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리라 다짐했었습니다. 아니, '무슨 일이 있어도' 떠나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짐대로라면, 난 지금쯤 낯선 하늘에서 낯익은 별을 보며 어느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난 떠나지 못했습니다.
용기가 없어서도, 추진력이 없어서도 아니었습니다.
핑계같지만, 이 곳에서 이뤄야 할 꿈이 손에 잡혔기 때문입니다. 그 꿈 때문에, 잠시 다짐을 미룬 것입니다.
하지만 꿈은 내 손에 들어왔지만 여전히 여행을 떠나지 못한 것은 아쉬운 일입니다.
다시 다짐했습니다. 4년 후에 아프리카 횡단을 하리라. 그 땐, 1년 정도 마음을 비우고 떠나리라.
아프리카는 내게 꿈같은 땅입니다.
4년 전쯤, 영어회화를 연습하고자 학원에 등록했을 때, 난 한 백인을 만났습니다. 그의 이름은 '버거', 자신의 이름을 말하며 햄버거가 아니라 하던 그의 웃음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그리고 그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왔다고 했습니다. 늘 미국, 캐나다, 영국 사람만 보던 내게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신선한 땅이었습니다.
그는, 다른 선생님들과는 달랐습니다. 돈을 벌고 싶어 온 건가?란 의심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남아공에서는 목사를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는 수업시간 틈틈히 남아공을 소개했습니다. 그가 그의 나라에서 찍어온 사진들과 동영상들이 그의 노트북에서 움직일 때, 우리는 그의 마음과 함께 남아공으로 날아가 남아공을 여행했습니다. 그 때 난, 자칼도 만나고 케이프타운도 돌아다녔습니다.
그는 우리를 자신들의 조그만 한국 보금자리로 초대해 고슴도치의 털도 구경시켜주고, 남아공 영화도 구경시켜주고, 맛있는 피자도 대접해 주었습니다.
남아공이란 나라를 잘 알순 없었지만, 그 넉넉한 남아공 사람때문에 난 남아공이 궁금해졌습니다. 그는 남아공에선 싼 가격에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랍스터 이야기도 해 주었고, 남아공 사람들은 킹크랩은 먹을 생각도 않는 다는 이야기도 해줬습니다.
남아공. 그 때부터 남아공은 내게 꿈같은 도시였고, 남아공에 이어 아프리카 전체가 꿈의 대륙이 되어 버렸습니다.
대학교를 다니며, 엄마에게 어학연수를 보내달라 졸랐던 때가 있었습니다.
빠듯한 생활에 3남매를 키우시는 엄마는 버거워하는 얼굴로 어디에 가고 싶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난 너무나 자신만만하게 남아공에 가겠다고 했고, 난 또 집안의 특이한 아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가고싶던 어학연수도 그저 이젠 시들시들한 옛 이야기가 되어버렸고, 그냥 단지 난 돈이 있다면 어디든 떠날텐데 하고 막연히 동경만하는 패기없는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런 내 시간에 펭귄이 방문했습니다.
우연히 빙산에서 놀고 있다가 깜빡 잠이 든 펭귄 커플이 잠든 사이 남극으로 떨어져 아프리카를 방문하게 되었고, 거기서 펭귄 가족을 이뤘습니다. 그리고 그 펭귄 가족은 또 펭귄 가족을 이루고, 또 펭귄 가족을 이루고, 그렇게 펭귄 가족은 늘어나고 그 속에서 태어난 펭귄 한마리가 케이프타운에서 놀다가 깜빡 잠이 든 사이, 내 시간으로 떨어졌습니다.
한동안 잊고 있던 꿈의 대륙 아프리카를, 그리고 꿈의 나라 남아공을 기억시킵니다.
"언제까지 잊고 있을 셈이었어?" 거만하기 짝이없는 녀석은, 내 무릎정도의 키밖에 되지 않는 주제에 날 한껏 노려보며 악을 지릅니다.
그렇게 난 다시 꿈을 꿉니다.
랑가방 레스토랑에 가서, 밀가루와 소금으로만 반죽해 석쇠에 구운 맛이 일품인 빵도 뜯어먹고, 내 생애 첫 사막인 아틀란티스 샌듄도 걸어봅니다. 핫베이의 참치잡이 어부에겐 "역시 동양인이군요." 하는 웃음과 함께 참치 뱃살을 넉넉히 구입합니다. 참기름과 김이 나도 생각이 나네요. 친구들을 불러모아 브라이를 익히고, 크루거에 가 사자왕 쟈카도 만납니다. 이 녀석, 내가 그를 처음 본 몇년 전에 비해 몰라보게 늙었군요. 스피어팜에선 와인에 취해도 보고 번지브리지를 걸으며 멋진 남자와의 커플 번지를 상상해보기도 합니다. 아마, 장동건 정도로만 잘생겼다면 눈 딱 감고 그를 끌어안고 뛰어내릴 수 있을 꺼에요. 겁이 없는 난 하라레 골목길을 쏘다니고, 하라레 골목에서 만난 흑인에게 매력을 느낄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그 파란 하늘에서 내가 사랑한 사람들을 기억하겠죠.
책을 덮기가 두렵습니다. 내 여행을 마쳐야 하는 것이니까요. 내 시간으로 들어온 펭귄을 떠나보내야 하니까요.
하지만, 다시 내 꿈의 대륙인 아프리카를 그리워하게 되었으니 이 책을 만나 또 뭔가를 얻게 되었군요. 지나친 그리움일지라도,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렇게 그리워하다보면 언젠가 만나게 될 때가 있겠지요. 꿈의 대륙인 아프리카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