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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조이스 캐롤 오츠 지음, 김승욱 옮김 / 은행나무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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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에 출판된 이 소설은 저자 조이스 캐롤 오츠가 60년대 초반, 디트로이트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경험에서 출발한다. 자신의 수업을 수강했다는 모린이라는 학생에게 편지를 받고 연락을 주고 받게 되어, 그의 현실같지 않은 인생과 가정사를 서술하는 형식이다. 여기서 ‘형식’이라는 말을 쓴 이유는 나처럼 실화를 각색한 것으로 오해하고 읽는 독자가 또 있을까 우려하는 마음에. 720여 페이지에 달하는 책을 읽는 동안 최고의 반전은 이게 작가의 상상력으로 써낸 ‘소설’이라는 점이었다. 프롤로그에 저자가 “소설처럼 구성한 역사 기록”이자 “현실적인 유일한 소설”이라 분명히 밝혔는데도 깜빡 속다니, 이건 독자의 잘못이라기 보다는 순전히 작가가 디테일을 너무 잘 살려 냈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의 배경은 1930년대부터 1967년 디트로이트 유색인 폭동까지로, 16세 한날의 실수로 엄마가 되고 엉겁결에 결혼해 '웬들'이란 성을 얻게된 '로레타'와 그의 자녀 '줄스'와 '모린'의 시선을 넘나들며 이야기가 전개된다. 세 인물의 공통점은 자신이 속한 계급을 부정하고 중산층으로 진입하고 싶은 욕망에 따라 살아간다는 것이다. 


"오늘도 절대 남한테 휘둘려 다니지 마. 줄스한테는 이런 말을 할 필요가 없지. 세상 물정에 밝은 아이니까. 하지만 너희 둘은 멍청해서 휘둘리기 딱 좋아. 그런 일이 생기면 참지말고 확실히 말해. 어림도 없다고. 절대 남한테 휘둘리지 마." (173쪽)


엄마 로레타는 금발머리 백인인 자신의 외모로 끊임없이 남자를 유혹한다. 남에게 휘둘려 자신이 원치 않던 인생을 살고 있다 얘기하면서도 기회가 있으면 남자에게 의지하는 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처럼 보인다. 사춘기에 접어들어 젊은 시절의 자신과 닮아가는 딸 모린을 보고 감탄하면서도 질투하고, 새 남편과의 밀당에 있어서 딸을 이용하기도 한다. 디트로이트 폭동 이후로 집을 잃고 대피소에 갔을 때도 로레타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건 아이 딸린 남성일 정도로 일관성있는 캐릭터다.



온 세상 사람들의 얼굴이 모두 교활하고 분노한 표정으로 단단히 굳어 있었지만 모린 자신은 단단하고 모진 부분이 전혀 없었으므로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침묵 속으로 기어 들어가 모든 것이 깔끔하고 단정해질 날을, 저녁 식사가 끝난 뒤 부엌을 정리하듯 자신의 인생을 정리할 수 있게 되는 날을 기다렸다. 그때가 되면 그녀 역시 남이 상처를 입힐 수 없을 만큼 단단하게 영원히 굳어버릴지도 몰랐다. (183쪽)


엄마를 이해할 수 없으면서도 그의 사랑을 갈구하는 딸 모린이 원하는 것은 평범한 삶이다. 가족, 동네사람들, 학교 선생님들 모두의 얼굴이 찡그린 채 굳어있는 모습을 보고 자신이 그런 얼굴을 가질까 두려워 하고, 엄마가 팽개친 집안일을 도맡아 하며, 제인 오스틴 소설을 즐겨 읽고 도서관을 유일한 피난처로 삼는, 지옥같은 집을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돈이라는 생각에 원조교제를 시작했으나 계부에게 들켜 폭행당하고 일년 동안 정신을 놓아버린, 복잡한 성장과정을 거친 소녀. 그가 평생 원한건 ”하나의 인간”이 되어 “단단하게 고정된 사람으로서 성공하는 것”이었다. 그가 선택한 탈출구는 남의 남자를 빼앗아 결혼하는 것. 남자, 인간에 대한 신뢰가 없는 그녀에게는 이미 한 번 결혼해 자녀와 가정을 지킨 경험을 가진 남자가 가장 안전한 사람이다. 


로레타의 장남 줄스의 삶은 두 여성의 삶과 비슷하면서도 대조를 이룬다. 빈민가 출신으로 고등학교를 중퇴하기까지 절도, 폭행 등의 비행을 저지르고 이후에도 습관을 버리지 못하지만, 백인 남성이라는 사회적 지위 덕분에 여성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기회가 많이 주어진다. 트럭 운전사, 꽃배달원, 부자 신사를 모시는 개인 운전사가 되기도 하고, 공장을 운영하는 큰아버지의 후계자가 될 뻔 하기도 한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꼬박꼬박 어머니 로레타에게 돈을 보내 가족부양의 책임이행을 흉내내는 모습은, 결혼에 성공해 획득한 지위를 잃을까 두려워하고, 가족과 연을 끊는 것이 빈민층에서 벗어난 증거인양 조심스러워하는 모린과 대조된다. 줄스가 상위계급에 있어 집착하는 부분은 그가 첫눈에 반한 백인 여성 ‘네이든’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부잣집 외동딸인 네이든은 줄스에게 순수와 동경의 상징이자 욕망의 대상이다. 그녀는 그동안 줄스가 만나왔던 여자들과는 다르게 “날 멋대로 휘두르지마.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지 마.”라며 따끔하게 거절하고, 줄스가 몸이 아파 자신을 돌봐주지 못하자 가차없이 떠난다. 심지어 더한 짓도 서슴지 않는다. 그럼에도 줄스는 네이든을 얻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 준비가 되어있다. 


네이든이 등장하는 부분은 대부분 줄스의 시점에서 서술되기 때문에 좀 산만한 면이 있지만, 네이든의 말을 통해 사회의 계급 문제 뿐 아니라 젠더 문제도 부각된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네이든은 중산층(혹은 그 이상일 수도)이기 때문에 로레타, 모린, 줄스의 행동과는 확실히 구분되지만 여성이라는 점에서 ‘결혼’만이 탈출구라 여기는 로레타, 모린의 모습과 공통점을 갖는다. 당당하게 자신의 요구사항을 줄스에게 밝히는 모습, 결혼을 둘러싼 사회 규범에 굴복하고 체념하는 모습, 그러면서도 해방되어 자유를 갈구하는 모습이 공존하는 네이든은 자신 안에서 상충되는 가치에 갈팡질팡하는 느낌이었다(그래서 줄스와 함께 떠나고 싶었던 것 같기도).


여자는 꿈 같아. 여자의 일생은 기다림의 꿈이지. 그러니까, 여자는 남자를 기다리면서 꿈속에서 산다는 뜻이야. 굴욕적이지만 여기서 벗어날 길은 없어. 어떤 여자도 도망치지 못해. 여자의 일생은 남자에 대한 기다림이야. 그뿐이야. 이 꿈에는 문이 하나 있는데, 여자는 그 문을 통과해야 돼. 선택의 여지가 없어. 늦든 빠르든 그 문을 열고 통과해서 어떤 남자, 한 명의 남자에게 도달해야 돼. 여기서 벗어날 수가 없어. 결혼 상대는 누구든 상관없지만, 이 길에서는 벗어날 수 없어. (507쪽)



1967년 당시 디트로이트에는 백인이 15% 정도 밖에 없었다고 한다. 웬들 일가 식구들은 빈민가에 살고 있지만 자신이 백인임을 다행으로 여긴다. 디트로이트 흑인 폭동의 물결 가운데서 백인이라 얻는 이점도 있을 것이다. 저자가 의도하는 ‘그들(them)’이 빈민층 백인만을 가리키는지 흑인을 포함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책 뒤편에 실린 작가의 말을 통해 어느정도 짐작해볼 수는 있을 것 같다. 이 긴 소설은 정작 ‘그들’은 읽지 않지만 ‘그들’의 자녀 세대는 읽는다. ‘그들’의 아들딸들은 가족들 중 처음으로 고등학교, 대학교를 졸업했고, 전문직업 계급에 진입했다. 이들을 구분해주는 것은 부모가 자녀세대를 대견하게 여기는지, 아들딸들의 ‘상승’이 부모에게 상처를 주고 왜소하게 만드는지 여부 뿐이다. 


‘그들’의 부모세대를 대표하는 로레타와 ‘그들’을 벗어나 미국 발전의 주역인 ‘우리’가 되기 위해 몸부림치는 자녀세대 모린과 줄스를 통해 당시 미국 사회를 생생히 들여다 볼 수 있다는 점, 긴 분량에도 불구하고 몰입이 크게 흐트러지지 않을 정도로 짜임새가 좋다는 점이 이 책의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넌 CIA 신원 조회에 통과한 게 자랑스럽냐?"
"그래, 자랑스러워. CIA 신원 조회에 통과한 게 자랑스럽다고. 그건 내가 충동과 감정에 져서 자신을 포기한 적이 없다는 뜻이고, 내가 계속 힘 있는 자리에 앉아 의미 있는 존재가 될 수 있을 거라는 뜻이니까. 그동안 `너희`는 밖에서 징징거리며 불평이나 하겠지…" (62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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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인]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카인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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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으면서 궁금했다. 악한 인간을 하나님은 왜 만드셨을까, 죄악이 가득한 도시에서 태어나 착한 일을 배울 기회조차 없던 사람은 천국에 갈까 지옥에 갈까, 성경의 수많은 '선택받지 못한 자'들은 왜 신의 선택을 받지 못했을까, 사탄의 시험으로 아들들을 잃었던 욥이 갑절의 축복을 받았다고 해서 아들을 잃은 슬픔이 사라지긴 할까. <눈먼 자들의 도시>로 우리에게 익숙한 주제 사라마구도 비슷한 의문을 품었던 것 같다. 세상을 떠나기 일년여 전, 그만의 결론을 소설로 써냈다. 누군가에게는 '사이다'가 되어줄 책이자 누군가에겐 신성모독으로 여겨질 책, <카인>을.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하와의 쌍둥이 중 장자, 동생을 죽인 최초의 살인자라는 낙인이 찍힌 카인은 시간여행을 하며 구약의 주요 사건들을 목격한다. 그리고 그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그를 비판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신을 전능하고 완벽하게 선한 성서의 하나님으로 여기면 읽기 좀 불편할 수 있다. 오히려 여호와를 인간의 성격과 감정을 닮은 '사람'처럼 생각해야 이해가 쉽다. 감히 신을 인간의 자리로 끌어내린 작가의 상상력과 구약의 여러 사건을 교묘히 비틀어 카인을 등장시킨 구성력에 감탄했다. 


아벨을 죽이고 도망친 카인은 에덴의 동쪽, '놋' 땅에 도착한다. 놋은 도망자, 방랑자를 의미하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인 카인의 시간여행(방랑)이 시작된다. 카인은 놋에서 '릴리즈'라는 유부녀를 만나 밤낮으로 향락을 즐기고 아들 '에녹'을 잉태한다. 릴리즈는 유대교 구약 원전에 등장하고 오늘날 성서에는 없는 인물인데, 아담에게 복종하기를 거부하고 남녀평등을 요구한, 성생활에서도 여성상위를 주장하고 임신, 출산, 육아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지도 않은, '요부'의 상징이자 매춘부가 섬기는 수호신이라고 한다. 릴리즈와 카인 사이에서 태어난 에녹의 이름을 따 그의 성읍을 '에녹성'이라 불렀는데, 성서에서 '에녹'은 '노아'의 조상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여 죽음을 거치지 않고 하늘로 들려올려진 의인으로 등장하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여기, 카인이 개입한 구약의 대표적인 사건들이 있다. 


씬1. 산에서 아브라함과 이삭을 만나다.

늘그막에 얻은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여호와의 명에 순종해 산에 오른 아브라함. 아들 이삭을 결박하고 칼을 내려치려는 순간, 카인이 개입해 아버지를 막는다. 정작 아브라함의 손을 멈추게 했어야 할 천사는 지각해 타이밍을 놓치고, 아버지에게 죽을 뻔 한 이삭은 묻는다. 


아버지, 제가 아버지한테 무슨 짓을 했기에 아버지는 저를, 아버지의 독자를 죽이고 싶어 하셨나요. 너는 잘못한 게 하나도 없다, 이삭. 그런데 왜 마치 제가 어린 양이라도 되는 것처럼 제 목을 따고 싶어 하셨나요, 아들이 물었다. (...) 그건 여호와의 생각이었다, 시험을 해보시려는 거였지. 무엇을 시험하는데요, 나의 믿음과 나의 복종을. 도대체 무슨 하나님이 아버지더러 자기 아들을 죽이라고 명령합니까. (98쪽)


이후 또 한번의 시간 여행으로 카인은 이삭 탄생 전, 젊은 아브라함을 만나 소돔과 고모라 사건을 목격한다. 나그네로 가장한 천사들과 조우한 카인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집에 묵는다. 멀리서 온 손님까지 성적노리개로 여겨 내놓으라 요구하는 난폭한 무리들은 이 도시의 성적 타락의 끝을 보여준다. 소돔과 그 인근 도시를 불태워 쓸어버리는 여호와에게 카인은 '죄없는 아이들'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



씬2. 우스 땅의 부유한 지주 욥을 만나다. 

카인은 욥의 집안 하인이 된다. 사탄의 시험으로 욥이 가진 모든 것(자녀, 재산, 건강까지도)을 빼앗기면서도 여호와를 원망하지 않는 모습을 본다. 욥의 생명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사탄에게 욥을 시험하도록 허락한 여호와를 비판하는 카인.


소돔에서 불에 타 죽은 아이 단 하나의 죽음만으로도 즉시 하나님은 유죄가 되는 것 아닌가요, 하지만 하나님에게 정의란 텅 빈 말이죠, 그리고 이제 하나님의 내기 때문에 욥이 고통을 받을 텐데 아무도 하나님에게는 책임을 묻지 않을 겁니다. (164쪽)


또한 하늘에 닿고자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에게 분노한 여호와가 제각각 다른 언어를 사용하게 만들고, 서로 말이 통하지 않아 뿔뿔이 흩어지는 사람들을 본 카인은 이 사건을 "여호와가 자존심 때문에 완성을 허락하지 않은 탑"이자 "우리와 하나님 사이의 오해의 역사"라고 평한다. 시나이 광야에서 모세가 여호와를 만나기 위해 자리를 비운 40일간 금송아지 우상을 만든 유대인들에 대한 여호와의 분노로 죽임 당한 삼천 명을 보고 카인은 "이 모든 죽음에 대해 누가 여호와를 벌할 것인가" 자문하기도 한다.



씬3. 방주를 만드는 노아와 세 아들을 만나다.

방주를 만드는 일을 돕는 천사들에게 카인은 묻는다. "정말로 지금 인류를 멸하고 나면, 그다음에 나오는 인류는 똑같은 오류, 똑같은 유혹, 똑같은 어리석음과 범죄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도망자이며 방랑자로 시간여행을 하며 구약의 굵직한 사건들을 경험하던 카인은 결국 노아의 방주에서 최후의 결단을 내린다. 신의 면전에 대고 "주를 죽이지 못하기 때문에 아벨을 죽였고, 따라서 의도로 보자면 주도 죽은 것"이라 외쳤던 카인은 다시 한번 인류를 죽임으로써 죽지 않는 신을 죽이고자 한다. 



소설에 등장하는 신은 인간을 시험하길 좋아하는 질투심 많고, 분노하고, 언쟁에 약한 모습을 보인다. 천사는 천국에서의 삶이 따분하다 고백한다. 인간은 처음부터 끝까지 악하다. 주제 사라마구는 신을 인간과 비슷한 불완전하고 악한 존재로, 천사들을 무기력하고 멍청한 모습으로 그림으로써 자신의 신념(아마도 무신론?)을 정당화하고 싶어한 건 아닐까 싶다. 어쨌든 이 소설이 소설이라는 점에 감사해야 할 것 같다. 그렇지 않았다면 인류는 존재하지 않았을 테니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네 아우가 어디 있느냐, 여호와가 묻자 카인은 질문으로 대답했다, 네, 죽였습니다, 하지만 진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주이십니다, 주가 내 생명을 파괴하지 않았다면 나는 아우를 위해 내 생명이라도 주었을 것입니다. 그것은 너를 시험하는 문제였다. 주께서 직접 창조한 것을 왜 시험한단 말입니까. (…) 아벨을 죽인 것은 너다. 맞습니다, 하지만 선고를 하신 것은 주이시고, 나는 그저 처형을 했을 뿐입니다. 저곳을 덮은 피는 내가 흐르게 한 것이 아니며, 너는 선과 악 사이에서 선택을 할 수 있었지만 악을 택했으니 대가를 치러야 한다. 망을 봐주려고 자리를 뜨지 않은 사람도 실제로 포도밭에 들어가는 자와 마찬가지로 도둑입니다, 카인은 말했다. (39-4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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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싫어서 오늘의 젊은 작가 7
장강명 지음 / 민음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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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20대 친구들과 '해외에서 이방인으로 사는 것'에 대해 얘기 나눌 기회가 있었다. 국제대학원 학생들이다보니 필리핀, 일본, 미국, 이집트, UAE, 프랑스 등 1년 이상 장기 체류했던 국가도 다양했다. 결국 사회 내 보이지 않는 편견은 있기 마련이고, 유색인종이자 여성인 우리는 고학력 전문직이거나 백인남성과 결혼하지 않는 이상 외국에서 상위계급로 진입하는 데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는 데에 의견이 모아졌다(물론 예외는 있겠지만). 순간 누군가(어쩌면 나일지도) 나지막히 얘기했다. "외국이든 한국이든 똑같은 흙수저일 바에는 선진국 가서 사람대접 받는 게 낫지 않을까?"


장강명의 소설 <한국이 싫어서>는 끝이 보이지 않는 취업 준비에 지친, 혹은 취업엔 성공했지만 저녁이 없는 직장생활에 회의를 품은 청년들이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분위기를 정확히 포착해 그린 소설이다. 어떤 사람들은 너무 쉽게 읽혀서, 깊이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안 좋아할 수도 있지만, 나는 누군가는 꼭 써내야 하는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잘 비춰주는 소설이라고 생각한다(이것도 문학의 기능 중 하나가 아닐까). <한국이 싫어서>, <댓글부대> 모두 현 시점에 청년층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들을 짚어냈고, 다른 기성세대보다 청년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고 평가하고 싶다.


부모의 재력도, 좋은 학벌도, 뛰어난 미모도 없는 평범한 주인공이 비전도 즐거움도 없는 회사에서 하루하루를 때우는 모습, 남자친구는 있지만(그나마 낫다) 현실적인 문제로 결혼은 엄두도 못 내고. 엄마는 재테크 잘못해서 재산을 날렸고, 언니는 커피전문점에서 만년 알바생이고, 여동생은 공무원 시험에 매달린다. 어쩌다 만나는 친구들은 시어머니, 남편, 직장 상사 욕에 신세한탄, 멀쩡한 대학 졸업한 친구는 수능을 다시 봐서 약대에 간다는 둥. 주변에 한 두명씩은 꼭 있는 20대 삶의 단면이다.


한국이 싫어서 호주행을 택한 주인공이 현지에서 고생 끝에 영주권, 이어서 시민권까지 따내는 모습은 대견하기까지 했다. 자력으로 공부해 학위를 취득하고, 파트타임으로 악착같이 일해 자신이 원하던 모습에 가까워진다. 오후 4시에 칼퇴근하고, 일년에 한 달 눈치보지 않고 휴가를 쓸 수 있는 곳, 처음 집을 살 때 2만 달러 정도 보조금이 지급되고, 자녀 학자금도 지원하는 나라, 접시를 닦아도 웨이트리스로 일해도 사람 대접 받을 수 있는 나라. 주인공은 한국이 싫어서 한국을 떠난 게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행복을 찾아 호주로 떠난 것이었다. 


행복도 돈과 같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어. 행복에도 '자산성 행복'과 '현금흐름성 행복'이 있는 거야. 어떤 행복은 뭔가를 성취하는 데서 오는 거야. 그러면 그걸 성취했다는 기억이 계속 남아서 사람을 오랫동안 조금 행복하게 만들어 줘. 그게 자산성 행복이야. (...) 어떤 사람은 정반대지. 이런 사람들은 행복의 금리가 낮아서, 행복 자산에서 이자가 거의 발생하지 않아. 이런 사람은 현금흐름성 행복을 많이 창출해야 돼. (...) 그런데 나는 한국에서 나한테 필요한 만큼 현금흐름성 행복을 창출하기가 어려웠어. 나도 본능적으로 알았던 거지. 나는 이 나라 사람들 평균 수준의 행복 현금흐름으로는 살기 어렵다, 매일 한 끼만 먹고 살라는 거나 마찬가지다, 하는 걸. (184-185쪽)


한국에 잠깐 들어온 주인공은 언니와 동생에게 함께 호주에 갈 것을 권하지만 거절당한다. 6년 만에 만난 친구들은 여전히 직장 상사, 시어머니, 남편, 한국을 욕하고 있었다.


걔들은 아마 앞으로 몇 년 뒤에도 여전히 똑같은 얘기를 하고 있을 거야. 솔직히 상황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 자체가 없는 거지. 걔들이 원하는 건 내가 "와, 무슨 그럴 쳐 죽일 년이 다 있대? 회사 진짜 거지같다. 한국 왜 이렇게 후지냐."라며 공감해 주는 거지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냐. 근본적인 해결책은 힘이 들고, 실행하려면 상당한 용기가 필요하니까. 회사 상사에게 "이건 잘못됐다."라고, 시어머니에게 "그건 싫다."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기가 무서운 거야. 걔들한테는 지금의 생활이 주는 안정감과 예측 가능성이 너무나 소중해. (120쪽)


과연 나는 현재가 주는 안정감과 예측가능성에 취해 정체한 사람인지, 주인공처럼 자신이 원하는 행복을 찾아 도전하는 사람인지 되돌아보게 된다. 대한민국 청년들도 이 소설을 통해 자신을 돌아 봤으면 좋겠다. 해외 다녀오면 나이는 나이대로 먹고, 국내 취업 못하면 어쩌지 하고 발만 동동 구를 것이 아니라, 한국이 싫으면 싫다고 당당히 얘기할 수 있는 배짱, 내가 행복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떠나 살아남겠다는 깡이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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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장소] 2016-01-31 00: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차별이 없는 곳은 없고..
외국에선 백인도 자기들끼리 나눠지는것이 있는모양 예요.
그 땅의 원주민과 아닌 사람들 ㅡ로 ^^
어디서건 차별이 존재한다면 ...무얼위해 견디나
그런 생각을 들게하던 소설이기도 해요.
잘 읽고갑니다.^^

아말 2016-01-31 23:30   좋아요 1 | URL
네, 말씀하신대로 어디든 차별이 없는 곳은 없을 것 같아요. 인간과 인간이 완벽히 평등한 곳도 없을테고요. 그런 면에서 저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을 지는 주인공의 모습이 보기 좋았던 거 같아요. 댓글 감사합니다 그장소님^^

[그장소] 2016-01-31 23:38   좋아요 0 | URL
네 ㅡ저도 그점을 예쁘게 봤어요.
모험할 수 있을때 하라고 ㅡ
젊은 아이들 ㅡ저는 그렇게 해줄려고요.^^
 
[불안한 낙원]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불안한 낙원
헤닝 만켈 지음, 김재성 옮김 / 뮤진트리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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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원제는 <A Treacherous Paradise>로 사전적 의미는 '신뢰할 수 없는, 위험한, 배반/반역하는 낙원'이다. 여기서 '낙원'은 좁게는 주인공 '한나'의 활동 무대가 되는 파라다이스 호텔(로 가장한 매음굴)을, 넓게는 다이아몬드를 비롯한 천연자원이 풍부한 포르투갈령 동아프리카(현재의 모잠비크)를 의미한다. 한 공간(호텔)에서 매일 얼굴을 마주치며 지내지만 서로 신뢰하지 못하는 백인과 흑인들, 아프리카 점령지에서 본국보다 부유하게 살지만 언제 폭동이 일어날지 몰라, 하인들에게 해를 당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더욱 폭력적으로 군림하는 점령자의 불안한 상태를 나타내는 중의적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가난에 등 떠밀려 독립한 18세 스웨덴 여성 한나는 도시에서 하녀로 일하다 호주행 증기선에 선상 요리사로 취직한다. 3등 항해사와 결혼한지 두 달 만에 풍토병으로 남편을 잃고, 슬픔에 빠져 포르투갈령 동아프리카의 로우렌소 마르케스에 배가 정박한 틈을 타 몰래 떠난다. 호텔인줄 알고 투숙한 곳은 알고보니 도시 최대의 매음굴이었고, 설상가상으로 아이까지 유산하기에 이른다. 몸이 회복된 후 매음굴의 포주 '바즈'의 청혼을 받고 파라다이스 호텔의 안주인이 되어 식민지 백인여성의 지위(흑인들에게 모든 일을 시키고 본인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 이들의 의무이자 권리)를 누린다. 발기부전 특효약이라는 가루를 매음굴의 여성에게 받아 남편의 음식에 섞은 다음 날, 포주는 주검으로 발견되고, 얼떨결에 한나는 거액을 납세하는 매음굴을 운영하는 여성사업가이자 거부의 지위를 상속받는다. 


모든 것을 처분하고 아프리카를 떠나려는 그녀를 붙잡은 것은 남편의 백인 절친, '피멘타'가 살해된 사건이었다. 유색인을 쫓아 공격하도록 훈련시킨 사냥개를 백인에게 판매하는 일로 떼돈을 번 피멘타는 '이사벨'이라는 흑인여성과 살림을 차려 아이까지 둘 낳았다. 어느날 포르투갈의 본처가 아이들을 데리고 찾아오는 소동이 벌어지고, 이사벨은 한나가 보는 앞에서 피멘타를 칼로 찌른다. 재판도, 변호인도 없이 평생 감옥에 투옥될(본국에서 사형제가 폐지되지 않았다면 즉결 처형되었을지도) 운명에 처한 이사벨을 돕는 일에 한나는 책임감을 느낀다. 



스토리는 단순하지만 한나의 시선에 따라 사건이 묘사되는 방식은 섬세했고, 등장인물의 캐릭터는 생생했다. 한나의 주변에 있는 인물들은 인종에 대한 편견, 인종차별의 형태에 따라 크게 세 부류로 구분된다. 


"흑인들은 우리들의 그림자에 불과해요. 그들에겐 색깔이 없어요. 우리가 어둠속에서 그들을 보지 않아도 되게 신은 그들을 검게 만드셨어요. 그리고 그들이 어디서 왔는지 결코 잊어서는 안돼요." (135쪽)


첫째, 이 사회에서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인종차별적 편견에 사로잡힌 사람들이다. 점령지의 백인들(남녀 할 것 없이)뿐 아니라 매음굴의 흑인 여성들도 마찬가지다. 백인들에게 차별을 당하는 흑인들은 도리어 다른 유색인을 차별하기에 이른다. 한나가 이사벨의 석방 자문을 위해 멀리서 모셔온 인도계 변호사 판드레가 매음굴을 방문하자, 백인에게 가장 인기가 없는 여성조차도 '피부색이 갈색'이라는 이유로 그를 손님으로 받기를 거부한다. 


두번째 부류는 인종차별을 하지만 자기 이익에 따라 동등하게 대하기도 하는 사람들이다. 매음굴 포주인 바즈는 흑인을 믿지 않고 백인들이 아프리카를 문명화시켰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으나 자기가 운영하는 사업체의 흑인여성들에게는 나은 처우를 보장한다. 다른 포주들은 1:9의 비율로 이익을 나눈다면, 그는 5:5로 공평한 편이었고, 폭력적이거나 무리한 요구를 하는 손님들은 제재하기도 했다. 한편 바즈의 절친이자 이사벨의 남편이던 백인 피멘타는 유색인종 혐오를 교묘히 이용해 부자가 된 사람이었지만, 흑인 정부과 혼혈 자녀들을 거둬들임으로써 백인 사회에서 배척당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인종적 편견이 없거나 최소한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사람들이다. 대표적 인물이 한나다. 자신도 모르게 다른 백인들처럼 흑인을 하대한 이후에는 괴로워하며 후회하고, 이후로는 백인들에게 물들지 않도록 스스로 행동을 조심한다. 매음굴의 여성들에게 책임감을 느끼고, 자립해서 시장에 채소가게라도 낼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남편을 살해한 이사벨을 딱하게 여겨 매일 먹을 물과 음식을 날라다 주기도 한다. 이사벨의 오빠인 모세스도 이 부류에 속한다. 당당하게 백인을 똑바로 바라보고 대화하고, 백인 옆쪽 벤치에 평등하게 앉기도 한다. 인종이 아닌 인간 대 인간으로 한나를 대하는 거의 유일한 사람이기에, 그를 통해 한나는 위로를 얻는다. 


"흑인들은 불필요한 고통을 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백인들은 현재의 우월한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다른 사람들, 아랍인들과 인도인들은 우리가 사는 이 도시에 진실이 파고들 여지가 없기 때문에 거짓말을 한다." (208쪽)


위의 세 부류에도 속하지 않는 등장인물(?)은 주인공 한나와 거의 비슷한 비중으로 등장하는 침팬지 카를로스이다. 매음굴에서 조끼를 입고 손님들에게 서빙을 하고, 포주가 죽은 후에는 한나와 한 침대에서 자려고 든다거나, 인간의 말을 못 알아듣는듯 하면서 모든 것을 알고 있는듯한 태도를 보인다. 동물이지만 인간과 함께 생활하면서 동물인지 인간인지 헷갈릴 정도로 '문명화된' 유인원의 모습으로, 전 주인 바즈와 현 주인 한나가 아프리카에서 거의 유일하게 믿고 의지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어쩌면 인종 편견이 없는 세 번째 부류의 모습이 투영된 건 아닐까. 동물도 인간도 아닌 중간 존재, 흑인도 백인도 아닌 모호한 존재. 결국 침팬지 카를로스는 유색 인종이 눈에 띄면 공격하도록 훈련된 목양견에게 물려 죽는 비극을 맞는다.



소설의 장점은 20세기초 포르투갈령 아프리카에서 흑/백인간 몰이해와 두려움으로 인해 간극이 더욱 벌어지는 상황을 세밀하게 묘사했다는 것이다. 다이어트를 위해 촌충(기생충)을 먹는 여자, 자신이 죽인 자와 그의 죽음으로 생명을 얻을 기회를 놓친 아직 잉태되지 않은 아이들까지 애도하며 감옥에서 침묵을 지키는 여자, 한나가 무언가를 질문하면 '백인들만 하는 질문'이라며 놀라는 여자, 남편과 아이들이 있음에도 돈을 벌기 위해 몸을 팔면서 자신은 백인들하고만 자기 때문에 남편에게 떳떳하다는 여자들의 모습 등은 이들간 문화적 괴리가 얼마나 컸는지 드러낸다. 한편으로는 모잠비크와 스웨덴 문화 양쪽 모두를 잘 아는 헨닝 망켈이기에 그려낼 수 있는 장면이라고도 생각된다. 그는 아프리카를 제2의 고향이며, '한쪽 발은 모래에, 다른 쪽 발은 눈에' 묻고 산다고 자칭할 정도로 사랑했고, 결국 애정어린 눈빛으로 이 땅을 묘사한다. 이사벨의 고향인 흑인마을을 방문한 한나가 마침내 깨달은 것은 아프리카의 풍성함과 백인의 정서적 빈곤함이었다.


"이 불가해한 가난의 한가운데서 나는 풍요의 섬들을 볼 수 있다. 존재할 수 없었을 행복, 살아남을 수 없었을 온기. 이것을 통해 온갖 부와 안락에 파묻혀 사는 백인들의 또 다른 종류의 가난을 나는 볼 수가 있다." (454쪽)



이 모든 이야기는 모잠비크에서 발견된 식민시대 문서에 적힌, 가장 큰 매음굴을 운영하고 주요 납세자였던 한 스웨덴 여성에 대한 기록이 모티브가 되었다고 한다. "우리가 아는 작은 사실에 우리가 모르는 나머지를 더하여" 쓴 소설로 당시 시대상황을 간접 경험하게 해준 저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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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부대 - 2015년 제3회 제주 4.3 평화문학상 수상작
장강명 지음 / 은행나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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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보다 더 현실같은 소설이다. 작가가 기자 경력이 있다고 하니, 더욱 취재에 기반한, 있을 법한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책 소개를 얼핏 접했을 때는 SNS나 댓글을 이용한 마케팅에 대한 내용인 줄 알았는데, 읽어보니 소설이 다루는 범위가 훨씬 넓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사회 계층, 청년 문제, 정치까지. 


나도 PC 통신 시절부터 온라인 커뮤니티 활동을 꾸준히 해 왔고, 지금도 활발하게 SNS를 사용하는 젊은 세대다. 게임에 미쳤던 때도 있었고, 세이클럽, 프리챌, 싸이월드를 거쳐 블로그,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을 활용하며 트렌드를 꾸준히 팔로업 해왔다 생각했는데,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마치 구닥다리 세대가 되어버린 듯 했다. (그런 면에서 나보다 나이도 훨씬 많은 작가님이 이걸 써내신게 대단한듯) 소설 속 댓글부대인 팀-알렙은 나보다 조금 어린 20대(소설에서는 1985년부터 1995년 사이에 태어난 청년층에 대한 언급이 있었다)의 이야기였는데, 슬프게도 여기 나오는 몇몇 용어들은 검색 없이는 이해할 수 없었다. 나와 같은 독자의 마음을 미리 안 걸까, 참고한 기사 제목과 사이트명(리그베다위키)을 책 말미에 첨부한 저자의 배려로, 모르는 용어는 따로 찾아볼 수 있었다. 



소설은 온라인 댓글조작 사건을 통해 사회 권력 지배 구조를 보여 준다. 작가의 전작 단편을 읽지 않았기 때문에 소설 속의 주인공 팀-알렙의 멤버 세 사람의 기존 캐릭터가 어떠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소설 속에서 이들은 폐쇄적인 온라인 커뮤니티에 잠입, 조작을 통해 사람들을 분열시키고 조종하려 든다. 물론 이들 위에는 자금을 대고 지령을 내리는 미스터리한 조직이 있다. 합포회라는 이름의 단체. 국가기관, 경제단체, 수수께끼의 민간인들이 섞여 있다는 것만 아는 상태로 그들의 입맛에 맞춰 일한다. 3인의 정예 댓글부대 팀-알렙은 온라인 커뮤니티 나름의 질서를 교묘히 교란시킴으로써 견고하게만 보이던 온라인 커뮤니티가 해체되고, 구성원들이 서로 물어뜯고 싸우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세상을 바꿨다 믿었지만, 그들 역시 더 강한 권력과 자본에 의해 지배당했고, 필요가 다하면 버려지는 체스판의 말에 불과했다. 팀-알렙의 리더인 삼궁은 소설 중반에 합포회가 모시는(?) 남산 노인을 만나게 되고, 댓글조작 프로젝트의 '깊은 뜻'을 짐작하게 된다. 


촛불 들고 나섰던 애들도 아마 바뀌지 않을 거야. 1985년부터 1995년 사이에 태어난 애들. 특히 여자애들. 난 그 애들은 아주 버렸다고 생각해. 걔들은 평생 정부 탓이나 하면서 살아갈 거야. () 어쩌겠어. 투표를 못하게 하겠어, 인터넷을 못하게 하겠어? 그냥 그렇게 가는 거지. 한동안은 그 애들이 인터넷을 쥐고 흔들겠지. 그리고 인터넷이 현실을 흔들겠지. 암흑시대가 오는 거야.

우린 그다음 세대를 공략해야 . 아직까지는 머리가 그렇게 굳지 않은 애들. 아이들의 정신이나마 건강하게 만들어야 . 펩시콜라가 말이야, 코카콜라랑 싸우다 싸우다 안 되서 그냥 이십 대 이상은 안 된다, 하고 백기를 들었어. 아무리 콜라 맛을 좋게 하고 비싼 모델을 고용해서 브랜드 이미지를 기깔나게 만들어봐도 스물이 넘은 사람은 설득할 수가 없었던 거야. 그래서 어른들은 포기하고 어린애들을 상대로 마케팅을 했지. 먼 미래를 내다보고. 우리도 그렇게 해야 돼… (152)

 


온라인커뮤니티들 -> 댓글부대 -> 합포회 -> 남산노인 -> (그 위의 누군가?) 로 이어지는 피라미드의 최상층에 있는 이는 '정부탓'만 하고 자포자기하는 사회 분위기를 염려한다. 다시 말해, 그가 걱정한 것은 대중이 만들어내는 사회의 분위기, 여론이었다. 남산 노인은 말한다. 경제가 사회를 활력있게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라, (다 같이 잘살자고 희망을 갖는) 사회 분위기가 출산율을 높이고 경제를 살아나게 한다고. 인터뷰를 통해 팀-알렙의 댓글조작 이야기를 취재하는 K일보 기자(언론)는 이들의 활동을 세상에 폭로함으로써 부정적인 여론을 형성하고, 결국은 이 '남산 노인'을 압박, 견제하고자 했지만, 사회를 지배하는 기득권층의 견고한 전선 앞의 개인은 무력할 뿐이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또 다른 축은 팀-알렙의 멤버 세 사람 각자의 스토리로, 주류 사회에 편입되지 못한 하위계급 간의 먹이사슬 관계를 극단적으로 보여 준다. 팀-알렙의 세 사람은 가방끈(학력)이 짧고, 정규직으로 노동시장 진입에 실패한, 단칸방에 살며 연애와 결혼을 현실적으로 꿈꾸기 어려운(심지어 모태솔로), 한국 사회에서 속된 말로 '루저'라 불리우는 청년층을 대표한다. 세 사람은 댓글알바로 쉽게 번 돈을 윤락녀들에게 탕진하며, 돈으로 섹스에서 우위를 점한다는 사실을 통해 권력을 누린다는 착각에 빠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래선 안된다는 걸 알면서도 감정적으로, 인간적으로 여성들을 의지하고 싶어하는 그 나이대의 청년일 뿐이다. 그러나 돈으로 연결된 관계는 쉽게 휘발될 뿐이라는 교훈만 남긴다.


더 이상은 스포일러가 될 것 같아(이미 했는지도?) 이쯤에서 멈추고, 이 책이 흥미로웠던 이유를 꼽아볼까 한다. 소설은 온라인 커뮤니티와 댓글 문화, 그 이면에 숨겨진 의도와 결합된 권력구조 등을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한국은 인터넷 보급률, 사용률이 세계적으로 높고 변화의 속도 또한 빠르다. 온라인에서 벌어지는 이런 사건과 현상들은 어쩌면 세계 최초일지도 모르겠다. 현실에서는 소설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지만, 소설에 묘사된 것이 100퍼센트 허구는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온라인이기에 더욱 극단적으로 표출되는 것 뿐이지, 친목 커뮤니티의 폐쇄성, 배척성, 마녀사냥, 왕따 등은 사실 온라인 만의 문제라 보기도 어렵다. 실생활에서도, 한국인들이 모인 오프라인 커뮤니티에도(심지어 해외에서도) 벌어지는 일들이 아닌가. 소설은 이를 통해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인터넷은 과연 항상 좋을까, 온라인을 신뢰해도 되는 것일까, 정보통신 발달이 불평등을 완화한다고 볼 수 있을까. 

소설 속 합포회 리더가 했던 말이 생각나 인용한다.


처음에 인터넷이 등장했을 때 내 또래들은 정말 엄청난 도구가 왔다, 이걸로 이제 혁명이 일어날 거다, 하고 생각했지. 모든 사람이 직위고하에 관계없이 자유롭게 의견을 교환하고 토론으로 대안을 찾아낼 있는 길이 열렸다고 생각했지. 인터넷이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고 권위를 타파해서 민주화를 이끌 거라고도 믿었어. 거대 언론이 외면하는 문제를 작은 인터넷신문들이 취재하고, 인터넷신문조차 미처 못 보고 넘어간 어두운 틈새를 전문 지식과 양식을 갖춘 블로거들이 파고들어갈 줄 알았어. () 그냥 거대 언론이 하던 나쁜 짓을 아마추어들도 소자본으로 하게 됐을 뿐이야. 거대 언론이 점잖게 기업에 겁을 주며 광고를 따냈다면 인터넷신문들은 대놓고 삥을 뜯지. 블로거들은 동네 식당을 상대로 협찬을 요구하고. 이것도 민주화라면 민주화지. 협박, 공갈, 갈취의 민주화. 누구나 더럽고 야비한 짓을 할 수 있게 되는 민주화. (55)



과연 우리는, 

한국 사회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걸까.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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