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생의 하루하루는 쳇바퀴처럼 무료하다. 뭔가 일이라도 생겼으면 싶지만 그런 사소한 일도 없이 굴러가는 일상. 이런 일상에서 좋은 소식이라도 들렸으면 좋으련만, 최근 들어 듣게 되는 뉴스들은 하나같이 마음을 답답하게 한다. 국정화 문제, 표절 문제... 등등. 하나같이 염세적인 눈을 들이대게 되는 사건들이다. 요즘 들어 일어나는 크고 작은 문제들의 대부분은, 문제가 원래 갖고 있던 본질이 흐려지고, 본질이 아닌 엉뚱한 것들만 붙잡고 싸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정화 문제가 가지고 있던(혹은 가졌어야 할) 본질은 가려지고 이념 대립을 통해 편 가르기에 열중하는 여야 세력과 같이.
표절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이 정도의 시간이 지났으면 신경숙 작품의 표절 문제에 대한 논의는 일단락되고, 그동안 소홀했던 표절에 대한 깊은 논의가 이루어져야 되는데, 그들은 여전히 표절이냐 아니냐를 놓고 왈가왈부한다. 문자적 유사성이 어떻네 하면서.
'창비 라디오 책다방 시즌 2'를 3회까지 들었다. 원래 1, 2회를 들은 뒤 짜증나서 듣지 않아야겠다고 마음 먹었으나, 3회에 나오는 게스트가 시즌 1의 진행자였던 김두식 교수와 황정은 작가였기 때문에 3회도 들어보기로 했다. 3회 동안 표절 문제를 다루기로 한 것은 진행자인 박혜진 아나운서가 강하게 주장을 피력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표절 문제를 제대로 다루겠다면서 보여주는 모습은, 누가 봐도 이게 제대로 다루겠다고 하는 건가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김두식 교수가 지적한 것처럼, 책다방은 표절 문제를 다루면서 1회에는 공동 진행자이자 창비 편집위원인 송종원 평론가의 설명과 변명을 장황하게 늘어놓았고(도대체 왜 그는 끊임없이 김슬기 기자에게 언론에도 잘못이 있다며 그를 꾸짖는가), 2회에는 오랫동안 창비의 편집위원이었던 최원식 평론가를 게스트로 불렀으며, 3회에는 전 시즌의 진행자를 불렀다. 이런 모양새를 보면 제대로 다루겠다는 말의 진의가 의심되지 않을 수 없다. 1, 2회를 통틀어서 제대로 말했던 사람은, 1회에 게스트로 나온 김슬기 기자와 박혜진 아나운서뿐이다.
황정은 작가가 나왔으니 들어보자는 생각으로 들은 3회에서는 김두식 교수와 황정은 작가의 말들이 독자들을 어느 정도 대변하고 있고, 그나마 날선 비판을 하고 있어서 속이 조금 시원했다. 그나저나 팟캐스트를 들으면서 황정은 작가가 이렇게 목소리에 힘을 주고, 이렇게나 길게 이야기하는 건 처음 봤다...
제가 송종원 선생님의 이야기를 1회 때도 듣고 지금 방송으로도 또 듣고 있는데, 제가 정말 불편한 지점이 뭐냐하면, 왜 이렇게 자꾸, 창비 쪽에서 자꾸 이렇게 ‘하지만’을 붙여서 얘기를 하는지... 그러니까 대중이 정말 궁금해 하는 것하고, 창비에서 설명하려고 하는 내용하고 괴리가 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 창비의 가을호를 기다렸는데, 저는 다양한 형태의 성찰과 논의가 실릴 거라고 예상을 했는데, 예상하고 거리가 상당히 멀었어요. 그리고 책다방 이번 시즌의 앞선 내용들도 계간지 내용하고 별로 다르지 않았고.. 백낙청 선생님이나 송종원 선생님이나, 그게 실은 옳은 이야기일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저는 작가로서, 그리고 일개의 독자로서, 저는 계속 허탈한 거죠, 이 상황이. 왜 그럴까, 생각을 해봤는데, 비유를 좀 해보자면, 최근에 영화 <베테랑>에서 유아인의 대사 중에 이런 부분이 있다면서요. 맷돌 손잡이를 ‘어이’라고 하는데, 그게 사라졌다. 이런 이야기를 한다고 했더라구요. 그런데 이 경우에도 그게 사라진 거예요. 갑자기. 작가는 열심히 쓰고 독자는 읽고 있는데, 각자의 맷돌을 돌리고 있었는데, 갑자기 어이가 사라졌어. 뺏긴 거예요. 어디 갔는지 없어져 버린 거야. 근데 그걸 가져간 측이, 사과를 하는데, ‘어, 미안하다’, 근데 여기에 자꾸 '하지만'을 붙여서, ‘미안하다, 하지만..’ 이러면서 자꾸 뭘 붙이는데, 이게 그것도 대단히 어렵고 단호한 어휘로, 점점 더 많이 뭔가를 계속 붙이고 있는데.. 또 이 사태에 가장 어이가 없는 건 한국문학을 꾸준히 읽어온 독자들일 테고. 그런데 이 독자들한테 자꾸 뭔가 삿대질하는 느낌이 있다는 거죠. ‘미안해. 근데 하지만 당신들이 몰라서 이러는데..’ 이러면서 뭘 자꾸 덧붙여요. 그래서 저는 창비가 ‘하지만’이라는 것을 바깥에 호소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향해 물을 수 있는 집단이라고 생각을 했거든요. 근데 현재까지는 그걸 볼 수가 없었어요. 제가 좀 이 상황이 답답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저한테는 충분하지 않고, 창비 내부에서도 다른 목소리들이 분명 있을 텐데 큰 선생님들 목소리만 들린다는 거죠. 이 상황이 대단히 한국적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맥빠지기도 하고. 문제가 터지고, 비난과 비아냥은 압도적으로 쏟아지는데, 이것에 관한 지속적인 논의나 성찰의 장은 대단히 드물고, 그리고 관심은 속된 말로 짜게 식어버리고, 그 와중에 당사자들, 한국문학의 작가들하고 독자들은 찐빵처럼 벙쪄가지고 무기력과 이런 걸 경험하면서 이러고 있는 상황이란 말이죠. 특히 한국문학의 젊은 작가들, 저보다 더 젊은 작가들, 이 사람들은 그냥 바바파파가 돼버렸어요. 이게 사람들 사이에 있는데 그 사람들이 그게 안 보이는 존재들이라고 생각을 하는 거예요. 그래서 있는데 없는 거야. 이런 존재가 되어버린 거죠. 그래서 저는 사태가 이렇게 되어버린 데 창비의 태도가 한몫을 크게 했다고 생각을 하는데, 창비가 이런 점은 간과를 하고, 계속해서 이런 이야기들을, '만약에 아니라면?' 이걸 붙들고 계속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죠.
황정은 작가와 김두식 교수의 말들은 문학동네 좌담에서의 손아람 작가만큼 날선 발언들은 아니다. 하지만 처음 두 회를 듣고 이걸 들어서인지 표절 사태를 보면서 내가 느꼈던 것, 허탈함을 이야기하고 있어 속이 시원했던 것 같다. 더 심하게 말하자면, 창비의 태도는 한국문학을 읽어왔던 독자들을 봉으로 보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리고 표절의 본질을 의도성이라는 단어로 자꾸만 흐리게 하고, 감춘다. 표절 문제의 본질이 의식적이냐 무의식적이냐는 전혀 상관없는 주제다. 하지만 송종원 평론가는 3회에서도 그 전과 다름 없는 모습을 보인다. 김두식 교수가 나와서 했던 말들은, 문학하는 사람이 아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훅 들어오는 면들이 있었다. 차마 다 받아적을 자신이 없어, 일부분만을 인용한다.
근데 의도성을 단정할 수 없는 거는요, 너무나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모든 문제에 있어서. 의도성을 단정할 수 없다라고 하는 표현을 자꾸 쓰는 거 자체에 이미 어떤 의도가 담겨있다고 보이는 거죠. 그래서 대중들이 아마 분노하는 걸 거구요.
창비의 태도는 그의 말처럼 표절 문제에 앞장서겠다는, 그리고 객관적으로 파헤쳐보겠다는 제스처를 취한다. 그러면서 문자적 유사성이니, 의도성이니 하는 단어를 휘두른다. 이런 제스처뿐인 말과 논의 속에 본질은 사라졌고, 관심은 빠르게 식어갔다. 그럼 그렇지, 하면서.
창비가 표절에 대해 취하는 모습은 정치권의 모습과 닮았다. 본질을 흐린다는 점에서. 시간이 약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문제의 본질에 칼을 들이대지 않으면, 한국문학은 계속 수렁에 빠질 수밖에 없다. 곧 내가 받게 될 문학동네 겨울호나 창비 겨울호에 대한 기대가 식어가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