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루 기담
아사다 지로 지음, 양억관 옮김 / 문학동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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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른바 기담 종류를 좋아한다. 환상이 잔뜩 들어간 마법적인 남미 소설들도 좋아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인생이란 결코 논리와 이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의 인생 뒤에 숨어있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사실 우리의 삶을 이끈다고 믿는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오는 다섯 가지 이야기들은, 그 이해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흔히 기담이라고 하면 귀신이라든지 여하튼 이 세계의 존재가 아닌 것들이 나오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귀신이 나온다고 해서 다 기담은 아니다. 기담의 진정한 의미는 기이한 이야기 속에서 모순과 부조리에 시달리는, 그리고 그것을 역시 이상한 방법으로 극복하는 인간을 그려내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사고루 기담은 놀랄 만큼 훌륭한 기담이다. 아무리 이 세상 것이 아닌 것처럼 보여도 결국 이것은 철저히 인간의 이야기이다. 이상하기 때문에,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인간의 이야기인 것이다.

 이야기의 분위기는 네 번째 이야기가 가장 마음에 들었지만 <인간의 기담>이라는 면에 있어서는 역시 다섯 번째 기담을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특히 이것은 죽음과 삶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인간의 운명이 어떻게 변하는지를 예리하게 그려내고 있다. 자신의 뜻과는 다르게 움직이는 운명과, 진실들이 모여 이뤄내는 거대한 거짓말을 보고 있노라면 아사다 지로의 뛰어난 이야기 솜씨와 깊은 성찰에 무릎을 치고야 만다. 이처럼 우리의 삶과 가까이 있는 이야기가 있을까.

 개인적으로 아사다 지로는 <철도원>과 같은 그저 따뜻한 소설이나 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기피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 책도 기담이라는 제목만 아니었다면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기담이 나를 인도했고, 나는 아사다 지로의 깊은 향취를 마음껏 느꼈다. <음양사> 이후로 가장 뛰어난 일본 기담집이였다. 아름답고 슬프다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이야기들을 몇 번이고 쓰다듬고 싶어져, 결국 책을 사버렸다. 앞으로 계속 내가 읽고 싶은 글을 읽고 싶을 때 이 책을 펼칠 것 같다.

 그리고 나도 언젠가는 이 책처럼 아름답고 슬프고 매혹적인 <진실>의 이야기들을 쓰고 싶다고, 그렇게 스스로에게 말했다. 진실이란 것은 그것이 아무리 이상해 보여도 인간의 영혼으로 전해지는 힘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그 힘이 남아있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기담을 쓰고 읽을 것이다. 그리고 그때까지, 소설이란 비능률적인 존재 역시 우리 곁에 남아있을 것이다. 살아있는 무언가로서 말이다. 나는 그 희망을 이 책 <사고루 기담>에서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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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무덤에서 춤을 추어라
에이단 체임버스 지음, 고정아 옮김 / 생각과느낌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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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이야기를 해볼까. 나는 온기가 부족한 아이었다. 이 책의 주인공인 핼이 ‘마법의 콩’을 가진 운명의 친구를 찾아 나섰다면, 나는 태양을 찾고 있었다. 태양같이 환한 미소로 온 주변을 빛으로, 온기로 물들일 친구를.

 당신이 핼을 이해한다면 나 역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가 나의 ‘역사’에 대해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내가 어떻게 어른이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나는 내 친구와 자지 않았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내 친구는 죽지도 않았다. 나는 미친 듯이 울면서 어른이 된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갈라지는 두 사람의 운명을 응시하며, 우리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아주 서서히 깨달아가며 어른이 되었다.

 처음에는 이 소설의 낯선 형식에 투덜거렸었다. 난잡하고 겉멋이 들어 보여 소설이라기에는 무슨 일기처럼 느껴지고 완성도가 떨어진다고도 생각했다. 그렇기에 이 소설이 이토록 내게 진지하게 다가올 줄 상상도 못했다. 그러나 곧 나는 이 이야기가 나의 이야기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소설을 읽으며 내내 깊은 동질감에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핼의 이야기는 나를 사로잡았다. 어떻게 내가 이 이야기를 듣고도 잠을 이룰 수 있었겠는가. 나 자신만의 역사라고 마음에 꾹 담고 있던 깊고 푸른 슬픔을 다른 이의 글에서 발견했을 때, 당신은 잠들 수 있겠는가. 아마도 아닐 것이다. 나는 이 소설에서 나 자신을 보았다. 물론 죽은 배리의 모습을 보는 것과 매일 아침 나와 ‘사회적 계층이 다른’ 친구의 학교를 지나 등교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우리 둘 다 순간의 일치를 혼자서 영원하리라 믿었고, 배신당했다고 괴로워했으며,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신의 두 발로 설 수 있게 되었다.

 청소년 소설이라지만 언뜻 청소년 소설 같지 않다. 청소년들이 이 소설을 읽는다고 무엇이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물론 어른들이 읽는다고 달라질 것 역시 없다. 하긴. 소설을 읽고 삶이 바뀐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작가든 독자든 오만을 부리는 것이겠지. 하지만 적어도 청소년을 거치고 있거나 거친 사람이라면 소설에서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역사를 읽고 있을 것이다. 나는 무덤에서 푸닥거리를 하는 대신, 그 이야기를 소설로 써서 자신으로부터 한 걸음 나아갔다. 핼도 글을 쓰며 어른이 되었을 것이다. ‘나는 어른이다.’라고 자신에게 강하게 되뇌는 아이에서, ‘내가 어른이구나.’라고 어쩐지 슬픈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진짜 어른이 되어버렸다. 책을 몇 번이고 다시 읽으며 곱씹었다. 그리고 오랜만에 내 역사를 되씹으며 오랫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러나 나는 책을 읽는 것이 아니었다. 책이 아니라 나의 역사를 읽는 것이었다. 나는 핼과 배리가 아니라 내 모습을 보고 있었다. 나는 어른이구나. 울진 않았지만, 눈물보다 더 강한 내면의 울음으로, 소설을 읽으며 속으로 계속 흐느꼈다.

 울 수도 없다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지독한 사랑을 했고, 사랑은 끝이 났다. 이제는 울 수 있다. 울 수 있어서 웃을 수도 있다. 어른이 되게 만드는 사랑이라는 것은 그런 것이다. 우리가 하나이기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이기 때문에 사랑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영혼이 찢기고 떨어져 나가는 고통을 느끼며 우리는 어른이 된다. 떨어져나간 영혼의 빈 공간에 우리는 타인의 상처를 품을 수 있는 더 큰 사랑을 담는다. 핼. 가엾은 핼. 네가 너의 이야기를 들려줬으니 내 이야기를 이 서평에 썼다. 상처는 공명하며 서로를 강하게 묶는다. 그의 사슬이 내 팔목에 채워진 것을 느낀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성장한다. 방금 내가 소설을 읽는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고 했던가. 수정하겠다. 소설로 세상이 바뀐다. 상처를 응시하며, 지지 않으며, 언제까지고 걸어갈 용기가 생겼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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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20대, 공모전에 미쳐라!
이동조 지음 / 전나무숲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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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나도 대학생이긴 한데 무언가 ‘대학생만 할 수 있는 일’을 조금 하고 싶었다. 취업 시 가산점에 대한 욕심이 없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지만, 그건 너무 막연한 이야기이고, 역시 ‘무언가 하고 싶다’라는 욕심이 공모전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한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런데 생각보다도 더, 공모전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다. 일단 고등학교 때부터 늘 관심이 있던 문학공모전에 대해서는 걱정이 없었지만, 그 외 내가 해보고 싶었던 다른 유형의 공모전의 경우, 무슨 공모전이 있는지에 대해서만 정보가 있을 뿐, 수상작이나 그 노하우에 대한 정보가 거의 전무했다. 고등학교 때 문학공모전을 하면서도 느낀 점이지만, 공모전에서 필요한 것은 노하우의 정보이다. 물론 직접 부딪쳐 가면서 노하우를 습득할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이나 노력이 아깝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차에 만난 것이 이 책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시 이 책 한권으로 모든 노하우를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어서 꿈을 깨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 물론 이 책에는 수상자들의 노하우가 꽤 상세히 나와 있으며 그것은 나처럼 방향조차 잡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조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여전히 ‘진짜’ 노하우는 몸소 체득하는 수밖에 없다. 그건 아마 이 책의 문제라기보다는 공모전, 아니 이 세상 모든 일의 원리일 것이다. 하긴. 책 한 권 읽는다고 공모전 수상을 휩쓸 노하우를 알게 된다면 그것도 참 불공평한 일이 아니겠는가. 심지어 ‘꾼’이라고 불리는 공모전 노장들과 같이 공모전에 참가해도 그들의 노하우를 전부 전수받을 수는 없을 텐데.

아무튼 여전히 본인이 직접 도전해야 할 부분이 남아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 책이 허술한 것은 아니다. 개괄적인 공모전 준비 요령부터 공모전 유형에 따른 대표적인 공모전들, 그리고 수상자들의 노하우까지 총 망라되어 있어, 공모전에 도전하려고 하지만 그 문턱에서 머뭇거리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는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이제 남은 것은 도전뿐인가. 책에서도 여러 번 강조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학생다운 노력이다. 책 한권으로 모든 걸 알려는 얄팍한 술수 부리지 말고, 직접 자신의 열정으로 노력할 것. 그것이 이 책이 남겨준 가장 큰 교훈일지도 모르겠다. 지금 인터넷에서 이런저런 공모전 요강을 뽑아보며 다시 한 번 내가 정말 무엇을 해보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내 미래에 대한 조금 다른 생각. 이것이 공모전에 도전함으로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상금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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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의 책방 1 - 그, 사랑을 만나다
마쓰히사 아쓰시 지음, 조양욱 옮김 / 예담 / 200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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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히사 아쓰시 - 천국의 책방


당신이 착하다면 읽을 수 있어요


 

 읽는 내내 갸웃거렸다. 책에는 일본의 베스트셀러라고 나와 있는데, 정말 베스트셀러가 맞는지 의아했기 때문이다. 진짜 이 책을 읽다가 눈물을 흘린 사람이 있는지, 꼭 그 사람을 찾아내어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다는 생각까지도 했다.

 글쎄. 나의 오만한 생각인지도 모르겠지만 소설에도 어느 정도 테크닉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소설뿐만이 아니라 다른 예술도, 아무리 훌륭한 아이디어라고 해도 그것을 뒷받침해줄만한 기술적인 섬세함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어찌되었거나 예술은 표현하는 것이니까, 표현을 위해서는 표현력을 갖춰야 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아무리 좋게 생각하도 그런 섬세함과 치밀함은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작가가 이 소설이 처음이라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내가 ‘너무’ 프로 작가 글만 봐서일까.

 어쨌든 나는 그다지 어설픔에 대해 너그러운 사람이 아니라 이 책을 읽는 내내 답답했다. 사건의 개연성도 없고 등장인물들의 심정에 대해서도 제대로 묘사가 되지 않는다. 분명 아름다운 이야기이고 감동적인 장면들의 연속이지만 그 모든 내용이 마음으로 와 닿지 않았다. 이거야말로 불행한 이야기이다. 마치 초보 요리사의 손으로 들어가 엉망이 되어버린 고급 요리 재료를 떠올리며 한숨을 쉬는 기분이랄까. 요즘 이런 이야기를 너무 자주 하는 것 같은데, 정말 이거, 나도 쓰겠다고 생각이 든다.

 특히 아쉬웠던 것은 이 소설에서 가장 큰 매력이 되어야 할 ‘낭독’의 맛이 재대로 드러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좀 더 집중하여 아름답게 묘사했어도 나쁘지는 않았을 텐데. 이상하리만큼 작가는 주인공을 낮게 평가하여 ‘그의 목소리에는 아무 것도 없는데도 사람들이 그가 읽는 책을 좋아했다’라고 써 놓았다. 하지만 역시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은 아름답게 써 놓아도 좋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내 생각이다. 설령 주인공 본인은 모르더라도 작가는 그 아름다움을 알고 충분히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았을 텐데.

 여러모로 내게는 성에 차지 않는 작품이었다. 그러나 당신이 마음이 너그럽고 착하여 그 마음으로 이야기의 본질만을 가지고도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 이야기를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책을 낭독하는 맛을, 낭독을 듣는 맛을 아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즐겁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부디 이 책을 선택하는 당신이 그런 사람이기를, 나는 바란다. 그렇다면 당신이 이 <천국의 책방>에 들어가 마음껏 그 상냥함을 느낄 수 있을 테니까. 나와는 달리.

 역시, 천국에는 아무나 갈 수 있는 것이 아닌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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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러기
모리 오가이 지음, 김영식 옮김 / 리토피아 / 200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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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특별히 좋아하는 주제랄까. 그런 것을 고르라면 나는 ‘슬픔’에 대한 주제를 고르겠다. 나는 슬픔이야말로 인간을 움직이는 가장 밑바닥 감정 중 하나라고 생각하니까 말이다. 슬픔은 근원이고 또한 결말이다. 그리고 그런 면에서 모리 오가이의 <기러기>는 충분히 나의 사랑을 받을만한 작품이다.

그러나 <기러기>의 슬픔에 대해 말하기에 앞서 나는 이 소설을 읽게 된 동기를 먼저 말하고 싶다. 아마 모두가 이미 예상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단순히 그를 히라노 게이치로가 문체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 작가이기 때문에 골랐다. 그 이외의 어떤 점을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나는 두 작가간의 문체의 비슷함을 찾는 데에는 실패했다. 어차피 번역된 책을 읽는 것인지라 속단하기는 어렵지만, 히라노가 딱딱한 문장들과 영탄적인 문장들을 오고간다면 모리 오가이는 잘 세공된 은제품처럼 섬세하고 절제된 문장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문체적인 동질감을 찾아내는 대신, 나는 모리 오가이라는 작가를 꽤나 좋아하게 되었다. 군의관 출신으로 군인으로서는 최고의 자리까지 오른 사람이라기에 소설도 그만큼 빡빡하거나 혹은 그 반동으로 엄청 끈적끈적할 줄 알았다. 그러나 의외로 <기러기>는 소박한 문장과 고요한 시선으로 쓴 소설이었다. 무엇보다도 그 글에 나오는 상황이 정말 있을 법도 하여 깊은 동질감이 느껴졌다. 그 슬픔이 결코 과장되지도 혹은 왜곡되지도 않았기에 가능한 느낌이었다.

이 소설의 주제는, 맨 처음 말했듯이, 슬픔이다. 더 자세히 풀어보자면 우연이 만들어낸 운명이 가져오는 슬픔이다. 아무 것도 아닌 작은 사건으로 인하여 틀어지는 인간의 운명이 자아내는 애틋한 안타까움인 것이다. 아름답지만 첩으로 살아가야 하는 오다마나, 창가의 여인에게 연정을 느끼지만 결국 유학을 떠나는 오카다. 그리고 그 둘이 서로의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우연한 엇갈림에 의해 무산되어 버린다. 그들은 일이 그렇게 흐를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했지만 운명은 그렇게 두 사람을 갈라놓는다. 사소해 보이지만 결코 사소하지 않은 운명의 작은 장난에 의해 갈라진 무정한 인연의 끈.

누군가 사랑은 비극을 그 태생부터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랑이라고 했다. 진정한 사랑은 비극적인 사랑이라고도 하였다. 서로 잠시 스친 인연으로 평생 가슴에 불에 덴 상처를 가진 사랑만이 우리들의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사랑이라면, 이 소설의 사랑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일 것이다. 또한 그 상처를 만들어낸 무정한 운명의 장난 아래 기러기처럼 도리 없이 당하는 것이 우리네의 삶일 것이다. 그 <어쩔 수 없는> 삶에 대해 이만큼 아름답게 그려낸 작가는 드물 것이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 슬픔에 함빡 취하기만 할 뿐 그것을 승화시키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저 우리 안으로 내밀하게 밀려들어오는 슬픔의 물결만으로 만족해야 하는 것이 마냥 아쉽다. 그것은 어쩌면, 운명 앞에 무력한 나라는 인간의 안타까움일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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