릿터 Littor 2020.2.3 - 22호 릿터 Littor
릿터 편집부 지음 / 민음사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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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ttor22호가 나온 지도 6개월이 지났다(읽은 지는 두세 달은 됐고). 그동안 무슨 일들이 있었나. 전염병은 여전히 지구를 위협하고 있고,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어마어마한 양의 비가 쏟아졌고, 매해 8월에 마감하던 중앙신인문학상이 폐지되었다.


김봉곤 사태에서 촉발된 문단 내 불공정 관행과 각종 성폭력에 대한 논의는 언제나처럼 등단제의 존립에 대한 토론으로 이어졌다. 그런 와중에 중앙신인문학상이 재정난을 이유로 폐지된 것이다. 트위터를 중심으로 펼쳐진 일련의 플로우를 쭉 훑으며 여러 생각이 들었다. 등단제 폐지론자는 등단을 매개로 형성된 위계의 해악을 주 논지로 삼고, 이에 찬성론자는 등단제를 대체할 그 무언가조차도 결국은 위계를 낳을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방어한다. 애당초 구매자가 곧 잠재적 생산자인 이 한줌뿐인 시장에서 위계란 필연적인 건가 싶어 허탈해지면서도 인정욕구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더럽게 공정하고 더럽게 좁은 구멍을 나는 언제까지 바라만 봐야 하는 것인지. 그런 생각들을 하며 오래 묵은 독후감을 해결한다.


22호의 주제는 대학유감’. 대학을 떠난 지도 두 해가 되었기에 다시금 그때를 생각하며 글을 읽었다. ‘대학=엘리트였던 산업화 시기부터 내가 입학할 무렵 정점을 찍은 대학 브랜딩, ‘노동자로서의 강사를 위시한 대학의 이면, 그리고 대학의 대안까지. 지면이 한정되어 읽다 만 듯한 느낌이 든 것은 아쉽지만 나의 대학생활을 돌이키기엔 충분했다. 2010,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느낀 것은 논스톱은 없다였다(잔디밭 짜장면으로 대표되는 캠퍼스의 낭만에 도취된 것도 사실이지만). 뭣도 모르는 채 교권운동에 동원되었던 경험,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참여했던 반값등록금 시위, 광장에 텐트를 친 채 무기한 농성에 들어간 시간강사와 청소노동자들의 파업, 그리고 불현듯 시작한 문학. 지긋지긋하지만 언제나 돌아가고픈 그곳(수능을 다시 볼 자신은 없다, 나는 수시니까 키킥). 하여튼 유감이다.


김혼비, 박태하의 전국 축제 자랑은 진짜 너무너무너무 재밌다. 얼른 단행본으로 묶였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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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상 소설
양선형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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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선형의 첫 소설집 감상 소설을 읽었다. 2년 전의 언젠가 그의 첫 소설집이 나왔다는 기사를 읽으며, 꽤 주목을 받으며 활동해온 것 같았는데 왜 이제 책이 나왔나 하는 의문(양선형은 2014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을 가진 적이 있었다. 4년간의 활동이 망라되어 있어서인가 꽤나 두툼하다. 요즘 들어 첫 소설집을 묶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추세인 듯하다. 물론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은 아니고 소수의 선택받은 작가들의 경우를 말하는 것이지만, 아무튼 첫 소설집이 점점 얇아지는 경향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는데, 양선형의 소설집을 읽으면서는 공이 많이 들어간 느낌을 괜히 받았다. , 양선형이 내 예상과 달리 과작寡作하는 작가인지도 모르겠지만.


그간 양선형의 소설을 즐기며 읽지는 못했었다. 그의 소설이 다소 불가해한 편이기에 그랬을 것이다. 자세히 말하자면 독자에게 해석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고 작품 스스로가 맹목적으로 질주하는 느낌이었달까. 여타 소설을 읽을 때처럼 인물, 사건, 배경으로 쉽사리 특정할 수 없는, 자연히 독자로서는 무작정 읽어 넘길뿐인 소설을 나는 그리 달가워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양선형의 소설은 나로서는 꽤 높은 확률로 기피하게 되는 부류였고, 마침내 소설집을 읽기로 결심하기까지도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막상 작품을 쌓아 놓고 읽다보니 의외로 나쁘지 않았다. 그의 어느 소설에서든 일단 공간적 배경이 인지되었을 때, 불가해의 와중에서 어떤 즐거움(지적 유희라고 하면 내가 너무 잘난척 하는 것 같으니까)을 느꼈진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스나크 사냥시설처럼, 일단 그런 곳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짐작하고 나니 스나크(그곳에 존재하는 날짐승, 길짐승의 총칭)’를 잡는다는 행위가 어떤 의미를 갖든 간에 일단 읽혔다는 것이며, 뭔가를 알 것도 같았다는 것이다. 양선형의 소설이 기존의 서사전략을 회피기동하며 독자에겐 파편적인 이미지만을 제공한다는 전체적인 인상은 변함이 없지만, 적어도 그게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지 어렴풋이 짐작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고무적이었다.


존재하지만 온도가 느껴지지 않고, 불능에 가깝게 행동하며 소설을 위해 복무할 뿐인, 일종의 마리오네뜨 같은 인물들은 양선형의 조종에 의해 더욱 많은 이미지와 이야기를 만들어낼 것이고, 그 대부분은 독자에게 전달되지 않을 것이다. 읽음으로써 읽히지 않는 것을 말하는 소설. 양선형은 앞으로 어떤 소설을 계속 쓰게 될까. 우선은 작년에 문예지를 통해 발표했던 가면의 공방을 다시 한 번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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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강화길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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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11회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이하 젊은작가상)의 독후감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는데, 관련 이슈가 생겨버렸다. 그 얘기를 하기 전에 우선 책을 읽었을 당시의 소감을 간략히 정리해봐야겠다. 강화길을 비롯해 최은영, 김봉곤, 이현석, 김초엽, 장류진, 장희원이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특히 이현석, 김초엽, 장류진, 장희원은 처음으로 젊은작가상을 수상하면서 새로이 이름을 알렸다. , 이미 알 사람은 다 알 만한 이름들이지만.


대상 수상작인 강화길의 음복(飮福)이야 문예지에서 읽었을 때부터 강력하다는 감상을 받았기 때문에 이견의 여지가 조금도 없었다. 분명 젊은작가상을 받을 거라 생각했고, 당연히 받았다. 그러나 다른 소설들은 글쎄, 조금 아쉬웠다. 이는 내가 응원해오던 다른 소설들(예컨대 이주란의 한 사람을 위한 마음이라든가 김지연의 우리가 해변에서 주운 쓸모없는 것들등등)이 선정되지 않았다는 아쉬움에서 비롯된 감정일 수도 있다. 많은 오디션 프로가 그렇듯 모든 경합을 마쳐 최종적으로 선발된 엔트리에 누구나 어느 정도의 아쉬움을 느끼기 마련이니까. 나의 이 절대적인 심미안을 가진 것은 결코 아니기에 심사위원의 판단을 전적으로 존중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지만, 그래도 다소 아쉽긴 했다. 가장 뛰어난 작품들을 선정했다기보단, 어느 정도 인지도가 반영된, 그러니까 너무 안전한선택을 했다는 느낌을 지우기가 어려웠다. 그럼에도 음복(飮福)은 압도적인 소설이었다. 강화길은 이렇게 우리 세대의 박완서가 되어가고 있다.


그리고 수상작 중 하나인 김봉곤의 그런 생활과 관련된 이야기. 이상문학상 사태에 이어 시사프로에서 또다시 한국문학을 다루게 되었다. 사건의 발단은 다음과 같다. 트위터를 통해 자신을 소설에 등장하는 ‘C 누나로 소개한 누군가가 김봉곤이 자신과의 카톡 대화를 사전 동의 없이 무단으로 전재했고, 자신이 특정될 수 있는 내용이 발표됨으로 인해 모멸감과 성적수치심을 느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김봉곤은 해당 논란은 미스커뮤니케이션의 결과이며 수상작품집과 소설집 시절과 기분엔 대화 내용이 수정된 버전의 소설이 수록되었다고 해명했는데, 3자가 읽기에도 석연찮은 부분이 많았다. 단행본 출간 이후에 해당 내용이 수정되었으나 출판사에서 이를 고지하지 않은 점, 미스커뮤니케이션으로 간주한다 해도 타인과의 민감한 이야기를 소설에 전재할 수 있냐는 점이 그것이었다. 여기에 출판사 문학동네와 창비의 미온적이고 느지막한 해명이 더해지며 논란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전 소설집 여름, 스피드의 표제작 속 영우로 추정되는 인물 역시 김봉곤에 의해 자신의 이야기가 무단으로 쓰였고, 이로 인한 아웃팅 피해가 있었다는 내용을 공론화함으로써 창작윤리 문제가 재점화되었다. 이에 양 출판사에선 사과와 함께 젊은작가상여름, 스피드, 시절과 기분단행본의 판매를 중지했고, 김봉곤은 사과와 함께 젊은작가상을 반납하며 사태가 일단락되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트위터를 비롯한 온라인에서는 타인의 삶을 어디까지 소설의 질료로 삼아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이른바 창작윤리’)와 더불어 작가들이 체험한 출판 권력의 불공정 관행, #문단__성폭력 등의 의제가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고 있다. 내내 수동적이기만 했던 작가와 두 거대 출판사의 태도는 한국문학의 저변이 권위와 권력이었음을 만천하에 드러낸 꼴이 되었다. 권위는 높고 권력은 무겁다. 높은 곳에서 무겁게 내리누르는 힘을 한낱 개인은 당해낼 도리가 없다. 심지어 그런 와중에도 나는 신인상 결과를 기다리며 그곳을 동경하고 있으니, 기가 찰 노릇이다. 과연 한국문학은 소생할 수 있을지. 한 줌 뿐인 독자를 놓치지 않을 수 있을지.


소설을 쓸 때마다 두 명제의 충돌을 겪는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창작이라는 이유로 타인의 삶을 이용해선 안 된다’. 지금까지는 전자에 입각해 소설을 써 온 듯하다. ‘모방은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도 있으니까. 모든 창작은 당연히 경험에서 비롯한다고 생각해온 것이다. 어떤 경험을 하며, 누군가로부터 어떤 이야기를 들으며 이건 완전 소설인데?’란 생각을 한 적이 더러 있었고, 실제로 소설의 실마리를 얻은 경험도 많다. 그러나 일련의 사태를 겪으며 창작이란 것을 근본적으로 점검할 필요를 느꼈다. 어떤 창작도 실제 인간의 삶에 우선할 수 없다고, ‘소설적인 삶이란 환상에서 벗어나자고 말이다. 그래야만 누구도 상처 받지 않는 문학은 가능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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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스트 Axt 2020.1.2 - no.028 악스트 Axt
악스트 편집부 지음 / 은행나무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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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또 금방 독후감이 쌓이다니, 부지런히 써야겠다. 나는 독후감을 쓰면 페이스북 페이지와 알라딘 서재에 올리는데, 페이스북이 점점 더 열심히 망해가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페이스북에 먼저 올리게 된다. 인스타그램으로 넘어가야하나 생각해본 적도 있었지만 글 올리기에 적합한 공간은 아니다보니 망설여진다. 다른 플랫폼을 파는 것도 귀찮고. 딱히 많이 읽히길 원하는 것도 아니다. 책을 읽고 나서 잊히는 게 싫어 기록해두려는 의미가 더욱 크다보니 플랫폼에 크게 구애받는 편도 아니다. 좀 더 본격적으로 소설을 써보자고 마음먹게 되면서 쪽단편보다는 완성된 80매의 단편소설이 훨씬 중요해졌다. 이 페이지의 존재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그런 고민을 진중하게 하는 편은 아니다. 분량 채우기용 글이었다.


Axt28호의 인터뷰이는 최진영. 나는 전업작가의 인터뷰 읽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그들이 어떤 식으로 하루를 채우는지에 대해, 어떤 생각으로 오직 글뿐인 삶을 살아가는지에 대해 읽다보면 설렘 같은 조바심이 느껴지곤 한다. 저토록 고독하고 때로는 고통스러운 작업을 나는 왜 선망하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 알 수 없는 추동이 나로 하여금 글을 쓰게 하고 Axt같은 잡지를 읽게 만들겠지만.

 

[(정용준): 그러고 보니 몇 년 동안 넌 쉼 없이 글을 썼구나.

 

(최진영): 써야 할 글이 계속 있었어. 어쩔 수가 없는 부분이, 나는 글만 써서 생활하는 사람이라 글쓰기가 생계와 연결되어 있잖아. 웬만한 청탁은 감사합니다 하고 거의 받아서 쓰고. 내가 쉬고 싶다고 쉴 수는 없지. 남들이 매일 출근해서 일하듯이 글 쓰는 거지.

 

 

: 나는 전업소설가라는 말을 들으면 소설가 몇이 떠오르는데 그중에 한 명이 너야.

 

: 나 말고 또 누가 떠올라?

 

: 너 외에는 다 유명 작가들이나 베스트셀러 작가들이지. 전업이라는 말은 거창한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소설만 쓰면서 사는 사람을 말해. 소설을 쓰면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 그것을 지속하고 또 지속하는 단순한 삶의 패턴을 갖는 사람. 그걸 생각할 EO 네가 떠올라. 내가 아는 최고의 전업소설가가 너야. 15년 정도 썼나?

 

: 2006년 등단이긴 한데 2010년부터 썼다고 하면 뭐 이제.

 

: 거의 10년 동안 너는 이렇게 산 거야. 전업소설가다운 삶이 아닌데도 전업소설가로 산 거지. 겨울방학에 나오는 고모처럼 말이야. 그동안 소설가로 살면서 어땠어? 이 삶은 어때?

 

: 나한테는 맞는 삶이야. 내게는 최적화된 삶이지. 혼자 일해도 되고, 출퇴근하지 않아도 되고, 내 스케줄을 내가 짤 수 있고 그런 걸 생각하면. 다른 일 못하기 때문에 이걸 하는 것 같아. 하고 싶고 할 수 있는 게 많은데도 글을 쓰는 게 아니라 다른 일을 못하기 때문에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글쓰기를 하는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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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한 사람의 차지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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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금희의 세 번째 소설집 오직 한 사람의 차지를 읽었다. 현대문학상 수상작 체스의 모든 것, 문학동네 젊은작가상 수상작 문상이 수록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보다도 일단 김금희의 신작이라는 점에서 읽어야 할 이유가 충분했다. 너무 한낮의 연애와는 또 다른 느낌. 그게 싫지 않은 느낌. 스스로를 계속해서 갱신해 나간다는 점에서 존경스러운 느낌.


김금희의 소설엔 부적응자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들은 정상사회의 변두리로 밀려난 사람들이다. 각자가 품은 구구절절한 사연 때문에 그들을 이상한 사람으로 치부해버리기는 어렵다. 그래서 김금희의 인물들을 접할 때면 이물감이나 불편함보다는 안타까움을 느끼게 된다. 단적인 예로는 조중균의 세계의 주인공 조중균이 될 듯하다. 또한 그들의 부적응의 기원이 어느 과거에서 비롯되고 있음이 드러날 때 김금희 소설은 가장 강렬해진다. 그들의 아픔이 마치 세대적 징후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것이 반드시 내 세대와 일치하는 게 아니더라도, 김금희의 인물은 독자와 충분히 공명할 수 있다.


김금희의 인물들에겐 기원적인 모욕이 존재한다. 그것 때문에 그들이 요상해졌다고 단정할 순 없지만, 다만 이해의 여지는 생겨난다. 체스의 모든 것노아 선배처럼. 노아 선배는 화자가 대학 영미 잡지 읽기 동아리에서 만난 사람이며, “동아리방에는 꾸준히 나와서 타임지뿐 아니라 롤링 스톤이나 내셔널 지오그래픽같은 잡지를 읽었고 인식의 부정이 위한 꽃이 되리라같은 길고 복잡한 제목의 영어 에세이를 쓰기도 했던 사람이다. 이상한 고집도 있어서 다 같이 먹으러 간 콩국수집에서 소금을 넣어야 제맛이라는 강사에게 끝까지 설탕이라고 우겨대고, 자신과 맞먹는 괴짜인 국화와 함께 체스를 두면서는 무조건 자기가 알고 있는 룰이 맞다고 우겨대는 사람이다. 그리고 먼 훗날 화자는 국화를 통해 선배의 기원을 듣는다.

 

[선배는 외국의 농장에서 일하다가 도둑 누명을 쓴 적이 있었다. 선배는 전혀 모르는 일이었지만 한국인 조장은 그냥 잘못을 인정하고 넘어가자고, 다른 한국인들까지 피해를 본다고 선배를 설득했다. 결국 조장은 선배를 농장주에게 데려갔고 선배는 어차피 연기일 뿐이니까 머리를 숙이고 사과를 했다. 농장주는 넌 언제나 교체될 수 있어, 선수는 많으니까, 너 같은 경우에는 더 이상 기회를 안 줄 수도 있어, 하며 화를 냈다. 그건 연기이고 가짜인데도 그렇게 막상 농장주 앞에 서자 선배는 공포와 수치심에 몸을 떨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두 손을 빌듯이 맞잡으며 용서를 구했다. 그렇게 해서 일은 해결되었는데 막상 귀국하고 나자 그때의 모욕감이 선배를 더 집요하게 괴롭혔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고 해서 우리는 쉽사리 그들을 이해하거나 그들에게 우호적일 수 없다. 당장 내가 느끼는 불편함은 어쩔 수 없고, 저 사람은 여전히 이상하니까. 우리는 아픈 건 아픈 거고 이상한 건 이상한 거라는 태도를 줄곧 견지해 나갈 테지만, 다만 한 번의 생각할 여지는 생겨나게 될 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김금희의 소설은 그것만으로도 세상이 아주 조금은 나아질 수도 있지 않겠냐고 묻는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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