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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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워서 이기는 게 멋있다는 건 나도 아는데...... 그래서, 뭐 어떻게 해? 다른 톰슨가젤들이랑 연대해서 사자랑 맞짱이라도 떠? (12p)


'우리는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한다.'는 말이 있다. 말하자면 관성의 법칙 때문일 것이다. 이 사회가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냥 불평만 할 뿐, 하루하루를 관성처럼 살아가는 것. <한국이 싫어서>는 그런 많은 사람들의 모습과 닮았다.


<표백>이 '못 살겠다. 갈아보자.'의 소설 버전이라면, <한국이 싫어서>는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의 소설 버전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이 책에서 독자들에게 꾸준히 이야기를 전하는 인물은 계나이고, 소설은 계나가 겪었던 일들을 회상하며 말해주는 고백체의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다보니 소설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과 사건들은 계나의 시선을 거쳐 우리에게 전해지고, 책을 읽다보면 헬조선이나 N포 세대와 같은 말들이 머리에 맴돌면서 계나에게 동조하고, 그녀를 부러워하기 쉽다. 하지만 이 소설에서 정말 냉철한 눈으로 보아야 하는 것은 정말 싫은 한국 사회가 아닌 계나다.


중년 남자들이 「빙고」를 부르는 이유는 다들 너무 힘들어서 아닐까. 다들 이 땅이 너무 싫어서 몰래 이민을 고민하는 거지. 그걸 억지로 부정하고 자기 자신한테 최면을 걸고 싶은 거야. "모든 게 마음먹기 달렸어."라고, "쉽게만 살아가면 재미없어."라고. 그런데 이민을 가면 왜 안 되지?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어. (25p)


자신이 치열한 한국 사회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한 계나는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호주로 떠난다. 여기까지는 '헬조선을 뜨고 싶다.'는 사람들의 푸념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하지만 소설은 계나가 호주에 가서 잘 살았습니다라는 얘기를 해주지 않는다. 호주로 떠난다고 인생이 만만해지거나 살기가 나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허희 평론가의 말을 빌리자면, '자본과 달리 사람이 월경할 때는 막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비행기 운항 요금 따위가 아니라, 자기 신체를 둘러싼 법적 자장, 권리와 의무를 모조리 내놓는 것이다.'


이 소설은 '그래, 한국 정말 싫지. 이 나라는 정말 잘못됐어. 차라리 다른 나라로 뜨는 게 낫지.'라며 요즘 풍토에 동조하는 소설이 아니다. 물론 이 책이 열광적인 반응을 얻은 것에는 '맞아, 한국 정말 싫어.'라며 공감하게 되는 것도 한몫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다시 한번 묻고 싶다. 그렇게 한국을 떠난 계나는 정말 한국 사회가 아무것도 해주지 않은 것 말고는 잘못이 없는 사람인가?


모르겠어. 그냥 걔가 결혼을 가볍게 생각했을지도 모르지. 어쨌든 이슬람 국가 남자잖아. 연애용 아내, 사업용 아내, 자식을 낳기 위한 아내, 이렇게 아내를 여러 명 둘 참이었는지 누가 알아. (93p)

 

내가 보기에는 계나야말로 한국 사회의 분위기와 너무나도 잘 맞는 한국적인 인물의 전형이다. 호주나라 게시판에서 열폭하는 사람들을 보며 충고하는 그녀의 말에는 '나는 당신들과 달라.'라는 생각이 깔려있지만, 그런 그녀가 인도네시아 남자친구를 보는 시선이나, 동생의 베이스 치는 남자친구를 보는 시선은 오늘날의 한국 사람들의 시선과 뭐가 다른가. 행복을 '자산성 행복'과 '현금흐름성 행복'으로 구분하는 모습 역시 효율성과 경제성에만 눈길을 보내는 시선과 전혀 다르지 않다. 호주를 떠나 시민권까지 얻은 그녀에겐 여전히 한국적인 관성의 흐름이 존재한다. 여기서 결국 말하려는 것은, 우리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한국적인 관성이 사실은 이 세계를 지배하는 관성이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나더러 왜 조국을 사랑하지 않느냐고 하던데, 조국도 나를 사랑하지 않았거든. 솔직히 나라는 존재에 무관심했잖아? 나라가 나를 먹여 주고 입혀 주고 지켜 줬다고 하는데, 나도 법 지키고 교육받고 세금 내고 할 건 다 했어.

내 고국은 자기 자신을 사랑했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그 자체를. 그래서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 줄 구성원을 아꼈지. 김연아라든가, 삼성전자라든가. 그리고 못난 사람들한테는 주로 '나라 망신'이라는 딱지를 붙여 줬어. 내가 형편이 어려워서 사람 도리를 못하게 되면 나라가 나를 도와주는 게 아니라 내가 국가의 명예를 걱정해야 한다는 식이지. 내가 외국인을 밀치고 허둥지둥 지하철 빈자리로 달려가면, 내가 왜 지하철에서 그렇게 절박하게 빈자리를 찾는지 그 이유를 이 나라가 궁금해할까? 아닐걸? 그냥 국격이 어쩌고 하는 얘기나 하겠지. 그런 주제에 이 나라는 우리한테 은근히 협박도 많이 했어. 폭탄을 가슴에 품고 북한군 탱크 아래로 들어간 학도병이나, 중동전쟁 나니까 이스라엘로 모인 유대인 이야기를 하면서, 여차하면 나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눈치를 줬지.

(170-171p)


한창 이 작품이 인기가 있을 때 SNS에도 많이 떠돌았던 문구인데, 책을 읽고나서 다시 보니 '대한민국'에 다른 나라 이름을 붙이면 그들의 푸념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한국 사회의 문제가 세계 보편적인 것이라고만 치부할 문제는 아니지만(주로 여당에선 세계적으로 이렇지만 우리는 선방하는 겁니다라고 말하는 것 같다), 착각하지 말아야 할 것은, 한국이라는 이름의 세계만 폭력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세계는, 원래가 폭력적이다. 다만 그것이 옷을 바꿔 입었을 뿐. 폭력의 강도나 모양새가 다를 수는 있겠지만 그 본질은 동일하다. 그렇기에 나는 작가가 계나의 손을 들어주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별로 통쾌하거나 하지 않았던 것은, 이 소설이 보여주는 소재나 형식이 결국 '푸념'의 모습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표백>은 '반항'의 방식을('저항'이 아니다) 취했기 때문에 그 가능성 여부와 상관없이 통쾌함을 느꼈다면, <한국이 싫어서>가 보여주는 '푸념'의 방식은 한숨만 깊어지게 한다. 푸념하는 건 나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니까. 하지만 여전히 인터넷 상에서 떠도는 '헬조선' 열풍을 이런 식으로 풀어냈다는 점에는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도서관에 예약신청을 한 지 두 달만에 받은 책이었는데, 2주 내내 펴고 있지 않다가 반납 안내 문자를 받고 부랴부랴 읽었다. 다른 그의 소설처럼 술술 읽히는 문장이 이 책을 읽는 또다른 재미라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지긋지긋해서 눈을 돌리려 했던 한국 사회의 현실들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는 점에서 한숨만 늘어가는, 고민들 때문에 잠이 오지 않는 그런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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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11-17 0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법칙 책 보고 왔더니 ˝관성의 법칙˝ 얘길ㅎ;;....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관련된 ˝붉은 여왕의 법칙˝이란 게 있더군요. 치타를 피하려면 영양이나 얼룩말은 그 2배로 빨리 달려야 한다는. 살아남기 위해서. 이민은 그런 달리기 같은 방법이기도 했을 겁니다.
모두가 달리고 있는 세계.
미셸 우엘벡 <복종>을 다시 훑어보다가 그나마 한국에서는 장강명 작가가 비슷한 스탠스이지 않나 싶었습니다. 우엘벡보다 장강명 작가가 적을 두지 않는 처세도 있는 것 같고요. 기자 출신이라 그런가a;
우엘벡이 유럽의 허위를 찍어대듯이 장강명은 한국의 부조리함들을 씹어주죠.
딱한 것은 쓰는 자도, 읽는 자도 후련하지 않다는...세상이 그래서 그런가...

아무 2015-11-17 07:55   좋아요 0 | URL
붉은 여왕의 법칙은 이 책 앞부분에 나오는 톰슨가젤 이야기와 연결되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요. 허희 평론가는 해설에서 톰슨가젤이 사자와 연대해서 우리를 부숴야한다고 말하지만, 그게 가능하긴 한 건지...
우엘벡의 소설은 아직 <소립자>밖에 못 읽었지만 장강명 소설과의 비슷함이 많이 느껴지네요. 후련하지 않은 것도 그렇고.. 눈과 귀를 닫는 게 속 편하다는 생각이 끊이지 않는 요즘입니다. 맘대로 닫지 못해 뉴스를 보며 시름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