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외롭구나 - 김형태의 청춘 카운슬링
김형태 지음 / 예담 / 200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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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나 자신도 사실 누군가를 카운슬링을 할 처지는 못 되지만, 그래도 친구며 후배며 근근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 요청하는 경우가 있다. 그럴 때마다 대부분은 그저 듣기만 하고 ‘음, 잘 되겠지’라는 무책임한 말로 마무리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말해주고 싶을 때도 있다. “너 이미 답을 알고 있잖아.” 사실이 그렇다.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은 답을 이미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기 마련이다. 가만 이야기를 듣다 보면 그 사람들은 ‘내가 너에게 하소연을 하고 있긴 하지만, 너에게 충고를 듣고 싶은 건 아니야’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나의 침묵만으로 남의 엉클어진 마음을 푸는 데에 일조할 수 있음을 기뻐하며 무조건 ‘네 말이 옳아’라고 말하곤 한다. 그렇게 보면 카운슬링이란 직업도 참 편한 거야, 라고 생각하면서.

그러나 이 책의 저자는 결코 나처럼 태평하거나 적당히 게으른 상담가가 아니다. 그는 나보다 더 훌륭하여, 상담을 원하는 자들이 이미 답을 마음속에 품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답이 망하는 지름길이라는 사실조차 알고 있다. 그는 나약한 우리 젊은이들에게 무서운 진실을 날린다. ‘죽을 정도로 노력하거나 아님 계속 투덜거리면서 그렇게 살든가 다 네 선택이야’라고. 누가 감히 우리 <깨어지기 쉬운 예민한 감수성의 청년들>에게 그런 말을 겁 없이 날릴 수 있겠는가? 상담을 원하는 자들은 사실 그만큼 고집이 센 자들이기도 하다. 그 사람들이 원하는 답이 아닌 너 비관적인, 그러나 사실은 진실인 그 답을 듣고 얼마나 분개할지 상상이나 되는가? 누군가의 인생을 그토록 잔인하게 ‘게으름과 멍청함’으로 요약하는 일이 사실 얼마나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인지 아는가? 하지만 저자는 해냈다. 그는 비겁함을 버리고 우리들에게 진실을 말한다. 그는 대중매체나 모범생 책들처럼 적당한 가식으로 입발린 말을 할 생각 따윈 전혀 없다. 냉혹하지만 한 마디도 틀림이 없는 진실을 적나라하게 까뒤집는다.

그가 말하는 진실은 불편하다. 어떤 이가 이렇게 물었다. ‘취직을 하고 싶은데 다들 제 디자인은 괜찮다고 하면서 나이가 많다는 둥 집이 멀다는 둥 취직을 시켜주지 않아요.’ 아마 나라면 ‘더 좋은 직장을 만나려고 그러는 걸 거예요.’라고 적당히 말했겠지만 저자는 냉정하다. ‘사원 집이 멀다는 걸 회사가 왜 걱정합니까? 정말 몰라서 묻는 거예요? 당신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드는 겁니다. 디자인 공부를 더 하세요.’ 그는 우리가 정말 몰랐거나, 아니면 애써 모른 척 하려는 진실을 들이밀며 우리를 채찍질한다. 그러나 기분 나쁘지 않은 채찍질이다. 그러한 그의 말이 진심으로 우리를 걱정하여 나온 것이라는 걸 잘 아니까. 그는 우리를 남 취급하지 않는다. 그는 우리를 진정 자신의 후배로 생각하고, 세상의 냉혹함을 감추지 않고 말하며 우리를 단련시키고 절망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지 바른 길을 알려준다. 설령 그것이 충격적이라고 하여도. 그것은 한편으로 그가 우리를 믿는다는 반증이기에, 그가 내미는 독한 약, 입에 쓴 약을 싫어할 수 없는 것이다.

방황까지는 아니지만 게으르고 나태했으며 자만했던 나의 삶에도 그의 충고와, 그가 살아가는 지독하리만큼 열정적인 삶이 쓴 약이 되었다. 그것들을 삼키며 아이에서 어른이 되어가는 기분이 든다. 나는 작가를 만난 적이 없지만, 언젠가 그를 보면 다정하게 어깨에 손을 올리며 인사를 하고 싶어진다. 형, 이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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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선비 - 살아있는 조선의 청빈을 만난다, 개정판 조선을 움직인 위대한 인물들 1
이준구.강호성 엮음 / 스타북스 / 201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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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 바르게 살고 바르게 죽다.


이 책에 나오는 40명의 선비 중 내가 그 이전에도 이름을 알고 있던 사람은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일단 그 점이 부끄럽기도 하고 또한 놀랍기도 했다. 나름대로 역사에도 자신 있고, 유교적 문화의 세례를 받으며 자랐다고 생각했는데, 역시나 나는 한참 멀었구나 싶었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온 선비들은 나의 이런 자만심과는 거리가 먼 사람들이다. 하나같이 자신에게 엄격하여 보는 내가 무서워질 정도로 청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이 책은 단순히 조선의 선비들에 대해 다룬 것은 아니다. 정확한 이 책의 정의를 내리자면, 청렴한 조선의 선비가 될 것이다. 이들의 청렴함은 때로 무서울 정도여서 물자가 풍부한 우리의 기준으로는 거의 기행의 수준에 가까운 일을 벌이기도 한다. 그 청렴함이 거의 결벽처럼 느껴질 수준이어서 무섭게까지 느껴지니 말이다.

물론, 그러한 모습은 이 시대의 귀감이 되기 충분하다. 백성을 사랑하고 가진 자들에게 엄격하고 자신 스스로 백성의 입장에 서고자 한 치의 더러움도 용납하지 않는 사람의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시대의 사람들은 그저 자신의 배만 채우려 급급한데, 우리가 흔히 ‘옛날’이라며 얕잡아보는 조선시대의 선비들은 그토록 청렴하니,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나로서는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없지는 않았다. 그것은 이 책이 너무 선비들의 청렴함에만 집중한 나머지 선비들의 인간다움이 많이 씻겨져 나갔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도 인간다운 따스한 마음이 있었을 터인데, 이 책에서는 그것보다는 그저 초인적인 가난을 견디고 또 그것을 식구들에게도 감당케 하는 모습만이 나온다. 그렇기에 존경스럽기는 하지만 결코 가까이 다가가기에는 어렵게만 느껴지고, 심지어 ‘아무리 그래도 매정한 것 아닌가’싶기도 하다.

따스함이 없는 청렴이라면 그저 기행에 불과하다. 지나칠 정도의 청렴 이면에 인간적으로 타인을 쓰다듬는 인간미를 부각시켜주었다면 우리가 아무리 투덜거리기 좋아하는 인간이라 하여도 이 40명의 선비들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러니 이 책은 청렴함에 대해서는 자세한 이야기를 풀어놓고 있으면서도, 그들의 따뜻함에 대해서는 추상적인 이야기만을 들려주는 경우가 많아 그것이 아쉬웠다. 그런 글로는 보통 사람들과 선비들의 거리감만 늘려서 ‘저 사람들이야 애초에 나와 다르니까’라는 인식을 낳을 수도 있을 것이다. 실재로 나 역시 어릴 적에는 그런 생각을 많이 했었다. 그러다 선비들이 쓴 연애시를 읽으며 그런 생각을 많이 고쳤지만. 그런 모습이 좀 더 보충된 책이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그런 단점이야 조금 아쉬운 점이고, 이 책의 다른 장점에 비하면 결코 불쾌할 정도로 크게 느껴지는 것이 아니다. 딱딱한 문어체가 아닌, 마치 할아버지 선생님이 들려주는 이야기처럼 부드러운 문장을 써서 쓴 조선 선비 40명에 대한 이야기는 훈훈하면서도 서릿발 같은 교훈을 우리에게 남겨준다.

바르게 살고 바르게 죽은 선비들. 자신의 자리에서 그토록 최선을 다했던 우리의 선조들을 보며 오늘날 우리의 삶을 돌아보는 것. 이것이야말로 조선의 선비들이 자신의 삶이 남겨지길 바라 마지않던 그런 후세의 기록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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