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해철의 쾌변독설
신해철.지승호 지음 / 부엔리브로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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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기이할 정도로 다뤄지지 않는 것이 '대중의 책임'에 대한 문예요. 대중은 전지전능자 시점에서 좋네 나쁘네를 얘기할 뿐인데요. 자기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고 최후의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데 결과에 대한 책임 의식은 가지지 않는단 말입니다. 우리나라 음악이 이렇게 된 것에 대중의 책임은 없느냐고 했을 때, 대중들은 면책이거든요. 그러면서 전능자의 시점에 올라서서 야단만 친다구요. 싸가지 없게도.(웃음) 일단 우리나라 대중들이 싸가지가 없어요. 인터넷 보세요. 사람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습니다. 뮤지션을 우상으로 떠받들어 달라는 얘기가 아니라, 그저 한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도 안 해준다는 얘기죠. 자꾸 고개를 숙이라고 하니까. (중략) 지금 10대들까지도 그대로 그 악습을 물려받고 있단 말이죠. 뮤지션 같은 경우 대중의 친구이고, 대중의 입이고, 대중을 대신해서 말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잖아요. 말하자면 인민의 입이고, 인민의 손과 발인데. 그러니 뮤지션들이 그러한 역할을 해주지 못해요.-28-29쪽

상담에 대해서는 저의 원칙이 몇 가지 있는데요. 제가 상담을 전공으로 공부한 사람은 아니니까, 개인적인 원칙이라면 '그 사람들보다 내가 위에 있다고 생각하지 말 것. 눈 높이를 철저히 같은 위치에 맞출 것.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여긴 상담소지 재판소가 아니니까 그들의 잘잘못을 판단하려 들지 말 것'같은 거예요. 어느 것이 옳은 것이다, 그른 것이다는 여기서 할 얘기가 아니라는 거죠. -42쪽

(동반신기를 두고) 문제는, 제가 지극히 싫어하는 것은 가사였단 말이죠. 옛날에 H.O.T. 도 같은 실수를 했다고 보는데요. 남이 써준 사회비판 가사 말이에요. 사회비판 가사란 본인의 생각이 담겨 있어야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남이 써준 사회비판 가사를 보면서 눈에 힘을 주고 카메라를 향해서 삿대질을 하면 너무 슬픈 거거든요. H.O.T.가 캔디를 부를 때는 너무 사랑스럽고, 동반신기가 풍선을 부를 때 마이 리틀 프린세스를 부를 때는 "야! 이거 노래 좋다"고 했거든요. 마이 리틀 프린세스 같은 경우는 심지어 인디 전문방송인 우리 방송에서도 나갔거든요. 이거 완성도 높다. 이 정도는 들어줘야 한다구요. 그런데 남이 써준 비판 가사를 그들이 연기에 의해서 눈에 힘을 주고 외칠 때 보는 일각의 사람들은 답답한 거고, 일각의 사람들은 슬픈 거거든요. 저는 오히려 '오! 정반합'같은 가사를 본인들에게 맡겨도 좋지 않은가, 자기들 또래에서 충분히 또래들에게 공감이 될 만한 이야기를 할 때, 그것이 서툰 점이 있다고 한들 거친 점이 있다고 한들 분명히 팬들이 사랑해줄 텐데, 왜 저러한 방법을 쓰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49-50쪽

그러니까 대마초에 대한 논점은 그게 담배보다 몸에 나쁘다고 한들 국가가 그것을 간섭할 권리가 있느냐, 개인이 알아서 해야 될 일이 아니냐는 문제구요. 또 한 가지 간통과 다른 대마초만의 또다른 논점이 있다면 '국가가 소위 자신들이 생각하는 올바른 목적을 위해서라면 정보를 조작하거나 국민들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해도 되느냐'라는 문제인데요. 군사독재 시절부터 대마초에 대한 정보를 곡해해서 국민들에게 그릇된 정보를 알리고 공포심을 심어주면서 협박을 했거든요.-56쪽

대마초에 관해서는 전설처럼 내려오는 일설이 있어요. 대마관리법이라는 것 자체도 존재하지 않고, 정부에서 대마에 대해 크게 관심도 갖지 않다가 박정희 대통령의 아들이 대마를 흡연하는 사실이 그 아버지에게 알려지면서 그게 문제가 됐다는 이야기죠. 자신의 아들과 어울리던 일군의 뮤지션 집단들이 있었는데요. 자신의 아들은 잘못한 것이 없는데 그들이 나쁜 물을 들였다는 괘씸죄가 적용되어서 하루 아침에 법이 생기고, 심지어는 소급 적용되어 그 당시 활동하던 모든 뮤지션들이 때려 잡혔습니다. 심지어는 밤무대조차도 올라갈 수 없게 생계를 전부 막아버리는 일이 벌어졌는데요. 음악 전문가들은 70년대에 있었던 대마초 파동이라고 부르는 바로 그 사건을 우리나라 대중음악계가 치명타를 입었던 사건으로 판단하거든요. 그 사건으로 인해 우리나라 대중 음악계가 30년 후퇴했다고 보는 겁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자기가 뭘 때려잡는지도 모르면서 잡은 거에요. 향후 이 나라의 대중음악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장르가 분화되어 나가면서 파죽지세로 성장하던 음악의 정상적인 발전 단계를 완전히 퇴행시킬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겠죠. -67-68쪽

그러니까 본인 혹은 당신의 아들딸이 어느 날 정말 황당한 이유, 예를 들면 청바지를 입었기 때문에 잡혀간다든가 머리카락이 길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두들겨 맞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정말 역겹고 꼴 보기 싫지만, 저 놈을 탄압하도록 국가 권력이 날뛰게 내버려뒀다가는 그 칼이 내 목에 들어올 것이므로, 그렇기 때문에 소수자들을 보호해야 되는 거거든요. 내가 소수자에 해당되기 때문이 아니라. 이러한 인식들을 국민들이 가지지 못하니까 그 화살을 계속 쏴대고, 알게 모르게 자기도 그 화살을 맞는 거죠. -73쪽

우리나라 기독교의 세계관 자체가 문제에요. 기독교 내부라는 자기네 메이저 세계 이외의 세계를 전혀 인정하려고 들지 않는 오만불손한 태도가 있잖아요. 그러니까 자꾸 실수가 나오는 건데요. 이명박 전 시장의 서울시 봉헌 발언은 얼마나 부적절한 발언이며, 주미대사의 참회 금식 기도는 얼마나 부적절합니까? 해서는 안 되는 발언이잖아요. 종교는 자기 자신의 사적인 영역에 담궈놔야 되는데 공직자들이 그런 말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배경이 궁금합니다. -81쪽

기독교에 대해서도 심각하게 경계하는 게 자기들끼리만 모여서 믿으면 상관이 없는데 저 사람들이 내 생활 안으로 파고들어오지 않습니까? 그래서 내 생활을 침략하고, 공격해 들어오니까 방어를 해야 되는 거죠. 그건 중학교 2하견 때의 우스운 경험 하나에서 시작하는데요. 제가 중학교 2학년 때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면서 손에 맥콜 음료수를 들고 있었어요. 그게 일화에서 나오는거 아닙니까? 통일교 기업이고, 지나가던 한 여자가, 제가 보기에는 뭔가 광기가 들린 듯한 특유의 번쩍거리는 눈동자로 저를 보는데, 정말 무서웠는데요. 제 손에서 음료수를 빼앗가지고 땅바닥에 패대기를 치면서 이게 어디서 나온 건지 알고 먹느냐는 겁니다. 그게 제 사유재산 아닙니까? 제 사유재산을 약탈당했잖아요.(웃음)-82쪽

말하는 기술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질문을 많이 받아요. 심지어는 상담소에서 '어떻게 하면 말을 잘할 수 있어?'라는 질문을 많이 하는데, 그것은 대화를 테크니컬한 차원으로 낮게 보는 수작이거든요. 대화는 그런 테크니컬한 차원에서는 이루어지지 않느다구요. 웅변은 테크니컬한 차원으로 이루어질 수 있죠. 그러나 대화는 테크닉으로 가는 게 아니라고 보거든요. 마음이 따라가지 않으면 대화가 따라가지 않는다고 봐요. 그러니까 대화의 기술 중에서 제가 가장 중요시하는 것이 듣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 말을 차근차근 듣고, 말을 끊는 일이 여간해서는 없어야 하고, 참을성 있게 인내하면서 들어야 되고, 그 다음에 그 말이 마음에 안 들더라도 기분 나쁘지 않게 유도하면서 발언을 끌고 가주고 이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대개의 사람들은 저에 대해서 제 말만 실컷하고, 그 다음에 '에브리바디 샷다마우스'하면서 내 말은 전부 맞는 말 너는 전무 틀린 말잉라고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요.(웃음) 그것은 굳이 신해철을 얕잡아 봐서 기분 나쁜게 아니라 이 사람들이 정작 대화라는 것을 너무 얕잡아 보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나빠요. (계속)-85쪽

(이어서) 대화라는 건 그런 차원이 아니거든요. 두 번째 대화의 기술은 마음입니다. 그 다음이란 상대방하고 이야기를 해봐서 상대방이 이해하지 못하느 종류의 용어나 단어들을 피해 간다든가 하는 겁니다. 예를 들어 친구랑 얘기하고 있는데, 유학까지 갔다 온 애라서 영어를 사용하는 애면 머리에 떠오르는 대로 영어 섞어가면서 얘기해도 되지만, 상대방이 영어 못하는 사람이란 말이죠. 음악계 선밴데. 그 분한테는 영어로 된 단어들은 피해 가야죠. 이건 상대방에 대한 배려잖아요. 기왕이면 상대방이 좋아하는 소재, 상대방이 이미 알고 있는 소재, 내가 말하면 상대방이 맞받아칠 수 있는 소재, 이런 것들 위주로 대화를 해야겠죠.-85-86쪽

우리나라 사람들의 공포감이 많이 작용하는거죠.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서 검열에 의한 공포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게 바로 그런 건데요. 나에게 직접 피해를 줄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여하한 여지만 있으면 겁을 내는 겁니다. 이건 좀 다른 얘기지만, 내가 문신을 하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에 '문신을 한 사람들을 내버려두라'고 할 때 입지가 강화되는 겁니다. 그 반면에 제가 대마초를 한 적이 있기 때문에 그 문제에 대해서 발언하면 입지가 약해지는 거죠. 그만큼 소수자를 옹호하는데는 당사자가 아니어야 유리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당사자 아니면 빠지라고 얘기하는데, 소수자들을 옹호하는 데 있어서는 당사자가 아닌 사람들이 짖어줘야 되거든요.(웃음) 마찬가지로 제가 경상도 출신이기 때문에 전라도를 옹호하기가 쉽습니다. 제가 전라도 출신이면 전라도를 옹호하기가 어려울 거 아니에요. 지금은 많은 사람들에게 전라도 사람으로 찍혀 있습니다. 인터넷에 보면 '신해철, 이 전라디안 새끼'하면서 제가 전라도 출신인 줄 알더군요. 노무현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저는 심지어 TK잖아요. -92-93쪽

'실제로 섹스를 하지 않았는데, 열나게 러브레터만 교환하고, 매월 보름달 뜰 때 만나서 아름다운 시간을 가진 두 사람은 간통인가, 아닌가? 정신적 간통은 어떻게 할 것인가, 뭘 간통이라고 할 건데' 하는 거였습니다. 성기의 삽입? 뭐가 기준이냐는 말이죠.

(중략)

성기를 넣었네, 뺐네 그걸 논하고 있어야 되니까. 국가 공권력이 국민들한테 세금을 받아서 유부남, 유부녀가 성기를 넣었다 뺐나 그런 것을 조사해야 되냐구요. 휴지나 줍고. (웃음) 뭐하는 짓이냐고 그게. -100쪽

김규항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한없이 사나운 얼굴로 말한다. '세상이 바뀌려면 사회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또 어떤 사람들은 한없이 온유한 얼굴로 말한다. '세상이 바뀌려면 내가 바뀌어야 한다.' 그리고 현명한 사람들은 조용히 말한다. '세상이 바뀌려면 사회구조도 바뀌고 나도 바뀌어야 한다. 둘은 본디 하나다.'"
그런 면에서 신해철은 더욱 현명한 사람이다. 그는 '세상이 바뀌려면 사회구조도 바뀌어야 하고, 나도 바뀌어야 한다. 그러니 같이 바꿔나가자'고 끊임없이 말한다. 한국의 교육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은 제도와 함께 남들의 인식이 다 바뀌길 바라면서도 정작 자신을 바꿀 생각은 전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지승호)-107쪽

내 논법 자체가 나의 이미지를 어떻게 하면 최상으로 올릴까를 목표로 두고 있지 않다. 내 논법은 흰색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주위에 까만색을 칠하면 흰색이 더 부각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적이 두터운 외투를 입고 있다면 예의상 주먹으로 한 대 쳐야 맞는데, 외투가 너무 두껍다면 망치로 때려버리는거다. 욕먹더라도 망치로 때려야 주먹으로 때리는 효과가 나타난다는 거고, 그래서 적들에게(?) 많은 빌미를 제공하기도 하는 것이다.-108쪽

오히려 저를 당혹시키는 것은 싸움에서 파생되는 문제가 아니라 남들이 그걸 싸움이라고 규정한다는 점입니다. 그게 오히려 당혹스러워요. 제 가사에 대해서 논하면서 '우리나라에서 드물게 사회참여적이며 사회적인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가사를 쓰는데, 그 이유가 뭐냐?'고 하면 너무너무 당혹스러운 겁니다. 그러니까 제 입장에서는 앨범 한 장을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 타령으로 도배하는 게 비정상적인거고 힘든 것이고,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는 것이거든요. 10대 시절에 이미 간접적인 스승들로부터 받은 영향으로 '음악은 인생 전체의 반영일 뿐만 아니라 그 한 개인을 포함하고 있는 사회 전체 혹은 세계 전체의 반영이자, 거꾸로 그걸 반사시켜서 세상을 향한 외침이기도 하다'는 기준이 이미 확립됐단 말입니다. 외국에 나가서 외국 청년들이나 뮤지션들하고 얘기를 해보면 제 생각을 스탠다드로 생각하고 그렇게 받아들입니다. '당연하지 않냐, 뭘 그렇게 새삼스럽게 얘기하냐'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그걸 너무나 궁금해 하는 기자 분들의 질문을 받으면 제가 얼마나 당혹스럽겠어요.-109-110쪽

"신해철은 음악으로 세상을 바꾸길 꿈꾸고 서태지는 자신이 추구하는 음악을 하기 위해 세상을 바꾸려 한다. 신해철이 우리가 다 같은 공범이라고 하는 반면 태지는 기성세대만을 탓한다. 이는 신해철이 더 현학적이고 어둡고 세기말적인 분위기를 지니고 있는 데 반하여 서태지는 신랄한 비판을 가하면서도 사회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고 있다는 차이를 나타내주는 것이다."(김용희, <기호는 힘이 세다>) -134쪽

소중하게 여긴다는 태도를 LP시절에는 LP가 상하지 않게 조심스럽게 바늘을 내려놓는 순간 학습이 되는 것이죠. 뭐, 더 이상 긴 말도 필요 없고, 그런 현장 학습이 없습니다. LP에다가 조심스레 바늘을 내려놓으면서 근육과 신경을 조절하는 과정에서 콘텐츠를 소중히 여기는 태도는 자연스럽게 생겨났습니다. 콘텐츠를 깔보는 태도는 마우스를 함부로 클릭함으로 해서 생겨나고, 소비자들이 음악을 우습게 여기는데 좋은 음악이 나올 수가 없죠. (중략) 뮤지션을 깔보고 핍박하고, 콘텐츠를 우습게 알고, 가급적이면 돈을 쓰지 않고, 문화비를 최대한 절감한 상태에서 콘텐츠를 마구 긁어모으며 함부로 평을 찍찍 갈겨대는 태도 이외에 너네들이 가지고 있는 시대정신이 뭐냐. 저는 없다고 봅니다. 그 슬로건을 초창기에는 굉장히 거창하게 내걸었죠. p2p가 가지고 있는 정신을 과장해서 얘기하고 공유라는 것에 대해서 엄청난 의미를 부여했잖아요. 저는 인민민주주의 혁명이 일어난 줄 알았습니다. 공유를 얘기하는 사람들을 보고.-158-159쪽

그러니까 하이텔 시절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아마추어 문장가들의 전통이 있는데요. 아마추어는 아마추어 안에 머물러 있을 때의 미덕이란게 있잖아요. 아마추어기 때문에 눈여겨볼 만한 점도 있구요. 아마추어들이 프로 평론가가 되고 싶다면 검증 과정을 거쳐야 되지 않습니까? 본인들이 글을 쓸 자격이 있으며, 대중한테 이런저런 얘기를 할 자격이 있느냐를 따져봐야 하는데요. 그걸 뛰어 넘어서 이 사람들이 비평 권력을 손에 넣으려고 하니까요. 그때도 제가 글을 쓰면서 막상 글을 쓴 사람한테는 별 말을 안 했잖아요. 오마이뉴스를 공격했죠. '너네가 얘기하는 시민기자 제도의 허라는 것이 여기서 드러나지 않느냐. 모든 시민이 기자라고는 하지만, 모든 시민이 전문가일수는 없지 않느냐' 하는 거죠. 일반 시민들을 촉각으로 이용해 각 사회의 세세한 부분들의 뉴스를 끌어당기겠다는 기본 콘셉트는 좋았는데요. 문화비평이라든가 하는 것은 전문지식이 필요하고, 또 지식하고 소양은 다르잖아요. 지식+소양이 있어야 비평을 하기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건 소양하고 담을 쌓은 애들을 평론가로 둔갑시켜주는 구실을 하니까요.-217-218쪽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는 것은 기성세대가 자신을 정당화하는 멘트들, 그중의 하나가 우리는 입을 것 못 입고 먹을 것 못 먹고 너희들을 기르는 데다가 우리 인생을 희생했다고 하잖아요. 자식들이 입지 말라고 얘기한 적 없고 먹지 말라고 얘기한 적 없거든요. 자기가 좋아서 한 거잖아요. 그게 사실이라고 쳐도 그게 사실이라면 자기 좋아서 한 것을 가지고 아래세대들에게 그것을 인정해달라고 외치는 순간 모든 게 끝나는 거구요. 점잖게 앉아 받아먹는 수밖에 없는 건데, 사실은 입을 것 못 입고 먹을 것 안 먹고 자식들한테 투자한 이유가 나중에 덕 보려고 그런 것 아니냐, 자기 인생으로 쇼부가 안 나는 걸 자기 자식들을 마음대로 조정해서 자식들 꿈이 아니라 자기가 원하는 곳으로 투입해서 최대한의 매출을 올리려는 게 아니냐는 거죠. 그 매출이라는 게 우리 사회 특유의 체면상으로 동네방네 자랑할 수 있는 입신양명의 개념이잖아요. 투자해놓고 투자한 만큼 안 빠지면 절규하고, 그런 기성세대의 위선이 삼풍하고 성수대교에서 산산이 무너진거죠. 사실 노래 제목은 '우리가 만든 세상을 보라'였지만, 솔직히 말하면 '니네가 만든 세상을 보라'거든요. -222-223쪽

사실 제가 사회에 대해서 이런저런 발언을 하는 것에 대해서 저한테 악플다는 새끼들이 웃긴 새끼들인 게 저는 제가 가진 다른 카드를 안 쓰고 있다는 거거든요. 신해철이 가진 다른 카드는 뭐냐, 나 혼자 좋은 세상에서 잘 지내고 싶은 거였다면 이런 멘트 안 하고, 대중들 비위에 맞는 멘트나 찍찍 날리고 평소 소신과는 달리 남이 원하는 대답이나 하고 그러다가 이민 가면 되는 거거든요. 내가 원하는 조건이 되어 있는 나라로. 내숭 떨고 계속 돈 모은 다음에 이민 가면 되는 건데, 남들한테 욕먹어가면서 이건 이런 거고, 저건 저런 거고 이런 얘기 뭐할라고 하겠어요? 다 같이 잘살아보자는 거 아닙니까? 기왕이면 여럿이 잘살아보자는데.-237쪽

미덕이라는 것이 남이 미덕을 갖고 있으면 칭찬을 해주면 되는 거구요. 미덕까지는 안 갖고 있어도 그 사람이 나쁜 사람 아니면 되는 거지, 미덕을 갖고 있지 않다고 해서 손가락질까지 해서야 되겠습니까? 예를 들면 겸손이란 필수 덕목이 아니고 미덕인데, 성공한 누군가가 겸손까지 가지고 있다고 하면 박수를 쳐주면 되지만, 성공한 그 사람이 겸손하지 앙ㄶ다고 해서 욕을 할 수가 있느냐는 겁니다. 겸손하지 않다는 것과 잘난 척한다는 것은 또 다른 얘기구요. 그러니까 연예인이 대부업 광고를 보고 '내가 공인의 성격을 띠고 있으니까 이런 건 하면 안 되지 않겠나'라고 하는 건 미덕이니까 칭찬할 수는 있어도 그렇지 않다고 해도 비난할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242쪽

애기가 태어나고 나서 내가 생각하던 것이 강화가 됐지 생각이 바뀐 면은 많지 않아요. 제가 생각할 때 애기를 기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애기를 위해서 부부 생활을 양보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 집의 기준은 어디까지나 우리 부부고 그 사이에서 애가 태어난 거지, 애가 중심이 되고 부부가 부가 되는 이런 일이 절대로 생겨서는 안 되겠다, 아이를 양육하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출발점은 엄마, 아빠가 행복하게 사는 모습을 아이한테 보여주는 것이다'라는 생각을 하는 거죠. 그런 다음에 애기하고의 문제가 시작되는 거지, 애기한테 열심히 잘하는데 엄마랑 아빠랑 사이가 좆나게 안 좋고, 맨날 '너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산다'고 하면 애가 얼마나 스트레스 받겠어요? 차라리 이혼을 하는게 낫죠. -243쪽

공부는 제가 생각했을 때 아주 특수한 인간들이 하는 거거든요. 이 문구 좋다. 공부는 특별하고 선택받은, 공부에 재능있는 소수의 인간들이 하는 것이다. 나머지 사람들이 하는 공부라는 것은 일상생활을 살아가는데 불편을 안 겪을 정도의 기본적인 지식, 앞으로 살면서 학교를 안 다니더라도 학습할 수 있는 능력과 방법을 배우는 거죠.-244쪽

선정성이 에로티시즘을 얘기하는 거라면 그건 크게 잘못된 얘기가 되겠구요. 마치 집에 고3이 하나 있으면 온 가족이 숨죽여 살고 TV를 치우는 것처럼, 청소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성인들이 금욕적으로 살 수는 없으니까요. 그런데 그 선정성이 무조건적인 자극과 사람들 눈에 띄려고 페어플레이 원칙을 파기하는 거라고 얘기하는 거라면, 어떻게 보면 맞다고 볼 수 있죠. 페어플레이를 포기한다고 하는 건 방송에서 모럴 헤저드가 일어난다는 말이잖아요. 지금 연예인들이 방송에서 아무 말이나 막하고, 없는 얘기 지어내고, 그렇게 튀려고 하고, 그러면 살아남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 도를 지나친 것 같아요. -286쪽

"우리는 황혼이 지는 절벽 위에서 물구나무서기를 하고 있는 자와 같다. 그래서 당장 굴러 떨어질 수 있을 정도로 항상 위험하고 위태위태하고 언제든지 깨질 수 있다. 작품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인생 전체가 파탄 날 위험도 감수해야 되는 놈들이다."(신해철이 후배들에게 자주하는 말)-2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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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비돌이 2008-03-05 17: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다 밑줄을 그어두시면 책이 안팔리자나요. 버러럭~~~ 신입사원 생활은 재미있으신가요? ^^

마늘빵 2008-03-05 20:16   좋아요 0 | URL
흐흐흐. 밑줄그은 부분에 필받아서 사는 분들도 많으실듯. :) 신입사원 생활은 재밌습니다. 일도 재밌고, 사람들도 좋고, 복지도 괜찮고.

순오기 2008-03-06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거 다 치느라고 힘드셨겠어요. 가끔 오타도 있어 주시고~^^
'시비돌이'님 책이 나온 거군요. 신해철은 진중권과 같이 100분 토론에도 가끔 나와줘야 하는데...^^

다락방 2008-03-06 13: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81,82 쪽이 제 생각과 같아요. 물론 다른 부분들도 다 맘에 들지만요. 이거 옮기느라 힘드셨겠네요. 살거예요, 산다구욧!!

마늘빵 2008-03-06 1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순오기님 / 치느라 힘들었어요. -_- 오타는... 찾아보면 많겠죠?
다락방님 / 인터뷰집이라 읽는데는 시간이 별로 안 걸리더라고요. 우석훈 인터뷰집도 찜해놨는데 언제 살진 아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