었는지 깨달았다. 책을 도저히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책에 미친 듯이 몰입해서 끝을 볼 때까지 쭉 읽은 것도 정말 오랜만인 것 같다. 엄청난 기대를 하고 보지 않았던 이 책은, 책읽기의 즐거움을 찾고 싶은 사람에게 내가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 되었다.

 

이 소설의 줄거리를 다소 거칠게 요약하자면 '모든 일에 실패한 삶을 살아간 윌리엄 스토너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정말 재미없는 소설처럼 보인다. 자극적인 반전도 없고, 대단한 전환점도 없는 스토너의 삶이 출생부터 쭉 나열되고 있으니까. 소설가 김중혁은 책을 완독하지 않았을 때 다른 소설리스트 멤버들에게 이렇게 물어봤다고 한다. "지금도 재미있게 읽고 있긴 한데 대체 언제부터 재미있어지는 거에요?"

 

그러나 이 소설의 재미는 바로 스토너의 평범한, 지극히 평범했던 그 일생에 있다. 매사에 수동적이었고, 일, 사랑 그 무엇에서도 실패를 거듭했던 스토너의 삶을 다 읽었을 때, 소설의 감동이 마음을 울린다. 어쩌면 스토너의 삶에서 나 자신의 모습을 언뜻 보았기 때문일까.

 

 

1. 이디스, 그레이스

 

스토너는 평생 살면서 어떤 행동(action)을 직접 행하지 않는다. 그가 보여주는 모든 행동은 그에게 가해진 어떤 행동의 반작용(reaction)일 따름이다. 그리고 그의 반응 중 대부분은, 그의 아내였던 이디스의 행동에서 비롯된다.

 

이디스는 전형적인 교육을 받던 여성이다. 그녀가 보여주는 행동은 히스테릭하고 때로는 무언가에 사로잡힌 듯한 모습을 자주 보여 정신 불안을 겪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가끔씩 그가 스토너에게 가하는 행동들은 상식을 벗어나서, 너무 심한 거 아니냐는 생각까지 드는데,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그녀가 악역으로 보이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그녀가 자라온 환경, 그리고 과묵하고 학문에만 열중할 뿐인 스토너를 보고 있으면, 그녀가 이렇게까지 정신적인 불안을 겪으며 행동하는 모습이 미워지지 않고 오히려 연민마저 느껴지게 된다. 그녀의 제정신이 아닌 행동은, 제정신을 차리기 위한 행동이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레이스는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의 손에서 자랐기에, 아버지를 많이 따르기도 하고, 부녀 사이에는 어떤 정서적 교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부녀가 서재에서 서로 눈을 마주치는 장면은, 내가 이 소설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이다. 하지만 이디스는 자신에게 없는 감정의 소통이 둘을 이어주고 있다는 사실을 견딜 수 없었고, 스토너에게서 그레이스를 빼앗아 자기 식으로 기르기 시작한다.(스토너는 여기서도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는다. 이 부분이 제일 답답...) 정서불안에 시달리고 있는 그녀의 손에서 자란 그레이스는 부모가 알지 못하는 방황을 겪고, 감옥과 같은 집에서 벗어나기 위해 사랑하지도 않는 남자의 아기를 갖는다. 이후 남편을 잃고 알콜 중독에까지 이르며 파멸의 길을 걷는데, 한때 그녀를 진심으로 아끼고 사랑했던 스토너는, 여기서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 슬픔으로 가득 찬 얼굴로 바라볼 뿐. "그레이스가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니. 아...

 

그레이스와 이디스는 많은 면에서 닮았다. 이는 그레이스가 어린 시절을 제외하면 이디스의 손에서 길러졌다는 것도 한몫을 한다. 둘 모두 자신을 옥죄는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결혼을 선택하지만, 그 선택은 불행했다. 그 안에는 지(知)에 대한 사랑도, 상대를 향한 사랑도 부재했기에.

 

 

2. 스토너, 책을 사랑한 인간의 자세

 

스토너의 일생에서 떼 놓을 수 없는 것은 책이다. 그는 평생 동안 영문학을 공부하고, 영문학을 사랑했다. 특히 그가 관심을 쏟은 것이 문법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필요가 있다. 문법이라는 것은, 단순한 단어들의 배열 규칙 같은 것이 아니라, 영문학을 이루는 모든 것이자 그 근간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문법에 관심을 쏟았다는 사실은, 그는 영문학 자체를 무목적적으로 사랑했음을 의미한다. 그가 처음으로 문학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던 사건이, 일정한 리듬과 운율을 요구하는 정형시 소네트였다는 것 역시 이와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초반에 아처 슬론이 읊어주는 소네트 역시 감탄할 만한 장치인데, 내용이 스토너의 인생을 암시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가 캐서린 드리스콜과 사랑에 빠진 것은, 그녀가 학문을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동물적인 열정에 사로잡혀 결혼까지 했던 이디스와의 생활은, 학문에 대한 사랑을 공유할 수 없었기에 불행했다. 그러나 캐서린은, 그녀뿐만 아니라 그녀의 학문에 대한 사랑까지 있었기에 사랑하면서 잠시나마 행복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어렸을 때 두 사람은 마음과 몸이 별개의 것이며 서로 적대적인 관계라고 배우며 자랐다. 그래서 별로 깊이 생각해보지도 않고, 둘 중 하나를 선택하려면 나머지 하나를 희생하는 수밖에 없다고 당연한 듯이 믿고 있었다. 둘 중 하나가 다른 하나를 강화해줄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진실을 깨닫기도 전에 체험이 먼저 찾아왔으므로, 이 새로운 발견이 오로지 두 사람만의 것처럼 보였다. (279쪽)

 

그러나 마음과 몸이 별개의 것이라고 우기는 세계의 개입으로 이들의 사랑은 끝났다. 스토너는 다시 자신이 사랑했던 단 하나, 책에 빠져 남은 생을 보낸다. 그의 삶을 지켜보며 내가 느꼈던 것 중의 하나는, 바로 책을 대하는, 학문을 대하는 그의 자세에 대한 것이었다. 책을 사랑한다는 것, 책을 읽는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어쩌면 실패뿐이었던 그의 인생은, 실패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자신이 사랑했던 것을 끝까지 추구하는 삶을 살았기에.

 

 

3. 약간의 아쉬움, 로맥스와 워커

 

동료 교수인 로맥스와 그의 제자 워커는 이 작품에서 유난히 돋보이는 전형적인 악당 캐릭터다. 이들은 스토너를 방해하며 소설의 전개를 추동하는 엔진과 같은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이 둘이 모두 장애가 있다고 설정한 것이 조금은 불편한 감이 있었다. 마치 장애라는 환경적 조건이 그들을 비뚤어지게 만들었다는 일반화가 성립된 것 같아서. 악당이 가진 불구적인 요소가 그 요소마저 악하게 만들어 버리는 전형적인 사고가 눈에 띄었다고 해야 하나... 그래도 이들이 있었기에 한번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던 스토너가 자신의 목소리를 강하게 내는 장면을 보여줬다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평생 가정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강하게 낸 적이 없던 스토너는, 교육자로서의 윤리를 지키기 위해 이들과 적극적으로 맞섰으니까.

 

 

4. 너무나 평범했던 한 남자

 

작품을 읽으면서 이 인물은 왜 이렇게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할까, 그랬다면 좀더 나아졌을지도 모르는데... 하는 생각을 종종 했다. 그렇게 자신이 사랑했던 학문을 제외하면 한번도 적극적으로 행동하지 않았던 스토너는 쓸쓸하게 생을 마쳤고, 뚜렷한 족적을 남기지 못한 그는 세상에서 잊혀졌다. 책을 다 읽고 다시 첫 장으로 돌아와 첫 문단을 읽었을 때 느껴졌던 아련함과 울림이란... 슬픔과 고독 속에서 책을 향해, 문학을 향해 걸어갔던 그의 삶은 화려하지 않았지만, 화려하지 않아서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 책이 많은 사랑을 받게 된 것도, 스토너의 삶의 어느 지점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한평생 책을 사랑했던 그의 마지막은, 슬픔과 고독의 연속이었지만 책을 만나서 다행이었노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는 책을 펼쳤다. 그와 동시에 그 책은 그의 것이 아니게 되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책장을 펄럭펄럭 넘기며 짜릿함을 느꼈다. 마치 책장이 살아 있는 것 같았다. 짜릿한 느낌은 손가락을 타고 알라와 그의 살과 뼈를 훑었다. 그는 그것을 어렴풋이 의식했다. 그러면서 그것이 그를 가둬주기를, 공포와 비슷한 그 옛날의 설렘이 그를 지금 이 자리에 고정시켜주기를 기다렸다. 창밖을 지나가는 햇빛이 책장을 비췄기 때문에 그는 그곳에 쓰인 글자들을 볼 수 없었다.
손가락에서 힘이 빠지자 책이 고요히 정지한 그의 몸 위를 천천히, 그러다가 점점 빨리 움직여서 방의 침묵 속으로 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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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윗듀 2015-09-20 12: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내가 하고싶은 말을 아무님이 다 했네요..그것도 잘👍

아무 2015-09-20 13:00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많이 부족한 글이지만...☺️ 다른 작품도 나오면 읽어봐야겠어요 ㅎㅎ

2016-01-11 00:0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11 00: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6-01-11 00:3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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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11 02: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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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팔로 하는 포옹
김중혁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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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을 읽는 건 <악기들의 도서관> 이후 처음인 것 같다. 몇 년 전 <악기들의 도서관>을 읽었을 때의 느낌은 글을 담백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쓴다...는 것이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내가 디제잉이나 이런 쪽에 워낙 지식이 없다보니 어려운 점도 많이 있었다. 디지털 시대에 사는 아날로그적 인간은, 이래서 힘든 건가.

 

엄밀히 말하자면 이 책은 연애소설집이 아니지만, '연애' 소설집이라고 말할 수는 있겠다. 연애라는 것은 결국 관계가 보여주는 모든 형태가 될 수도 있으니까. 그래서인지 맨 앞에 실린 '상황과 비율'은 관계의 시작을 말한다는 점에서 위치 선정을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듣도 보도 못한 프러포즈라니.

 

"송미씨에 대한 '춘하프로덕션'의 믿음을 설명하는 중입니다. 송미씨 팬의 평균 연령은 28.5세이고, 악플의 비율은 13퍼센트입니다. 여배우들의 평균 악플 비율이 25퍼센트인 걸 생각하면 놀라운 수치입니다. 마지막으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데요. 정지화면 캡처 비율입니다. 얼굴과 상체, 상체와 하체, 전신 캡처의 경우를 통계로 내는데, 송미씨의 경우는 4 대 2 대 2입니다. 전신보다 얼굴의 비율이 높게 나오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송미씨의 웃는 표정을 좋아한다는 얘깁니다."

- '상황과 비율' (24쪽)

 

'픽포켓'은 나에게 집착에 대한 이야기로 읽혔다. 극성 팬에게 납치당한 여자 연예인과 그녀를 구하겠다고 나서는 두 팬의 이야기. 이 단편은 작품에서 인용한 찰스 디킨스의 문장, '밤에 대도시에 갈 때면, 어둠 속에서 옹기종기 모여 있는 집집마다 비밀을 간직하고 있으리라는 엄숙한 생각이 든다. 그뿐인가. 집안의 방마다 비밀이 있으며, 그 방에 살고 있는 수천 수백 명의 가슴속에서 고동치는 심장은 가장 가까운 사람조차도 상상하지 못할 비밀을 품고 있다'(<두 도시 이야기>)를 위해 쓰여진 단편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나에게는 그닥 와닿지 않는, 그런 소설이었다.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은 이규호의 입을 빌린 피존씨의 이야기다. 이규호는 옛 여자친구인 정윤에게 말을 털어놓고 있지만, 사실 정윤은 이규호의 상상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피존씨나 이규호에게 필요한 건 단 한 번의 포옹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공감할 수 없는 자의 포옹은 결국,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일 뿐.

 

'뱀들이 있어'는 여러 상황이나 장면이 세월호를 생각나게 하는 단편이었는데, 이 작품과 '가짜 팔로 하는 포옹'이 하나로 엮일 수 있는 무엇이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했다. 마지막에 정민철이 류영선을 안아주는 장면이 왠지 모르게 '가짜 팔'로 하는 포옹처럼 보여서일까. '연애'소설집의 흐름을 따르자면 이 단편의 주제는 아마 '질투'와 '공감'이 될 것이다.

 

'종이 위의 욕조'는 관계라는 것이 얼마나 복잡하며 알 수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했다. 한 번의 전시회를 위해 이리저리 작품 배치를 바꿔보며 시뮬레이션을 해볼 수 있지만, 관계라는 것, 나아가 인생이라는 것은 '아무리 편집을 잘해도 (술 마시고) 필름이 끊기면 끝이다'.(박세회, '[허핑턴 인터뷰] 소설가 김중혁은 우리의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

 

'보트가 가는 곳'은 오래 전에 보았던 영화 '우주전쟁'을 생각나게 했다. 극한의 상황에서 만난 두 남녀에게 살 수 있는 버팀목이 되는 건 결국 사랑이라는 얘기. 이들은 같은 상황에 처했기 때문에 공감할 수 있었고, 그래서 진짜 팔로 포옹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지만 마지막을 통해 작가가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인가 고민해보면 의문이 남는다.

 

'힘과 가속도의 법칙'은 이별 후의 분노와 증오에 관한 이야기로 읽었는데, 딱히 할 말은 없다. 별로 좋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아서인지...

 

'요요'는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단편이어서 그런지 꼼꼼히 읽었다. 어쩌면 이 단편에 작가가 생각하는 관계에 대한 모든 것이 담겨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과 함께. 짧은 시간에 이루어지는 장면을 포착하는 일반적인 단편과 달리 꽤 긴 시간을 다루고 있다는 점도 흥미로웠던 이유 중 하나였다. 말로 설명하긴 어렵지만, 관계라는 건 시계의 시침과 분침 같은 것, 또는 요요와 같은 것이라는 작가의 인생관, 혹은 예술관인지도 모르겠다. "전시장의 동선 중에서 용철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되돌아가고 싶은가'였다."('종이 위의 욕조')라는 문장처럼.

 

여전히 그의 문장은 담백하고, 빠르고, 유머러스하다. 하지만 전체적인 평을 말하자면 글쎄... 의문점이 많이 남는 소설이었다. 단편들 안에서도 분명하지 않은 것들이 많이 있었을 뿐더러, 제목을 왜 이렇게 지었을까하는 의문을 갖게 한 것도 꽤 여러 편 있었으므로... 하지만 이렇게 쉽게 책장이 넘어가게 문장을 구사하는 것도 쉽게 얻을 수 없는 재주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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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 표절 권력'이 이번 문학동네 가을호 특집의 제목이자 주제였다. 특집에 실린 글들을 쭉 읽으면서, 창비와는 다르게 반성의 모습을 어느정도 보이고 다양한 필자들의 글을 실으며 쇄신을 시도한 것에는 박수를 보내지만(물론 이것이 반성하고 있다는 하나의 쇼로 끝난다면 또다른 기만이 될 것이다), 글의 논의에 있어서는 아쉬운 점도 꽤 있었다. 흥미로운 글들이 많긴 했지만.

 

가을호를 시작하는 머리글에 실린 권희철 문학평론가의 '눈동자 속의 불안'의 논의를 정리하자면 이런 것 같다. 신경숙의 '전설'은 '우국'의 명백한 표절이다. 하지만 그것이 이루고 있는 문학적 성취와 지향점은 분명히 다르다. 그리고 문학권력을 말하는 논의에는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는데, 이는 '문학권력이 상업성을 추구해왔다'는 주장과 '문학권력이 자기들끼리만 통하는 문학적인 것을 고집해왔다'는 주장이 양립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전설'과 관련된 언급에서는 두 작품이 문학적으로 성취한 바가 다르지만 결국 표절이라는 식으로 못박고 있으므로, 개별 작품에 대한 비평적 논의는 옳다 그르다를 구분하기 어렵지만, 개인적으로는 '비평'에 실린 최원식 문학평론가의 논지에 조금 더 공감하는 바다. 그는 '전설'과 '우국'이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표절관계가 아닌 영향관계에 있지만(이 부분은 동의할 수 없다), '전설'은 작위적인 구성과 신파조로 중세적 열(烈)의 찬미가로 낙후했다고 썼다. 개인적으로 신경숙 소설이 인내하는 수동적 여성상을 꾸준히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리 있는 주장이라고 생각한다.

 

'눈동자 속의 불안'의 문학권력을 부정하는 근거를 보면서, 참 순진한 근거다...라는 생각을 했다. 권희철 평론가는 비평의 원론적 정의와 역할을 근거로 상찬식의 주례사 비평은 독자와의 대화가 아닌 독백으로 전락한다는 말을 했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게 원론적인 정의 실현대로 흘러간다면 이런 사태는 오지 않았을 것이다. 평론가들이 원치 않았다고 해도, 출판 시장의 구조가 결국 비평의 기능을 격하시키고 문학권력이라 부를 만한 구조를 불러온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을 한다. 물론 문화연대가 주최한 토론회의 한 장면을 보았을 때는, 대안을 제시한다는 비평세력 역시 지나치게 과열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작가회의와 문화연대가 공동주최한 토론회(<최근의 표절 사태와 한국 문학권력의 현재>, 6월 23일)에 참석했을 때 나는 다음의 풍경을 목격하며 조금 놀라고 말았다.

 

토론자(심보선) (전략) 신경숙은 우리의 에이스가 아니었습니다. 앞으로 다른 에이스 혹은 다수의 에이스들을 발굴하고 육성합시다.

(관객들의 환호와 박수갈채)

(후략)

사회자(이동연) (토론자의 발표가 끝난 뒤) "신경숙은 우리의 에이스가 아니었다"는 말이 인상적이네요.

 

- 권희철, '눈동자 속의 불안 - 2015년 가을호를 펴내며'

 

'비평'에는 김병익, 도정일, 최원식 문학평론가의 글이 실렸다. 김병익 문학평론가의 '작품의 내면을 이해하고 그 가능성을 발견하며 그 미덕을 평가하여 우리의 문학적 소산으로 격려하는 것'이 비평의 역할이라는 주장은, 주례사 비평을 옹호할 여지를 남긴다는 점에서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 글에서는 비평이 맡아야 할 역할에 대한 필자의 고뇌가 잘 나타난다) 도정일 문학평론가의 글은 비평이란 무엇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접근에서 시작해 대학의 문학교육의 문제점과 이로 인한 한국 비평의 전반적인 문제점을 짚고, 비평이 '개인적 실천임과 동시에 사회적 공적 실천'이라는 논지를 펼치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세 글 중 도정일 문학평론가의 글이 비평이 나아갈 길을 (정말 원론적인 접근이지만)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표절'에는 장은수 문학평론가의 글이 실렸는데, 개인적으로 이번 특집에서 두 번째로 흥미로운 글이었다. 그의 '무엇을 표절이라고 할 것인가'는 이번 사태를 통해 등장했던 논의들을 모아 정리하고, 이에 대한 평가와 동시에 표절에 대한 기준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겠다. 물론 그가 주장하는 '표현의 유사성'이라는 기준에 대한 논의는 좀더 진행될 필요가 있겠지만... 내용을 엄격하게 적용했을 때 표절 아닌 것이 없게 된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하는 바다. 글이라는 것이 더이상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시대가 아니게 된 만큼, 텍스트는 이전까지 존재했던 텍스트들의 변용일 수밖에 없으므로... 하지만 그렇다고 내용을 완전히 배제하자니 그것 역시 문제가 된다는 것, 그것이 문학이라는 언어 텍스트가 가진 딜레마인 것 같다.

 

'권력'에는 작가들의 좌담이 실렸다. 신형철 문학평론가의 사회 아래 김도언, 손아람, 이기호, 장강명 작가의 좌담이 실렸는데, 개인적으로 이 글을 읽으면서 두근두근하는 마음이 있었다. 내용 자체가 좋았다기보다는, 글에서도 느껴지는 치열한 대립의 열기 때문이었는데, 굳이 비유를 하자면 손아람 작가와 이기호 작가가 양 쪽 대척점에 서 있고, 신형철 문학평론가 역시 이기호 작가 쪽에 서서 문학동네에 속한 평론가이자 편집위원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었으며, 김도언 작가는 중간 지점에 있고, 장강명 작가는 자신만의 작가의식의 영역에서 서로 의견을 나누며 다양한 논의를 창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인상적이었다. 손아람 작가는 때때로 지나친 비판의 입장을 견지해 비약이 있는 경우가 있었지만 비주류 작가로서의 입장과 문학계의 문제점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어서 눈길이 갔고, 이기호 작가는 자신도 인정했듯 어느 정도 혜택을 받았던 사람의 입장에서 현재의 시스템이 갖고 있는 순기능을 피력했다. 장강명 작가는 다양한 문학의 활성화를 위해 필요한 것들, 주로 권력의 분산의 측면에서 자신의 주장을 전개했는데, 북토크 때도 느꼈듯 독자 중심적인 주장이 주된 흐름을 차지하고 있었다. 네 작가의 주장 모두 일리가 있는 지점이 있다고 느껴져서,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문단이 취해야 할 자세는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만 깊어가는 밤이다.

 

개인적으로, 출판사가 유통과 문예지를 모두 독점하고 있는 현재의 상황에서는 어떤 대안도 대안이 될 수 없다는 생각이다. 이 부분에 있어선 <악스트>에 실린 박민규 작가의 '파이' 얘기에 동감하는 바다. 안 그래도 작은 경제적 파이를 대형 출판사들이 쥐고 있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그 안에 있는 작가나 평론가들이 작가의식을 지키려 해도 문학권력 논란은 끊이지 않을 것이고, 현재와 같은 기형적인 구조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선택과 배제가 공정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인데, 이를 위해서는 창비나 문지, 문학동네가 내려놓아야 할 것들이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번 특집에 실린 글들을 찬찬히 보았을 때, 문학동네가 표절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이를 간과한 것에 대한 반성을 하고 있으면서도, 자신을 둘러싼 문학권력에 대한 논란은 부정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점이 분명하게 느껴졌다. 그러므로 이런 논의의 장이 마련된 것은 좋은 일이지만, 신형철 평론가의 바람처럼 문학동네가 개혁의 시작으로 나설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손에 쥐고 있는 것을 내려놓는 것은, 없는 자가 기회를 잡는 것보다 어려우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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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5-09-09 0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우선..작가 독점선점돌려가며 쓰는것.. 요! (아...미미월드!..에도시대..흐헉~^^)

아무 2015-09-09 00:51   좋아요 1 | URL
돌려가는 것도 문제가 많죠.. 문학상 같은 경우도..ㅠㅠ 김도언 작가는 요즘 작가들이 창비나 문동 같은 곳에 글 싣지 못하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구는 작가의식도 문제라며 비판했지만, 경제적인 조건을 무시할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드네요 요즘 들어 문학상도 진짜 돌려가며 주는 모양새가 보이는게..ㅠㅠ

ㅐㅐ 2015-09-09 17: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표절 문제로 한창 시끄러웠을 때 출판사카페는 이상하리만치 이 건에 대해 조용했고 작가이자 직원인 분들 트위터를 좀 돌아보니 역시나 표절은 언급조차 하지 않는 가운데 신작가 옹호하는 글만 리트윗하는 모습이 꽤 보이더군요. 그러다 이번 문학동네 가을호에서 표절 인정 쪽으로 가닥을 잡으니 6월부터 이 문제에 대해 전혀 언급도 안 하던 모 시인은 창비가 반성해야 한다고 꾸짖기 시작. 이들의 경제적 파이를 쥔 쪽이 어디인지 알겠고 어느 정도 이해는 하지만 현대문학 거부한다고 외칠 때와 너무 다른 모습들이라 그저 쓴웃음만 나오네요.

아무 2015-09-09 21:07   좋아요 0 | URL
결국 출판사에 기댈 수밖에 없는 현재의 모습을 반영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요. 이 구조에서 벗어나면 바깥으로 밀려나게 될 거라는 암묵적 공포가 작용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어찌됐든 경제라는 것이 우리의 행동과 생각에 작용하는 바가 크니까요...

없없없음 2015-10-21 23: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론 출판사-문예지로 결합되어 있다는 점이 문제가 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네요..

아무 2015-10-21 23:51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개인적으로 출판사-문예지의 결합은, 현대사의 배경이 크게 작용했다는 생각도 드네요. 문학 외적인 배경으로 한국문학의 존립이 위태로웠던 때의 궁여지책이 아니었을까 하고.. 그것이 고착화되어 신경숙 사태로 폭발한 것이 아닐까 합니다. 저 역시 문학동네 가을호 리뷰 잘 읽었습니다. 예리해서 제 글이 부끄러워지네요..^^;;

eunkimwell 2015-10-23 0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학동네 말고 악스트!!!

아무 2015-10-23 16:01   좋아요 0 | URL
악스트에도 계속 관심을 주는 중입니다^^ 벌써 다음 호 나올 때가 오고 있네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