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의 철학 포즈 필로 시리즈 1
크리스토프 라무르 지음, 고아침 옮김 / 개마고원 / 2007년 10월
평점 :
절판


이국환의 책 읽는 아침 4월 17일 선정도서

 차를 소유하지도 않은데다 주위에 대부분 '빠른 것보다는 천천히!' 를 즐기는 이들이 많은지라 걷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가게 문 닫고 늦은 밤 '세상이 어수선하고 무서운데 감히 여자가 겁도 없이..'란 말을 듣더라도 꽤 먼거리를 걸어 퇴근하기도 하고, 여행도 차를 타고 쌩쌩 거리며 가서 휙 둘러만 보고 오는 관광보다는 소중한 이와 바람 냄새 즐기고 거리의 얼굴들도 맞대어 보며 뚜벅뚜벅 걸어다니는 것을 즐기는 편이다.
 그래서 일까? 제목부터가 나를 막 이끌었다.
 방송은 듣지 못하고 사전 지식도 없이 책만 주문해 놓고 기다리는 내내 이전에 걸었던 길들의 바람 냄새를 기억해 내며 설레기도 했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책이 도착해서 받아본 순간 생각보다 얇은 두께에 잠깐 놀라기도 하였는데 얇고 쉽게 읽히는 책이었지만 산책하듯이 천천히 곱씹으면서 읽었다. 쉽다고 내달려 읽지 않고 한 발 한 발 신중히 발걸음을 내딛으며 천천히 읽었고 누군가 이 책에 대해 물어 온다면 책 속에서 천천히 산책하라고 권하고 싶은 책읽기였다.

 

 그러고 보면 책읽기(특히 천천히 읽기)와 걷기는 참 닮은 구석이 있다. 
 책읽는 행위와 이 책에서 작가가 말한 걷는다는 행위의 바슷한 점을 살펴보자면
 첫째, 숙고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이다.
 천천히 책에 몰입해 읽다 보면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에 귀를 귀울이게 되고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마찬가지로 걸을 때 우리는 더 이상 사물의 모습을 그저 스쳐지나가지 않고 바라보게 되며, 그러다 보면 사물에 대해 숙고하는 법을 배우게 되기도 한다.(17p)
 둘째, 천천히 책읽기와 걷기 모두 효과가 점진적으로 나타난다.
 천천히 숙고하며 책을 읽고 있자면 빠르게 책 읽는 이들과 가끔 비교가 되면서 조급증이 일기도 한다. 지금 읽고 있는 내용을 다 소화하고 있기는 한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꾸준히 읽다 보면 당장엔 모르나 어느덧 책 속의 내용들이 입속의 혀처럼 완벽한 내것이 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데 된다. '느린 독'이란 표현이 젖확하게 보여주듯, 느림에는 특유의 힘이 있다. 이 표현은 독성분이 천천히,점진적으로 퍼진다는 뜻도 지니지만, 한편으로 집요하게 혈관 하나하나에까지 침투한다는 의미도 지녔다. 모든 느림에는, 특히 걷기의 경우에, 점진적으로 효과가 나타나되 결국에는 흔치 않은 강력함의 인상을 준다는 특징이 있다. 이것은 느밀이 존재의 총체를 관통하기 때문이다. (18p)
 셋째, 올바른 마음가짐으로 책을 읽는 이와 걷는 사람은 겸허하다.
 책을 읽는다는 행위로만 그치지 않고 숙고하면서 책을 읽고 또 읽은 내용을 곱씹으며 그것을 행동으로 옮길 줄 아는 이는 겸허하다. 얕은 지식을 내세우지도 않을 뿐더러 자신의 지식이 이 세상에서 아주 일천한 것임을 안다. 마찬가지로 걷는 사람은 겸허하다. 그는 자신을 지배하는, 그리고 삼켜버릴 수 있는 자연의 가운데에서 스스로가 작다는 것을 느낀다.(30p)
 넷째, 가장 빠른 수단이다.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 직접 체험할 수는 없다. 그러나 원하는 분야의 책을 읽으므로써 간접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 일례로 가고 싶은 곳을 먼저 여행한 이의 잘 쓰여진 여행 에세이를 읽고 있자면 나는 이미 그곳에 가 있기도 하다. 걷기 또한 마찬가지이다. 예컨대 자동차는 먼 거리를 짧은 시간에 이동할 수 있게 해 주는데 (중략) 사실 우리는 차를 구매하고 유지하는 데 필요한 시간도 계산해야 한다. 차 값과 유지비용을 대기 위해 우리는 몇 시간 동안 일해야 하는가? 반면에, 우리가 일상적으로 통근하려고 사 신는 신발의 가격은 얼마만큼의 노동시간에 해당하는가? 만약에 우리가 이 새로운 비용을 고려하여 계산을 다시 해본다면, 직장에 걸어갈 때보다 차를 타고 갈 때 훨씬 더 만흔 시간이 든다는 결과에 도달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아마도, 가장 빠른 이동수단은 걷기다. (53~54p)

 

 걷기에 대해 생각하고, 걷기에 대해 책을 읽었는데 걷는 것 뿐만 아니라 느리게 책읽기(이것은 필시 지난 주 선정도서 <책을 읽는 방법>의 영향이 컸다)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 했던 책읽기였다.
 햇살이 가게 전면창으로 마구 쏟아진다. 거리를 지나가는 행인들 옷차림만 봐도 봄바람이 느껴진다. 나도 저 거리에 나가서 뚜벅뚜벅 자박자박 걷는 것에 동참하고 싶은데 늘 아쉬운 것은 시간! 그러니 걷는 것에 대한 책을 읽으며 책 속을 걸을 수 밖에..
 이런 듯 어떻고 저런 듯 어떠하리오! 나는 오늘도 내일도 열심히 책 속을 천천히 걸을 터이고 한달에 두번 쉬는 날이면 꼭꼭 바람 냄새 맡으러 세상 속에 걸어나가리란 것은 변치 않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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