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적이었던 20대에 난 풍요로운 삶을 꿈꿨다.> - 그 2번째 이야기

 

 

전편을 쓰던 그 날의 Feel이 끊어져서 제대로 이야기가 연결되어질 지는 모르겠지만 계속 써 볼까 합니다.

 

사실 꼬리말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는데, 이번엔 어떻게 내가 쓴 내용이 좀 잘난 척 하는 걸로 보여져서인지 솔직히 기분 상하는(내가 오해한 게 아니라면) 글이 하나 있었습니다.

지금 쓰는 글의 성격도 누군가에게 뭔가를 가르치고자, 잘난 척 하는 게 아니라 내 얘기를 솔직하게, 재미있게 얘기하면서 읽는 사람이 음, 이 사람은 이렇게 살았고 지금은 이렇게 살고 있고 앞으론 이렇게 살려고 하는구나, 라고 편하게 봐주기를 바라는 생각에서 쓰는 글일 뿐입니다.

내용에 잘난 척, 건방진 내용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런 부분은 이해를 구합니다.

(제 개인적인 신상에 관한 얘기는 반말이 편하네요.)

 

 

지금은 드림리스트라는 단어가 익숙하지만 그 당시엔 그런 말조차 몰랐다.

단지 신문이나 잡지에 눈에 띄게 마음에 드는 게 나오면 찢어서 가방이나 다이어리 같은 데에 넣어 다녔다.

전편에서 얘기한 몰디브 섬이나 유명 고가브랜드도 그러한 것 중의 일부이다.

(이 드림리스트에 관한 내용도 포함해 내 이야기를 하려고 했는데 얘기가 중간에 끊겼다.)

 

나의 90년대 후반은 힘들고, 고독했고,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1997년도였던 것 같다.

좀 유명한 의류회사에 다녔는데 회사가 부도가 났다.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도 개인적인 사정이 생겨 떠났다. (그녀도 연상이었다. 후에 돌아오고 싶다고 울면서 내게 여러 번 전화했지만, 이미 그 땐 내게 다른 여자가 있었다.)

가족들도 뿔뿔이 흩어졌다.

혼자 할 일이 없었다.

잠도 오지 않고, 사람 만나는 것도 싫었다.

돈도 없었다.

갚아야 할 돈도 천 몇 백만원이나 되었다.

당시 연봉과 맞먹는 수준의 빚이었다.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찬 날들이었다.

낮과 밤이 뒤바뀌는 생활이 거의 1달 가까이 지속됐다.

새벽까지 비디오 보다가 산에 올라갔다가 초등학생들 등교할 때 산에서 내려왔다.

지금은 산을 싫어한다.

1달이 지나면서 신문에 사원모집광고를 뒤지기 시작했고(그 때만 해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다. 유니텔, 천리안 쓰던 시절이다. 집에도 컴퓨터가 없는 집이 더 많았다.) 이력서를 준비해서 다시 뛸 준비를 했다.

그리고 취직하고 부지런히 돈을 갚아 나갔다.

 

1999년도의 일이다.

그 당시 모 미국계 부동산회사와 모 국내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거의 비슷한 시기에 합격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둘 다 적성에 맞는 일이었다.

하지만 부동산회사를 선택함으로써 나의 진로는 바뀌었다.

지금은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근무했다면 후에 프로덕션을 차렸을 지도 모르겠다.

겉멋만 엄청 잡고 다니면서

 

부동산회사에서 영업에 대해 눈을 뜨면서 자신감이 서서히 붙었고, 2001년경 창업하면서 조금씩 탄력을 받아갔다.

(그 당시 이야기들은 지난 몇 달간 적어 놓은 글에 나와 있으니까 생략합니다.)

 

현업에서 최고가 되면, 전문가가 되면 고액의 수입을 만들 수 있다.

경쟁력이 곧 돈이다.

 

경쟁력이란 단어에 대해서 얼마나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말은 쉽지만 결코 경쟁업체를 따돌리고 나만의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다른 사람들은 가만히 있나요?

그들도 부지런히 뛰어다니고 있습니다.

(저는, 우리 회사는 대단한 건 아니지만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을 노력한 결과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맥도 크게 도움이 됩니다. 어쩌면 인맥과 부지런함, 신뢰가 곧 경쟁력의 전부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합니다.)

 

우리 회사는 규모는 작지만 우리 업무분야에서는 강남에서 몇 손 가락 안에 드는 회사입니다. (부동산도 굉장히 다양한 분야가 있습니다.)

직원들도 영업직만 있는데 평균 연봉이 어지간한 외국계회사 팀장보다 많습니다.

저도 적지 않게 법니다.

(원래는 정확한 금액을 명기하려고 했으나, 아무래도 두리뭉실하게 가는 편이)

 

저는 마흔 살이 되기 전까지 고생스럽지만 뭔가 이루고 싶은 게 있습니다.

드래곤(노용환)님이 책(32세,32평 만들기)에서 그러더군요.

아이가 초등학교 들어갈 때의 경제력이 평생 간다..

남자 나이 마흔. 제일 중요한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마흔 살에 이제까지 살아온 길을 다시 돌아보고, 주변을 둘러봤을 때 내 스스로 당당할 수 있다면 성공한 거라고 생각합니다.

 

회사원이라면 자신의 몸값을 올리고, 더불어 절약을 통해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겁니다.

저는 영업을 하는 사람, 사업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뭔가를 많이 주려고 합니다.

제 마음도 주지만 물질적인 것도 줍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직원들에게 맛있는 것도 많이 사 주고, 좋은 곳도 데리고 다니고, 선물도 하고, 좋은 얘기도 많이 해 주려고 합니다.

물론 적지 않은 돈이 듭니다.

투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고, 관계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고, 나도 즐긴다, 라고도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드림리스트라고 위에서 얘기한 적 있습니다.

자신이 이루고 싶고, 가지고 싶고, 가고 싶은 곳 등 소중한 것들을 기록해서 가지고 있는 것드림리스트라고 앤서니 라빈스나 브라이언 트레이시가 말하기도 했습니다.

(표현들은 다소 틀리지만 크게 보면 드림리스트라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1년에 3,000만원(혹은 5,000만원) 저축

3년(혹은 5년) 내에 내 소유의 아파트 구입

10년 내에 벤츠(혹은 오피러스) 구입

3년 내에 결혼하기

, 이런 겁니다.

사실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적을 필요도 있지만 저는 이렇게 간단하게 적습니다.

 

언젠가 드림리스트를 죽 적어보니까 75개 정도가 되더군요.

그 중에서 저는 매년 초 20개 정도의 드림리스트를 프랭클린 플래너에 적습니다.

저의 경우엔 절반 이상은 이루어지더군요.

물론 큰 꿈만 적는 건 아닙니다.

갖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같이 남들이 보면 이해하지 못 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전편에 기록한 고가 브랜드(속칭 명품) 중 저렴한 것 한 가지를 가지고 싶다는 것은 제게 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티파니 매장에서 여자친구와 싸운 건 그 당시 제가 너무 없었고, 하필이면 옆에 있던(돈도 우리보다 더 없어 보이는) 대학생 커플이 이거 얼마에요? 라고 물었고 점원이 1,200만원입니다, 라고 대답하는 장면을 보면서 갑자기 신경질을 내기 시작해서 입니다.

(옆에서 물었던 것들도 어머! 1,200만원요? 하더니 후다닥 나가 버렸다. 아 미치겠네. 저 인간들.)

저는 사실 그 옆에 있는 200만원대 초반의 커플링을 보고 있었는데

그 정도는 제가 돈 좀 벌면 얼마든지 사 줄 수 있을 것 같아 보러 간 건데

무지 속상했습니다.

남자도 마지막 자존심만큼은 잃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나의 어쩔 수 없는 무능함을 보여준 것 같아 괴로웠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저의 드림리스트 중 일부를 공개하고 그 중에 이루어진 것,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이루어지리라 믿고 있는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드림리스트는 반드시 기록하고, 시각화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이유는 아마도 자주, 자꾸 생각하게 되고 자기암시를 해서 더욱더 노력하게 만드는 효과가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입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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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망적이었던 20대에 난 풍요로운 삶을 꿈꿨다.>

 

 

20대 중,후반이 내겐 제일 힘겨운 시절이었다.

 

가정 불화, 무책임한 부모, 카드빚, 6개월 이상 밀린 집세…

그 중에서도 카드빚은 가족의 생계비와 아버지의 허세(접대를 한다는 명분으로 룸살롱에서 그 당시 4-500만원을 썼다. 지금도 하루 밤에 그 정도면 최고급이다.)로 천만원이 넘었었다.

그 때가 1996년이었다.

 

신용불량자가 되고, 각종 독촉에 시달리면서 그 빚을 혼자 다 갚는데 2년이 넘게 걸렸다.

연봉이 1,500만원이 안 되는 시절이었다.

연체이자는 정말로 높았었다.(아마도 30-40%대가 아니었나 싶다.)

갚고 또 갚아도 끝이 보이지 않는 그런 시기였다.

 

 

그 당시 유일한 낙은 여자였다.

혼자 살면서 여자는 유일한 탈출구였다.

부담스러워서 어린 여자는 안 만나고, 동갑이나 연상이 대부분이었다.

어떨 때는 여자 얼굴도 별로 안 따졌다.

하루는 친구가 너 많이 변했다, 고 했다.

창피했지만 취향이 변했다, 고 대꾸했다.

 

26살인가 나이트클럽 지배인을 ‘투잡’으로 했다. 회사를 다닐 때였으니까 당시엔 아르바이트라는 용어가 맞겠다.

8개월 정도 했는데 지금 생각해 봐도 적성에 맞았다.

‘물’ 관리하면서 내가 초대하거나, 출중한 스타일의 여자들 테이블 2군데에 무료 싸인을 해 주는 권한이 있었다.

웨이터들도 ‘지명손님’과 ‘순번손님’을 신경 써 달라고 내게 스타일 좋은 여자들을 소개해 줬다.

당시엔 ‘철이와 미애’가 인기가 있었다. 우리 클럽에도 직접 섭외해서 출연시켰다.

‘줄리아나’가 막 생기기 전이었다.

사람들이 그 때는 샤프하게 생겼다고 했다.

여자들도 날 보고 미키루크 같다고 했다. 외모나 분위기가...

 

지금은

 

...말하고 싶지 않다. T_T

 

 

나의 20대 중반은 그렇게 지나갔다.

나의 ‘없음’을 알고 여자들은 다들 어쩔 수 없다며 떠나갔다.

나도 뭘 해야 하는지, 앞이 보이지 않았다.

월급쟁이 말고는 할 게 없었다.

대안이 없으니 누군가의 밑에 들어가 시키는 일을 남들보다 잘 해서 많은 돈을 받기를 원할 수 밖에 없었다.

1999년 가을까지는 앞이 보이지 않았다.

 

회사 다니면서 뭔가 하나씩 멋지다고 생각하는 것을 기억하고 모으기 시작했다.

경향신문 매거진X라는 코너에 멋진 섬 전경이 한 면을 다 차지하게 나왔다.

‘몰디브’라고 했다.

그 당시엔 처음 듣는 섬 이름이었다.

그리고 ‘클럽 메드’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 때 결심했다.

반드시 클럽 메드로 몰디브를 가겠다고.

 

(2002년에 클럽 메드로 몰디브 대신 빈탄을 다녀 왔다.)

 

 

누군가가 세계적인 보석 브랜드가 ‘티파니’라고 했다.

자신의 딸이 미국 티파니의 보석 디자이너라면서, 미국이나 유럽의 모든 여자들의 꿈은

그 하늘색 비스무리한 티파니 쇼핑백에 담긴 보석상자를 선물 받아 열어 보는 거라고 했다.

티파니라는 말을 오드리 헵번 이후로 처음 들었다.

티파니를 ‘내 여자’에게 선물하고 싶었다.

98년도인가 당시 여자친구를 데리고 갤러리아 명품관의 티파니 매장에 갔다가 얼굴만 붉히고 왔다.

욕도 많이 먹었다. 그리고 지금은 헤어졌다.

 

(2002년도에 아주 고가품은 아니지만 티파니에서 각각 200만원대의 커플 링을 했다. 2003년도엔 팔찌를 사 줬다.)

 

 

너무 물질적인 이야기만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나도 쓸데없다고 생각하는 곳에는 10원도 쓰는 걸 아깝게 생각한다.

지금 이 이야기는 사람에 따라 간절히 원하는, 어떤 유형이나 무형의 물건은 차이가 있을 거라는 생각에서 쓰고 있다.

 

사치라는, 허세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때.

이 정도는 나에게 보상해 주고 싶어, 라는 생각이 들 때.

그 때부터는 이런 물질적인 것들이 더 이상 사치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아아, 관점에 따라 비판도 많이 받을 수 있는 내용이란 거 안다.

알뜰살뜰하게 사는 사람들의 시각에서는 정신 나간 일이라고 생각해도 할 말은 없다.

그냥... 내 생각이다.

이것은 내가 생각하는 여유로움의 일부분이다.

사람마다 가치를 부여하는 것은 서로 틀리다고 생각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분수에 넘치는 자동차는 허세라고 생각한다.

내 기준은 자신의 자산의 5-10%를 초과하는 가격대의 자동차를 모는 것은 허세다.

하지만 다른 건 몰라도 자동차는 정말 자신이 원하는 걸 타고 싶다고 간절히 원한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비싼 차는 유지비도 많이 든다. 다른 것들하고 틀려서 계속 돈을 잡아 먹는다. 드래곤인가 하는 유명한 양반이 ‘돈 먹는 하마’라는 단어를 썼는데 꼭 맞는 말인 것 같다.)

 

나는 지금 듀퐁 만년필과 라이터, 몽블랑 볼펜을 가지고 있다.

듀퐁 라이터를 사면서는 욕도 많이 먹었다.

300원이면 사는 라이터를 거의 80만원을 주고 사니 누군들 이해 못 하는 것도 당연하다.

나는 라이터를 열 때 그 ‘팅-’ 거리는 소리가 좋다.

비싼 라이터는 유지비도 많이 든다. 라이터 가스 1번 넣는데 6,000원 든다.

조그만 통 1개로 1번 넣는데 이제까지 4번 넣고 안 넣는다.

 

개인서재를 가지고 싶었다.

원하는 스타일을 드로잉해서 주문 제작하는 서재.

지금 내 방엔 중간 받침대가 유리로 되어있고, 위에 할로겐 램프도 달린 멋진 책장이 있다.

한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난 한 달에 책을 20만원어치 이상 산다.

저번 달엔 37만원어치를 샀었다. (카드내역 보고 계산해 봤다.)

나도 놀랐다.

 

 

<다음에 계속…>

 

 

죄송합니다.

내일 민방위소집이라서 일찍 일어나야 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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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은 지는 몇 달 되었다.
여기는 아니지만 어떤 인터넷서점에는 비평도 많았던 책이다.

 

하지만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아마도 비평을 쓴 사람들은 아직까지 '인맥'의 실체를 잘 모르거나, 아니면 기대가 너무 커서 실망이 큰 게 아닌가 생각한다.
인맥구축의 노하우, 왕도가 특별한 게 있겠는가?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누구나 나름대로 인맥구축의 스타일이 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중장기적인 관점에서의 상대방에 대한 배려'일 것이다.
친구도 중요한 인맥이고, 거래처도, 친척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어떤 일이나 기본이 중요하듯 내 주변에서부터 내가 인정받지 못 한다면 절대로 다른 사람의 도움을 기대할 수는 없다.
내가 상대방을 도와줄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상대방도 나를 도와준다.

요즘 들어서 정말 '세상엔 공짜가 없다.'라는 걸 절실히 피부로 느끼고 있다.
그리고 이론과 현실은 많이 다르다.
생각과 실천도 너무 다른 것이다.

 

이 책의 후반부는 삼국지나 손자병법에 나오는 얘기들을 늘어놓아 나는 다소 지루했지만 좋아하는 사람들은 좋아할 수도 있는 책이다.
이 책은 국내 실정에 맞는 인맥이야기를 사례를 들어가며 얘기하고 있다.
일반적인 인맥을 쌓으려면 이래저래해라, 하는 책이 아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이 책을 읽으면서 공감한 부분이 무척 많다.
어떤 면에서는 외국 유명작가의 인맥구축 서적보다 도움되는 내용이 더 많았다.

 

아래 내용은 이 책에서 나름대로 공감을 했던 구절들이다.

'성공은 준비된 능력을 겸비한 자가 인맥을 쌓을 경우에 찾아오는 것이다.'

 

'저녁을 누구와 함께 먹는냐가 중요하다.'

 

'공짜 점심은 없다.'(이게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 아는가?)

 

'머리가 나쁘면 발이라도 부지런해서 정성을 보여야 한다.'

 

'명절이면 사업과 직접 관련된 중요인사들에게 3백개 정도의 선물을 돌린다. 사업과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친구들에게는 돌리지 않는다.  골프도 예전엔 전부 사업과 관계 있는 사람들과만 쳤다.'

 

'남이 다가올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먼저 다가가야 한다. 이를 위해 조찬모임에 나가고, 헬스클럽에 등록하고, 명문 골프회원권을 매입하고 했던 것이다.'

 

'사소한 만남도 예사로 만나지 마라. 단번에 결정적이고 큰 도움이 되는 귀인이 떡 하고 우리 앞에 나타나길 기대하지 마라.'

 

'어느 날 문득 인맥도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는 것을 느꼈다. 지인의 권유로 건설업계 중진들의 산악회에 가입을 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인맥의 강은 바다로 접점을 찾고 사업도 덩치가 더욱 커졌다.'

 

.......... (이하 생략)

 

(추천할만한 내용은 더 많지만 읽는 즐거움을 위해 생략합니다.)

 

그 뒤에도 별표 2-3개 붙일만한 내용이 많다.

 

이 책은 제대로 읽어본 사람만이, 그리고 인맥의 필요성에 철저하게 공감하는 사람만이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내용이 다 괜찮다는 말은 아니다.
몇몇 부분만이라도 야 이거야, 하는 부분이 있다는 말이다.

 

결론은 개인적으로 느낀 바가 무척 많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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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이나 관련 책을 추천해달라고 하셨는데요.

 

솔직히 부동산 책은 이거다, 하고 싶은 책은 없습니다.

누구 아시는 분이나 추천하실 분 있으시면 답글 올려주세요.

제 기준에서 별점을 정한 거니까 참고만 하세요. (저랑 '간지'가 비슷한 분들은 제외)

 

그동안 본 책은  (저자는 생락합니다. 나중에 인터넷서점에서 찾아보시면 다 나옵니다.)

<부동산 생생테크> 별 4

<부동산 노테크> 별 4

<부동산 세일즈성공전략> 별 1

<세일즈왕의 365일> 별 5 - 불행히도 절판(미국저자라서 한국 실정과는 다소 거리가 있음). 더 궁금하시겠네요.

<이 과장의 부동산 재테크> 별 2

<한국에서 돈 버는 100가지 방법> 별 4 (부동산 부분이 조금 있어요)

<백만장자의 부동산 투자비밀> 별 2

<재테크, 부동산을 잡아야 돈 번다> 별 4

<3,000만원으로 시작하는 부동산투자 101가지> 별 3

<돈 좀 벌어봅시다> 별 5 - 또 절판(죠수아님도 언급하셨던 그 책. 그 당시엔 최고의 책이었음)   약올리는 거냐, 하지 마세요.ㅎㅎ

<한국부자들의 땅 짚고 헤엄치기> - 볼 예정(사긴 샀는데...)

 

그리고 재테크 책으로

<부자들의 돈 버는 습관> 별 4

<부동산으로 10억 만들기> 별 4

<한국의 부자들 1> 별 5

<한국의 부자들 2> 별 4

<돈버는 사람은 따로 있다> 별 4

<33-14> 별 5

<10억만들기> 별 4

 

동기부여 책

<네 안에 잠든 거인을 깨워라> 별 5

<혼자 힘으로 백만장자가 된 사람들의 21가지 원칙> 별 5

 

마지막으로 세일즈 책

<세일즈 슈퍼스타> 별 5

<판매의 원리 1,2> 별 5

 

이 정도입니다.

 

도움이 되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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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금요일 오후에 상가 건물을 매입하려는 친구가 있어서 그 친구 벤츠승용차 조수석에 앉아 오후 내내 다녔습니다.

매입하려는 금액대는 30억원 전후이고 지역은 오직 강남. 서초까지는 생각해 보겠다,고 하더군요.

논현동에 1개, 서초동에 2개를 봤습니다.

2개는 그럭저럭 괜찮았고, 1개는 별로더군요.

 

카페에서 커피 1잔 마시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는데, 역시나 ‘강남불패론’이 다시 나왔습니다.

“같은 투자가격대면 자산가치 상승률이 강남을 따라올 수 없다.”

(실제로 이 친구의 어머니는 ‘부동산 부자’입니다. 이 친구도 투자 지식은 그다지 많지 않지만 어깨 너머로 봤는지 안목은 높더군요.)

“강남에서 재미 본 사람들은 특별한 경우 아니면 강남에만 투자한다.”

(용산, 아산, 시흥 같은 경우도 이미 몇 년 전에 투자하고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할 때 팔고 빠져 나오던가, 보상을 받던가 합니다.)

 

얘기를 더 나누다 보니 그 친구(일정 수준 이상의 자산을 가진 사람)의 생각은 저와 다른 부분도 있더군요.

무슨 얘기인가 하면 ‘가진 자의 여유’일 수도 있겠고, 정말로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세상에는 많다. 지독하게 살고 싶지는 않다.’라는 마음가짐일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강남에 재건축 아파트 하나를 2년 전에 직접 샀는데 그게 지금 3배가 되었다. 2억에 사서 현재 6억. 근데 그런 불로소득이 투자냐? 그렇게 쉽게 번 돈은 또 쉽게 써진다.”

“없는 돈에 여기 투자하고, 또 대출 받고 쪼개서 저기 투자하고 그렇게 살기는 싫다. 지금 사려는 것도 노후대비도 하고, 내가 직접 하려는 장사가 여의치 않을 때 일정 수준의 수입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나는 장사를 하고 싶다. 그런데 지금은 뭘 해도 안 된다. 그래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준비를 하고 있다.”

“아는 선배 중에 모텔을 하는 사람이 있는데 잘 되는 곳은 월 5%의 수익률이 나온다. 연간 60%의 수익률이다. 물론 대부분이 현금거래다. 그러니 탈세는 당연하다. 하지만 그런 걸로 돈 벌기는 싫다.”

이상이 그 친구가 한 얘기 중에 생각나는 부분입니다.

 

별로 할 얘기가 없더군요.

주로 듣고 있었습니다.

일할 땐 필요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말을 많이 하게 되지만, 최근 들어서는 많이 들으려는 습관을 들이고 있습니다.

 

제가 친한 사람 중에 물론 이 친구보다 더 부유한 사람들도 많습니다만(중학교 때부터 강남에 살아서인지… 확실히 강남엔 대단한 부모를 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걸 최근 들어 알게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아마도 연세가 드시면서 슬슬 상속문제가 나오는가 봅니다.), 최근 들어 투자에 대해 진지하게 얘기해 본 사람이 이 친구입니다.

이 친구의 생각에는 동의하는 부분도 많습니다.

그다지 있는 티도 안 냈고, 돈도 함부로 쓰는 친구도 아니었으니까요.

그 전에 몰던 차도 EF소나타였습니다.

 

그런데 한 며칠동안 의기소침해 있었습니다.

책도 눈에 잘 안 들어오더군요.

카페에 글 쓰다 만 것도 막상 계속 쓰려고 하니까 내가 지금 뭐 하는 거지,하는 자괴감도 들더군요,

거기다 일요일 날 친구 결혼식이 있어서 갔었는데, 대구에 유명한 호텔 소유주 아들이 드디어 대표이사 직을 물려 받았더군요.

‘은 스푼을 물고 태어난 사람들’을 지켜볼 땐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생깁니다.

물론 저도 힘든 밑바닥 생활을 겪은 건 몇 년 밖엔 안 되지만(쉽지 않은 20대 후반을 보냈습니다), 쉽게 앞서 달리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운 건 사실입니다.

어떨 땐 주눅도 들고요.

 

20대 후반 같으면 전 그런 자리에 나가지도 않았을 겁니다.

거기에 가서 희희덕 거릴 시간도, 돈도 없었을 테니까요. 그리고, 현실에 대한 불만과 원망을 가지고 돌아왔을 테니까요.

인생의 출발 자체가 다른 사람들을 내 자신이 힘들 때 옆에서 지켜보는 것 만큼 비참한 것도 없습니다.

 

전 허세 부리는 걸 싫어합니다.

세상에서 제일 싫은 사람이 무책임한 사람, 비겁한 사람, 허세부리는 사람, 약속 안 지키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저도 노력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지키지 못 할 약속은 하지 않고, 빈말 하지 않습니다.

없으면서 있는 척 하지 않습니다. 특히 자동차.

저는 자기 자산의 5% , 많으면 10% 이상의 돈이 들어가는 차를 모는 사람들을 보면 한심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요즘은 자신감도 많이 생기고, 앞으로 나아갈 길도 조금 보이고, '작지만 확실한' 여유로움도 가져볼 정도는 되었습니다.

친구들이 어떤 면에선 부러워하기도 하구요.(허세 부리는 게 아닙니다. 근로소득 면에선 친구들 사이에선 최상위권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갈 길이 멉니다.

투자소득(임대소득, 이자소득 등)과 사업소득(이런 개념이 정확한 지는 모르지만 근로소득과는 다르게 지점 몇 개를 운영하면서 각 지점에서 발생하는 수익)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앞으로 10년 뒤에는 위에서 얘기한 친구처럼 여유 있는, 돈에 연연하지 않는 대화를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이 카페에서 얘기하는 대로 ‘지나간 기회를 아쉬워 하지만 말고, 철저히 공부하고 준비해서 다시 오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잡을 수 있는 안목과 준비(마음가짐과 자금)’를 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다음에 다른 이야기를 가지고 찾아 뵙겠습니다.

 

꿀꿀한 주말을 보내서인지 내용도 좀 거시기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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