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치 체포록 - 에도의 명탐정 한시치의 기이한 사건기록부
오카모토 기도 지음, 추지나 옮김 / 책세상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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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실 이 책을 받은 것은, 알모 인터넷 서점에서 리뷰어를 하고 있던 내가 아직 회사를 다닐 적의 일이다. 그런데 이제야 이 책을 읽은 것에 대한 간략한 변명을 하자면, 난 이 책을 펴 보지도 않고 알았던 것 같다. 이건 여름에 읽어야 제 맛이라는 것을. (알모 인터넷 서점에서 이런 내 마음을 알아주고 내가 안 쓴 몇 권의 리뷰에 대해 너그러히 이해해 줬으면 좋겠다.)

     제 맛? 그런 게 어디있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게 있는 사람이 있다. 어떤 사람은 한 권의 책을 읽기 위해서 멀리 떠나는 사람도 있고 멀리 떠나기 곤란하다면 그 책을 읽기 위해 때를 기다리기도 하는 법이다. 흠흠. 돈만 있었다면 난 이 책을 일본의 전통이 살아있는 시골 마을 어디쯤으로 가져가 읽었을 수도 있다.

     여름, 하면 무서운 이야기가 빼 놓을 수 없고 무서운 이야기는 어릴 때 부터 좋아하지 않은 나도 가끔 양쪽 둘째 손가락을 귓구녕에 넣었다 뺐다를 하며 아아아아 외쳐가며 슬쩍슬쩍 듣고는 무서워 벌벌 떤 적도 있다. 이건 역시 여름이다.

 

     높은 관직은 아니지만 형사 쯤 되는 일본 옛 관직에 몸 담았던 한시치 영감이 해 주는 옛날 그 시절의 괴담은 내가 어린 시절 들었던 '빨간 휴지 줄까, 파란 휴지 줄까' 정도가 된다. 지금이라면 하나도 무섭지 않겠지만(지금은 역시나 사람이 제일 무섭다) 그 땐 학교에 좌변기보단 수세식 변기가 많았고 그 구멍에선 진짜 손이 올라나올 것 같았다. (지금은 화장실 어딘가 CCTV가 설치 되어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떤다. 볼 건 없어도) 어렸을 적 말을 안 들면 엄마가 부르던 망태 할아버지나 곤도라 아저씨가 진짜 있을 것 같았으니 뭐 그 시절에도 나름대로의 상황이 만들어 낸 괴담은 분명히 있었을테고 그 괴담을 나쁘게 이용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한시치 영감은 셜록 홈즈 부럽지 않게 그 사건들을 해결해 나가는데 짤막한 이야기 속에서도 기승전결 확실하고 권선징악의 메시지도 빠지지 않는다. 역시 옛날 이야기에는 권선징악이다.

 

     빨간 피가 튀기고 각종 과학 장비들로 무장한 호러 영화들도 많은데 왠 구식같은 옛 이야기냐고 불평하는 사람들도 어린시절 듣던 괴담에 관한 추억은 하나씩 갖고 있을 것이다. 이 책은 그 추억에 대한 회고록 쯤이 되는 건 아닐까. 물론 일본이 배경이라 일본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던 사람이 아니라면 이해의 한계는 조금 있다. (난 많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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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우다, 공식 한국어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음, 양희승 옮김 / 중앙books(중앙북스)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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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고 리뷰를 쓰기 시작한 지 몇년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며 처한 상황에 맞게 리뷰 쓰는 패턴도 바뀌어 왔다. 처음엔 그냥 무작정 내가 좋아서 읽는 대로 썼고 그러다 보니 언젠가부터 나를 위한 리뷰인지 출판사를 위한 리뷰인지 헷갈리기 시작해 좋은 책만 썼고 (혹은 완전 실망한 책) 그러다 보니 파워블로거가 됐고 네이버측에겐 미안하지만 난 이게 뭐 그리 대단한 건가 싶어서 사람들이 오-올 해도 뭐 이런 거 가지고 그래? 라고 했다. (고백하자면 필요할 땐 좀 많이 울궈 먹었다. 아-놔, 나 이래뵈도 파워블로거인데? 이딴 식?) 그리고 요샌 그냥 한 줄이라도 읽으면 감상을 남기자, 순전히 날 위해서! 라고 생각하지만 쓰긴 쉽지가 않다.

 

     각설하고, 어떤 책에는 '모두가 한 번씩 읽어봐야 한다!' 이외의 말은 필요가 없다. 어쩌면 내게는 그것이 책에 줄 수 있는 최고의 찬사일 것이다. too talkative한 내가 too silent 해 졌다는 것은 그것이 지닌 무게 혹은 감동에 몸을 다 말리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 책에도 그 한 줄을 주겠다.

 

     모두가 한 번씩 읽어봐야 한다.

 

     다른 말은 필요없다. 이 책은 읽을 때마다 그 생각 밖에는 안든다. 사실은 '모두가 몇 번씩은 읽어봐야 한다!' 라고 하고 싶다.

 

     가끔 어떤 사람들이 말한다. 왜 니 리뷰에는 줄거리나 책에 대한 정보가 하나도 없냐고. 조금만 부지런해 지면 그런 정보는 인터넷 서점에서 충분히 구할 수 있고, 내가 말했잖아. 내 책에 대한 리뷰는 순전히 나이를 더 먹어서 어떤 책이 좋았더라? 기억이 침침해 질 나만을 위한 것에서 시작된다고. 이래서 파워블로거 치고 내 방문자 수는 지나치게 적은가보다. 뭐, 상관없다. 하하. 이럴 땐 엄청 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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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라쉬 브런치 - 번역하는 여자 윤미나의 동유럽 독서여행기
윤미나 지음 / 북노마드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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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을 주체할 수 없는 요즘, 생각을 해 본다. '여행'이라는 것은 떠나는 데에 매력이 있는 걸까. 돌아올 곳이 있다는 묘한 안정감을 확인하는 데에 매력이 있는 걸까. 작년 4월의 여행 이후, 여행에서 지쳤다며 한동안 어디론가 가고 싶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최근 다시 한 번 여행 병에 걸려버렸다. 그렇게 힘든 순간들도 뒤돌아 봤을 땐 즐거운 경험이었음을 왜 그 때 감사하지 못했는지 잠시 자책도 한다. 여행 에세이는 내 발을 간지럽혀서 현실에서 날 밀어내려고 하기 때문에 가능한 읽지 않겠다던 내가 이 책을 선택한 건, 단지, 바로 그것. 떠날 수 없는 지금, 그 밀어내려는 힘마저 그리웠기 때문이다.

     책 읽는 여자, 그 말은 너무나 매력적이다. 내가 살고 싶은 삶에 대한 정의를 저렇게 쉬운 단어들의 조합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말은 없다. 더군다나 책 읽는 여자(실제로는 번역하는 여자지만, 어쨌든 책을 번역하는 여자이니 책 읽는 여자와 다를게 뭐람이라고 생각했다.)의 여행기라는 말은 참 사람을 들뜨기 쉽게 만든다. 그래, 나도 언젠가 저런 삶을 살고 싶어. 지금은 그 삶을 위한 준비 단계야, 라며 내 자신을 토닥거릴 수 있게 했다.

     조용한 시골에서 책을 번역하는 여자, 물을 좋아하면서도 쉽게 물에 발을 담구지 못하는 여자, 그 어느 곳에 가도 사람들과 쉽게 깔깔대며 눈 흘길 수 있는 여자의 동유럽 여행기는 매력적이다. 난 때론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장소에 있는 낯선 펍에서 빨간 원피스를 입고 그 곳의 주민들과 어울려 차가운 맥주 한 잔에 즐겁게 춤을 추는 상상을 하곤 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나의 그런 모습들이 떠오른 건 분명 즐거움이었다. 너무나 아름답다는 도시 프라하와 갈 수도 있었는데 가지 않았던 곳 크로아티아와 이 책을 읽은 후 너무도 가고 싶어진 슬로베니아를 상상 속에서 거닐어 보았다. 그리고 저자와 함께 어디곤 앉아 그 지역 음식과 함께 맥주를 마시며 책 이야기를 나눴다.

     이렇게 상상 속에서나마 내게 위안이 되었고 즐거움을 준 이 책의 아쉬움은 부제로 붙은 번역하는 여자가 주었던 매력이 책 속엔 많이 나타나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난 정혜윤 PD가 쓴 런던 여행기 속의 이야기들처럼 그 지역의 수 많은 책들과 함께 저자만의 독특한 여행기를 듣고 싶었다. 그렇다면 날 현실에서 밀어내려고 하는 힘은 더 거세질 테고 그 힘에 맡서 이 곳에 머물러야 하는 슬픔도 더 커질 것이었고 그 슬픔을 감수하며 이 곳에 있어야 하는 이유도 나름대로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번역하는 여자에게서 느끼고 싶었던 독특한 감수성, 그리고 그녀만의 책 이야기. 그것이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해 다소 아쉬웠지만 그래도 이 책이 잠시나마 떠나고 싶은 나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 당신도 떠나보면 이해하게 될 것이다, 라는 말로 설명할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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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의 지붕
마보드 세라지 지음, 민승남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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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소개를 보며 잠시 생각을 했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처음 읽었을 때의 그 감상, 그리고 그 책이 내게 준 슬픔과 독서의 희열을 떨칠 수 없었던 날들. 그리고 이어 <연을 쫓는 아이>를 읽었을 때 더 깊어진 감상과 '할레드 호세이니'라는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을 애타게 기다리게 된 지금, 이 책이 또 하나의 그런 책이 되어 줄 수 있을까, 또 한 번 내게 다른 세계의 문화와 그 삶 속의 사람들을 보여줄 수 있을까라는 기대. 저자의 약력 또한 할레드 호세이니의 그것과 비슷했기에 난 또 다시 그런 책을 만나게 될 거라는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각 책은 그 마다 다른 느낌과 다른 색으로 남는다는 것을 또 한 번 쉽게 저버린 셈이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 20대 초반의 내 꿈들이 그대로 실현되었다면 난 지금쯤 이 곳을 걸어보았을 수도 있고 머지않아 이 곳을 걷게 될 거라는 희망을 놓지 않고 있을 수도 있다. 20대 초반 읽었던 <타타르로 가는 길>은 30대가 되기 전 꼭 중동아시아 도보여행을 해 보겠다는 야심을 품게 했었고 난 그것을 손쉽게 이룰 수 있을 줄 알았다. 그 땐 지금보다도 더 세상을 알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난, 그저 한 권의 책 속에서 까맣게 새겨진 글씨로 그 곳을 볼 수 밖에 없다. 그것을 안 지금은 이런 책들의 글씨 하나하나를 눈 앞의 풍경으로 가져와 보려 애써본다. 가보지 못한 곳의 동경은 내게 그렇게 현실 속에서 구현되는 것이다. 우리의 7-80년대와도 비슷한 풍경, 쉽게 국가 원수의 욕을 할 수 없고 다음 날 아침 우리 아빠가 비밀경찰에 의해 잡혀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쉽게 떨쳐낼 수 없는 곳이 책 속에 그려진 테헤란의 풍경이었다. 그 속에서 한 소년이 그 모든 것을 목격하고 그 슬픔을 간직한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할 나이인 그에게는 그 세상 속에서의 꿈도 이상도 사랑도 모두 환상처럼 느껴지지만 불모지에서도 풀은 자라나듯 그에게 퍼져가는 꿈, 이상, 사랑은 너무나 싱싱하기만 하다. 하지만 싱싱하던 것들이 무참히 짓밟히는 것은 불과 한 순간. 그것이 꺽여갈 때의 그의 심정, 캄캄한 밤 하늘의 별을 보며 그려냈던 것들이 결국 깜박하고 꺼지는 찰나의 아픔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다. 아,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이 참아냈을 순간들은 도대체 어땠을까. 책 속 70년대의 테헤란이 그 때의 우리 모습과 묘하게 겹쳐진다. 닥터의 죽음, 자리의 분신. 그 모든 것이 소년을 자라게 한다. 소년은 자랐고 자신의 이상과는 다를지 모를 내일을 또 꿈꿔야 한다. 그것이 살아남은 자의 숙명이자 살아남은 자에게 주어진 내일이다. 하지만 이젠 안다. 그 내일이 몇 번이고 지나다보면 결국은 조금 더 무뎌지고 살만한 순간이 찾아온다는 것을.

    

     읽는 내내 가슴이 묵직했다. 그것은 내가 이 책을 읽기 전 상상했던 그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우리의 과거와 묘하게 닮은 그들의 과거를 보며 그 때 그 순간을 참아내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와 전혀 다른 세계의 참상을 느끼며 오는 문화적 충격 속의 아픔은 적어도 아니었다. 그래서 이 책은 이 책만의 독특한 무엇이 있었다. 책을 덮으며 난 그들에게 물었다. 지금 당신들은 어떻게 살고 있냐고. 당신들과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삶을 살았던 우리는 아주 잘 살고 있다고. 그런데 난 지금 당신들이 우리처럼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어서 궁금한데 당신들의 지금은 어떤 모습이냐고. 그 모든 희생을 감내할 가치를 충분히 찾은 것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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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의 몸값 2>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올림픽의 몸값 2 오늘의 일본문학 9
오쿠다 히데오 지음, 양윤옥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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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들은 죽었을까, 살았을까? 만약 그들이 살아있다면 그들은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내가 만약 그들의 고뇌를 알고 있는 경찰이었다면 나는 그들을 당당하게 잡을 수 있을까? 머리 속이 정리 되지 않았다. 어딘가 모르게 답답하다. 오쿠다 히데오의 책을 읽으며 처음 느낀 기분이다. 뭔가 울컥하고 뭔가 억울하면서도 뭔가 답답한 그 '뭔가'가 정학하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나에게 오쿠다 히데오의 최고 작품이었던 <남쪽으로 튀어 1,2>보다 조금 더 날카롭고 냉정해 졌다. 웃음기란 없다. 아니, 웃길래야 웃을 수가 없다.

     잘생긴 얼굴, 명석한 두뇌, 뛰어난 학벌, 뭐 하나 빼 놓을 것 없는 구니오라는 한 남자가 있다. 고향 집은 시골이고 어렵지만 국가가 다시 건설되고 있는 이 때, 그 사람 정도라면 앞으로 한 자리 꿰차고 그동안 없이 살았던 것 다 보상받으며 살게 될 것이다. 그런 그 사람이 갑자기 돌발 행동들을 시작한다. 죽음이 무섭지 않게 되고, 마르크스를 공부했지만 빨갱이는 아니었는데 사회주의의 이상을 꿈꾸게 된다. 그리고 그는 국가의 적이 되고 만다. 순간, 광주학생운동에 대해 알았던 때가 생각난다. 아무도 몰랐다고 했다. 그들이 쓰러져 가는 걸 근처의 도시에서 조차 몰랐다고. 누구는 그것이 나라의 발전 과정이라고 했다. 힘없는 자들은 비명도 없이 쓰러져가고 힘있는 자들은 그 피를 밟고 일어서 잘먹고 잘살게 되는 것이. 아마, 그는 이런 것이 억울해 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아버지도 다른 형, 살아서도 얼굴 몇 번 본 형의 죽음이 그를 그렇게 180도 변하게 만든 것이 아니라 형의 죽음으로 보게 된 또 다른 인생 계층들의 삶이 그를 그렇게 변하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나라와 협상을 시작한다. 과연 구니오가 요구한 것은 돈이었을까, 아니면 한 번만 무참히 쓰러져가는 계급을 돌아봐 달라는 것이었을까. 그의 행동은 물론 완벽히 옳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걸 알면서도 나는 내내 그가 경찰에 잡히지 않기를, 무사히 도망치기를 손에 땀을 쥐며 바랐던 것 같다. 계급의 차이, 빈부의 격차. 민주사회를 꿈꿨고 그것이 실현 된 사회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이 차이를 여전히 좁히지 못한 채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하는 것을 여전히 당연하다 여기고 살고 있다. 동경 올림픽이 지났고, 서울 올림픽도 지났고 한일 월드컵도 지났지만 그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사실이다. 아, 그래서 마음이 답답했던가 보다. 여전히 우리가 그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가 잡히지 않길 바랐고 그랬음에도 어쩔 수 없는 결말에 그저 가슴만 쳤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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