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다른 아버지
이주란 지음 / 민음사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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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수상작 넌 쉽게 말했지만으로 촉발된 이주란 다시 읽기. 지난 Axt에 수록된 한 사람을 위한 마음에서 감탄의 최고조를 찍고 얼른 소설집으로 넘어갔다. 그렇게 읽은 모두 다른 아버지2017년에 나온 이주란의 첫 소설집이다. 대중적으로 큰 조명은 받지 못했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는 잠재적 대작가의 첫 소설집, 이라고나 할까. 참고로 넌 쉽게 말했지만2019 현대문학상 우수작에도 선정되었다. 그러니까, 이제라도 이주란을 읽자는 말이다.


이주란 소설의 특징은 묘사와 장면의 무한한 연속이다. 좀처럼 진술로 눙쳐버리지 않고 끊임없이 묘사를, 장면을 제시한다. 그러니 읽기에 따라선 별다른 이야기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럼에도 어떤 테마를 느끼게 될 것은 분명하다. 그것은, ‘가족이다. 이주란의 소설 속 가족들은 풍진 세상을 견디는 원동력이 아닌 곤궁의 공동체이다. 꼬질꼬질하고 구질구질한 삶을 공유하는 사람들은 가족보단 동거인이란 말이 보다 어울릴 듯하다. 그리고 그 정점엔 언제나 아버지가 위치한다. 어쩌면 이주란 소설의 가족은 오직 형제로 대변되는 수평적인 위치에서만 기능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표제작에선 한 아버지가 꾸린 세 가정의 네 이복남매가 아버지의 입원을 계기로 모여 술을 마신다. 본 적도 없던 형제들과 술을 마시며 아버지를 기억하는데, 누군가는 아버지를 추억하고 누군가는 아버지를 경멸한다. 그들의 기억 속의 아버지는 모두 다른 사람이다. 화자에게 아버지는 가족이라 부르기조차 민망한 악인이고, 외려 가족처럼 느껴지는 것은 반쪽짜리 혈연을 공유하는 그들(자식들)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이상적인 가족, 하다못해 정상가족으로 느껴지는 것도 아니지만.


이주란의 인물들은 살아가는 것이 아닌 견딤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누나에 따르면의 배경인 포격 전후의 연평도처럼, 인물들은 저마다의 디스토피아에서 살아가고 있다. 절대적 절망보다 절망적인 것은 낙관의 부재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절로 들 만큼, 그들의 세계는 인물의 온몸에 들러붙어 가능성의 시야를 차단한다. 가령 윤희의 휴일의 주인공 윤희는 추어탕에서 일해 받는 돈으로 전남편의 빚과 딸의 양육을 모두 책임져야 한다. 딸은 하루가 다르게 자라나고, 집주인 노인네는 하루가 멀다 하고 윤희에게 치근대며, 전남편의 빚은 줄어들 기미가 없다. 윤희의 삶은 가족으로 인해 진창으로 빨려 들어가는 중인 것이다. 그리고 그 원인엔 역시 아버지들(윤희의 남편, 집주인)이 있다.


절망적이라 하기엔 너무 좋은, 마냥 좋다고 하기엔 너무나 절망적인 소설들. 어쩌면 열광이란 단어는 이주란의 소설에 어울리지 않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내가 할 일은, 얌전한 영업과 꾸준한 독서인가. 그러기엔 더 많은 사람들이 그녀의 소설을 읽었으면 좋겠는데, 아아,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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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19-08-21 16: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주란 정말 좋아요. 올해 작가상 수상소감 영상도 왠지 슬프고 좋았어요.
 
1984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77
조지 오웰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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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는 이미 오래 전에 지났지만 1984는 아직도 널리 읽히고 있다. 어딘가에서 이 소설은 현재진행일 수도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즉 어느 곳에서,

 

전쟁은 평화

자유는 예속

무지는 힘

 

의 시대는 아직 유효하다. 어쩌면 2019 대한민국에도 일부 잔존해 있을지도.


1984의 세계는 전 지구가 오세아니아, 유라시아, 동아시아로 3분할되어 대립중이다. 화자 윈스턴 스미스는 오세아니아의 영사(영국 사회주의)’ 당원이다. 오세아니아는 미국의 영 연방 점령으로 탄생한, ‘빅 브라더라는 초월적 존재가 통치하는 일당독재국가이며, ‘신어(新語)’를 통해 언어를 극도로 통제한다. ‘사상범죄라는 명목으로 온갖 빌미를 잡아 당원을 속박하기도 한다. 스미스는 당에 반감을 느끼고, 자신의 행동을 구체화해나간다. 그 뒤는 말 안 해도 알겠지?


텔레스크린이란 장치로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받는 사회, 시시각각으로 온갖 정보를 통제하며 의도한 것이 곧 사실이 되는 사회, 까지 죄악시되는 사회. 극도로 제한된 언어 사용으로 문학하저 사멸하고 마는 사회는 모두 오세아니아의 단면들이며 극단화된 전체주의의 패악이다. 당원이 아닌 노동자(프롤레타리아)는 감시망의 바깥에 위치하지만, 우민화정책으로 그들은 동물과 동일시된다. 자유롭지만 존엄하지 못한 존재들이다. 문학이 허용되는 것도 그들뿐이다. 그러니까 문학은 저급한 유희에 지나지 않게 된 것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신어 부분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고, 조금 암담했다. 부록으로 실린 신어 사전에서 신어의 조어 원리를 읽으면서는 더욱 그랬다. 소설을 쓰겠다는 입장에서 언어의 제한은 극약일 터(비단 소설만의 문제는 아니겠지만), 저 세계에서 나는 뭘로 밥을 벌어먹고 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이 끊이지 않았다. 소설 밖의 이 세계에서 문학은 체제의 현실을 밝히는 등불의 역할을 해 왔지 않았나, 그곳의 사람들은 무엇으로 현실을 감각해야 하나, 하는 생각도. 이곳에서의 문학은 점점 무용해지지만 그곳에서의 문학은 애당초 발생할 가능성부터 차단되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안도해야 하는가, 하는 생각도.


전체주의, 1당 독재, 감시사회는 아직도 우리의 지척에서 빈번히 목격할 수 있는 현실이다. 오늘도 나는 처참히 망가져버린 윌북 이후 백석의 시를 읽으며 안도해야 하는지, 참담해해야 하는지 헷갈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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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유행열반인 2019-08-13 17: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십 대에 읽었는데 이 소설을 애정물로 읽어버려서 그런가 아직도 이 표현만 생각나요. 허리 아래의 반역자.

그레고르옥자 2019-08-13 22:55   좋아요 1 | URL
ㅎㅎㅎㅎㅎ그 반역은 결국 여러모로 실패로 돌아갔네요...
 
악스트 Axt 2019.5.6 - no.024 악스트 Axt
악스트 편집부 지음 / 은행나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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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지금 내가 적고 있는 독후감들은 모두 밀린 것들이다. 순서대로 하나씩 열심히 처리하고 있다(이젠 별로 놀랍지도 않겠지). 아무튼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은, Axt의 독후감이 쓰고 싶어서 밀린 것들을 후딱후딱 해결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서이다. 그리고 Axt의 독후감이 왜 그리 쓰고 싶었냐면, 이주란의 소설이 너무 좋았기 때문이다.


좀 더 얘기를 해보자면,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이란 제목의 소설이고, 엄마, , 조카의 여성 3대의 이야기를 장면만으로 끌고 나간다. 굵직한 서사 없이 지극히 일상적인 장면만 연속적으로 나오는데 그게 너무 좋다. 툭툭 치는 대화는 계속해보겠습니다무렵의 황정은을 생각나게 할 정도로 매력적이었다. 후반부의 조촐한 생일파티 장면은 넌 쉽게 말했지만의 냉이 뜯는 장면만큼이나 좋았다. 이 소설이 갖느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읽는 내내 했다. 장면 그 자체의 힘인지, 아니면 장면을 이루는 문장의 힘인지, 극단문의 대화의 힘인지, 그 모두인지, 아리송하다. 두 번째 소설집이 언제 나오려나. 첫 소설집이 2017년에 나왔으니 좀 더 기다려야 하려나. 기다리다 목 빠지겠네.


표지모델은 김금희. 작년 한 해 동안 장편소설 경애의 마음과 엽편소설집 나는 그것에 대해 아주 오랫동안 생각해와 경장편 나의 사랑, 매기를 잇달아 출간하고 잠시 숨을 고르는 것 같았는데 인터뷰로 복귀의 신호탄을 쏘았다.


‘3 colors’가 그냥 ‘colors'가 되었다. 한 작가에 대한 세 서평이 두 개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트루먼 커포티의 인 콜드 블러드서평을 소설가 김종옥과 임현이 각각 썼는데, 김종옥의 서평은 어딘가 상당히 무성의한 느낌이다. 책을 안 읽고 책 이야기를 하는 것 같은데 안 읽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는 그런 느낌이랄까. 무튼 커포티의 소설(같은 르포 같은 소설 같은 르포)이 읽고 싶어지는 순간이었다.


강화길의 장편 연재 치유의 빛4회를 맞이한 지금부터 본격적으로 재밌어진다. 바로 지금이야! 그리고 이승우의 장편 연재가 끝났다는 아쉬운 소식도 있다. 아웃트로를 새로 합류한 필진인 손보미가 썼는데, 그 역시 눈여겨 읽었다. 어떤 변화가 있을지, 이미 나와 있는 다음 호로 확인해야겠다. 다음 호는 이례적으로 특집이다. 지난 6, 시집 죽음의 자서전으로 캐나다의 그리핀 시문학상을 수상한 김혜순 시인이 표지를 장식했다.


얼른 읽기 위해 밀린 것들을 열심히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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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5 (완전판) -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5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 / 황금가지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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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소설을 읽기 전에 작가의 말을 먼저 읽는 편이다.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글을 썼는지 조금이라도 먼저 알고 싶어서(사실 그런 건 본문에 다 나오기 마련이지만). 하지만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을 읽을 땐 그러지 말았어야 했다. 범인을 알려주는 건 아니지만, 서문을 읽으면 범인이 누구일지 충분히 유추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느낌적인 느낌으로 스포일러를 당했다고나 할까.


작가가 선정한 자신의 10대 작품 중 하나인 이 소설은 범인이 있는데요, 없습니다스타일의 바이블이라 할 수 있겠다. 발표 당시부터 그 형식으로 많은 논쟁을 불러일으켰고, 지금도 이따금씩 한 사례로 언급되고 있는 만큼 여기저기서 스포일러를 당할 가능성이 농후하니 시간 날 때 미리미리 읽도록 하자.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같은 것도 미리미리 읽어두자. 스포일러라고 말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오래 된 작품들이니깐 말이다. 물론 당신이 처절한 기억력의 소유자라면 별 걱정 안 해도 될 듯하다. 나도 언젠가 미스테리아에서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관련 글을 본 것 같긴 했는데 읽는 동안 전혀 생각나지가 않았다. 그거 알아? 브루스 윌리스가 귀신이래.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의 얼개는 다음과 같다. 영국의 어느 마을에서 패러스 부인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녀의 약혼자인 로저 애크로이드는 그녀의 유서 비슷한 편지를 한 통 받게 되고, 그는 친구이자 이 소설의 1인칭 화자인 의사 제임스 셰퍼드에게 이 사실을 알린다. 그리고 그 다음날 애크로이드는 주검으로 발견된다(제목이 제목이니만큼 이 정도 정보는 알려줘도 상관 없겠지?). ‘는 사건의 진상을 알기 위해 얼마 전 이 마을로 이사를 온 우리의 명탐정 에르퀼 푸아로를 찾아가 그의 임시 조수가 된다.


푸아로는 은퇴를 해 조용한 동네에서 호박이나 키우며 여생을 보내려 했건만, 그의 곁에서 사건이 발생하는 것인지 사건의 곁을 그가 지나가는 것인지, 그는 이번에도 사건에 휘말리고 그것을 멋지게 해결해낸다. ‘작은 회색 세포운운하는 것은 여전히 조금 재수가 없지만 그것은 철철 넘쳐흐르는 지성미에 멀리멀리 떠내려가기에 별 문제가 없다. 모두가 안갯속을 헤맬 때 혼자서 짤막한 불어를 중얼대며 유유히 진실의 한가운데로 가는 모습은 더없이 듬직하기만 하다.


자고로 여름은 미스터리의 계절. 독서의 꽃은 고전. 선풍기 틀어놓고 시원한 아이스커피 한 잔 하면서 미스터리의 고전을 읽어보는 것도 좋겠지?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서문은 읽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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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사회 126호 - 2019.여름 (본책 + 하이픈)
문학과사회 편집동인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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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지를 꼬박꼬박 읽는 편은 아니다. 두께가 얇은 격월간지 정도야 챙겨 읽지만(요즘 들어 번번이 밀려 읽긴 하지만), 계간지는 좋은 단편이 실렸다는 얘길 듣거나, 내가 응모한 신인상의 (내가 아닌)당선작을 확인할 때가 아니면 잘 사 읽지 않는다(하지만 신인상은 매년 한 번씩 하기 때문에 1/4은 읽는 셈이다). 두꺼워서 그런가.


문학과사회여름호를 산 것은 신인상 수상작인 이원석의 없는 사람을 읽기 위함이었으나, 산 김에 나머지 것들도 천천히 읽어봐야겠단 생각을 했고, 그래서 문학과사회 하이픈(이하 하이픈)을 먼저 읽었다(없는 사람을 비롯한 본책에 관한 독후감은 차차 할 예정).


오랜만에 읽는 하이픈은 참 재미났다. 주제는 문학-연결이었는데, 사실상 문학-교육으로 봐도 무방할 듯하다. 독자와 작가를 연결하는 문학 교육에 대한 열 편의 글이 수록되었다. 앞의 세 편은 평론가들(김미정, 손정수, 김신식), 뒤의 일곱 편은 작가들(강성은, 강영숙, 금정연, 백은선, 오은, 임승유, 정용준)의 글이었는데 모두 직간접적으로 문학 교육과 연을 맺고 있는 사람이다. 고등학교에서, 사설강좌에서, 대학에서 독자인 동시에 잠재적 작가군을 마주하는 일의 면면에 대해 적었다.


가장 눈길을 끌었던 것은 강성은의 백일장에 가기 위해 시를 쓰나요, 시를 쓰기 위해 백일장에 가나요?였다. 문학 비전공자인 나로서는 겪어보지 못했던 일들이라 대부분의 지망생들이 10대 시절부터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풍문으로만 들었는데, 조금이나마 엿본 기분이다. 소설가가, 시인이 되지 못하면 결국 도태될 뿐인 지금의 문학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어렴풋하게 생각해보기도 한다. 가르치고 배우고 그저 읽을 뿐인 모든 사람들이 문학이라는 장 안에서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각종 소설 창작 강좌를 기웃거리고 있는 나 역시 등단을 못하면 그 모든 것을 무용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손정수의 교실에서 소설에 대해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작자가 실제 대학에서 진행한 현대소설 강좌를 통해 학생들의 독해양상이 어떻게 달라지는지에 대해 밝히는 글이다. 학생들이 제출한 감상평을 실증적 증거로 삼아 심미적 계기(문장 등)와 비심미적 계기(사회와 결부)를 활용하는 양상이 학년(일종의 문학 숙련도의 척도로 활용)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알아본다. 대체로 학년이 높을수록 두 양상을 적절히 활용하게 된다는 점(이른바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에서, 여성서사를 접할 때 비심미적 계기가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된다는 점에서 문학과 현실의 불가분성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어쩌면 지금의 내 위치야말로 작가와 독자의 연결그 자체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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