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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묻힌 거인 - 가즈오 이시구로 장편소설
가즈오 이시구로 지음, 하윤숙 옮김 / 시공사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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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은 5~6세기의 영국, 로마인이 브리튼 섬에서 철수한 후 색슨족이 들어와 정착지를 세운 이후다. 제목의 '거인'부터, 소설 초반에 언급되는 도깨비(라 번역되었지만 오거ogre를 말함), (dragon), 기사(knight)와 전사(warrior)의 등장으로 <반지의 제왕>과 같은 판타지의 몽환적 분위기를 자아낸다.

 

주인공인 브리튼족 노부부 엑슬과 베아트리스는 이웃마을에 살고 '있다고 여기는' 아들을 찾아 여행을 떠난다.  아들이 정말 이웃마을에 살고 있는지 부부는 정확히 알지 못한다. 과거에 대한 기억을 잃었기 때문이다. 단지 그들의 노쇠함 때문이 아니라, 마을 전체가 무언가를 잊었다. 이야기 속 자주 언급되는 '안개'와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부부의 영향으로, 독자도 희미안 안개 속을 걷는 듯 답답한 마음으로 노부부의 여정을 따라가게 된다. 사실 중반까지는 읽기가 쉽지 않았는데, 노부부의 모습도, 이야기의 배경도, 그들이 묘사하는 장소와 등장하는 마을 사람들도 쉽게 상상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엑슬과 비어트리스는 오랫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온 노인 임에도 서로를 끔찍이 사랑한다. 비어트리스는 수시로 엑슬이 옆에 있는지 이름을 불러 확인하고, 엑슬도 아내를 '공주'라고 부르며 아낀다. 부부는 도깨비에 잡혀갔다 상처를 입고 마을사람들에게 위협을 당하던 소년 에드윈과, 그를 구하고 암용을 처치하기 위한 미션을 수행하러 온 색슨족 전사 위스턴과 동행하게 된다. 부부는 브리튼족, 소년과 전사는 색슨족이지만 당시엔 양쪽 부족이 평화롭게 지내던 때였고, 비록 언어는 다르지만 전사는 어릴적 브리튼족에게 끌려가 훈련받은 경험이 있어 부부와 대화할 수 있었다.

 

일행은 아서 왕의 조카이며, 브리튼족 늙은 기사인 가웨인 경을 마주친다. 위스턴은 동쪽 나라에서 자신의 신분을 밝히며 '케리그'를 죽이겠다고 알리지만, 가웨인 경은 그건 아서 왕이 지시한 자신의 임무라며 동쪽으로 돌아가라 경고한다. 기사와 전사의 신경전을 보며 엑슬은 과거 자신이 비슷한 경험(전사)이 있다는 걸 어렴풋이 기억해 낸다. 노부부는 안개의 정체가 암용이 내뿜는 입김이며, 용이 죽으면 사람들이 기억을 되찾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고, 소년은 자신을 구해달라는 엄마의 환청에 시달리며 자신도 모르게 용이 있는 곳으로 일행을 이끈다.

 

소설의 하이라이트는 뒷부분, 일행이 용을 만나 각자 진짜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에 있었다. 이야기의 2/3 진행되어도 여전히 뿌연 안개 속에 단서들이 흩어져 있다가 순식간에 모든 퍼즐이 맞춰져 놀라운 반전(?)을 선사한다. 용의 입김, 안개 사이에 숨겨져 있던 진실은 대량학살이었다.  아서 왕의 정복전쟁 중 브리튼족 군대가 색슨족의 선량한 주민들을 대량학살하고 그로 인해 두 종족간의 전쟁과 불화가 끊이지 않았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용에게 마법을 걸어 사람들이 기억하지 못하고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도록 한 것. 학살 당한 색슨족의 전사는 용을 죽여 모두가 진실을 기억하길 원하고, 가해자인 브리튼족 기사가 이상의 복수전이 없기를 바라며 용의 수호자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엑슬은 아서왕의 임무를 맡은 다섯 기사 중 하나로 평화를 지향하는 쪽이었고, 엄숙한 맹세를 어기고 잔인한 학살로 협정이 깨지자 왕을 비난하고 떠났다. 위스턴의 어릴적 기억에 엑슬은 '전쟁의 손길이 무고한 사람들에게 미치지 않도록 할 방법을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위스턴은 같은 색슨족 소년 에드윈에게 '역사' 기억할 것을 당부하고,  브리튼족 부부는 에드윈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량한 브리튼족'이 있음을 기억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해가 돼요. 내게 빵을 나눠준 브리튼족을 미워해야 한다고요? 얼마 전 가웨인 경이 그랬던 것처럼 날 적에게서 구해준 브리튼족도요?"

"존경하고 싶고, 심지어는 사랑하고 싶은 브리튼족도 있지. 나도 너무 알아. 하지만 각자 상대에게 느낄 있는 감정보다 훨씬 중요한 다른 일들이 우리에게 있어. 아서 밑에 있는 브리튼족들이 우리 친족을 살육했다는 사실이야. 우리 엄마와 네 엄마를 끌고 간 것도 브리튼족이었어. 우리는 브리튼족의 혈통을 가진 모든 남자와 여자와 아이들을 미워해야 할 의무가 있지. 그러니 약속해줘. 너에게 나의 기술을 전해주기 전에 내가 죽더라도 마음속에 이 증오심을 잘 간직할 거라고. "  (360)

 

비어트리스 부인의 목소리가 바람을 뚫고 들려왔다.

"에드윈! 우리 네게 부탁하고 싶은 있어. 앞으로 살아가면서 우리를 기억해줘. 네가 아직 소년이었을 느꼈던 우정과 우리를 기억해줘."

에드윈은 말을 듣는 동안 다른 뭔가가 생각났다. 전사에게 했던 약속. 모든 브리튼족을 미워해야 한다는 약속. 그러나 분명 위스턴은 이들 다정한 부부까지 안에 포함시켜 말은 아니었을 것이다.  (450) 

 

 

아들을 찾기 위해 떠난 여행의 끝자락에서 엑슬과 비어트리스는 아들이 죽었음을 기억해 낸다. 강 건너편 섬에 데려다 주는 뱃사공을 만난 부부는 함께 떠나고 싶어하지만, 통과 의례가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뱃사공은 부부의 가장 소중한 기억을 각자에게 묻고, 같은 기억을 통해 오랫동안 이어져 온 지속적인 사랑이 확인되면 두 사람을 함께 배에 태워 간다. 진실한 사랑으로 탄탄히 연결된 부부가 한 날 한시에 떠나는 것 만큼 축복된 일은 없을 것인데. 뱃사공을 만나 인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비어트리스를 떠나보내는 엑슬의 모습이 안타까움과 슬픔, 동시에 많은 생각을 남긴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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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스트레인저]를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트랙백)을 보내주세요.
리틀 스트레인저
세라 워터스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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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이 '매끈하게' 읽히기 원치 않는다."는 저자의 말대로, 매끈하게 읽고 '음, 범인은 OO였군!'하고 깔끔하게 덮을 수가 없었다. 읽는 중에는 니콜 키드먼 주연의 오래된 영화 <디 아더스>가 생각났고, 중반 이후에는 앤터니 호로비츠의 <셜록 홈즈 모리어티의 죽음>이 떠오른 반면, 마지막 장까지 다 읽고 나니 이건 스릴러도 추리소설도 아닌, 심리소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정하고 독자를 헷갈리게 만드는 작가님.


배경은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영국 워릭셔, 낡은 대저택 헌드레즈홀과 함께 쇠락해가는 젠트리(귀족 바로 아래의  신흥 상류계급) 에어즈 가문 이야기다. 얘기를 들려주는 화자는 노동자 계급치고는 성공한 의사이며 마흔 정도의 노총각인 닥터 패러데이다. 30여년 전 그의 어머니는 헌드레즈홀의 유모였는데, 어린 패러데이는 동네 꼬마들과 에어즈 부인에게 '메달'을 수여받던 당시의 웅장하고 위엄있는 저택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에어즈가의 주치의가 응급 상황인 관계로 30년 만에 '우연히' 방문한 헌드레즈홀을 보고 패러데이는 '등골이 오싹할 정도'로 놀란다. 악화된 재정으로 힘겹게 가문을 이끌어가는 24세의 장남 로더릭, 그의 누나 '인물 없고 패션 감각 없는' 캐럴라인, 상한 얼굴에도 상류층의 우아한 기품을 잃지 않은 에어즈 부인을 만나고, 그들의 삶에 관심을 갖는다. 

 

이웃 대저택을 매입해 이사온 부부를 초대해 파티를 열던 중, 늙고 순한 애완견 지프가 무엇에 홀린듯 사고를 내고, 이를 시작으로 저택에는 영문을 알 수 없는 기이한 일이 벌어지기 시작한다. 로더릭은 천장에 그을음을 남기고, 물건의 위치를 바꿔놓고, 불을 일으키는 초자연적인 '그것'이 어머니와 누이를 감염시키거나 해칠 것을 우려해 스스로 고립되길 택한다. 에어즈 부인에게는 공 튀는 소리, 갇힌 새의 퍼덕이는 날갯짓소리, 벽의 낙서, 폐쇄된 유아실과 연결된 전성관에서 나는 소음 등이 어린 나이에 세상을 떠난 장녀 수전을 떠오르게 한다. 집안일을 돕던 일꾼들도 겁에 질려 떠나는 저택의 위기에서 에어즈가 사람들은 닥터 패러데이에게 점점 의지하게 된다.


어느 순간부터 서술자인 닥터 페러데이에게 모순적인 모습이 보인다. 의학적 지식과 현상에 입각해 로더릭과 에어즈 부인의 '질병'에 대한 진단을 내리고, 객관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것 같으면서도, 건강보험제도가 실시되면 '젠트리와 걸맞지 않은' 노동자 계급 출신의 자신이 경쟁에서 도태될 수 있다는 우려로 밤잠을 설치는 모습에서는 신분에 대한 콤플렉스를 드러낸다. 한때 사랑했던 '좋은 집안 출신' 여인을 그 부모의 반대로 떠나 보낸 경험으로 연애에 환멸을 느낀다면서도 캐럴라인에 대한 욕망을 숨기지 않는다. 캐럴라인을 인물 없고 패션 감각 없다고 폄하하면서도 결혼하고 싶어하고, 그녀가 마냥 기쁘게 결혼할 수 없는 시기임을 알면서도 급하게 밀어 부치기도 한다. 사람들은 비극으로 기억하는 저택에 자주 들러 '그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모습에는 소름이 돋는다. 


무엇이었을까? 헌드레즈홀에 초자연적 현상을 일으키고 저택을 집어삼킨 존재는. 저자는 끝까지 비밀을 밝히지 않고 독자들의 상상에 맡긴다. 스릴러를 원한다면 폴터가이스트 현상으로 읽을 수도, 추리소설을 원한다면 이야기 곳곳에 숨겨진 단서를 찾아 짜맞춰 볼 수도 있다.  주인공의 강력한 욕망이 초자연적 현상으로 해석하도록 유도했을 수도 있고, 몰락한 귀족 가문의 변화하는 세상을 향한 두려움이 그 자신을 옭아맨 것일 수도 있다. 제목인 '리틀 스트레인저'를 닥터 패러데이로 보든, 초자연적 존재로 보든, 사회 변화를 몰고온 낯선 존재로 여기든 독자의 해석이 옳다고 본다.


역자도 밝혔듯이, 닥터 패러데이와 캐럴라인의 대화 상으로는 계급, 나이 차를 짐작하기 어렵다는 게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이다. 나이는 패러데이가 훨씬 많지만 캐럴라인의 신분이 더 높기 떄문에 함부로 말을 놓기 어려운 상황임을 감안하고 읽으면, 이 소설이 좀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 알라딘 공식 신간평가단의 투표를 통해 선정된 우수 도서를 출판사로부터 제공 받아 읽고 쓴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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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형제들에게 전화를 거네 민음사 모던 클래식 72
요나스 하센 케미리 지음, 홍재웅 옮김 / 민음사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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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기 좀 난해하다. 지문없이 대사만 있는 희곡 같은데 신기하게도 머릿속에 장면이 상상된다. 작가의 탁월함일까. 읽기 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이해하기 어렵고, 특별한 묘사가 없는데도 주인공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독창적인 소설이다. 연극으로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실제 일어났던 자살 폭탄 테러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다. 주인공 아모르(아랍계 이주민이다)는 친구 샤비에게 전화로 자살폭탄 테러 소식을 듣고, 사건 발생 현장에 간다. 테러 소식을 뉴스로 접한 주변 사람들은 그에게 끊임없이 전화를 걸어 안부를 확인한다.


아모르. 한 가지 기억해 둬.


나는 홀을 향해 걸어갔다.


증오는 증오로 멈춰지지 않는 법이야.


신문 1면에서는 부서진 자동차와 접근 금지 테이프, 연기, 그리고 제목이 보였다.


증오는 오직 사랑으로만 극복될 수 있어. 이게 영원한 규칙이야.   (41-42쪽)



아모르는 테러범이 아닌데도, 자신의 이름과 머리색깔, 피부색, 복장, 말투로 인해 심리적 압박감을 느낀다. 자신을 잠재적 테러범으로 보는듯한 사람들의 시선, 수배자로 지정돼 미행이 따라 붙은듯한 느낌, 심지어 자신이 테러범이 아닐까 착각하는 지경까지 이른다.


나는 내 형제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야기한다 : 바로 지금이야. 침대에서 이불을 걷어차고 나와. 면도를 해. 옷을 제대로 깔끔하게 챙겨 입어. 특히 주의할 것. 옷은 익명성을 적당히 보장할 수 있는 것으로. 너무 평범하기 때문에 오히려 평범함으로 튀게 하면 절대 안 돼. 팔레스타인 두건 '케피예'는 집에 놔둬. 의심을 살 만한 가방 같은 것은 들고 오지마.


집을 나서면 너희는 더 이상 너희가 아니야. 바로 그 순간 너희는 대표자로 바뀌는 거야. 그러니까 주변에 녹아들 수 있도록 집중하는 것이 특히 중요해. 어떤 것에든 그리고 누구에게든(애완동물과 쇼윈도 마네킹을 포함해서) 미소를 보여주도록 해. 최대한 정상적으로 걸어. 누가 문을 잡아주기라도 하면 감사하다고 크게 말해. 너희 때문에 미안하다고 사과해. 전철에서는 소곤소곤 얘기하고, 극장에서는 조용히 웃고, 마치 보이지 않는 가스처럼 변해서 행동하도록 해. (59쪽)



'하산'이라는 미들네임에서도 드러나듯, 저자도 튀니지인 아버지와 스웨덴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아랍계다. 이민자의 혼란스러운 정체성을 소재로 한 소설을 주로 썼는데, 작가 본인의 경험이 투영된 자전적 이야기인 것 같다. 아랍계, 무슬림이라는 정체성은 유럽에서 골칫덩어리 이민자라는 사회적 낙인이 된다. 특히 폭탄 테러와 같은 극단적 범죄가 일어나면 더더욱.


한편으로는 이상하다는 생각도 든다. 우리나라에서 외국인이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모든 외국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바라보지는 않는다. 가령, 미국 백인 남성이 국내에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해서 모든 백인 남성만 보면 손가락질하고 피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테러리즘은 없어져야 할 범죄임을 일부 극단주의 종파를 제외한 대다수의 아랍인이 인정하고 있고, 모든 무슬림이 테러리스트는 아닌데, '이슬람=테러'라는 인식이 왜 이렇게 굳게 자리잡혀 있는 것인지, 오히려 선량하고 힘없는 소수에 대한 폭력은 아닐지 생각해 보게 된다.


유럽의 마이너리티인 아랍계 이민자 화자의 입을 빌려 풀어낸 이야기라는 점에서 요나스 하센 케미리의 <나는 형제들에게 전화를 거네>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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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종
미셸 우엘벡 지음, 장소미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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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영국에서 출생신고된 남자 아기 이름 1위가 '무함마드'라는 기사를 읽은 적 있다. 벌써 7년째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고. 내가 영국인이었더라도 기사를 보는 순간 멈칫했을 것 같다. 통계청에서 따로 발표를 안했다 뿐이지 아랍계 이민자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는 다른 서유럽 국가의 경우도 비슷한 상황이다.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테러, 아랍 아프리카계 이민자 사회 통합문제, 파리의 샤를리 에브도 테러, IS에 이르기까지 지구 반대편에 사는 우리도 놀라게 하는 일이 잦아지는데, 이 책은 이런 상황에 중심에 놓여있는 유럽인(그중에도 프랑스인)의 두려움, 걱정을 반영하고 있다.

 

2022년 프랑스, 사회당과 손을 맞잡은 이슬람박애당이 정권을 잡는다. 그들이 원하는 건 교육, 이슬람식 교육이다. 프랑스의 전통있는 소르본 대학이 이슬람 대학이 된다면? 그리고 거액의 연봉으로 교수들을 유혹하며 이슬람 개종을 요구한다면? 미셸 우엘벡은 이러한 가정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가끔 학생과 연애하기도 하는 노총각 문학 교수인 '나'의 시선으로.

 

사실 경제나 세금 정책에 관한 한 두 정당 간에 어떤 의견 대립도 없습니다. 안보 문제도 마찬가지고요. 게다가 이슬람박애당은 파트너인 사회당과 달리 소외된 북아프리카 이민자들의 폭동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 파리 근교의 질서를 바로잡을 수단도 있죠. 허나 외교정책에 관해서는 몇 가지 불일치점이 있어요. 이를테면 이슬람박애당이 프랑스의 이스라엘에 대한 비난 강도를 좀더 높일 것을 요구한다든가 하는 문제지요. 하지만 이 문제는 좌파가 큰 저항없이 받아들일 겁니다. 이견을 좁히기 진짜 어려운 협상 건은 따로 있는데, 바로 교육입니다. 교육에 대한 관심은 사회주의자들의 오랜 전통인데다, 교육자는 사회당이 절대 포기하지 않았던 유일한 직업군이거든요. 교육자들도 위기에 처한 사회당을 계속해서 지지해왔고요. 문제는 사회당한테 그들보다 더 교육에 집착하고 어떤 구실로라도 이 문제만큼은 절대 양보하지 않을 상대가 나타났다는 것이죠. 아시다시피 이슬람박애당은 특수한 정당입니다. 특히 경제를 모든 것의 중심에 두지 않죠. 그들에게 중요한 건 인구, 그리고 교육입니다. (99-100쪽)

 

이슬람박애당 리더의 진짜 천재성은 무엇보다 그가 선거의 승부는 경제 영역보다는 가치관 영역에서 판가름됨을 이해했다는 것이었다. (...) 벤 아베스는 이슬람 율법의 안정적이고 전통적인 가치를 복원시켰고 거기에 더해 이국적 향취까지 불어넣어 더욱 매력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가족이나 전통적 윤리, 그리고 암묵적인 가부장제 복원의 길이 벤 아베스 앞에 활짝 열렸다. 우파, 그리고 극우 국민전선으로서는 더더욱 들어설 엄두도 낼 수 없는 길이었다. (185쪽)

 

 

저자는 분명 이슬람 혐오주의 소설이 아니라고 했다지만, 솔직히 읽기 불편했다. 이슬람교, 무슬림에 대해 대놓고 비판하지는 않았지만, 은연 중에 깔려있는 이슬람에 대한 편견이 느껴졌다. 아랍국가들이 유럽 명문대학을 오일머니로 사려고 경쟁하는 모습, 이슬람 정권으로 교체되자마자 소르본대학 총장을 갈아치우고, 교수들을 재임용하지 않고 개종을 요구하는 모습, 정권에 가장 먼저 편승한 교수에게 20대 초반의 두 번째 아내를 하사하는 등...

 

소설에서 이슬람당의 리더로 묘사되는 벤 아베스는 아랍계지만 프랑스에서 나고 자라 엘리트학교를 졸업한 수재이다. 그런 그는 대통령이 되자마자 잘 돌아가고 있는 프랑스 시스템을 완전 이슬람식으로 뜯어 고치려 한다. (자국 공교육 시스템을 성공적으로 이수한 정치인이 단순히 '종교' 때문에 이런 짓을?) 그 정도로 프랑스 교육, 정치시스템에 대한 신뢰가 없는건지, 아니면 이렇게 황당한 시나리오를 써서 팔아도 사람들이 '있을법한 이야기'라 여길 정도로 프랑스인들의 이슬람공포가 극에 달한 것인가.

 

나는 아랍문화와 종교에 관심이 있지만 무슬림은 아니다. 이집트에서 몇년 살아본 경험은 있지만 그게 중동 전체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프랑스에서 이민자(요새 언급되는 시리아 난민 같은 실향민이 아니라, 유럽에 일자리를 찾으러 온 경제적 이민자) 문제가 사회적으로 얼마나 심각한지, '순수' 프랑스인들이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십분 이해한다. 그래도 이건 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슬람포비아가 문학이란 가면을 쓴듯 황당한 풍자소설이랄까. 한꺼풀 벗기면 '너희 문화는 저급해'라고 말하는 듯 하다(그것도 표현의 자유라면 할 말이 없지만). 만약 내가 무슬림었다면 이 책 읽고 진짜 빡칠(격한 표현 죄송) 것 같다. 그런데도 소설 출판일에 샤를리 에브도 테러가 일어났다고, 표지에 미셸 우엘벡 캐리커쳐가 그려져 있었다고 홍보하고 있으니 (노이즈 마케팅이라면 성공한듯), 기가 막힐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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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케아 옷장에 갇힌 인도 고행자의 신기한 여행
로맹 퓌에르톨라 지음, 양영란 옮김 / 밝은세상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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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사기를 치고 다니지만 차마 미워할 수 없는 인도 고행자가 이케아 옷장 덕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깨달음을 얻는 이야기. 유쾌하게 읽히고 결론도 착하다. 



샤를 아즈나부르가 불쾌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햇빛이 관대하게 쏟아지는 곳이라 해서 빈곤이 덜 고달픈 건 절대 아니었다.
어째서 누구는 모든 게 풍성한 곳에서 태어나고 누구는 그렇지 못한 걸까? 모든 걸 가진 사람이 있는 반면, 아무것도 손에 넣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건 왜일까? 누구는 사람답게 사는데, 누구는 그저 입 다물고 죽을 권리밖에 가지지 못한 걸까? 왜 불행을 맞이하는 사람들은 늘 같은 사람들이어야 할까? (8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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