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라쉬 브런치 - 번역하는 여자 윤미나의 동유럽 독서여행기
윤미나 지음 / 북노마드 / 2010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다시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마음을 주체할 수 없는 요즘, 생각을 해 본다. '여행'이라는 것은 떠나는 데에 매력이 있는 걸까. 돌아올 곳이 있다는 묘한 안정감을 확인하는 데에 매력이 있는 걸까. 작년 4월의 여행 이후, 여행에서 지쳤다며 한동안 어디론가 가고 싶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는 최근 다시 한 번 여행 병에 걸려버렸다. 그렇게 힘든 순간들도 뒤돌아 봤을 땐 즐거운 경험이었음을 왜 그 때 감사하지 못했는지 잠시 자책도 한다. 여행 에세이는 내 발을 간지럽혀서 현실에서 날 밀어내려고 하기 때문에 가능한 읽지 않겠다던 내가 이 책을 선택한 건, 단지, 바로 그것. 떠날 수 없는 지금, 그 밀어내려는 힘마저 그리웠기 때문이다.

     책 읽는 여자, 그 말은 너무나 매력적이다. 내가 살고 싶은 삶에 대한 정의를 저렇게 쉬운 단어들의 조합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말은 없다. 더군다나 책 읽는 여자(실제로는 번역하는 여자지만, 어쨌든 책을 번역하는 여자이니 책 읽는 여자와 다를게 뭐람이라고 생각했다.)의 여행기라는 말은 참 사람을 들뜨기 쉽게 만든다. 그래, 나도 언젠가 저런 삶을 살고 싶어. 지금은 그 삶을 위한 준비 단계야, 라며 내 자신을 토닥거릴 수 있게 했다.

     조용한 시골에서 책을 번역하는 여자, 물을 좋아하면서도 쉽게 물에 발을 담구지 못하는 여자, 그 어느 곳에 가도 사람들과 쉽게 깔깔대며 눈 흘길 수 있는 여자의 동유럽 여행기는 매력적이다. 난 때론 내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장소에 있는 낯선 펍에서 빨간 원피스를 입고 그 곳의 주민들과 어울려 차가운 맥주 한 잔에 즐겁게 춤을 추는 상상을 하곤 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도 나의 그런 모습들이 떠오른 건 분명 즐거움이었다. 너무나 아름답다는 도시 프라하와 갈 수도 있었는데 가지 않았던 곳 크로아티아와 이 책을 읽은 후 너무도 가고 싶어진 슬로베니아를 상상 속에서 거닐어 보았다. 그리고 저자와 함께 어디곤 앉아 그 지역 음식과 함께 맥주를 마시며 책 이야기를 나눴다.

     이렇게 상상 속에서나마 내게 위안이 되었고 즐거움을 준 이 책의 아쉬움은 부제로 붙은 번역하는 여자가 주었던 매력이 책 속엔 많이 나타나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난 정혜윤 PD가 쓴 런던 여행기 속의 이야기들처럼 그 지역의 수 많은 책들과 함께 저자만의 독특한 여행기를 듣고 싶었다. 그렇다면 날 현실에서 밀어내려고 하는 힘은 더 거세질 테고 그 힘에 맡서 이 곳에 머물러야 하는 슬픔도 더 커질 것이었고 그 슬픔을 감수하며 이 곳에 있어야 하는 이유도 나름대로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번역하는 여자에게서 느끼고 싶었던 독특한 감수성, 그리고 그녀만의 책 이야기. 그것이 내 기대에 미치지 못해 다소 아쉬웠지만 그래도 이 책이 잠시나마 떠나고 싶은 나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었던 이유는, 아마 당신도 떠나보면 이해하게 될 것이다, 라는 말로 설명할 수 밖에 없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