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빼빼로가 두려워
박생강 지음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들으면 한번에 뇌리에 콕 박히는 이름이다. 생강이라니. 서점에서 생강이 몸에 좋다는 책을 보고 즉흥적으로 필명을 결정했다는 말에 저자의 정신세계(?)가 궁금했는데, 나중에야 성인saint과 악당gang의 혼성 혹은 '생각의 강'을 염두에 둔 작명이란 걸 알게 됐다. 톡 쏘는 생강 맛처럼 종횡무진 통통 튀면서도 은근히 달콤한 냄새가 나는 소설 <나는 빼빼로가 두려워>는 저자의 필명과 딱 어울리는 책인듯 하다.

 

책의 서두는 흥미진진하다. 민형기의 심리상담소에 찾아온 매력적인 여인 한나리. 그가 일하는 카페의 사장이자 애인이 빼빼로가 두려워 대형마트도 기피하는 빼빼로포비아란다. 자신을 소시오패스로 의심하는 민형기에게 빼빼로포비아는 당장 자신의 카페 '스윗스틱'으로 오지 않으면 한나리를 '삭제'하겠다 협박한다. 카페에 도착한 민형기는 드디어 카페사장을 대면한다. 다음 내용이 어떨지 궁금하던 찰나, 이 모든 이야기가 김만철의 소설 속 이야기라는 당황스러운 전개가 이어진다.
          
미스터리한 카페사장의 정체는 바로 지구에 불시착한 실리칸이라는 외계인(오잉?). 미각과 언어의 담당하는 혀를 신성히 여겨 사랑해도  키스하지 않고, 성기는 롤빵과 패스트리 정도로 여기는 '인간인듯, 인간아닌, 인간같은' 존재다. 소설을 읽다보면 현실 속 김만철에게 일어나는 사건들은 소설처럼 느껴지고, 소설 속 빼빼로포비아 쪽이 오히려 현실적이다. 소설인듯 소설아닌 소설같은 이야기. 마지막엔 짜잔! 하고 김만철이 겪은 모든 에피소드야말로 한 편의 소설이었다며 새로운 현실이 드러나는 반전을 의심했지만, 예감은 빗나갔다. (결말은 책을 통해 확인하시길^^)

 

작가는 "현실에서 비현실의 이야기를 찾는 게 아니라 비현실이 슬그머니 찾아와 어깨를 두드린다"며 "그럴듯한 소설을 쓰는 대신 그럴듯함과 그럴듯하지 않음 사이에서 꿈틀대는 어떤 자리들을 발견하려 애쓰겠다"고 했다.

액자소설의 현실과 비현실의 혼란함 속에서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일까 되새겨보는 것도 묘미다. 인간이란 존재의 의미, 소설에 대한 생각, 빼빼로와 빼빼로데이를 바라보는 관점 등이 숨바꼭질하듯 숨어 있다.

 

소설 속 민형기가 삼킨 다섯 개의 알약은 현실의 김만철이 삼킨 다섯 마리의 주술사를 연상시키고, ​소설 속 카페사장은 빼빼로포비아였으나 현실에서는 인류애와 이타심이 넘치는 스윗스틱 제조자로 대비된다. ​​오히려 현실의 민형기가 빼빼로포비아에 가까웠다. 김만철이 자신이 쓰는 소설 안에 카페사장, 단골손님, 상담가, 짝사랑을 등장시켰듯, 우리가 읽는 이 소설에 등장하는 김만철의 소설 선생님은 어쩌면 작가의 모습을 투영하고 있는건 아닐까. 알듯 모를듯 재미있는 책이다.

 

 

 

이 시대의 인간은 어쩌면 빼빼로 피플이네. 인간은 태어나기를 딱딱하고 맛없는 존재로 태어났지. 하지만 거기에 자신의 개성이란 달콤한 초콜릿을 묻히지. 타인을 유혹할 수 있는 존재로 특별해지기 위해. 하지만 그 개성의 비율 역시 언제나 적당한 비율, 손에 개똥 같은 초코가 묻어나 불쾌감을 주지 않는 적정선의 비율로 필요하네. 그게 넘어가면 괴짜라거나 변태 취급을 받기 쉽지. 그렇게 이 시대의 인간은 모두 독특한 개성을 추구하는 양 착각하지만 실은 모두 똑같은 봉지 안에 든, 더 나아가, 똑같은 박스 안에 포장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초코 과자 빼빼로와 비슷하다네. (중략)

 

내 말은 자네의 입장에 대해 누구에게 인정받으려 애쓰지 말라는 거야. 어차피 그들은 자네를 개똥으로 여길걸세. 그러니 비닐 포장 속에 담긴 빼빼로 병사가 아니라 차라리 비닐 포장까지 뚫고 나올 수 있는 살아 있는 막대 벌레가 되라는 거야. ​(p.145-146)

 

<어쩌면 ​21세기 최고의 베스트셀러 소설은 「빼빼로」가 아닐까? 빼빼로라는 소설이 있기에 어쩌면 사람들은 소설을 읽지 않는 게 아닐까?>

 

빼빼로는 문장 아닌 막대 과자로 구성된 과자 상자에 불과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11월 11일이 가까워 오면 그 과자를 통해 자신이 상상하는 이야기에 빠져든다. 그건 대개 사랑에 대한 환상이지만, 그 환상은 얼룩지고 음산해지며 종종 우울하게 가라앉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그때뿐이다. 시답잖은 베스트셀러를 읽은 뒤에 던져 버리듯 빼빼로데이가 지나면 이내 그 과자는 아무런 의미도 남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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