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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미래 - 라다크로부터 배운다, 개정증보판
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지음, 김태언 외 옮김 / 녹색평론사 / 2003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개방이 되기 전 라다크의 모습이 담긴 1부를 읽으면서 '무슨 옛 이야기에 나오는 무릉도원이나 이상향,천국의 모습을 상상해 쓴 것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그래서 그런가 결코 지겨워서가 아니라 구름 속을 사뿐사뿐 걷는 느낌으로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빠르지는 않았다.
저자의 말마따나 대부분의 사회가 자신을 우주의 중심에 두고 자신의 채색된 렌즈를 통해 다른 문화를 바라보는 경향이 있고 모든 사람이 우리와 같거나 우리와 같이 되기를 바란다고 여긴다.나도 TV 다큐멘터리의 오지인들의 생활을 볼 때면 개화되지 못한 이들이라며 괜시리 안쓰럽게 여기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 나름의 아름답고 자랑스런 문화과 있었고 나의 눈에는 척박할지 모르나 그들 조상 대대로 공존하고 순응하며 살아갈 감사한 땅이 있었다.그들에겐 그것으로 충분하고 행복했다.그런 이들에게 '개발'과 '원조'의 미명하에 들어온 소비주의 문화는 어찌보면 불행의 시작이었다.이런 급격한 변화가 담긴 2부부터는 책장을 넘기는 속도도 빨라졌고 손길도 거칠어질 수 밖에 없었다.
그들의 문화는 아름다웠다.자연과 소툥하며 사는 그들은 아름다운 인간이었다.그러나 서구문화가 마구잡이로 들어오면서 천상의 인간이던 라다크 사람들은 지상으로 내려와 스스로 도시 하층민이 되었다.그들의 문화에 대한 자부심도 잃었다.
내가 초등학교 시절이었다.그때만해도 해외 여행이 극히 일부만 할 수 있던 떄라 외국 물건이라면 선망의 대상이었고 일본과 서구 문물은 부의 상징이어다.한국적인 것은 부끄러운 것이기도 했다.
한 예로 88올림픽이 열리던 해.내 초등학교 모교가 시내 한복판에 있던지라 올림픽 성화 봉송단 환영을 위해 세게 국기 하나씩 들고 나갔는데 참으로 우리는 태극기를 촌스럽고 부끄럽게 여겨 서로 태극기는 들지 않으려 했다.'세계는 서울로,서울은 세계로'라는 구호 아래 세계를 받아들인다는 어린 맘에 '한국적'인 것은 다 촌스럽고 미개하게 여겼었다.국악은 변두리의 알 수 없는 소음이었지만 클래식은 우아하게 느꼈었다.
아무리 아시아의 변방에 위치했다지만 라다크만큼 오지에 있었던 것도 아닌데 불과 20년전만 해도 우리 또한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여기는 가난 같은 건 없어요 - 체왕 팔조르,1975년
당신들이 우리 라다크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우린 너무나 가난해요 - 체왕 팔조르, 1983년
10년도 흐르기 전 한 사람의 영혼이 저리도 급격히 바뀌다니..
이 책을 읽으며 참 많이 아팠던 것 중 또 다른 한가지는 다음의 기사였다.
유감스런 <오래된 미래> 최성일-출판 칼럼니스트
월드컵을 공동개최한 2002년부터 해마다 뜻 깊은 책 잔치가 열리고 있다.올랳로 여섯 번째를 맞은 '환경 책 큰 잔치'가 그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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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내리 '우리 시대의 환경고전'에 포함된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오래된 미래>는 작품성과 상업성이 조화를 이룬 보기 드문 예다.물론 판매량은 <야생초 편지>가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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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오래된 미래>의 번역판권이 녹색 평론사에서 중앙북스로 넘어갔다는 소식을 듣고 적이 놀랐다.나는 헬레나 노르베리-호지가 "진보와 운동을 가장한 떠벌이들" 중 하나라는 사실을 진즉에 알고 있었지만,이건 정말이지 배은망덕이 유분수다.앞으로 잡지 <녹색평론>의 원활한 간행에 해를 끼칠지 모른다는 얘기를 듣고선 화가 치밀었다.누구 덕에 우리나라에 알려졌는데,곱게 만들어진 책이 잘 팔리는데,칙사 대접 받아 거며 강연까지 했는데 말이다.
헬레나 노르베리-호지는 오래 전부터 번역의 문제점을 제기했다고 한다.사실,나는 <오래된 미래>의 개정증보판 출간이 좀 의아하긴 했다.초판 번역도 아주 읽을 만한데 왜 혼을 봤을까>나는 개정판을 읽으며 초판과 별다른 차이를 느끼지 못했다.게다가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이나 E.F 슈마허의 <작은 것이 아름답다>에 비하면 엄청 잘 읽힌다.나는 한국어판 <오래된 미래>의 뛰어난 가독성은 원저자의 글발 때문이기 보다는 번역자의 역략에 힘입은 거라 확신한다. <오래된 미래>가 우리나라에서 열띤 호응을 얻은 건 <녹색평론>과 녹색편론사에 대한 독자들의 신뢰가 밑바탕이 되었다는 점은 두담할 나위가 없다.
그러면,헬레나 노르베리-호지는 왜 신의를 저버렸을까?정황상 금전 문제인 게 유력하다.나는 목든을 들일 만한 헬레나 노르베리 - 호지의 어떤 '구매'에 관해 들었으나,인신공격이 될 수 있으므로 그 '용처'는 밝히지 않겠다.그래도 그녀가 백인 유한마담의 속성을 지녔다는,내가 그녀를 직접 본 느낌은 숨기지 않으련다.유감스럽게도 2003년 12월 10일 서강대 성이냐시오관 강당에서 있었던 강연회에서 내가 귀담아들을 얘기는 하나도 없었다.전직 '환경 책 큰 잔치' 실행위원으로서 새로 구성될 '2008 환경 책 큰 잔치' 실행위원회에 부탁드릴게 있다.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오래된 미래>는 '우리 시대의 환경고건'목록에서 퇴출시켜야 마땅합니다.소설가 최성각 선생의 표현대로 환경 책은 '인간의 얼굴을 한 상식의 힘'을 보여주는 '좋은 책들의 정수'이기 때문입니다."
책을 사 놓고 교보문고에서 양장본으로 된 <오래된 미래>를 발견하였다. 정식 판권책이라 적힌 새 책은 녹색평론사에서 나온 <오래된 미래>는 해적판인 것 같은 뉘앙스를 풍겼고 책 욕심이 많은 나로선 한발 앞서 녹색평론사의 책을 산 것을 약간 후회하였다.그러나 책의 3분의 읽었을 쯤 이 기사를 읽고는 라다크의 사람들이 변한 것에 마음이 아픈만큼 인간에 대한 실망이 컸다.
인터넷 사이트에 <오래된 미래>의 긴 리뷰에 하나같이 라다크 사람들과 함께 있는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사진을 같이 올린 것을 많이 보게 된다.그 사진을 보며 나도 라다크의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했고,라다크 사람들을 알게 해 준 헬레나에게 일종의 경외심 같은 것도 느껴었다.그러나 책이 한권씩 팔릴수록 라다크는 더욱더 유명해졌고,라다크를 방문하는 사람들도 많아졌으며 헬레나 노르베리-호지는 권력는 권력 자체가 되어 버렸다.라다크가 슬프게 변한 것처럼 헬레나도 슬프게 변해 버렸다.
가수는 노래만 잘하고 배우는 연기만 잘 하고 작가는 좋은 글만 쓰면 되는 것..어찌보면 그것도 맞는 말이다.그러나 가수나 배우가 일정 수준 이상의 인지도를 가지게 되면 사회적인 모범이 보여야 된다고 생각한다.그들은 그것으로 노블레스를 가지게 되었으므로 노블레스 오블레주를 실현해야 하니까.그런 의미에서 <오래된 미래>는 책 자체로는 참으로 좋았으나 작가의 사적인 문제로 감동이 많이 반감되는 책읽기였다.
라다크가 변해 슬프고 작가가 변해 슬펐던 책읽기..
참으로 갈팡지팡했던 책읽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