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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    랑

                                              정호승 

그대는 내 슬픈 운명의 기쁨

내가 기도할 수 없을 때 기도하는 기도

내 영혼이 가난할 때 부르는 노래

모든 시인들이 죽은 뒤에 다시 쓰는 시

모든 애인들이 끝끝내 지키는 깨끗한 눈물

 

오늘도 나는 그대를 사랑하는 날보다

원망하는 날들이 더 많았나니

창밖에 가난한 등불하나 내어 걸고

기다림 때문에 그대를 사랑하고

사랑하기 때문에 그대를 기다리나니

 

그대는 결국 침묵을 깨뜨리는 침묵

아무리 걸어가도 끝없는 새벽길

새벽 달빛 위에 앉아 있던 겨울산

작은 나뭇가지 위에 잠들던 바다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던 사막의 마지막 별빛

언젠가 내 가슴 속 봄날에 피었던 흰 냉이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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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변역에서

                                             정호승

너를 기다리다가

오늘 하루도 마지막 날 처럼 지나갔다

너를 기다리다가

사랑도 인생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바람은 불고 강물은 흐르고

어느새 강변의 불빛마저 꺼져버린 뒤

너를 기다리다가

열차는 또다시 내 가슴 위로 소리없이 지나갔다

우리가 만남이라고 불렀던

첫 눈 내리는 강변역에서

내가 아직도 너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나의 운명보다 언제나

너의 운명을 더 슬퍼하기 때문이다

그 언젠가 겨울산에서

저녁별들이 흘리는 눈물을 보며

우리가 사랑이라고 불렀던

바람부는 강변역에서

나는 오늘도

우리가 물결처럼

다시 만나야 할 날들을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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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갈    대                      

                                                  정호승

오늘도 내 마음이 무덤입니다.

헤어지는 날까지 강가에서 살겠습니다.

 

들녘엔 개쑥이 돋고

하루하루가  최후의 날처럼 지나가도

 

쓰러질 수 밖에 없을 때에는

또 일어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눈물을 다하고 마침내 통곡을 다하고

광야에 바람 한 점 불지 않아도

 

누가 보자기를 풀어

푸른 하늘을 펼쳐놓으면

 

먼 길 떠나는 날 이 아침에

오늘도 내 마음이 무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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