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헤란의 지붕
마보드 세라지 지음, 민승남 옮김 / 은행나무 / 2010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의 소개를 보며 잠시 생각을 했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처음 읽었을 때의 그 감상, 그리고 그 책이 내게 준 슬픔과 독서의 희열을 떨칠 수 없었던 날들. 그리고 이어 <연을 쫓는 아이>를 읽었을 때 더 깊어진 감상과 '할레드 호세이니'라는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을 애타게 기다리게 된 지금, 이 책이 또 하나의 그런 책이 되어 줄 수 있을까, 또 한 번 내게 다른 세계의 문화와 그 삶 속의 사람들을 보여줄 수 있을까라는 기대. 저자의 약력 또한 할레드 호세이니의 그것과 비슷했기에 난 또 다시 그런 책을 만나게 될 거라는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는지도 모른다. 각 책은 그 마다 다른 느낌과 다른 색으로 남는다는 것을 또 한 번 쉽게 저버린 셈이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 20대 초반의 내 꿈들이 그대로 실현되었다면 난 지금쯤 이 곳을 걸어보았을 수도 있고 머지않아 이 곳을 걷게 될 거라는 희망을 놓지 않고 있을 수도 있다. 20대 초반 읽었던 <타타르로 가는 길>은 30대가 되기 전 꼭 중동아시아 도보여행을 해 보겠다는 야심을 품게 했었고 난 그것을 손쉽게 이룰 수 있을 줄 알았다. 그 땐 지금보다도 더 세상을 알지 못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난, 그저 한 권의 책 속에서 까맣게 새겨진 글씨로 그 곳을 볼 수 밖에 없다. 그것을 안 지금은 이런 책들의 글씨 하나하나를 눈 앞의 풍경으로 가져와 보려 애써본다. 가보지 못한 곳의 동경은 내게 그렇게 현실 속에서 구현되는 것이다. 우리의 7-80년대와도 비슷한 풍경, 쉽게 국가 원수의 욕을 할 수 없고 다음 날 아침 우리 아빠가 비밀경찰에 의해 잡혀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쉽게 떨쳐낼 수 없는 곳이 책 속에 그려진 테헤란의 풍경이었다. 그 속에서 한 소년이 그 모든 것을 목격하고 그 슬픔을 간직한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할 나이인 그에게는 그 세상 속에서의 꿈도 이상도 사랑도 모두 환상처럼 느껴지지만 불모지에서도 풀은 자라나듯 그에게 퍼져가는 꿈, 이상, 사랑은 너무나 싱싱하기만 하다. 하지만 싱싱하던 것들이 무참히 짓밟히는 것은 불과 한 순간. 그것이 꺽여갈 때의 그의 심정, 캄캄한 밤 하늘의 별을 보며 그려냈던 것들이 결국 깜박하고 꺼지는 찰나의 아픔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다. 아,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들이 참아냈을 순간들은 도대체 어땠을까. 책 속 70년대의 테헤란이 그 때의 우리 모습과 묘하게 겹쳐진다. 닥터의 죽음, 자리의 분신. 그 모든 것이 소년을 자라게 한다. 소년은 자랐고 자신의 이상과는 다를지 모를 내일을 또 꿈꿔야 한다. 그것이 살아남은 자의 숙명이자 살아남은 자에게 주어진 내일이다. 하지만 이젠 안다. 그 내일이 몇 번이고 지나다보면 결국은 조금 더 무뎌지고 살만한 순간이 찾아온다는 것을.

    

     읽는 내내 가슴이 묵직했다. 그것은 내가 이 책을 읽기 전 상상했던 그것과는 다른 것이었다. 우리의 과거와 묘하게 닮은 그들의 과거를 보며 그 때 그 순간을 참아내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와 전혀 다른 세계의 참상을 느끼며 오는 문화적 충격 속의 아픔은 적어도 아니었다. 그래서 이 책은 이 책만의 독특한 무엇이 있었다. 책을 덮으며 난 그들에게 물었다. 지금 당신들은 어떻게 살고 있냐고. 당신들과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삶을 살았던 우리는 아주 잘 살고 있다고. 그런데 난 지금 당신들이 우리처럼 살고 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없어서 궁금한데 당신들의 지금은 어떤 모습이냐고. 그 모든 희생을 감내할 가치를 충분히 찾은 것이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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