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적이었던 20대에 난 풍요로운 삶을 꿈꿨다.> - 그 2번째 이야기
전편을 쓰던 그 날의 Feel이 끊어져서 제대로 이야기가 연결되어질 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써 볼까 합니다.
사실 꼬리말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는데, 이번엔 어떻게 내가 쓴 내용이 좀 잘난 척 하는 걸로 보여져서인지 솔직히 기분 상하는(내가 오해한 게 아니라면) 글이 하나 있었습니다.
지금 쓰는 글의 성격도 누군가에게 뭔가를 가르치고자, 잘난 척 하는 게 아니라 내 얘기를 솔직하게, 재미있게 얘기하면서 읽는 사람이 음, 이 사람은 이렇게 살았고 지금은 이렇게 살고 있고 앞으론 이렇게 살려고 하는구나, 라고 편하게 봐주기를 바라는 생각에서 쓰는 글일 뿐입니다.
내용에 잘난 척, 건방진 내용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런 부분은 이해를 구합니다.
(제 개인적인 신상에 관한 얘기는 반말이 편하네요.)
지금은 ‘드림리스트’라는 단어가 익숙하지만 그 당시엔 그런 말조차 몰랐다.
단지 신문이나 잡지에 눈에 띄게 마음에 드는 게 나오면 찢어서 가방이나 다이어리 같은 데에 넣어 다녔다.
전편에서 얘기한 몰디브 섬이나 유명 고가브랜드도 그러한 것 중의 일부이다.
(이 ‘드림리스트’에 관한 내용도 포함해 내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얘기가 중간에 끊겼다.)
나의 90년대 후반은 힘들고, 고독했고,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1997년도였던 것 같다.
좀 유명한 의류회사에 다녔는데 회사가 부도가 났다.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도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 떠났다. (그녀도 연상이었다. 후에 돌아오고 싶다고 울면서 내게 여러 번 전화했지만, 이미 그 땐 내게 다른 여자가 있었다.)
가족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혼자 할 일이 없었다.
잠도 오지 않고, 사람 만나는 것도 싫었다.
돈도 없었다.
갚아야 할 돈도 천 몇 백만원이나 되었다.
당시 연봉과 맞먹는 수준의 빚이었다.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찬 날들이었다.
낮과 밤이 뒤바뀌는 생활이 거의 1달 가까이 지속됐다.
새벽까지 비디오 보다가 산에 올라갔다가 초등학생들 등교할 때 산에서 내려왔다.
지금은 산을 싫어한다.
1달이 지나면서 신문에 사원모집광고를 뒤지기 시작했고(그 때만 해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다. 유니텔, 천리안 쓰던 시절이다. 집에도 컴퓨터가 없는 집이 더 많았다.) 이력서를 준비해서 다시 뛸 준비를 했다.
그리고 취직하고 부지런히 돈을 갚아 나갔다.
1999년도의 일이다.
그 당시 모 미국계 부동산회사와 모 국내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거의 비슷한 시기에 합격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둘 다 적성에 맞는 일이었다.
하지만 부동산회사를 선택함으로써 나의 진로는 바뀌었다.
지금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근무했다면 후에 프로덕션을 차렸을 지도 모르겠다.
겉멋만 엄청 잡고 다니면서…
부동산회사에서 영업에 대해 눈을 뜨면서 자신감이 서서히 붙었고, 2001년경 창업하면서 조금씩 탄력을 받아갔다.
(그 당시 이야기들은 지난 몇 달간 적어 놓은 글에 나와 있으니까 생략합니다.)
‘현업에서 최고가 되면, 전문가가 되면 고액의 수입을 만들 수 있다.’
‘경쟁력이 곧 돈이다.’
‘경쟁력’이란 단어에 대해서 얼마나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말은 쉽지만 결코 경쟁업체를 따돌리고 나만의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가만히 있나요?
그들도 부지런히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회사는 대단한 건 아니지만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노력한 결과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맥도 크게 도움이 됩니다. 어쩌면 인맥과 부지런함, 신뢰가 곧 경쟁력의 전부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합니다.)
우리 회사는 규모는 작지만 우리 업무분야에서는 강남에서 몇 손 가락 안에 드는 회사입니다. (부동산도 굉장히 다양한 분야가 있습니다.)
직원들도 영업직만 있는데 평균 연봉이 어지간한 외국계회사 팀장보다 많습니다.
저도 적지 않게 법니다.
(원래는 정확한 금액을 명기하려고 했으나, 아무래도 두리뭉실하게 가는 편이…)
저는 마흔 살이 되기 전까지 고생스럽지만 뭔가 이루고 싶은 게 있습니다.
드래곤(노용환)님이 책(32세,32평 만들기)에서 그러더군요.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의 경제력이 평생 간다.’고.
남자 나이 마흔. 제일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마흔 살에 이제까지 살아온 길을 다시 돌아보고, 주변을 둘러봤을 때 내 스스로 당당할 수 있다면 성공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회사원이라면 자신의 몸값을 올리고, 더불어 절약을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영업을 하는 사람, 사업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뭔가를 많이 주려고 합니다.
제 마음도 주지만 물질적인 것도 줍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직원들에게 맛있는 것도 많이 사 주고, 좋은 곳도 데리고 다니고, 선물도 하고, 좋은 얘기도 많이 해 주려고 합니다.
물론 적지 않은 돈이 듭니다.
‘투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고, ‘관계’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고, 나도 즐긴다, 라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드림리스트’라고 위에서 얘기한 적 있습니다.
자신이 이루고 싶고, 가지고 싶고, 가고 싶은 곳 등 소중한 것들을 기록해서 가지고 있는 것을 ‘드림리스트’라고 앤서니 라빈스나 브라이언 트레이시가 말하기도 했습니다.
(표현들은 다소 틀리지만 크게 보면 ‘드림리스트’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1년에 3,000만원(혹은 5,000만원) 저축
3년(혹은 5년) 내에 내 소유의 아파트 구입
10년 내에 벤츠(혹은 오피러스) 구입
3년 내에 결혼하기
뭐, 이런 겁니다.
사실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적을 필요도 있지만 저는 이렇게 간단하게 적습니다.
언젠가 ‘드림리스트’를 죽 적어보니까 75개 정도가 되더군요.
그 중에서 저는 매년 초 20개 정도의 ‘드림리스트’를 프랭클린 플래너에 적습니다.
저의 경우엔 절반 이상은 이루어지더군요.
물론 큰 꿈만 적는 건 아닙니다.
갖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같이 남들이 보면 이해하지 못 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전편에 기록한 고가 브랜드(속칭 ‘명품’) 중 저렴한 것 한 가지를 가지고 싶다는 것은 제게 ‘꿈’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티파니 매장에서 여자친구와 싸운 건 그 당시 제가 너무 없었고, 하필이면 옆에 있던(돈도 우리보다 더 없어 보이는) 대학생 커플이 이거 얼마에요? 라고 물었고 점원이 1,200만원입니다, 라고 대답하는 장면을 보면서 갑자기 신경질을 내기 시작해서 입니다.
(옆에서 물었던 것들도 어머! 1,200만원요? 하더니 후다닥 나가 버렸다. 아 미치겠네. 저 인간들.)
저는 사실 그 옆에 있는 200만원대 초반의 커플링을 보고 있었는데…
그 정도는 제가 돈 좀 벌면 얼마든지 사 줄 수 있을 것 같아 보러 간 건데…
무지 속상했습니다.
남자도 마지막 자존심만큼은 잃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나의 어쩔 수 없는 무능함을 보여준 것 같아 괴로웠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저의 ‘드림리스트’ 중 일부를 공개하고 그 중에 이루어진 것,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믿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드림리스트’는 반드시 기록하고, 시각화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이유는 아마도 자주, 자꾸 생각하게 되고 자기암시를 해서 더욱더 노력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다음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