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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 정혜윤이 만난 매혹적인 독서가들
정혜윤 지음 / 푸른숲 / 2008년 7월
평점 :
품절
아침 햇살이 드는 버스에 앉아 책을 펼쳤다. 예전엔 차 안에서 책을 읽으면 바로 멀미가 시작되었다. 그러다 생활이 바빠지고 책을 읽는 시간이 간절해지자 차 안에서 책을 읽게 되었다. 바쁘다는 이유로 책과 멀어지는 삶을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 언젠가 부터 책은 내게 유일한 도피처이자, 가장 완벽한 개인적인 공간을 선사해 주었기 때문에. 내가 어디에 있는지는 상관없었다. 책 한권이면 난 즉시 완벽한 나만의 세계를 가질 수 있었고 내 앞엔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이 펼쳐졌다. 그래서 난 아직까지도 책을 놓을 수가 없다. 버스 안에서 책을 읽으며 책과 함께 내 지난 시간을 더듬기 시작했다.
내 독서의 시작은 내 기억이 닿지 않는 곳에 있다. 엄마는 아직도 내 어린 시절을 이야기 하신다. 어느 날 혼자 책을 읽고 있었으며 어느 날 혼자 글을 쓰고 있었으며 하루종일 책만 읽어서 못 읽게 하자 화장실로 책을 들고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는, 내 기억에 닿지 않는 그런 일들은 어려서 부모님이 내게 아주 큰 기대를 하게끔 했으나 결국에 난 독서를 좋아하는 것 외에는 학문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무지한 아이로 자랐다.
책을 읽으며 처음으로 은희경 작가에게 공감을 했다. 은희경은 자신이 가진 현재 문학의 전 자산은 초등학교 때의 글자 중독에 가까운, '닥치는 대로 한 바퀴 도는 독서 편력'이었다고 단언한다. (p.142) 내겐 문학의 자산이라는 것이 아직은 없는 것 같지만 독서 경력이라는 것이 있다면 내 전부가 초등학교 때 세워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도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만. 그 이후 몇년간은 난 만화책에 몰두하느라 (어떤 만화책은 한권의 고전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줄 때도 있지만) 다른 책엔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책을 손에 잡은 것이 대학교 때의 일이다. 대학교 시절 아직도 잊지 못하는 경험은 나보코프의 「롤리타」에 있다. 그 때 난 부전공으로 법학과 수업을 듣고 있었지만 내 기대보다 법학은 꽤나 속물적인 학문이었다(고 스스로는 생각했다). 그래서 내 흥미는 이내 식고 말았고, 난 100명 가까이 듣는 헌법 수업시간에 롤리타를 읽으며 나 홀로 다른 세계에 있다는 느낌에 만족했다. 그리고 그 수업을 듣는, 주로 내 앞에 앉았던 잘생긴 한 신입생과의 로맨스를 상상하며 짧은 글을 썼었다.
매혹적인 독서가들을 만나며 나 역시 잊지 못하는 나만의 책을 꼽아보았다. 책이 한 사람을 설명해 줄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이토록 실감나게 다가왔던 것은 처음이었다. 잊지못할 기억 속 첫 책에는 「어린왕자」가 있으며 「제인에어」가 있고 어린이판 「셰익스피어 모음」이 있다. 그리고 고모가 살던 집의 창고로 쓰던 방. 그 후 내게는 밀란 쿤데라와 엘프리데 옐리네크와 임레 케르테스와 로맹 가리와 김연수 그리고 또 누가 있을까.
솔직히 난 이 책을 읽으며 몇번이나 울컥했고 한 번은 눈물까지 쏟았다. 남들과 늘 어긋나게 울고마는 나 조차도 알 수 없는 내 감정의 선이 또 어딘가에서 건드려졌다. 예를 들어 김탁환 작가의 표제가 된 '한 권의 책은 더 나은 삶에 대한 열망'이나 에필로그의 '살아보지 못한 삶도 삶이다' 같은 문장이 반짝반짝 빛이 나서 눈을 시리게 했다. 그리고 또 하나, 나름대로 열심히 책 읽고 살았다고 생각한 내가 읽지 못한 책은 또 왜 이리 많은지. 나도 한 번, 고속터미널 역 영풍문고에 서서 책들을 보며 눈물 흘린 적이 있었다. 내가 다 못 읽고 죽을 책들이 쌓여 있는 것이 너무나 억울했다. 하지만 이번엔 그 이유 때문에 눈물이 난 건 아니다. 아직 내 독서는 갈 길이 멀지만 내가 책을 읽는 이유 중 하나는 분명하다. 한번 만난 책을 또 다시 만나기 위해, 난 첫 독서를 한다. 그 사실을 깨달은 한 읽지 못한 책에 조바심 낼 필요는 없다.
이 책의 서평을 쓰는 것은 어쩌면 무의미한 일일지도 모른다. 나의 독서와 나의 시간을 만나봤다면 그걸로 족하지 않을까, 그래서 난 이 책이 엄청나게 좋았다는 감상은 살짝 빼 버리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