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망상 나남신서 502
조동일 지음 / 나남출판 / 2001년 9월
평점 :
품절


  복거일에 의해 시작된 영어공용어화 논쟁이 신문에서 책으로 넘어갔다. 복거일이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를 내면서, 이에 반론을 제기하는 학계와 문단의 학자와 작가들이 책을 내기 시작했다. 조동일의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망상>은 복거일에 대한 반대 논변 중 하나이다.

  조동일 이란 인물에 대해서는 세세히 말하지 않아도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서울대 국문과과 한국정신문화연구원의  교수였으며, 지금은 계명대학교 석좌교수를 역임하고 있는 분이다. 그의 저서는 베스트셀러는 아니지만 꾸준히 관심있는 많은 이들에 의해 읽히고 있다. 대표저서로 <한국문학통사> <우리 학문의 길> <세계문학사의 허실> <인문학문의 사명> <철학사와 문학사 둘인가 하나인가> 등등이 있다. 나는 그의 저서는 탁석산의 <한국의 정체성>의 뒷부록에 나와있는 참고문헌에서 보고 <이땅에서 학문하기>를 유일하게 봤다. 영어공용어 논쟁에 대해 조동일이 한마디 했다면 그것은 당연코 반대의견이다. 그는 누구보다 한국어와 한글에 대해 많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 학자이며, 한국인으로서 사는 것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을 오랫동안 해왔던 사람이다. 그의 저서 목록만 봐도 알 수 있다.

  조동일은 '영어를 공용어로 하자는 망상'이라는 제목을 내세워 복거일에 대놓고 반대하고 있다. 이미 제목에서부터 그것은 '망상'이라고 규정짓고 있다. 더불어 '민족문화가 경쟁력이다'라는 부제까지 붙이고 있다. 하지만 조동일이 이 책을 통해서 서술하고 있는 의견은 복거일에 대한 효과적이고 직접적인 반론이 되지는 못한다. 조동일의 글쓰기 방식이 워낙에 두루뭉실하고 구름  둥둥 떠다니는지라 말하고자 하는 바가 정확히 무엇이고, 그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해 파악하기 힘들다. 힘든게 아니라 조동일은 언제나 추상적이고 막연한 언제나 들어도 그것이 백번 옳은 소리일 것만 같은 그런 교과서적인 이야기를 한다. 그다지 논리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 할 순 없다.

  조동일은 이 책의 상당부분을 할애하여 영어를 사용하는 비주류(?) 국가들에 대해 다루고 있다. 아프리카 대륙, 인도아 대륙, 동남아시아의 사례를 들면서 여기에 속해있는 국가들에서 영어가 어떻게 사용되고 있으며, 어떤 문제점이 일어났고, 왜 영어를 사용하게 되었는지까지 기나긴 역사적 배경을 세세하게 들어가며 예를 들고 있다. 결국 조동일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것일테다. 이러한 많은 국가들에서 영어가 사용되고 있다면 그것은 그 나라만의 특수한 사정이 있기 때문이고 그것은 우리와는 사정이 많이 다르다. 우리와 그들을 동일시해서는 안된다 뭐 이런.  그런데 그 주장을 펼치기 위해서 그렇게  세세하고 지루한 언급을 할  필요는 없었다. 자신의 주장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는 글로는 너무나 쓸데없는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참고자료서는 써먹을 만하다. 어디서 이런 자료를 구할 수 있을까.

   조동일이 이 책에서 복거일에 반론을 제기하며 힘주어 말하는 부분의 어긋난 점 하나는, 일상의 영어공용어화가 아닌 학문하는 데 있어서의 영어공용어화의 문제점을 언급한다는 것이다. 영어공용어화를 했을 때의 문제점은 일상의 여러곳에서 드러날 수가 있는데 그것에 문제제기를 하지 않고 학자가 학문하는데 있어서 영어공용어화는 굳이 필요치 않다. 본인은 해외 연수를 갔다온 것도 아니지만 영어를 무리 없이 사용하고 있고 자신의 저서를 영어로 번역해 출판하는데도 문제가 없었다는 등의 이야기. 본인 개인의 특출한 사례를 들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나는 평범한 한 한국인에 불과한데 내가 그리 했으니까 너희들도 모두 가능해 이런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일까. 아니면 본인의 위대함을 역설하고 싶었던 것일까. 우리 학문이 나아갈 길은 무엇이다 등등의 학문하기에 대한 역설에 할애하고 있다는 점이 어째 복거일에 대한 정식으로 '반대!'하고 외치는 듯한 제목과는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를 한달까. 제목은 제대로 반기를 들었으나 내용은 그리 효과적이고 치명적이며 직접적이진 못하다.

   영어공용어화 논쟁에 있어 복거일이 문제의 본질을 잘못 짚었다면, 조동일은 한국어의 위대함과 위상에 대해 지나치게 과장/강조하고 있다. "세계에 있는 수많은 언어 가운데 오직 영어만 우상 노릇을 하면서 인류를 괴롭히는 것은 영미가 주도한 언어제국주의가 깊이 침투해서 만들어낸 질병이다. 그 해결책이 영어를 몰아내는 것은 아니다. 영어가 우상의 자리에서 내려와 자기 분수를 지켜 적절한 기능을 하도록 해야 한다.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이 서로 대등한 위치에서 의사소통을 하는데 필요한 영어를 함께 가꾸는 일에 국어가 확립되어 있는 한국이 적극 기여하는 것이 마땅하다. " 이건 아니잖아. 가능하다고 봐?

  영어공용어화를 반대하는 대표적인 학자로서 조동일의 의견을 살펴볼 필요는 있지만 이 책에서 복거일의 의견에 대한 적절한 반론을 찾으려 한다면 기대보다 실망이 클 것이다. 오히려 이 책 보다는 영어학자 한학성의 <영어공용어화, 과연 가능한가> 와 네 명의 필자가 함께 쓴 가상 르포 <한국어가  사라진다면>이 훨씬 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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