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어디서 추천을 받아 구매하게 되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그 추천을 믿지 않으련다.
등단 과정을 거치지 않은 서른 살의 시인이 오로지 삶과 말의 힘으로 블로그에 적어 발표한 글을 모았다. 남편에게 맞고 혼자서 애 키우며 힘겹게 살아가지만 오히려 시원하게 웃으며 적어간 삶의 기록이다.
라는 책 소개 글 중 등단 과정을 거치지 않은 서른 살의 시인이 오로지 삶과 말의 힘으로 블로그에 적어 발표한 글을 모았다. 딱 요 부분에서 알아차렸어야 했다. 블로그에 적어 발표한 글...그 글들을 모은 책들에 얼마나 실망을 많이 하였던가..
프롤로그를 살펴보자
이미 당신은 충분히 행복하다
여기,
결혼 생활 내내 남편한테 욕설과 위압적인 태도에 시달리다가
문자 그대로 '하루아침에' 오른쪽 귀가 멀고,
아이 낳은 지 석 달 만에 살이 30킬로그램 넘게 빠져버려
배만 볼록 나오고 엉덩이는 하나도 없는 난민 같은 몸으로
한 팔에는 젖먹이 아이를 달래고,
한 팔로는 끼니때마다 위장이 상한 남편 먹일 죽을 달이며
지내는 한 여인, '그녀'가 있다.
어느 날 그녀는 밤9시부터 새벽 4시 반까지
남편에게 밥상을 찍히고, 발로 밟히고,
주먹으로 얼굴을 맞고, 머리채를 잡힌 채로
방에서 방으로, 집 안에서 문밖으로 이리저리 끌려다녔는데,
부엌칼 들고 위협하던 남편이란 사람이,
들어간 지 며칠 안 된 그녀의 직장 상사가
아이 돌봐줄 보육원을 소개해주었다는 이유로
아무나하고나 붙어먹는 년이라는 말을 하였을 때,
그녀, 비로소 남편을 밀치고 맨발로 경찰서로 달려간다.
한 팔로는 젖먹이 아이를 안고,
한 팔로는 죽어라 그녀 얼굴에 주먹 날리던 남편은
경찰서고 따라와 잘못했다고 빈다.
중략
다시 '그녀'의 이야기로 돌아와서,
그녀의 인생은 불행한가?
그녀는 잘 웃고, 씩씩하며, 때때로 생각 없이 보이기까지 한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행복해요, 내가 그렇게 말하기 전에, 이미."
이미 가진 것 때문에 자신이 충분히 행복하다는 그녀.
글들이 죄다 이 모양이다.
나도 내 미니홈피에 일기를 쓸 때 시는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글을 쓰곤 한다. '그녀' 충분히 아팠고 그 아츰을 불행하지 않다 여기며 열심히 잘 살아내고 있는 것은 알겠다. 잘 살아내기 위해 블로그에 자신의 생각을 풀어내 가는 과정이 필요했다는 것도 인정하겠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의 블로그에서만으로 끝났어야 했다.
남들이 불행하다고 볼 수 있는 삶을 '나 불행하지 않아요' 라고 보여 주는 것을 무엇이라 하는 게 아니다. '그녀'의 성찰은 시가 아닌 글임에도 시처럼 행과 연을 만들어 적은 그 순간에 다 사라지고 없어진 느낌이다.
마음에 와 닿는 구절도 많았다. 그러나 독자가 스스로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며 읽을 권리를 박탈한, 시도 아닌 시같은 글은 이렇게 활자로 척하니 책으로 펴낸다는 것은 솔직히 말해 '싫다' . 스스로 불행하지 않다 말하지만 실은 '나 이리도 아파요. 불행해요. 나를 불쌍히 여겨 주세요' 라고 부르짖는 것 같아 거슬린다.
에세이로 분류되어 있는 이 책, 시처럼이 아닌 짧으나마 수필 형식 그대로 적어내려 갔다면 가끔씩 끼워져 있는 사진들과 함께 가슴 뻐근하게 읽을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참 아쉬움이 남는 책읽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