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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하는 모든 것들의 소음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 지음, 조구호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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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동안의 고독>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영향을 받은 신진 작가, 후안 가브리엘 바스케스(이름도 비슷하다)의 대표작이 국내 출간됐다. 동물원을 탈출한 하마가 2009년에 사살되는 인상적인 장면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하마는 콜롬비아의 마약왕이라 불리며 한때 전세계 코카인 시장의 80%를 점유하던 파블로 에스코바르의 개인 소유 동물원에 있던 세 마리 중 한 놈으로, 뉴스를 통해 주인공은 20년 전인 1996년에 겪은 사건을 회상하게 된다. 


법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안토니오는 자주 들르던 당구장에서 아버지뻘되는 리카르도 라베르데와 가까워 진다. 비행기 조종사 출신이었으나 20년간 교도소에 있었다는 말에 호기심을 갖는다. 어느 날 라베르데는 녹음 테이프를 재생할 수 있는 곳을 다급히 찾고, 안토니오는 근처 문화센터에서 카세트를 빌릴 수 있도록 도와준다. 아이처럼 울며 녹음 내용을 듣던 라베르데, 영문도 모른채 그와 함께 거리로 나선 안토니오는 괴한들의 공격을 받는다. 라베르데는 현장에서 사망하고 안토니오도 총상을 입는다. 사고 후유증으로 실체없는 고통에 시달리며 아내와의 관계에도 어려움을 겪던 안토니오는 사고 당일 라베르데가 듣던 테이프의 정체를 알게 된다. 20년간 떨어져 있던 라베르데의 아내 엘레나가 타고있던 미국발 콜롬비아행 비행기가 사고로 추락하던 그 날의 블랙박스 기록이었다. 안토니오는 라베르데의 딸인 마야에게 연락을 받고, 라베르데와 엘레나의 흩어진 기억과 흔적의 조각을 맞추며 그들의 삶을 복기하는 여정에 동참한다. 


소설은, 사랑했지만 20년간 소식을 모르고 살아야 했던 커플의 러브스토리만 들려주는 것이 아니라 80-90년대 콜롬비아 현대사에서 중요한 사건들을 되짚으며, 사회의 한 세대 구성원들에게 각인된 공포에 대해 이야기한다.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로 고통스러워하던 안토니오에게 의사는 "공포가 그 세대 사람들의 주요 질병"이라 진단한다. 수도 보고타의 90년대는 '폭력의 시대'였는데, 마약 카르텔과 정부와의 전쟁, 조직간의 폭력, 그로 인해 무작위로 발생하던 폭탄 테러와 생존의 위협으로 점철된 시기였다. 마약 밀매를 위해 납치, 살인도 서슴치 않고, 정부기관, 언론사를 테러하며, 마약조직 소탕작전을 펼치려던 대통령 후보 셋을 암살하고, 한 사람을 죽이기 위해 170여명이 타고 있는 비행기를 폭파시키는 등 경쟁 카르텔 조직원 뿐 아니라 정부관료,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400여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파렴치한 마약상이 버젓이 활동하던 때였다. 


그 시대 보고타에 살던 이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던 신변안전에 대한 공포 외에, 소설 속 등장인물 각자를 옭아매던 고통도 있다. 공군 비행쇼에서 추락사고 현장을 경험하고 화상을 입은 사건을 계기로 비행기에 대한 두려움이 생긴 라베르데의 아버지, 거리에서 총상을 입은 후 광장공포증과 폐소공포증 동시에 시달리는 안토니오, 아빠를 따라 불을 켜고 자려는 어린 딸을 보고 아이에게 공포가 전염되는 건 아닌지 걱정하던 아내 아우라, 엄마 엘레나가 탄 비행기가 추락할 당시 마지막 소음이 담긴 블랙박스 테이프를 반복해 들으며 깊은 무력감을 느끼는 마야. 


추락하는 비행기에서의 소음을 연상시키는 제목과 흡입력 있는 구성, 한 시대의 구성원들에게 각인된 공포의 보편적 특성과 개인의 삶에 침투한 두려움의 특수한 면 모두 잘 드러낸 작품이라 생각한다. 더불어 과연 현 시대를 살고 있는 한국인들이 공통적으로 갖고 있는 공포는 무엇일지 질문을 던지게 한다. 시간이 흘러 각자의 삶을 반추할 때, 우리가 사는 지금 2010년대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될까. 




+ 개인적으로는 라베르데와 엘레나의 만남과 연애과정을 묘사한 부분이 가장 재미있었다. 미 평화봉사단(Peace Corp) 단원으로 보고타에 봉사활동하러 온 엘레나가 콜롬비아 현지인 하숙집 아들인 라베르데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도 그렇고, 공군으로 한국전쟁 참전용사였던 할아버지의 영향으로 비행기 조종사를 꿈꾸던 젊은 라베르데의 모습도. 지구 반대편에 있는 나라에 대한 소설속 묘사였지만, 내게는 전후 한국 재건을 위해 젊을을 바쳤던 미 평화봉사단원들의 모습이 오버랩되어 보였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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