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란 무엇인가 - 책 만드는 사람의 거의 모든 것에 대하여
김학원 지음 / 휴머니스트 / 2009년 8월
구판절판


편집자의 길에서 좌표로 삼아야 할 것은 첫째, 특정한 분야와 성격의 출판 편집에 대한 남다른 전문성이며, 둘째, 이를 뒷받침할 도서 목록과 이 과정에서 쌓은 저자-편집자-스태프의 인적 네트워크이며, 셋째, 이를 기반으로 자신의 전문 분야에 대한 설계와 개척의 역량으로 압축할 수 있다. -38쪽

좋은 편집자는 훌륭한 독자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저서들을 구입해 읽고, 편집자의 관점에서 평가하고 메모한다. 저자 명단을 만드는 단계에서 이루어지는 편집자 서평은 각주 형식의 메모들이면 족하다. 책의 주제, 구성, 글쓰기, 편집에 관한 장점, 특징, 문제점 등이나 적절한 섭외 방식, 제안 내용, 인터뷰 항목 등을 떠오르는 대로 적어둔다.
-45쪽

"편집자는 대부분 알려지지 않는다. 우리는 글, 창조적 아이디어, 책을 사랑하기에 이 일에 매진할 뿐, 우리가 주목받길 기대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의 공헌을 깊게 이해한 저자가 머리말이나 감사의 글에서 우리의 이름을 언급하고자 하면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허락할 뿐이다. 우리는 편집자라는 직업이 최선의 책을 위해 묵묵히, 무명으로 공헌하는 직업임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이로 인해 우리 스스로를 하찮게 여기지 않는다."(집시 다 실바, 사이먼 앤드 슈스터 출판사의 편집자, <편집자와 저자> 중에서)-51쪽

"기대감을 상실하고 원고를 보는 날은 바로 편집자의 생명이 다한 마지막을 의미한다."(앨런 윌리엄스)-67쪽

"정말 교정을 보는 것 자체가 의미가 없어. 차라리 새로 번역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저작이든 번역이든 상황이 이 정도로 심각하면 저자나 번역자의 교체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대부분의 경우 문장을 새로 쓰지 말아야 하며, 교정의 수준을 지켜야 한다. 만일 다시 써야 할 정도라면 저자에게 이를 제안해야 한다.
-78쪽

편집자는 저자가 아니다. 원칙적인 교정, 저자와 합의한 수준의 교열이나 윤문을 넘어 ‘함량 미달의 원고’를 편집자가 새로 쓰지 말아야 한다. 번역도 마찬가지다. 원고가 수준 이하이면 저자나 번역자를 교체한다. 어쩔 수 없는 경우라면 머리말이나 편집자 주를 통해 고쳐 쓴 이와 그 과정을 반드시 밝혀준다.
-89-90쪽

편집자는 저자와 함께 원고의 특징이나 매력을 살리기 위해 오랜 농사꾼의 살아 있는 매뉴얼로 잡초를 뽑고 거름을 주어야 한다. -90쪽

"작가가 단지 자기 당대만을 위해 글을 써야 한다면 나는 펜을 꺾어 던졌을 것이다."(빅토르 위고)
"내가 글을 쓰는 가장 큰 목적은 독자들의 마음에 드는 작품을 쓰는 것이다."(베르나르 베르베르)-107쪽

잘 쓴 글은 멋스러워 보이지만 내면을 자극하지 못한다. 반면 훌륭한 글은 가슴을 뛰게 한다. 감각적인 기획은 사람의 시선을 일시적으로 붙잡는 매력이 있다. 그러나 훌륭한 기획은 오래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가? 훌륭한 글과 기획은 공통적으로 위대한 품성을 가지고 있다. 기획의 위대한 품성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기획의 취지와 배경, 의도는 기획의 품성이다. 그 품성을 위대한 것으로 키워라. -120쪽

"훌륭한 편집자는 발행인처럼 사고하고, 계획하고, 결정한다. 반면 훌륭한 발행인은 편집자처럼 세심하고, 예리한 감각으로, 능숙하게 일한다."(링컨 슈스터, 사이먼 앤드 슈스터의 공동 설립자)-141쪽

대필한 경우 이를 반드시 밝혀라. 원저자와 함께 공동 저자로 하거나, 머리말 또는 편집자 주에서 대필의 과정과 함께 밝혀야 한다. 공동 번역, 책임 번역, 감수 등도 마찬가지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지만, 자신이 쓰거나 번역하지도 않은 저작물에 저자, 번역가로 이름을 올리는 낯 뜨거운 사례가 아직도 종종 있다.
-230쪽

홍보용으로 책을 펴내고자 하는 정치가나 기업인, 의사, 변호사, 연예인들 중에 대필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가급적 이런 책들은 출판사에서 거절해야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면 설혹 대필하거나 원고의 집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과 적법한 절차에 따라 적절한 대가를 지불했다고 해도 그 내용을 밝히는 것이 도리다. 대필한 사람의 이름이 이름을 밝히기를 꺼린다면 대필자의 이름은 보호하되 과정은 밝혀야 한다. -230쪽

편집자는 양 날개를 펼칠 수 있어야 한다. 지식과 서사가 가득한 책의 세계에서 한편으로는 저자의 날개, 또 한편으로는 독자의 날개를 달아 두 날개로 자신만의 독특한 비행을 할 수 있어야 한다. -243쪽

눈에 보이는 시장의 요구가 아니라 독자의 잠재적인 갈증에 마음을 열어라. 명심하라. 시장이란 독자가 어쩔 수 없이 선택한 차선의 결과이다. 당장의 시장에 자신의 안목과 역할을 몽땅 팔아버린 편집자들이 많다. 빙산의 일각이 아니라, 그 저변에 보이지 않는 책에 대한 갈구를 읽어라. 눈에 보이지 않는 그들의 항변에 귀를 기울여라.
-264쪽

가능하면 함량 미달인 원고나 존경할 만한 가치가 없는 저자의 원고를 출판하지 마라. 철저한 기준을 가지고 분명히 판단해야 한다. -265쪽

노력하지 않는 저자에게 너무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늘 글보다 말이 앞서는 저자, 최선을 다하지 않는 저자, 책의 완성도보다 광고나 홍보에만 관심과 열의를 보이는 저자, 편집자를 동료로 생각하지 않는 저자, 난 이런 저자들과는, 그가 아무리 베스트셀러 저자라 할지라도 다시 계약서를 쓰지 않는다. 원고와 저자에 대한 경의와 기쁨, 또는 가능성과 기대는 편집의 전제이자 시작이다. 이것이 없다면 편집하지 마라. 그런 저자에 집착하는 것은 시간 낭비다. -266쪽

모든 책은 단 한 가지 서체를 사용해도 고전의 가치가 있는 ‘오래 읽는 책’으로 편집할 수 있다는 편집의 기본자세에서 시작한다. 글을 읽고, 사색하고, 사고하고, 성찰하고, 결국 그 과정에서 독자로 하여금 창조하도록 하는 ‘읽는 책’의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야 한다. 쓸데없는 조미료로 독자들의 읽는 맛을 자극하지 마라.
-267쪽

출판이란 결국 앞선 세대가 만든 목록의 유산을 받아 이를 확장하여 다시 후세에 물려주는 목록의 진보 과정이기 때문이다. -306쪽

목록을 설계하며 출판하는 과정은 책으로 하나의 역사를 그려 나가는 과정이다. 역사란 한 개인의 삶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원하는 방향대로 흐르지 않는다. 자신과 현실 사이에 끊임없는 조응의 과정이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며 미래를 그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미래의 관점에서 과거와 현재를 지속적으로 반성하며 일상의 진보를 위한 방안을 찾아 실천을 주저하지 않는 것, 이것이 역사의 진보를 이끄는 소중한 힘이다. -322쪽

-명망과 지위를 가진 저자가 함량 미달의 원고를 가지고 출판을 제안할 때, 명망과 지위를 가진 저자가 함량 미달의 원고를 쓴 후배 저자의 출판을 제안할 때, 이를 정중히, 그러나 단호하게 거절할 수 있는 권위와 자세
-높은 지위를 지닌 나이 많은 학자가 쓴, 수준 이하의 원고를 거절할 줄 아는 자세
-수준 이하의 원고에 대해서 예의와 센스 있게, 그러나 간결하게 ‘아니오’라고 이야기할 줄 아는 자세

편집자가 되기 전에 알고 있었다면 좋았을 만한 조언 설문 내용 中-380쪽

출판이란 가치 잠재력을 가진 지식과 서사의 콘텐츠를 선별하고, 다양한 요소를 적절한 구성과 편집으로 개발하여 사회와 당대인들이 요구하는 다양한 매체에 맞는 방식으로 제공함으로써 지식의 교류와 확장에 기여하는 통합적인 지식 서비스 활동을 말한다. -41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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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바람 2009-08-29 15: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우 사보고 싶게 만드는 밑줄긋기네요. 아프락사스님은 편집자 아니시죠? 그런데도 이런분야에 관심을 가지시는군요

마늘빵 2009-08-29 17:24   좋아요 0 | URL
흐흐. 저 편집자입니다. ^^ 편집자여서 이런 데 관심있다고도 볼 수 있지만, 오히려 제 경운 이런 게 좋아서 편집자를 한 경우라고 봐야...

글샘 2009-08-29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그래도 이 책을 읽고 싶었습니다만... 글쎄, 언제 읽을 수 있을지... ^^

마늘빵 2009-08-30 00:40   좋아요 0 | URL
재밌습니다. 저로선 이런 저런 생각도 많이 했고요. ^^

하늘바람 2009-08-31 09: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아프락사스님 편집자셨군요^^ 에고 몰라서 죄송한 마음이 드네요.

마늘빵 2009-08-31 09:30   좋아요 0 | URL
아녀요. 잘 드러내지 않아서 그렇죠. 몰랐다고 죄송할 거야... ^^

머큐리 2009-08-31 10:51   좋아요 0 | URL
아프님이 편집자인지...저도 몰랐다능...에고

마늘빵 2009-08-31 11:10   좋아요 0 | URL
별로 중요한 건 아니라는 에고... ^^ 저도 머큐리님 정확히 어떤 일 하시는지 잘 몰라요. 법원 오간 야기밖에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