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서 살다 - 바보 이반의 산 생활을 적은 생명의 노래
최성현 지음, 허경민 사진 / 조화로운삶(위즈덤하우스) / 2006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바보 이반의 산 이야기>로 익히 알려진, 바보 이반 최성현의 또다른 삶 이야기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그는 철학을 공부하다가 산으로 들어가 살기 시작했고, 스무해가 지났다. 이 책은 산 스무살이에 대한 삶의 기록이다. 홀로 그곳에 멀찌감치 문명과 떨어져 살며 무슨 즐거움을 찾고자 했을까.

  사람들은 자주 내게 이렇게 묻는다.
  "무슨 재미로 산에 살아요?"
 
 그 하나는 나를 찾아오는 풀과 나무, 새, 벌레, 짐승 등과 만나는 재미다. 움직일 줄 모르는 풀과 나무가 어떻게 내게 온다는 것인지 짐작이 안가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잘 살펴보면 뜻밖에도 많은 나무들이 움직인다. 제 힘으로, 혹은 남의 힘으로.

  책 한장 한장에는 최성현씨가 스무해 동안 홀로 산에 살며 보고 느낀 것들에 대한 기록으로 가득하다. 기록을 위한 작업이 아니라, 순수하게 산살이를 지내며 자연스럽게 체득한 일상에 대한 기록이다. 그는 우리가 보기에 아주 사소한 것에서부터 즐거움을 느낀다. 개구리밥과 물옥잠, 뽕나무 아래 찾아온 밤나무 등등 나라면 무심코 지나칠 만한 것들을 그는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뽕나무를 찾았더니 밤나무가 나오고, 밤나무를 찾았더니 또 무엇이 나오고, 자연은 그 작은 것들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 모든 것을 보여준다. 우리가 자연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그 작은 어느 것 하나를 지나쳐버리기 때문이다.

  매해 봄, 여름, 가을, 겨울 반복되고, 뜨거운 여름살이, 추운 겨우살이 준비하는 것도 이제 지겨울 법도 한데 그는 결코 산 살이에 실증을 내지 않는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이 삶이 무엇이 그리도 좋을까. 하지만 그 시골 홀로 집짓고 사는 그곳에 별다른 변화가 없을 듯 하지만, 밖에 쭈그리고 앉아 땅을 보고 있노라면 어제와는 다른 오늘이 기다리고 있다. 겉으로 별다른 일이 없다고 하여 따분하고 심심한 인생살이라고 보는 것은 편견이다.

 그는 자연을 보고 느끼고 살며 삶의 철학을 깨닫기도 한다. "환경문제는 어느 일부분의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공범인 것이다. 공해 물질을 만들어 내는 공장도, 거기에 동참하고 있는 과학자도, 그것을 새로운 방향으로 풀어가지 못하는 정부도, 그것을 사서 쓰는 소비자도 잘못인 것이다. 누가 누구를 탓할 계제가 아닌 것이다. 사서 쓰는 사람이 있기 때문에 만들어 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놈이 나쁘다'라는 방식으로는 안된다. '저도 사실은 이렇게 잘못된 것이 있더군요' 라는 식의 자기 성찰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 고발은 쉽고 고백은 어렵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회에는 고발의 방식이 많다 하지만 고발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은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다. 고발과 고백은 차원이 다르다. 고발은 적을 만들지만, 고백을 통해서는 친구가 되는 것이다. 고백은 자기를 열고 상대방을 연다. 우선 자기 생활을 돌아보고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그리고 때때로 만나 그것을 고백함으로써 서로 정보를 나누고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해 보면 좋을 것이다. "

  사물을 보는 깊이있는 시각은 책을 많이 읽고 사색함으로써, 홀로 절에 틀어박혀 도를 닦으면서도 길러지는 것이지만, 최익현과 같이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면서도 -그것이 벌써 이십년이지 않은가- 길러진다. 젊은 날 그는 대학과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했지만 그때 그가 공부한 철학적 지식이란 것과 그가 이십년 동안 산에서 살며 자연스레 삶 속에서 체득한 인생철학은 비교할 수 없을 것이다. 결국 우리가 양서를 읽거나 철학을 공부하는 것은, 사물에 대한 깊이있는 시각을 기르고, 결국 나를 돌아보기 위함일진대, 바보 이반 최익현은 그것을 산살이를 통해 길러냈다.

  산으로 가는 산책은 작은 출가와 같다.
  새로운 사람으로 돌아오기 위함이다.

  자꾸 걷는다.
  본 것에서 일어나던 생각들이 떨어져 나간다.
  들은 것에서 일어나던 생각들이 떨어져 나간다.
  말한 것에서 일어나던 생각들이 떨어져 나간다.
  돌아오는 길에는 몸과 마음이 가볍다.
 

  그는 이렇게 매일매일 작은 출가를 경험하며 새로운 사람으로 태어난다. 산책길에 본 것에서, 들은 것에서, 말한 것에서 일어나던 생각들은 떨어져나가고 집으로 되돌아오는 발걸음은 가볍다.  매일매일이 그에겐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고, 새로운 인생이다. 오늘 밤나무를 보고 느낀 것과 내일 똑같은 밤나무를 보고 느낀 것은 같지 않다. 오늘은 어제와 같지 않을테니까. 이렇게 하루를 지내다보면 어느새 밤은 어둑해지고, 다시 또 따스한 햇살이 마당을 비춘다. 마당이랄 것도 없다. 여기 모든 곳이 내 집이니. 하지만 또 내 집이 아니다. 이곳은 그저 내가 머물다 가는 곳이니.

  이렇게 살아갈 수도 있구나, 하는 걸 느낀다. 정말 존경스럽고 부러운 삶이지만, 결코 문명과 세속이 찌든 내가, 또 매일매일 복잡하게 돌아가는 이 곳이 싫지 않은 내가, 이곳을 포기하고 산으로 들어간다는 것은 생각조차 못할 일이다. 세속을 떠나 자연과 더불어 살며 대자연의 이치와 신비로움을 느끼고 싶은 마음 한 구석에 있으나, 나에겐 그것은 언제고 구석에나 머물 듯 하다. 이 책을 읽으며 마음이 한 없이 편안해지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곧 현실로 돌아와 오늘의 뉴스를 뒤지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잠시 책을 읽으며 꿈을 꾼 듯 하다. 여기 나와는 다른 삶을 사는 사람의 삶을 간접적으로 이렇게 책으로나마 접할 수 있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바삐 돌아가는 나의 일상에 잠시 마음의 휴식을 가져다준 책이다.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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