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헌영 평전 역사 인물 찾기 27
안재성 지음 / 실천문학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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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사실, 본 서평을 쓰기 전에 이런저런 다른 사람들의 서평을 웹으로 조금 구경해봤고, 저자의 다른 책에 대한 주변의 평가도 조금 알아보기도 했다. 보통 이런 수고 어지간하면 잘 안하는 편인데, 그럼에도 그랬던 이유는 개인적으로 그만큼 박헌영에 대해, 그리고 이 책에 대해 읽고 난 후에도 어떤 갈증이랄까, 그런것이 남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이 책을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그런의미에서 본서에 대한 평가가 적어도 내 주변에서는, 그리고 내가 찾아본 서평에서는 굉장히 야박한 것 같다는게 다소 유감스럽기는 하지만, 적어도 해방정국의 한반도에서 동원가능한 거의 유일한 정당이었을법한 정당의 수장에 대한 읽어볼만한 평전이 쓰여졌다는 점 그 하나만으로도 본서는 충분히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알다시피, 해방정국에서 한국전쟁까지가는 과정 속에서 남과 북 모두로부터 버림받고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인사는 비단 박헌영 한사람 뿐만은 아니다. 하지만 중도좌파까지만 커버하던 기존의 대중적 연구분야(?)에서 적어도 '공산주의자'부분에 있어서는 최초의 그럴듯한 출판물이라는 점, 아울러 박헌영의 일생이, 그러한 남과북 모두로부터 금기시되는 좌익인사의 일생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본서는 충분히 가치가 있어 보인다.(참고로 본서는 말미에 박헌영 뿐만 아니라 그와 뜻을 함께하다 비슷한 행보를 걷게 된 수많은 좌익인사들이 전쟁이 끝나고 어떻게 사라져갔는지를 아주 담담하게 서술하고 있는데,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이 책의 백미라고 봐도 무방할 듯 싶다. 정말 영화보다 낭만적이고 신화적이고 비극적이랄까.) 후처와 후처의 자식들은 전부 소리소문없이 함께 숙청당하고, 조선 여성 공산주의자의 대표주자였던 전처는 소련에서 스탈린에 의해 강제이주당하며 전처의 딸은 그런 사정조차 모른채 스탈린주의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고, 남한에 유일하게 남은 아들은 스님이 된 기구한 사정은, 어찌보면 해방 이후 한반도의 기구한 운명을 투사해 보여주는 것 같기까지 하다. 

사실 학부시절 현대사를 처음 접한이후 지금까지, 개인적으로는 외세에 의해 해방이 되는 바로 그 순간, 한반도의 분단은 유예는 할 수 있으되 막을 수 없는 필연아니었나라는 생각을 하곤한다. 아울러 깐깐하고 샌님같은(김일성은 그를 '리론가'라고 종종 비꼬고는 했다)뿐만아니라 소극적이고 심지어 살짝 수줍음까지 타는 듯한 박헌영의 성격은, 상황이 어떻게 되건간에 당내 경쟁에서 김일성에게 밀릴 수 밖에 없는 단초가 되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만약 박헌영이 한반도 공산주의자의 수장으로, 아니 외세의 조금 더 유연한 대외전략에 따라 남한의 공산주의자 정당에 수장으로 남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부질없는 상상을 해보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그의 비대중적 성향, 무엇보다 스탈린주의에 대한 교조적인 성향은 공산당이 해방정국 이후 더이상 커가는 데에는 분명히 방해요인이 되었을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아마도, 박헌영의 공산당이 남한에 설령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이탈리아 공산당같은 유연함과 그에 따른 세를 확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프랑스 공산당처럼 적어도 70년대까지는 지식인들의 보호막으로 충분히 기능할 수 있지는 않았을까. 노동자들의 최후의 보험으로, 지식인들의 방탄막으로 자신의 역사적인 소명을 다한채, 조용히 평화롭게 역사의 한페이지에 기록될 수 있지는 않았을까, 그 흐름 속에서 적어도 우리 사회는 조금 더 자유롭고, 조금 더 평등하고, 조금 더 민주적으로 변할 수 있지는 않았을까. 물론 그것이 어느 교조적인 좌파정당이 의도한 것이건 의도하지 않았던 것이건 말이다.(물론 친일지주들이 모여만든 극우적 여당과, 무산계급의 친구...도 아니고 아버지(그것도 폭군같은!!)를 자처하는 스탈린주의적 제1야당이 타협없이 죽도록 치고박고 싸우다가 죄다 공멸했을수도 있겠다마는) 

사실, 해방정국에서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했던 것은 어떤 이론가도, 외교관도, 운동가도, 군인도 아닌 바로 '정치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든다. 모두가 자신의 이념을 내세우며 그 이념에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을 각오가 되어있는 해방정국의 상황은, 그 이념적 분열성과 함께 필연적으로 전쟁의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었다. 바로 이 전쟁의 가능성을 감소시키고, 그것의 결과가 설령 '분단'이라 하더라도 어떤 식으로건 전쟁없이 평화적으로 타협해나가는 데 필요한 것이 바로 '정치'와 '정치인'이었다. 그런의미에서, 어찌보면 모두 '정치인은 아니라는 점'에서 평면적인 해방전후의 인물들 중 박헌영은 조금 혼란스러운 인물이다. 그는 분명 교조적이고, 종종 무리수를 두는 결단과 그에 기반한 정세파악을 하여 일을 그르치곤 했지만, 때때로 마키아벨리적인 모습 또한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의 해방전후 정국에서의 마키아벨리적인 행보는 이후 그를 고난에 빠뜨리는 한 원인이 되어버린 셈이지만, 정작 내가 박헌영을 평가하는 부분은 바로 그 부분이다.  

ps. 끝으로 살짝 여담. 서평을 쓰면서 '잘 모르는 데 이렇게 막 써도 되냐'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건 역설적으로 그만큼 우리가 해방전후사 연구에 대한 질적인 논쟁을 하기 이전에 연구의 양부터 충분한가라는 질문에 마주서게 한다. 연구자의 이념적 정향을 떠나서라도 이 부분에 대한 어느정도 진지한 연구가 양적으로라도 좀 늘어나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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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10-04-15 16:38   좋아요 0 | URL
요즘 서점엔 80~90년대에 나온 해방전후사 관련서적들은 다 없어졌는데도 그 이후 나온 관련서적들도 그 량이 엄청나더군요.고르기가 어려울 정도로...

率路 2010-04-16 00:27   좋아요 0 | URL
앗, 정말요? 막상 저는 90년대 나온 해방전후사 책(청년사라던지 다현사같은), 아니면 브루스 커밍스나 이종석 선생님 책 정도만 읽은터라...ㅠㅠ 막상 박헌영이나 그시절 토착 공산세력을 다룬 책은 박헌영 전집 빼고나면 이거랑, '현대사 인물들의 재구성' 그리고 지금은 절판된 '한국현대사의 라이벌'빼곤 찾지를 못하겠더라구요. 어떻게 추천해주실만한 책 혹시 없을까요?ㅠㅠ

노이에자이트 2010-04-16 16:24   좋아요 0 | URL
이정식<대한민국의 기원> 강준식<혈농어수>(여운형과 박헌영의 암투가 잘 나와 있음) 심지연<이강국 연구> 도진순<분단의 내일 통일의 역사> 모두 꽤 두툼합니다.이 책 읽고 나서 커밍스 책을 다시 읽으십시오.몇가지 질문해도 될까요? 1.안재성의 책에는 여운형과 박헌영의 관계에 대해 어떻게 나와 있는지요? 2.커밍스의 책은 어떤 것을 읽으셨습니까?

率路 2010-04-17 00:41   좋아요 0 | URL
1.여운형 선생과는 각별할 수밖에 없는 관계이지만(첫 결혼 주례까지 서셨더라구요!), 기본적으로 '두루두루 친한'여운형을 박헌영은 아주 좋게만은 보지는 않았고, 나아가 여운형의(공산당원의 입장에서 봤을때) 개량주의적인 경향으로인해 결국 둘은 갈라섰다는 식으로 조금은 복잡 미묘하게 써 있었던 것 같아요. 연관해서, 저자 본인도 여운형을 가끔은 '호인'으로 가끔은 '세상물정 모르는 순진한 정치인'으로 혹은 '여기저기 걸쳐놓은 줏대없는 정치인'으로 왔다갔다 하면서 표현을 하는 듯 싶습니다. 물론 전반적인 평은 '호인'쪽에 가깝긴 하지만요.

2.커밍스의 책은 대학 입학하고 초기에 의욕적으로 '한국전쟁의 기원'을 사놓고 세월아 내월아 하면서 찔끔 보려는데 컴퓨터 조판이 아니라는 그 한가지 이유만으로(!)제껴놨다가 손호철 선생이 '현대 한국정치'의 한 꼭지에서 커밍스의 이 책을 비판한 것을 읽고나선 이래저래 치이면서 내용을 대강 유추-_-;;;;하고 접어버렸어요. 그러다가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가 나와서 읽었는데, 역시나 꼼꼼히 다 읽었다고는 결코 말할수 없을 정도로 설렁설렁 날림으로 읽었지요. 차라리 이종석 선생의 '조선로동당 연구'를 정말 감탄하면서 읽었는데 지금와선 당최 기억이 안나기도 하거니와 초점이 해방 전후 토착 공산세력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보니.-_-;;;;;

-검색해봤는데 정말 두툼하네요. 더군다나 혈농어수는 어휴..(근데 이건 또 무슨 심뽀인지 땡기기는 젤 떙기네요^^;;;;) 아무래도 전부 다 읽는건 물리적으로나 재정적으로나 불가능일것 같지만!!그래도 저 중에 한두권정도는(이미 찍었어요^^;;;)읽고 감상문을 제출하려구요. 책 추천 감사합니다~ㅋㅎ

노이에자이트 2010-04-17 15:38   좋아요 0 | URL
답변에 맞추어 말씀드리겠습니다.제가 추천한 책을 읽기 전에 커밍스<한국전쟁의 기원>중 '국제주의적 정책과 민족주의적 논리'를 정독하고 들어가십시오.특히 여운형이 좌우합작을 하면서 토착공산세력과 결별하는 과정을 주목해서 보시구요.<혈농어수>가 소설이긴 하지만 꽤 어렵습니다.그전에 이정식 책의 이승만,김구,여운형,김규식론을 읽는 게 나을 겁니다.

열심히 읽으시고 그 연구성과를 한번 여기 써주십시오.저에게도 공부가 많이 될 것입니다.

率路 2010-04-18 00:13   좋아요 0 | URL
음, 그러니까 우선 이정식 책을 건드려(?)봐야겠군요. 그 전에 한국전쟁의 기원을...근데 조악하고 완역되지도 않은셈인 한국전쟁의 기원이야말로 다시 좀 나왔으면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들어요. 물론 너무 오래된 책이고 혹자는 이제 그 효용가치가 없어졌다고까지 이야기하지만, 어떤의미에서 우리시대의 '고전'이었다는 팩트만큼은 사실이잖아요?

노이에자이트 2010-04-18 15:51   좋아요 0 | URL
<한국전쟁의 기원> 1권은 완역된 겁니다.번역 가지고 말은 많지만 참고 읽을 만합니다.솔직히 말해서 <한국전쟁의 기원> 1권을 정독한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명저라고 하니 읽은 체하는 사람은 많지만요. 다른 책을 읽고 나서 다시 읽으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해방전후사는 외교사도 알아야 하니까 상상외로 어렵습니다.고교시절 국사시간에 제대로 강의 들어본 적도 없습니다.그러니 독학해야지요.


건준-인공-민주주의 민족전선-인민당-남로당으로 변하는 과정은 자칫 집중력을 잃으면 독서가 엉망이 됩니다.특히 좌우합작을 축으로 정신 바짝 차리고 공부해야지요.

좋은 성과를 기대하겠습니다.

率路 2010-04-19 17:48   좋아요 0 | URL
아, 저는 번역을 논하는 수준은 아니구요, 구하기도 힘든데 편집이라도 다시해서 나왔으면 해서요^^;;; 저 정도 세대만 되어도 컴퓨터 조판이 아니니깐 읽기가 조금 쉽지않더라구요.ㅠㅠ 그리고 2권은 어떤 내용인지 몰라도 번역이 안된게 조금 의아하기도 하구요.(우리시대의 '고전'임에도 말이죠)

여담입니다만, 저는 고교시절 국사시간에 건준-인공 정도까지는 배웠었어요. 국사선생님께서 무려 고등학교 3학년 때 '과거사는 단군이 시조고 삼국-신라-고려-조선-일제시대로 이어진 것정도만 알면 된다. 하지만 현대사를 모르는 놈은 바보다.'라고 하시며 1년 내내 현대사를 가르치셨거든요(참고로 전교조 선생님은 아니셨습니다.) 마지막 시간에는 6월항쟁 자료집 보는걸로 끝나면서 그렇다고 일방적인 주장보다는 논란꺼리를 소개해주셨죠(물론 80년 광주나 유신같은거에 대해선 논란꺼리를 만드는것 자체가 편향된 이야기인지라 제외하고라두요)

문제는 저희때는 정말 감동먹으면서 수업을 들었는데, 듣기에 저희 졸업하고 매해 시간이 지나면서 학부모들이 입시공부 시켜야 할때 그런거 가르친다고 항의가 들어왔었나봐요. 선생님 입장에선 어차피 그렇게 입시공부시키실꺼라면 돈도 많이 벌 수있고, 더 많은 애들 가르칠 수 있는 학원이 낫겠다 싶으셨는지 사교육 시장으로 자리를 옮기셨다구 들었구요. 그 이후로 전 비대해진 사교육 시장 종사자들에 대해 욕을하지 않게 되었죠. 그분들 책임이라기보단, 우리모두 공모해 만들어낸 것 같다는 느낌? 그런게 들어서 말이죠. 앗 갑자기 상관없는 이야기 주저리주저리. 아무튼 고등학교 때 그런거 가르쳐주시는 선생님도 계신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4-19 22:15   좋아요 0 | URL
한국현대사에 관한 해외명저들이 주로 80년대 중반에서 말기까지 꽤 번역되었는데 지금은 안 나옵니다.헌책방에서 구해야지요.저도 헌책방에서 구했습니다.인용도 많이 되는 책들이라서 필독서에 속하지요.

겉으로는 역사를 알아야 하네 어쩌네 하지만 역시 시험에 안 나오는 현대사를 잡고 가르치는 교사는 학부모,학생 모두에게 환영받지 못하지요.이제 지금의 청소년들이나 그 부모세대나 모두 현대사를 모르니 다 마찬가지네요.저와 제 동생들은 현대사를 강조하는 그런 선생님을 단 한 분도 못만났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