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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차
미야베 미유키 지음, 박영난 옮김 / 시아출판사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화차(火車): 생전에 악행을 한 망자를 태워 지옥으로 옮기는 불수레
누구나 한번쯤은 타인이 되어보길 갈망한다. 그래서 영화 <존 말코비치 되기>는 인상적이었고 흥미로웠다. 그렇게 누군가가 되어볼 수 있다면. 하지만 우린 자신을 떠나 살 수가 없다. 한번쯤 타인이 되길 꿈꾸지만 우린 어차피 단 하나의 육체와 정신을 가지고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타인이 되기를 꿈꾸는 것은 인간의 어쩔 수 없는 욕망일까. 특히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혹은 자신이 손에 넣을 수 없는 어떤 것을 갈망할 때 타인이 되고픈 욕구는 점점 더 커져만 간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나'로 태어난 이 생은 그렇게 '나'로 살아가야 한다. 타인이 될 수 없기에 우린 더 빛나고 아름다운 존재일지도 모른다.
20대 신용불량자가 늘어가고 있다. 그것은 현 10대-20대를 타깃으로 한 기업들의 마케팅 전략이 들어맞는 탓이기도 하고 그리고 그들이 제대로 된 경제교육을 받지 못한 채 물건들의 홍수 속에 던져진 탓도 있다. 그들은 잠시나마 자신의 형편에서 벗어난 꿈을 꾸기 위해 플라스틱 카드를 이용하고 그 꿈에서 깨지 않기 위해 또 다시 그 카드에 의존한다. 그러다 문득 꿈에서 깨어나면 그 곳엔 자신이 바라던 삶 대신 무절제한 소비가 낳은 끝없는 빚더미가 있을 뿐이다. 그들에게 신용카드란 환각제와도 같은 달콤한 유혹이었다.
일본 추리소설의 여왕으로 일컬어지는 미야베 미유키는 이 점에 주목했다. 그리고 자신의 삶에서 벗어나고픈 두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추리극으로 또 다시 독자를 인도한다. 이번에도 독자는 숨막히게 전개되는 상황 속에서 두 여인이 대변하는 젊은 층의 심리에 공감하고 한 숨쉬게 된다.
미야베 미유키 소설의 장점은 바로 이 것에 있다. 두께를 가뿐히 제압하는 높은 가독성과 인간에 대한 깊은 관심. 이 책 역시 400페이지가 넘는 두께이지만 잠시 그 이야기의 흐름에 마음을 맡겨 버리면 그 두껍던 책이 어느새 반 이상이 넘어가 있고 손에서 잠시도 놓기 싫음을 깨닫게 된다. 그것은 분명 미야베 미유키 소설이 가진 가장 큰 힘이다. 또 끊임없는 긴장 속으로 독자를 이끌면서도 인간의 본질에 대한, 그리고 욕망에 대한 것을 날카롭게 풀어놓는다. 그래서 그녀의 소설을 한 번 손에 쥐면 쉽게 놓을 수 없게 된다.
또 미야베 미유키는 현대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문제점들이 무엇인지 정확히 짚어낸다. 그 문제들 속에 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침투되어 있는지도. 그래서 우린 우리가 경험한 것이 아닌 살인 사건과 실종 사건을 마치 우리 옆에 펼쳐져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된다. 그래서 손에 땀을 쥐고 긴장을 풀 수 없다. 이 책 역시 미야베 미유키의 힘을 느끼기엔 충분한 책이다. 또한 자본주의 사회 속을 통과하고 있는 화차의 뜨거운 기운에 대해 돌아보게 되는 계기가 된다. 역시 미미여사, 그녀의 힘은 뛰어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