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과 사회윤리
홍경남 지음 / 철학과현실사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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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은 그 지식으로서의 보편성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나타내고 체계화하는 방법에서 민족에 따라 다를 수밖에 없다. 따라서 과학을 체계화하고 교육하는 길은 민족에 따라 서로 다르게 구성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10쪽

한국의 과학 기술은 극도로 전문적이고 폐쇄적이며 비사회적인데, 이는 전통적인 한국 사회에서 과학 기술 담당 계층의 의식 구조를 차지한 ‘중인 의식’의 잔재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다. 중인은 양반과 상민의 중간 위치에서 어느 편에도 속하지 않고 나름대로의 독자적인 지위를 누리면서 전문적이고 폐쇄적인 집단을 형성하였고, 그래서 스스로 사회와는 유리된 존재라는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의식들이 우리 학문 사회에 ‘문과’와 ‘이과’라는 두 가지 문화를 형성하게 하였고, 이 두 가지 문화는 다만 상상 속에 존재하는 허상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지속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저자가 [김영식, ‘한국 과학의 특성과 반성’, <근현대 한국 사회의 과학>, 창작과비평]을 옮기며) -10-11쪽

우리의 언어는 다만 세계를 기술하거나 서술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종류의 가치를 가지고 세계를 평가한다. 이렇게 사실과 가치가 얽혀 있음을 직시할 때야 (사실에 관한 지식은 가치에 관한 지식을 가정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우리는 좁은 과학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과학적 실천의 모습을 제대로 그리고 합당하게 그려낼 수 있다.-19쪽

도덕 내지 윤리는 인간 사회의 유지를 꾀하는 것이기에,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인 옳음(정의, 공정)의 기준과 좋음(행복, 선)의 기준을 담아낼 수밖에 없다. 또한 그러한 기준 설정은 특정 사회에만 적용되는 관습을 넘어서 누구나 합리적으로 동의할 수 있는 보편적인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인간은 누구나 좋음을 추구하고, 이러한 좋음을 보편적으로 실현하기 위하여 옳음은 필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윤리학은 바로 이러한 좋음이나 옳음의 보편적 기준에 대한 반성적 학문이다. -50쪽

나는 그들과 수많은 대화를 나누고 그들을 이해한다. 이러한 대화와 이해가 가능한 것은 우리 모두가 자유로운 존재임을 서로 알고 있다는 뜻이다. 자유가 없다면 모든 일은 자동적으로 이루어질 것이요, 우리의 행위에 대한 근거나 이유를 찾아 대화하고 이해하는 일은 아무런 쓸모도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의 자유를 기초로 하여 좋고 나쁜 것과 옳고 그른 것을 가리고 판별하게 하는 삶의 지혜를 찾는 것이 바로 윤리학의 기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56-57쪽

도덕다원주의자는 모든 상충하는 도덕적 체계를 평가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이란 있을 수 없다고 주장한다. 도덕다원주의는 여러 다른 도덕적 입장들을 존중하면서도 그것이 모두 똑같은 지위를 갖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중략)
도덕 규범은 그것이 나온 사회 역사적인 맥락에 의거해서만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을 고려하면서도 인간의 가치와 관련하여 어떤 종류의 합리적 평가나 비판도 있을 수 없다는 도덕상대주의의 견해와는 달리 도덕다원주의는 객관적인 가치의 세계가 있음을 받아들인다. -92쪽

도덕상대주의자와 도덕다원주의자는 둘 다 도덕적 다양성과 차이를 인정하면서 좋은 삶을 위한 단일한 포괄적 기준이나 가치 체계나 도덕적 기준이 있을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아무리 극악한 도덕 체계라도 받아들이는 이가 있다면 그것을 배제하지 못하는 도덕상대주의와는 달리, 도덕다원주의자는 공통적인 인간성의 측면에 비추어 그러한 것을 배제할 수 있다. 도덕상대주의는 상충하는 도덕적 주장을 판정할 수 없게 하지만 도덕다원주의에서 그러한 충돌의 정도는 완화될 수 있고 상충하는 도덕적 주장들을 저울질하여 합의에 이르게 할 수 있다. 도덕적 가치들은 우리의 공통적인 인간성의 측면에 비추어 서로 비교할 수 있다. 보편적 가치는 없지만 인간 사회를 존속하게 하는 최소한의 가치는 있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는 인간의 한계 안에 있는 것이다. -92-9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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