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노래한다
김연수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8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지난 시간을 이야기한다는 것, 그것은 애틋함이 될 수도 있지만 때론 고통이기도 하고 위험을 수반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야기해야만 하는 것, 그것은 작가의 숙명이자 업일 것이다. 작가 황석영이 한 말이 생각난다. 금기를 뛰어넘는 것, 그것이 작가의 몫이라고. 김연수는 이 책을 통해 금기를 뛰어넘어 자신의 업에 가까이 갔다는 느낌이 든다. 누군가는 말해야 했지만 누구도 말하기 힘들었던 '민생단 사건'을 바탕으로 한 이 소설은 많은 사람들에게서 잊혀져 가는 동시 잊고 싶어했던 과거의 진실을 현대의 독자들에게 끌어다 놓는다. 그럼에 이 책을 읽는 것은 고통일 수도 있고 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도가 될 수도 있다.

 

     간절히 원하면 온 세계가 그 열망을 도와준다고 믿는 작가의 신념은 이 소설에서는 무색하기만 하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간절히 민족의 자주를 원했지만 결국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붉은 핏빛과 서로를 죽여야 하는 잔혹한 인간 본성의 목격 뿐이었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는 밤의 노래는 어쩌면 그들의 바람이 현재의 우리에게까지 이어져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 인지도 모르겠다. 열망의 간절함에 무게를 달 수는 없지만 언젠가 우리의 열망이 더 간절해지는 그 날, 그 열망이 이뤄지리라는 희망이 있고 그 바람이 깊어질 수록 새벽을 향한 노래도 더 깊어지리라.

     삶이 어떤 형태로 흘러가든 그 곳엔 피끓는 청춘이 있다. 아스러지는 목숨만큼이나 붉고 선홍하게 끓는 청춘, 그 안에는 조국을 향한 투쟁과 개인을 향한 투쟁 모두가 들어있다. 그리고 그 안에 사랑은 덜어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사랑, 그것이 우리를 살게하고 키워가는 것이 아니었던가. 그래서 김해연은 정희를 가슴에 묻고 또 다른 사랑 여옥이를 품고 오늘을 살고 내일을 살아나간다. 눈 감으면 생생히 떠오르는 아픈 날들이지만, 그 역시 지난 날로 묻고 내일을 살게 될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그렇게 살아가니까.

 

     책을 읽는 내내 가슴이 아렸다. 나 역시도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청춘이기에 서로에게 총을 겨누고 의심을 품으면서도 내일을 알 수 없어 오늘을 충실히 사랑하고 살아간 그들의 삶이 지독해 보였다. 작가의 전작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김연수, 문학동네, 2007)이 가슴 한켠에서 살아나기도 했다. 난 이 두권의 책을 김연수 열망 이부작이라 이름 붙이고 싶다. 두 책의 내용은 선명히 다르지만 그 속에서 드러난 청춘의 열망과 정의는 어느정도 일치해 보였기 때문에. 누구나 어제를 묻고 오늘을 살고 내일을 꿈꾼다. 꿈꿀 수 있는 권리, 그것은 사람이기에 누구나 공평하게 지닐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열망은 그 자체로 아름답다. 이 책은 마음 아픈 이야기지만 그 열망이 피어나는 순간을 여지없이 보여준다. 하나하나 생을 잃지만 그들이 부르던 밤의 노래는 아직도 이리 슬프게 아름답지 않은가.

     내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던 날들이 있었다. 그 때에도 김연수의 책은 내게 힘이 되었다. 스무살이 지나면 스물 한살이 오는 게 아니라 스무살 이후가 온다던 <스무살>(김연수, 문학동네,2000)을 읽으며 난 내 앞에서 아른거리던 내 시간들을 위로받았었다. 그리고 또 다시 지겨운 날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난 또 다시 김연수의 책으로 위로받는다. 그리고 그의 책의 표지, 에곤실레의 그림. 표지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자니 <채식주의자>(한강, 창비, 2007)의 표지와 표지 속 사내의 모습이 아스라히 겹쳐 보였다. 에곤실레의 그림은 이리도 문학같은지, 책에 한 번 울컥한 마음이 표지 속 그림에 스며든다. 아, 오늘 밤에도 난 밤의 노래를 들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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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북소녀 2008-12-05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앨리스, 땡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