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 통합네트워크 책세상문고 우리시대 88
정진상 지음 / 책세상 / 2004년 10월
구판절판


학벌주의는 무한 입시 경쟁을 야기하는 대학서열체제를 재생산하는 결정적인 원인이지만, 거꾸로 학벌을 생산하는 기제 내지 공장이 바로 대학서열체제이기도 하다. 따라서 우리가 학벌주의 자체를 타파할 수 없다면, 학벌을 생산하는 공장으로 눈을 돌려야한다. 학벌주의를 타파하는 가장 빠르고 확실한 방법은 학벌을 생산하는 대학서열체제를 혁파하는 것이다. 그리고 대학서열체제 혁파는 학벌과 학벌주의를 타파하는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지금의 학벌주의는 생성 단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어떤 부분적인 극복 대책으로는 그것을 타파할 수 없기 때문이다. -13쪽

고등학교 교장은 학교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서울대 보내기' 경쟁에 기꺼이 참여한다. 그리고 이들의 행동은 현재의 상황에서는 지극히 '합리적'이다. 교육부장관이나 교육전문가들이 기회 있을 때마다 무한 입시 경쟁과 사교육 문제의 한 원인을 학부모들의 의식으로 돌리고 있는데, 이는 사태의 원인과 결과를 거꾸로 파악한 것이거나 아니면 의도적으로 자신들의 책임을 회피하려는 수작에 불과하다. 입시 위주 교육이 지속되는 한 학부모들의 의식을 나무랄 수 없으며 그들의 행동 또한 매우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24쪽

현재의 대학서열체제는 형성 단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고착된 것이다. 그리고 고착된 대학서열체제를 재생산하는 결정적 요인은 학벌주의다. 따라서 현재의 대학서열체제를 혁파하기 위해서는 학벌주의를 타파해야 한다. 그런데 학벌주의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우리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지배 이데올로기로 군림하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학벌주의의 포로가 되어 학벌을 추구할 수밖에 없게 되어 있다. 따라서 의식개혁운동 같은 방식으로 학벌주의를 타파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학벌주의는 그 물질적 기초인 학벌을 없애지 않는 한 타파될 수 없다. 화폐에 물질적 기반을 두고 있는 황금 만능주의를, 자본주의적 생산 관계와 화폐 자체의 폐지 없이는 타파하기 힘든 것과 마찬가지다. 학벌주의가 재생산되는 물질적 토대에 눈을 돌려야 한다. 학벌주의는 대학서열체제를 재생산하는 결정적인 원인이지만, 거꾸로 학벌과 학벌주의를 생산하는 기제 내지 공장이 바로 대학서열체제다. 따라서 학벌과 학벌주의를 타파할 수 있는 가장 확실하고 유일한 방법은 그것을 생산하는 공장인 대학서열체제를 혁파하는 것이다.-31-32쪽

컴퓨터 하나만 있으면 이 세상의 모든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오늘날, 지식의 암기보다는 지식을 재구성할 수 있는 비판적이고 창조적인 능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이러한 지적 능력을 키우기 위해서는 호기심을 가지고 탐구하는 습관, 논리적이고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습관을 익혀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학교는 최소한이라도 호기심이나 의문을 가질 기회를 제공하기는커녕 오히려 그러한 의욕을 체계적으로 박탈하고 있다. 암기 위주 교육의 문제점을 잘 아는 대학이 학생들의 창조적 사고를 평가하기 위해 도입한 '논술 시험'은 보기 좋게 실패하고 말았다. 그 또한 틀에 박힌 시험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독서와 사색을 바탕으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논술 학원에서 배운 틀에 박힌 글쓰기로 대응하니 답안지가 대동소이해 채점 교수들이 당할 수가 없는 것이다. -37-38쪽

그(<2002년 이후의 입학 제도 개선에 관한 연구>의 저자 고형일>의 주장대로 국가가 관리하는 수능시험이라는 입시제도가 전국의 학생들을 일렬로 세움으로써 무한 경쟁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나아가 수능시험은 각 대학 입학생의 점수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함으로써 대학 서열을 드러내는 중요한 장치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국가가 관리하는 입시제도는 입시 경쟁을 강화하는 매개자이기는 하지만 입시 경쟁과 대학서열체제를 만드는 원인은 아니다. 잘 알다시피 현재 국가가 수능시험을 관리하지만, 교육부는 수능 점수를 입학 전형 자료로 쓰는 것을 의무 사항으로서 각 대학에 강요하고 있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가급적 고교내신성적을 활용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 대학, 특히 명문 대학이 수능 점수를 전형 자료로 고집하는 것은 대학서열체제 아래서 자신의 지위를 유지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66쪽

그(고형일)는 국립대와 사립대가 같은 조건이 되면 수요자의 요구로 인해 대학 간 경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가정하고 있는데, 학벌주의와 유착되어 있는 고착화된 대학서열체제 속에서 수요자인 학생들은 실상 대학의 질이 아니라 학벌을 보고 대학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수요자인 학생들이 시설이 우수한 지방 국립대학을 마다하고, 비싼 등록금과 하숙비에도 불구하고 수도권의 사립대학으로 몰려드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70쪽

각 학구별로 교육대학원을 두어 학구 내의 중등학교와 초등학교 교원을 양성한다. 현재의 사범대학 및 교육대학 체제와 교사임용제도는 많은 폐단을 낳고 있다. 고육책에 불과한 교원임용고사에 의한 교사임용제도는 폐지해야 한다. 중등학교와 초등학교의 교사는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의 교육대학원 졸업생(석사) 중에서 선발함으로써 교사의 질을 높여야 한다. -109쪽

사실 국립대 통합네트워크가 제도화되더라도 학생들이 서울 소재 대학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지역할당제를 실시하면 서울에는 서울의 인구 비율인 25%만큼만 입학 정원이 할당될 것이므로, 서울 소재 대학을 선택할 동기가 현저히 줄어들면서 학생들이 지방으로 분산될 것이다. -129쪽

1980년대 이후 고등교육 수요 폭증에 따라 정부가 사립대학의 설립 인가를 남발하면서 대학교육에서 사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높아졌다. 4년제 대학 학생의 75%가 사립대학교에 다닌다고 보면 된다. 사립대학은 비영리 공익 재단임에도 불구하고 재단이사장의 사유물로 인식되고 있으며, 부패와 부실의 온상이 되어 있다. 또한 대부분의 사학 재단은 거의 전적으로 학생들의 등록금에 의존해 대학을 운영하고 있으며 재단 전입금은 극히 미미한 수준이다. 또한 이사장의 비민주적이고 독단적인 운영 구조와 관행으로 사실상 1인 독재체제나 다름없는 사립대학이 많다. 그동안 사립학교법은, 유력한 재단이사장들이 국회의 교육위원회에 직접 참여하거나 강력한 로비를 벌이는 가운데, 대학의 공공성을 해치고 이사장의 대학 통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악되어 왔다. 최근에는 '사학청산법' 입법이 시도되고 있는데, 이는 사립 재단 설립자나 2세들이 자신들이 과거에 사회에 내놓았던 공익 재단을 청산해 재산을 돌려받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법을 중단하고 사립대학을 원래의 설립 취지로 돌려놓을 수 있는 법 개정이 대학 개혁의 선결 요건이다. -130-131쪽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에서는 서울대 학부를 개방해 서울대를 졸업장 따는 곳이 아니라 진정으로 학문을 하려는 전국의 수재들을 교육하는 장으로 만들고, 서울대를 대학원대학으로 전환해 학문의 중심으로 만들고자 한다. 서울대를 권력의 중심이 아니라 학문의 중심으로 만들려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서울대 교수들에게 국립대 통합네트워크에 저항할 명분을 주지 않게 되고, 따라서 그들의 주장이 결국 기득권을 지키려는 속내의 발로임을 폭로할 수 있을 것이다. -146쪽

서울대가 높은 수능 점수를 받은 학생들을 독점해왔다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다. 세계에서 교육열이 가장 높은 우리나라의 수재들이 모두 서울대에 모여든다. 이렇게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한 울타리 안에 모아놓은 대학은 세계에서도 드물 것이다. 이들을 엘리트라고 한다면 분명 서울대는 엘리트 집합소다. 게다가 지금까지 정부는 재원을 서울대에 집중시켜왔다. 국가 차원에서 인재를 서울대에 집중시켜 엘리트를 양성하는 정책을 써온 것이다. 이렇게 전국에서 모여든 수재들이 대학을 졸업하면 우리 사회의 권력 엘리트가 된다. 이런 측면에서 엘리트를 말한다면 그것은 서울대 학벌로 나타나는 지배 엘리트일 뿐이다. 이런 식의 지배 엘리트 양성은 봉건 시대의 특권층 양성과 다를 바 없다. 우리의 개혁안이 노리는 목표 중의 하나는 바로 이러한 지배 엘리트 양성소를 폐지하는 것이다. -173-174쪽

현대 사회는 다양한 방면에서 창조적 엘리트를 요구한다. 그러나 서울대에 입학한 학생들이 가진 소양은 획일적이다. 오직 수능 점수가 유일한 기준이다. 사회는 수능시험을 잘 보는 엘리트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참된 의미의 엘리트를 얻기 위해서는 어릴 때부터 개인의 적성과 소질에 따라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현재의 대학서열체제 아래서는 서울대 또는 한 단계라도 더 서열이 높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모든 교과목을 고루 잘해야 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자신의 적성을 마음껏 키울 기회가 없다. 이런 조건에서는 다양한 분야의 엘리트가 육성될 수 없다. -17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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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즈행복 2007-12-29 09: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수 학생을 키우겠다는 것은 당연한 욕구겠지요. 학군제로 대학 간다는 프랑스도 대학 위의 대학이라고 국립 사범학교나 행정학교등이 있더라고요. 그리고 그런 대학 가려면 재수, 삼수도 한다고 하고요. 미테랑 전 프랑스 대통령이 혼외정사로 낳은 딸이 국립 사범학교 학생이었다는 것을 미테랑 대통령도 항상 자랑스러워했다니까 말예요. -물론 프랑스나 미국은 학과별로 분화되어 여러 명문대가 있지요. 우리나라처럼 서울대가 다 장악하고 있는 시스템은 아니니까요- 교육문제는 뭐가 문제인지 정말 모르겠어요. 학문할 수재만 서울대에 가게 한다는 것은-권력의 중심이 아닌 학문의 중심- 좋은 발상이긴 한데, 글쎄... 아, 머리아파라~ 물론 한국애들이 창의성이 떨어진다고 하지요. 다양한 분야의 엘리트가 나올 수 없고...
아, 정말 모르겠어요. 이 책을 읽으면 좀 알려나요?

마늘빵 2007-12-29 09:13   좋아요 0 | URL
아직 리뷰 작성 전이지만, 이 책이 제시하는 방안은 매우 구체적이고 학벌사회를 깨고 입시지옥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의문은 물론 있습니다.

일단 가장 큰 게 돈 문제인데, 이 초기에는 막대한 예산이 소요될 듯 하고, 법대, 의대, 사범대 등의 전문계열은 전문대학원을 통해서 인재를 배출하자는 안이니 등록금의 문제 또한 남아있습니다.

대부분 국고보조를 통해 해결하려고 하지만, 지금 현재 로스쿨 설립 후 돈 없는 이들이 과연 그곳에 진학해서 정상적인 변호사의 길에 들어설 수 있는가 하는 의문점들 같은게 해결되 수 있다면 큰 문제 없다고 봅니다. 이렇게 되면 가장 큰 문제는 돈이 아니라 학벌 기득권 세력의 저항일 겁니다.

수능시험 위주의 일렬로 나란히 세워놓는 지금의 풍토에서는 아무리 창의성 교육 한다한들 소용이 없죠. 나라에서는 창의력을 강조하지만 지금 풍토는 창의력 말아먹는 풍토입니다. 그러니 수능점수에 의한 서열화를 깨야만 하고, 정진상씨가 제시하는 방안은 창의력 위주의 인재양성으로 가는 적절한 해답이라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