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되고 싶었던 아이 - 테오의 13일
로렌차 젠틸레 지음, 천지은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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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후반의 젊은 작가 로렌차 젠틸레가 지은 <바람이 되고 싶었던 아이> '테오의 13'이란 부제를 달고 있다. 200페이지가 조금 넘는 분량이어서 휘리릭 읽기도 좋다. 짧고 가볍지만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은, 바쁜 일상에서 눈을 돌리도록 임팩트 있는 메시지를 던지는, 어른들을 위한 동화다.

 

8 아이 테오의 눈으로 어른들의 세상은 매일 싸움의 연속이다. 식사시간 아빠와 엄마의 신경전, 고등학생인 누나 마틸데와 엄마의 말다툼과 울음소리. 테오의 꿈은 소박하다. 싸움이 일어나지 않는 것까지는 바라지도 않고, 그저 매일의 전투에서 누군가가 이기거나 져서 평화로운 순간이 찾아오기만 기대할 . 그러던 생일 선물로 받은 책에서 나폴레옹에게 감명받는다.

 

엄마 아빠가 천장까지 쩌렁쩌렁 울릴 만큼 소리로 대화하지 않는 모습을 보는 . 그러면 나도 방에만 처박혀 있을 필요가 없을 것이다. 아빠가 주먹으로 식탁을 내려치지 않아서 가슴도 두근거리지 않게 되는 , 야단치는 말투에 무서워하지 않는 , 그리고 밤에 자는 . 아주 조금이라도 지금보다 행복한 가족. 이게 내가 세상에서 제일 바라는 것이다.

승리하기 어려운 전투라는 나도 안다. 그렇지만… 만약에 나폴레옹한테 내가 어떻게 하면 되는지 물어볼 있는 방법이 있다면? 틀림없이 그는 나를 도와줄 거다. (27)

 

 

모든 전투에서 승리한 나폴레옹의 비결을 배워, 엄마와 아빠 누군가가 이길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어린 소년의 목표가 된다. 그런데 어디 가야 나폴레옹을 만날 있을까, 나폴레옹은 이미 오래 전에 죽었는데... 테오는 나폴레옹을 만나기 위해 죽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독자는 테오의 13일간 기록을 통해 나폴레옹 찾기 여정에 동참하게 된다. 아이의 순수한 관점으로 세상을 나란히 바라보며 소소한 깨달음을 얻는다.

 

정작 가족들은 테오의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지만, 주변 사람들은 테오의 말에 기울여주기도 한다. 화가 랭보 아저씨는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바람을 느낄 있는 것처럼, 바람을 도화지에 그림으로써 존재하도록 만드는 것처럼 나폴레옹을 만날 있다고 조언한다. 가정부인 수지 아주머니는 꿈과 윤회에 대해 설명해 주고, 같은 친구이자 중국인 입양아인 시엔은 숫자를 통해 테오의 궁금증에 나름의 정의를 내린다. 결국, 각자의 시선 차이임을 테오는 깨닫는다.

 

학교에서 시엔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다. 항상 무엇이든 있는 법이다.

사실 생각해 보면, 방에도 카펫은 깔려 있을 있다. < 속이 비었다> 말할 때도 그건 배가 고프다는 뜻이지, 속에 정말로 아무것도 없다는 뜻은 아니다. 하다못해 우주도 무언가로 채워져 있다. , 은하, 미사일 .

그렇다면 사람들 말은 모두 옳다. 사람들은 같은 말을 각자 자기 방식으로 하고 있는 거다. (165)

 

그렇게 조금씩 삶의 비밀을 풀어나가는 꼬마 철학자 테오. 과연 그는 나폴레옹을 만날 있을까?

궁금한 분들은 책을 통해 직접 확인해 보시길. ^^

 

 

「비결은 무슨 일이 있어도 스스로를 너무 작은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는 거야.」

「그것뿐이에요?」

「인생에서 필요한 건 그것뿐이야. 항상 스스로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지.」 (2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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센트럴파크
기욤 뮈소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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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욤 뮈소의 소설은 나올 때마다 사서 읽는다. 작가의 모든 작품을 읽었지만 설정과 줄거리만 조금 다를 분 전반적인 분위기나 긴박감, 교훈 등은 거의 비슷비슷해서, 사실 제목과 내용이 잘 연결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도서관 대출 순서를 기다리지 못하고 성격 급하게 사서 읽는 이유는, 두어 시간 동안은 분명히 `재미`있다는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모든 걸 잊고 `몰입`할 수 있다. 읽고 나서 중고서점에 다시 되파는 한이 있더라도 출간되자마자 구매한다. 비슷한 작가로는 로버트 랭던의 목숨을 건 모험을 다루는 댄 브라운, 해리포터 이후로 `로버트 갤브레이스`라는 가명으로 성인을 대상으로 한 미스터리물을 써내는 조앤 K. 롤링 정도.

<센트럴파크>도 작가의 전작들처럼 전개속도가 빠르고 박진감 넘친다. 목표가 생기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들고, 스마트하고, 섹시한 여성이 등장해 평범하지만 매력이 넘치는 남성과 파트너가 되어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나간다. 물론 그들의 뒤에는 후방에서 전적으로 도와줄 조력자들이 있어 전화만 하면 24시간 내 무슨 정보든 찾아서 알려준다. 사건이 해결되면 두 남녀는 서로에게 호감을 느낀다. 때론 스릴러 같고, 판타지소설 같기도 하지만 로맨스의 달달함도 빠지지 않는다. 그러나 거기까지. 이번에도 읽고 나서 다시 되팔게 될 것 같다^^; 작가가 이제는 기존 패턴을 벗어나 새로운 도전을 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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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주식회사
사이먼 리치 지음, 이윤진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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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같은 시기에 딱 어울리는 유쾌한 소설을 만났다. 아이디어가 통통 튀는, 읽으면서 무한 상상하게 되는 즐거운 소설. 유머 작가이자 극작가인 사이먼 리치의 <천국주식회사>다.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는 하느님이고 직원들은 천사다. 지구 사업에 회의감을 느낀 CEO는 돌연 전직을 선언하고, 인류의 종말을 막기 위해 천사들이 고군분투한다는 줄거리가 독특했다. 

 

주인공 크레이그는 천국의 기적부에서 컴퓨터를 통해 기적 가능성 알람을 확인하고 지구에 소소한 기적을 만드는 일을 한다. 8월의 뜨거운 더위에 지친 소년, 소녀에게는 소화전을 살짝 터트려 물벼락을 선사하기도 하고, 중년 여성의 낡은 점퍼 주머니에서 지폐 뭉치를 발견하게 한다거나, 오랜만에 마주친 동창의 이름을 기억해 내려 애쓰는 중년 남성에게 생각해낼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는 등 '기적 코딩'을 통해 인간들의 삶에 간접적으로 개입한다. 뜻밖의 행운에 즐거워하는 인간들을 보며 보람을 느낀다.

   

"대부분의 천사들은 자신을 예술가라고 여겼다. 우아함을 위해 분투하는 섬세한 장인 말이다. 그들의 목표는 최대한 눈에 안 띄게 존재하면서 세상을 절묘하고 품위 있게 바꾸는 것이었다." (83쪽)

  

한편, 기도 수취부 계약직 사원이던 일라이자는 긴급도에 따른 7등급 기도 분류체계를 구축한 성과를 인정받아 기적부 천사로 승진해 크레이그의 후배가 된다. 하느님의 집무실에서 우연히 자신이 분류한 인간들의 기도가 읽혀지지 않은 채 쌓여있는 것을 보고 기겁한 일라이자는 홧김에 '그럴 거면 사업을 접는 게 어떠냐'고 내뱉는다. 다음 날 천사들의 메일함에는 한 달 후 지구를 파괴할 것이라는 CEO의 메시지가 도착한다.

  

지구의 멸망을 막기 위해 크레이그와 일라이자는 하느님과 내기를 한다. 무작위로 쌓여있는 기도리스트에서 한 가지 기도를 이뤄줄 수 있다면 지구멸망 결정을 철회하기로 한 것. 학창시절 첫 눈에 반했지만 서로에게 용기를 내지 못했던 남녀, 샘과 로라의 사랑이 기적처럼 이뤄져야만 한다.

 

"두 인간을 정확히 같은 시간에 정확히 같은 장소로 모이게 만들기 위해서는 수백 가지의 변수들을 조정해야 했다. 그건 창의성, 정확한 타이밍, 구역질 나올 정도의 방대한 조사량이 요구되는 일이었다. 세부 사항 중 어느 하나라도 망치면, 모든 게 헛수고가 됐다. (중략) 서로 떨어져 있는 거리는 채 여섯 블록이 안 됐다. 그러나 뉴욕시티에서는 여섯 블록이 6광년이나 마찬가지였다. 이 두 사람은 벽 841개와 100,000명 이상의 사람들을 사이에 둔 채 떨어져 있는 셈이었다." (184쪽)

  

체감거리가 6광년쯤 되는 두 사람이 '우연히' 마주쳐 '우연히' 서로에게 말을 걸고 사랑에 빠진다는 건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다. 천사들은 이를 '기적'이라 부른다. 지구에 있는 샘과 로라를 만나게 하기 위해 수만 가지 가능성을 조정하는 천사 크레이그와 일라이자의 모습을 보니, 현실세계 속 연인, 친구, 가족, 동료들과의 만남도 어쩌면 우연이 아닐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분량도 많지 않고, 스토리도 단순해 술술 읽힌다. 천국주식회사의 모습이 자연스레 상상된다. 깊이와 허를 찌르는 반전은 기대하기 어렵지만, 표지도 내용도 연말과 꽤 잘 어울린다. 내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게 하고 마음 따뜻하게 하는 유쾌한 소설. 머리도 식힐 겸 천국으로의 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솔라 레스토랑에서 아시안퓨전요리를 먹고 있는 크레이그와 일라이자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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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빼빼로가 두려워
박생강 지음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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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으면 한번에 뇌리에 콕 박히는 이름이다. 생강이라니. 서점에서 생강이 몸에 좋다는 책을 보고 즉흥적으로 필명을 결정했다는 말에 저자의 정신세계(?)가 궁금했는데, 나중에야 성인saint과 악당gang의 혼성 혹은 '생각의 강'을 염두에 둔 작명이란 걸 알게 됐다. 톡 쏘는 생강 맛처럼 종횡무진 통통 튀면서도 은근히 달콤한 냄새가 나는 소설 <나는 빼빼로가 두려워>는 저자의 필명과 딱 어울리는 책인듯 하다.

 

책의 서두는 흥미진진하다. 민형기의 심리상담소에 찾아온 매력적인 여인 한나리. 그가 일하는 카페의 사장이자 애인이 빼빼로가 두려워 대형마트도 기피하는 빼빼로포비아란다. 자신을 소시오패스로 의심하는 민형기에게 빼빼로포비아는 당장 자신의 카페 '스윗스틱'으로 오지 않으면 한나리를 '삭제'하겠다 협박한다. 카페에 도착한 민형기는 드디어 카페사장을 대면한다. 다음 내용이 어떨지 궁금하던 찰나, 이 모든 이야기가 김만철의 소설 속 이야기라는 당황스러운 전개가 이어진다.
          
미스터리한 카페사장의 정체는 바로 지구에 불시착한 실리칸이라는 외계인(오잉?). 미각과 언어의 담당하는 혀를 신성히 여겨 사랑해도  키스하지 않고, 성기는 롤빵과 패스트리 정도로 여기는 '인간인듯, 인간아닌, 인간같은' 존재다. 소설을 읽다보면 현실 속 김만철에게 일어나는 사건들은 소설처럼 느껴지고, 소설 속 빼빼로포비아 쪽이 오히려 현실적이다. 소설인듯 소설아닌 소설같은 이야기. 마지막엔 짜잔! 하고 김만철이 겪은 모든 에피소드야말로 한 편의 소설이었다며 새로운 현실이 드러나는 반전을 의심했지만, 예감은 빗나갔다. (결말은 책을 통해 확인하시길^^)

 

작가는 "현실에서 비현실의 이야기를 찾는 게 아니라 비현실이 슬그머니 찾아와 어깨를 두드린다"며 "그럴듯한 소설을 쓰는 대신 그럴듯함과 그럴듯하지 않음 사이에서 꿈틀대는 어떤 자리들을 발견하려 애쓰겠다"고 했다.

액자소설의 현실과 비현실의 혼란함 속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일까 되새겨보는 것도 묘미다. 인간이란 존재의 의미, 소설에 대한 생각, 빼빼로와 빼빼로데이를 바라보는 관점 등이 숨바꼭질하듯 숨어 있다.

 

소설 속 민형기가 삼킨 다섯 개의 알약은 현실의 김만철이 삼킨 다섯 마리의 주술사를 연상시키고, ​소설 속 카페사장은 빼빼로포비아였으나 현실에서는 인류애와 이타심이 넘치는 스윗스틱 제조자로 대비된다. ​​오히려 현실의 민형기가 빼빼로포비아에 가까웠다. 김만철이 자신이 쓰는 소설 안에 카페사장, 단골손님, 상담가, 짝사랑을 등장시켰듯, 우리가 읽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김만철의 소설 선생님은 어쩌면 작가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는건 아닐까. 알듯 모를듯 재미있는 책이다.

 

 

 

이 시대의 인간은 어쩌면 빼빼로 피플이네. 인간은 태어나기를 딱딱하고 맛없는 존재로 태어났지. 하지만 거기에 자신의 개성이란 달콤한 초콜릿을 묻히지. 타인을 유혹할 수 있는 존재로 특별해지기 위해. 하지만 그 개성의 비율 역시 언제나 적당한 비율, 손에 개똥 같은 초코가 묻어나 불쾌감을 주지 않는 적정선의 비율로 필요하네. 그게 넘어가면 괴짜라거나 변태 취급을 받기 쉽지. 그렇게 이 시대의 인간은 모두 독특한 개성을 추구하는 양 착각하지만 실은 모두 똑같은 봉지 안에 든, 더 나아가, 똑같은 박스 안에 포장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초코 과자 빼빼로와 비슷하다네. (중략)

 

내 말은 자네의 입장에 대해 누구에게 인정받으려 애쓰지 말라는 거야. 어차피 그들은 자네를 개똥으로 여길걸세. 그러니 비닐 포장 속에 담긴 빼빼로 병사가 아니라 차라리 비닐 포장까지 뚫고 나올 수 있는 살아 있는 막대 벌레가 되라는 거야. ​(p.145-146)

 

<어쩌면 ​21세기 최고의 베스트셀러 소설은 「빼빼로」가 아닐까? 빼빼로라는 소설이 있기에 어쩌면 사람들은 소설을 읽지 않는 게 아닐까?>

 

빼빼로는 문장 아닌 막대 과자로 구성된 과자 상자에 불과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11월 11일이 가까워 오면 그 과자를 통해 자신이 상상하는 이야기에 빠져든다. 그건 대개 사랑에 대한 환상이지만, 그 환상은 얼룩지고 음산해지며 종종 우울하게 가라앉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그때뿐이다. 시답잖은 베스트셀러를 읽은 뒤에 던져 버리듯 빼빼로데이가 지나면 이내 그 과자는 아무런 의미도 남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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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 일러스트와 함께 읽는 세계명작
허먼 멜빌 지음, 공진호 옮김, 하비에르 사발라 그림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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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경사 바틀비> , 동화 <프레드릭>과 함께 읽기.



<프레드릭>의 서두는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 같다. 하지만 결말은 다르다. 네 마리의 들쥐가 열심히 일할 동안 프레드릭은 햇살과 색깔과 이야기를 모은다. 다른 쥐들에겐 한량의 여유로 보인다. 추운 겨울이 되어 식량도 다 떨어질 무렵 프레드릭은 생쥐들에게 일 년간 간직해온 자연의 생생함을 전해준다. “프레드릭은 파란 덩굴 꽃과, 노란 밀짚 속의 붉은 양귀비꽃, 또 초록빛 딸기 덤불 얘기를 들려주었습니다. 들쥐들은 마음속에 그려져 있는 색깔들을 또렷이 볼 수 있었습니다.”  친구들은 프레드릭을 시인으로, 예술가로 인정하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받아들인다.

  

<필경사 바틀비>의 배경은 19세기 중반 월스트리트, 법률문서 필사원이다. ‘나’는 터키, 니퍼스, 진저너트라는 별명을 가진 직원들의 고용주이다. 신입 필경사 바틀비는 사흘 동안 기계적으로 필사를 해낸다. 다른 일을 시키려는 변호사에게 그는 상냥하지만 단호한 목소리로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I prefer not to)."라 대답한다. 다른 일을 시켜도, 이유를 말해보라 해도 ‘안 하는 편을 택’한다는 의지를 표현한다. 주체적 선택을 고집하던 바틀비는 결국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프레드릭>에 다섯 마리의 들쥐가 등장했듯 <바틀비>에도 다섯 명의 인물이 등장한다. 통념에 따르지 않고 소신을 따르는 소수(1명)와 당연한 듯 의문없이 사회의 질서를 따르는 절대다수(4명)로 나뉜다. <프레드릭>이 동화 속 해피엔딩이라면, <바틀비>는 현실세계를 반영한다. 프레드릭은 다수의 인정, 심지어 찬사까지 받지만 소설에서 바틀비는 그를 외면하는 사람들의 차가운 시선 아래 죽어가는 모습으로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주목할 부분은 바틀비를 바라보는 고용주의 심경과 태도의 변화다. <바틀비>의 서술자가 “나”라는 관찰자이므로 자연히 독자도 그의 시선을 따라가게 된다. 처음에 바틀비에게 매료되었던 그는 바틀비로 인해 난처한 입장에 처하자 반쯤 등을 돌린다. 회유하고 화를 내기도, 피하기도 하지만 나중엔 동정심과 책임감으로 바틀비를 돌아본다. 안타깝게도 그를 건져내는 직접적인 행동은 취하지 않는다.

  

옮긴이는 바틀비에서 기독교적 색채가 강한 부분을 주목하기도 했는데, 전전긍긍하는 변호사의 모습에 예수를 심판하던 빌라도가 오버랩 된다. 자신의 이해관계 때문에, 당대의 통념과 사람들의 등쌀에 못 이겨 해결사의 자리에 섰으나, 결정을 남에게 미루며 회피한다.

속으로는 동정(혹은 동경)하며 관심을 갖고 지켜볼지언정 적극적으로 죽음을 막지는 않은 방관자다. 행동에 나서지 않음으로써 다수의 의견대로 흘러가게 방조한다. 어디서 많이 본 모습은 아닌지.

  

프레드릭과 바틀비는 우리에게 타인의 의지와 선택, 다양성을 존중하자는 메시지를 던진다. 동시에 바틀비의 고용주를 통해, 남과 다르다고 해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방관하는 것은 다수의 폭력에 동조하는 것이라 외친다. 물질적 만족보다 무형의 만족을 추구하는 신념가도 있겠지만, 우리 대부분은 행동가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지만 용기를 낼 자신은 없는 평범한 소시민일 것이다. 프레데릭이 되지 못할 바엔, 프레데릭의 친구들이 되자. 바틀비가 만약 들쥐 친구들을 만났다면, 이야기의 결말은 분명 달라졌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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