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살 즈음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이 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가 베스트셀러에 올랐었다. 그 영향으로 절친한 친구와 시간을 내어서 경주에 가 안압지나 황룡사지를 찾아 <나의 문화유산답사기>를 같이 읽고 오곤 했었다.
그냥 유적지를 휙 둘러만 보고 오는 것과 전문가가 쓴 책의 해설(?)을 읽으며 유적지를 꼼꼼히 살펴보는 것은 다가오는 감동이 질적으로 양적으로 모두 남달랐다. 그 후 황룡사지는 내 마음 속에서(카톨릭 신자임에도) 일종의 성지 같은 것으로 남게 되었다. 그 때 유홍준 전 청장이 그랬다. ‘황룡사는 지금 기술과 재료로는 복원이 힘들다’고 분명히 그랬다. 안타까웠다. 그 옛날 다섯 번씩이나 벼락 맞아도 끈질기게 여섯 번을 세웠던 탑을 문명과 기술이 더 발달했다고 믿는 현대에 복원하지 못하다니..절터에 서 있기만 해도 그 웅장함에 한낱 작은 인간으로써 겸허함을 느끼게 하는 그 절을 복원을 못하다니..이런 저런 생각에 많이 안타까워 했고 그 후 황룡사에 대한 다큐멘터리나 신문 기사는 꼭꼭 챙겨보곤 했다.
세월이 10년은 훌쩍 흐른 2008년 2월, 600여년의 시간동안 대한민국을 지키오던 숭례문이 전소되었다. 문화재 청장이란 양반이 전소된 국보1호 앞에서 당신이 하신 말씀을 바꾸신다. ‘황룡사는 복원할 수 있다. 완벽하게 복원할 수 있다. 황룡사를 복원하듯 숭례문도 복원하면 된다’ 이런 요지의 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가 찰 노릇이다. 복원이야 되면 그것도 문화재에 대해 뭣 좀 안다는 문화재청장 말대로 완벽하게 복원된다면야 불행 중 다행이다.
그 뒤에 고구려왕이 장차 신라를 치려고 하면서 말하기를, “신라에는 세가지 보물이 있으니 침범할 수 없다” 하였다. 이는 무엇을 말함인가? 황룡사 장륙불상과 9층탑, 진평왕의 “하늘이 준 옥대”가 있다 하여 드디어 그들은 음모를 중지하였다.
승려가 쓴 글이라 불교에 대한 원시적이기까지 한 믿음이 많이 보이지만 윗 구절을 읽으며 조금은 부끄러웠다. 종교를 떠나서 황룡사 장륙불상과 9층탑은 국가의 보물이다. 그런 보물을 나라에서 소중히 여기는 고급 문화가 있었기에 고구려가 감히 신라를 넘보지 못한다 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떠했는가? 문화재는 곳곳에 방치되어 있고, 국보 1호는 지키지 못했으며, 전소된 국보 1호 앞에서 성급한 복원을 입에 담고 있다
일연이 말하듯(일인즉 마땅히 궁식과 집터를 못으로 만들어 오는 세대를 경계하고 아주 뿌리를 뽑아버려 자손들에게 교훈을 보여줄 것이로되, 유슌한 자를 맞아들이고 배반하는 자를 치는 것은 앞서 임금들의 좋은 법이요, 망한 것을 다시 일으키고 끊어진 것을 잇는 것은 지난날 성인들의 공통된 규범이었다. 어떤 일이든지 옛 것을 본받아야 한다는 것은 역사에 전하고 있는 말이다.) 망한 것 - 숭례문은 다시 일으키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본받아야 할 옛 것은 다섯 번 벼락 맞은 화룡사 9층 탑을 끈질기게 6번씩이나 다시 세운 그것 뿐만이 아닐지 모른다.
또 왕이 금강령에 갔을 때에 북악 귀신이 춤을 추어 보였는데 춤 이름이 옥도금이었다. 또 동례전에서 연회를 할 때는 터 귀신이 나와 춤을 추엇는데 그 이름은 지백 급간이다.
<어법집>에는 이르기를, “이 당시 산신이 임금 앞에서 춤을 추면서 노래를 불러 ‘지리다도파도파등자(智理多都波都波等者)!’라고 하였는데, 즉 말하자면 ‘지혜로 나라를 다스리는 자 가운데 뻔히 알면서도 도망치는 자가 많으므로 도성 안이 장차 결단이 날 판’이라는 의미이다” 라고 하였다. 이는 터 귀신이나 산신들이 나라가 장차 망할 줄을 알았기 때문에 일부러 춤을 추어 경고한 것인데, 사람들이 이를 알아채지 못하고 좋은 징조가 나타난다고 생각하고 유흥에만 너무 빠졌기 때문에 나라가 결국 망하고 만 것이다 - 어떠한 왕조, 어떠한 국가이든 영원한 나라는 없다. 인류 역사상 모든 나라는 흥망성쇠를 겪는다. 일연의 삼국사기에도 신라,백제,고구려의 흥망성쇠가 다 들어있다. 우리는 그런 것을 배워야 한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잇는 대한민국이 영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
다만 건국 초기의 일들을 따져본다면 윗자리에 앉은 자가 자신을 위하여는 검약하였고, 남을 위하여는 관대하였으며, 관제의 설정은 간략하게 하고, 정치 행사는 간편하게 하였으며,
- 삼국을 통일하였던 신라의 얘기이다. 우리는 이런 것을 배워야 한다. 특히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이명박 정부는 이런 구절을 가슴 깊이 새겨 담아야 한다. 낭이 말하기를, “남의 윗자리에 있으면서 겸손하게도 남의 아랫자리에 가서 앉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것이 첫째요, 드센 부자로서 검소한 의복을 입는 사람을 보았는데 이것이 둘째요, 근본이 세도 양반으로서 위세를 부리지 않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것이 셋째올시다” 하였다. 또한 경문대왕이 태자가 되기 전 세상에 나가 공부하다 만난 3명의 아름다운 이에 대한 이야기도 깊이 새겨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 이명박 정부가 절실히 바라는 선진국이란 영어를 잘하고 국민소득 2만불을 훌쩍 넘고 이런 것들만 말하여서는 안 될것이다. 선진국이란 느리지만 여유로운 고급 문화를 이루고, 윗사람이 겸손하고 검약한 노블레스 오블레주가 이루어지는 나라일진대 지금 우리는 그러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가? 선진국의 대열로! 무조건 경제! 경제!를 외치다 과장이긴 하지만 나라의 망조 기미를 읽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조금은 걱정이 된다.
삼국시대 뿐만 아니라 전 왕조를 살펴보아도 한 나라의 부흥기에는 문화가 아름답게 꽃피었었다. 지금 대한민국은 문화가 피고 있는가? 알지도 못한 채 지지는 않았을까? 아니면 아직 씨도 뿌리지 못한 것은 아닐까? 불탄 문화재의 사진을 보며..이 책을 읽으며 많은 생각들이 오가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